한국 Hacker, F/OSS문화 History 정리 함 들어가~ 봅시다.

ed.netdiver의 이미지

자자 녹아듭니다. :D
뭐 각잡고 할것까지야 없을것같아 어벙이인채로 시작해봅니다.
F/OSS 포럼에서 순선님의 방향성 thread에서 이어집니다.

한국 전산의 역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같은 history정리를 해봅시다.

제목도 없습니다. 제안해주시는 제목중에 다수의 공감을 얻는 것으로 향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Wiki page도 개설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이 글타래에서 어느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나서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것 같고, 또 참여도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제맘대로의 생각입니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신의 draft를 처음 wiki화하는 분의 page에 살붙이기하는 식도 좋을것 같군요. :D

web에 open되어있는 관련 문서들이 있지만 저작권문제가 있어 일일이 허락,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번거로우니 이곳에 직접 적어주시는 글들로 한정해 문서화해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그런 수고를 해서 올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대환영입니다.

issue는 하기와 같습니다.
1. 기(간)의 구분에 있어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즉 시초는 언제로 잡고 각 기수의 분기점을 어떻게 잡을지 의견을 내주시면 되겠습니다.
가령 PDP11시기, Z80시기, 286시기 뭐 이런식입니다.
시금석이 될만한 사안에 대한걸 논의하면 되겠습니다.
2. 옛날분들을 중심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어떤 분들이 어떤 일들을 했었다는 식으로 적어보죠.
가급적 세세하고 실명거론되고 에피소드까지 곁들여진 생생한 이야기로 꾸며봅시다.
3. 실제 주인공들께서 나타나셔서 육성을 전해주시면 최상이 되겠네요.
이곳 KLDP의 network이라면 다리다리로라도 직간접 청취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봅니다.

자, 지금까지 생각난건 이정도입니다.
전 그냥 돌던진 사람인것 뿐이니, 이 글타래 자체에 대한 논의부터 잡고 진행하려는 테마에 대한 것까지.
자신의 기억부터 보고들은 내용까지, 학생이시라면 학교 괴담까지도 괜찮겠습니다.(이건 빼자는 얘기까지도요. :D )

오래, 많이 짱구굴리고 있기만 한다고 해서 과제가 잘되는건 아니겠죠?
자 수다 떨어봅시다. :twisted:

덧. 진행이 더디면 제가 직접 요청드릴수도 있습니다. 권한도 강제력도 의무도 혜택도 없다는 점은 다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특히 왕년에 한 modem하셨던 분들, ketel이니 vax니 하신분들은 제가 대충 기억하고 있기도 하고 검색하면 다 나오니 절대 피할수 없으신겁니다. :D

댓글

권순선의 이미지

http://korea.gnu.org/people/chsong/yys/ 를 한번 참고해 보세요. 제가 마소에 글쓸 때 조금 베낀 자료입니다. :-)

그리고 세부 내용보다는 먼저 목차부터 잡아보는게 어떨까 합니다.

offree의 이미지

역사라!!
이런것을 정리하는 것은 어떨까요?
예전 잡지(마소,리눅스매거진,리눅스@Work,프세등.)의 관련기사 제목/요약 을 열거하면, 그 당시의 상황이 조금이나마 짐작이 될 듯 하네요.

사용자가 바꾸어 나가자!!

= about me =
http://wiki.kldp.org/wiki.php/offree , DeVlog , google talk : offree at gmail.com

cjh의 이미지

http://www.internethistory.or.kr/

직접 관련은 없겠지만 참고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
익스펙토 페트로눔

channy의 이미지

이걸 왜 할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http://www.infotrust.or.kr/ 도 참고하세요..

Channy Yun

Mozilla Korean Project
http://www.mozilla.or.kr

ed.netdiver의 이미지

윽, 당했습니다.
전 그냥 멍석만 깔고, 다른 분들이 contents를 채우시는 모양새를 희망했었거든요^^;
심지어는 목차 정리까지도 말이죠.
(벌려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주의자!! :D )

왜 할려고 하는지 의문...은 저도 듭니다. :D
별로 의미 없겠죠?
그럼 말죠 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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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hey의 이미지

그 이유는!

qed님이 최초로 제안을 했고, 거기에 권순선님이 해봐라 재밌겠다고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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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the F/OSS be with you..


ed.netdiver의 이미지

말았다 다시 폅니다.
언제고 말았다 폈다가 자유로운 점도 F/OSS의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D
제가 생각한건 간단히 말하면 RevolutionOS류의 material입니다.
그렇다고 documentary를 만들 능력도 여유도 없으니 문서상으로라도
그런 식의 output이 있다면 나쁘지 않겠냐 하는 정도의 안일한 발상이었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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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netdiver의 이미지

핫 점심먹고 들와서 쓰다 시작한 미팅이 인제 끝나 post한새에 hey님이 올리셨네요^^;
제가 그다지 많은 노력을 기울일 시간이 없기도 하고, 또 너무 중압감같은걸 갖고 진행하면 중간에 재미없어질 것같아서 서로 수다떨다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나 싶었던 겁니다.
너무 무대책인거겠죠?ㅎㅎ

덧. 그러니까 딱딱한 연표나 연혁은 지양한다는 것인데...
저도 딱히 제격인 모델은 제시하지 못하겠군요.
좀더 고민하면서 진화시켜나가봅시다.
아, wiki에 올려놓고 놔두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살이 붙어가겠지만
뼈대만큼은 여기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혼자 하면 재미없잖아요 :w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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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rie의 이미지

qed wrote:
말았다 다시 폅니다.
언제고 말았다 폈다가 자유로운 점도 F/OSS의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D
제가 생각한건 간단히 말하면 RevolutionOS류의 material입니다.
그렇다고 documentary를 만들 능력도 여유도 없으니 문서상으로라도
그런 식의 output이 있다면 나쁘지 않겠냐 하는 정도의 안일한 발상이었습니다.:D

나중에라도 영상물로 제작할 수도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료가 모아진 뒤에, KLDPer분들 가운데서 기획 및 촬영, 편집까지 가능한 분이 계시면 함께 고민해봐도 될 것 같고, 여의치가 않으면 각 대학의 방송국이나 미디어학부들과 연계해서 제작해도 좋겠죠. :lol:

예전에 학생회에서 documentary형식의 영상물을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학교 인터넷 방송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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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비안 & 우분투로 대동단결!

asiawide의 이미지

http://korea.gnu.org/people/chsong/yys/ 여기에 실린 기사는 주로 한국에서 리눅스가 퍼트려진 이후의 일을 '해커'하고 동일하게 본것 같네요.

너무나 유명한 안철수씨도 초기에는 어셈블리 해커(?)로 마소에도 기고를 많이 했었죠. Turbo C 정복이나 한라프로로 유명했던 임인권씨 같은 분들처럼 PC 통신같은 것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 컴퓨터 잡지를 통해서 활동하던 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거의 잊혀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컴퓨터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과 그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정사가 아니라 야사(?)같은 성격으로 정리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극 초창기 컴퓨터 도입과 각종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정리되어 어느 잡지의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것을 본 기억이 나네요. -.-

ed.netdiver의 이미지

asiawide wrote:
http://korea.gnu.org/people/chsong/yys/ 여기에 실린 기사는 주로 한국에서 리눅스가 퍼트려진 이후의 일을 '해커'하고 동일하게 본것 같네요.

너무나 유명한 안철수씨도 초기에는 어셈블리 해커(?)로 마소에도 기고를 많이 했었죠. Turbo C 정복이나 한라프로로 유명했던 임인권씨 같은 분들처럼 PC 통신같은 것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 컴퓨터 잡지를 통해서 활동하던 분들의 이야기는 이제 거의 잊혀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컴퓨터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과 그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정사가 아니라 야사(?)같은 성격으로 정리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극 초창기 컴퓨터 도입과 각종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정리되어 어느 잡지의 별책부록으로 나왔던 것을 본 기억이 나네요. -.-


네 저도 님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x86초창기 전후의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할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PDP류가 처음 도입되고 하던 시절의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이시절까지 더듬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시절의 분들중에도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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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netdiver의 이미지

안녕하세요.
음, 일단 발을 뗐으니 다음 발걸음을 어떻게 할지를 논의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앞선 설명이 너무 부실합니다만 개략적인 이해는 되었다고 보고(네 막무가내지요?ㅡ.ㅡ; ), 우선 과연 이런 일이 소용이 닿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아진다면 다음으로는 구체적으로 목표를 한정지어봤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원론적으로 하고싶으면 하고 싫으면 말면 된다. 가 정답인건 알고 있습니다만, 같이 고민해봤으면 싶어서 그렇습니다.
앞서 순선님의 KLDP방향성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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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선의 이미지

다음달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기사를 위해서 제가 썼던 F/OSS 위주의 커뮤니티 관련 역사(?)를 seed로서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본 목차라든가 최소한의 내용은 제공되어야 작성이 진행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 대해서 작성할 사람이 있으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자기가 알고 있는 선에서만 커버하는 것이 좋겠지요.

ed.netdiver의 이미지

오옷!! :D

전 막연하게 크게 두개 Part로 생각해봤습니다.
F/OSS이전의 z80, xt, ketel시절과
F/OSS이후의 linux, web...

전자는 전산초기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갈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차리서님 어머님같으신 산 증인분들께서밖에 채워주실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과연 그때도 F/OSS같은 개념(?)이 있었을까 의문이기도 하고 그러네요.
hack이란 것은 그때도 있었을것 같습니다만...

무엇보다 연표를 만드려는게 아니다보니, 당시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재밌게 엮어갈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게 그냥 요즘 생각해본 와꾸(라고 할수 있나?ㅡ.ㅡ; )입니다.
아무래도 순선님, 이만용이사님같으신 분들이 많이 계시니 F/OSS이후는 비교적 쉽게 풀어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봤습니다.

해야 할 작업이라면 대충,
- 틀 잡기(목차가 되려나요? 그보단 더 광의로서의 그 무언가...)
- 자료, 사료 수집, (서면)인터뷰...(인용시 저자의 허락을 득하는 부분까지~ )
- 구성
- 문서화
- 편집 및 wiki화...

가 될것 같습니다.

전제는 모든 결과물은 전부 KLDP로 귀속되고 GPL을 따르며, 저빼고 편집자 및 참여자는 모두 실명으로 한다.로 하고 싶습니다.
제 닉도 실명도 남기고 싶지 않은게 유일한 희망입니다.(닉이야 바꾸면되니^^; )

혹시 이 글타래에 공감하시는분은 다른 통로 말고 이 글타래를 통해서 의견을
교환했으면 좋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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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netdiver의 이미지

목차내지 틀을 잡는데 있어서, 흔히 쓰는 무슨무슨 시기라는 식으로 해봤으면 좋겠습니다.(어떠세요? )
예를들면 1회 리눅스 공동체 세미나... 같은것 있죠?
그렇게 연대를 구분짓고 그 안에서 그 시기에 어떤 어떤 일들이 있었나를 F/OSS, Hacker 문화와 연관되는 수순으로 적어나가보는겁니다.
예를들면 마소 창간.같은 사건(?)과 그에 따른 에피소드...
에피소드식이므로 어떤 업체가 어떻게 시작했지만 어떤일들을 하다가 문을 닫았다라거나 개인적인(단 공동체 혹은 F/OSS, Hacker문화와 관련있는) 일화들을 회상조로 나래이션한달지 하는 식도 됩니다.

Search The F****** Google하지 마시고, 이걸 만드는 과정도 F/OSS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착각과 자기최면의 중간자적 입장에 서셔서 많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건너불구경 멘트도 환영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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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iolo의 이미지

순선님이 마소 기사쓰신다더니 ~.~

일단 한번 시작해 봅시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PC바닥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PC중심입니다.

1. pre-PC시대
전, 잘 모릅니다. 전 PC이후 세대거든요-.-;
기저귀 차고 있던 시절이죠.(알고보면 아직 영계에요-.-/)
형님이 이 세대인데... 뭐... 아직도 그 시대에 사는 듯 합니다. 지금도 코볼과 PL/I과 씨름하고 있더군요. 물론 집에선 divx영화도 잘 봅니다^^;

2. pc등장 - 패미콤, 스프라이트...
82~83년이었던 거 같습니다.
아득한 옛날... "지경사"의 "BASIC게임 모음집" 1,2,3을 키보드로 타이핑해서 넣고 콘솔(?) 게임이랍시고 즐거워했던 시절... 그냥 비싼 장난감으로써의 PC였습니다.
제가 PC와 처음 연을 맺은건 당시로썬 생소했던 전산 전공의 형의 영향이 컸습니다. 거기에 다니던 중학교에 과학교보재랍시고 "과학상자"와 함께 "FC-30"이 십여대 들어왔습니다. 그걸로 "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형이 사준 한수찬교수의 "애플입문II+"와 "애플어셈블리"로 고달픈 저의 PC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한수찬교수님께 감사를 드려야할지 원망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lol)

3. apple II, spc-1000, msx 8비트 트로아카 시대
83~87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마소(microsoft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게들 쓰지만, 예전에는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마소라고 불렀습니다.)가 인터넷을 대신하던 시절이죠.
마소 외에 학생과 컴퓨터, 컴퓨터 학습(나중에 마이컴이된)등이 기억나네요.
당시의 유명한 해커들이 꽤 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진듯 하네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안대혁, 유홍준, 류백현, 이충수, 김성수, 변성완... 정말 기억을 더듬어도 제목이나 내용은 기억나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나네요.(혹시 빠졌다고 서운해 하지 마세요... 제가 머리가 나쁜것일뿐)
500원주고 디스켓한장짜리 게임을 불법복사(당시는 500원이면 정품인줄 알았을지도..)하던 시절이었고.. 실제로 그걸 사업으로 삼던 회사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래아한글로 유명해진 러브리소프트나 써드웨이브, 소프트빌리지같은 회사들이 사실 "회원제" 불법 소프트웨어 복사 업체였죠. 말하자면 오프라인 덩키같은...-.-; 그대로 이런 불법 사업 덕분에 게임의 복제방지 프로텍션 깨는 알바가 솔찮게 들어왔더랬습니다. ;)
당시 제가 쓰던 애플은 당대를 주름잡았던 "로얄"(-.-;;;)컴퓨터의 애플복제품이었는데.. 마소의 광고모델이 "김희애"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그때는 누군지 몰랐고 나중에 보면서 그런가 했죠.(이 시절 마소 갖고 계신분 한번 확인해보시길...)
84년 초였던거 같은데 유홍준씨가 만든 엑스리온(오락실의 그것과 유사한)이라는 게임의 소스(물론 기계어 덤프 리스트입니다)가 마소의 1/3을 채우고 있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그걸 일주일 밤낮 타이핑해서(타이핑보다 틀린거 찾기가 더 힘들죠) 돌렸던 기억도 납니다 ;) 사실 청운 서림(전 대구사람입니다)가면 1500원주면 테이프로 살수 있었는데 말이죠^^;
당시 8비트 애플에서 쓸수 있던 한글이 몇가지 있었는데.. 추가장비없이... 기존 소프트웨어까지 문제 없이 돌릴 수 있었던 CALL 3327한글을 많이섰던거 같습니다. 이 녀석이 N바이트 조합형(기본적으로 요즘의 공한체와 유사한 컨셉입니다만)이었는데 소팅부터.. 화면 많이 차지하는 문제(가로 20자 세로 12자)를 해결하려고 무던히 삽질하던 시절이었던것 같습니다.
기울여풀어쓰기인가 하는 방법(86년인가...)을 제시한 기사도 있었는데.. 참 어처구니없지만 또한.. 기똥차다는 생각을 했었던거 같습니다.
마소에서 매년 마이크로 마우스 경진대회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추2호"라는 로봇이 기억나네요-.-)b

4. ibm-pc등장 + PC통신의 시대
86년~7년으로 넘어가면서 마소에 ibm-pc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그러고 88년인가 89년에 "16비트 전문지 선언"을 하면서 8비트 기사들이 사라졌죠.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8비트 기사는 7x11매트릭스에 한글을 우겨넣어서(!!!) 8비트 애플에서 가로 40컬럼을 구현한 Q한글 이었습니다.
마소 필자들을 기준으로 당시를 기억해보면:
임인건, 이준희, 류성준, 박흥호, 정내권.. 아 지금도 유명한 이찬진씨와 안철수씨가 등장한것도 이 무렵이었던 같습니다.
터보이빨(turbo28)로 이름 날리던 임인건씨의 벼게만한 책 "터보C정복"도 기억에 남네요. 당시 마소 기자셨던 분이 "달리만듦"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름의 출판 기획 전문회사를 만들어서 펴낸 "정복"시리즈의 일환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박진감 넘치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찬진씨하면 유명하지만 이찬진씨가 마소에 처음등장한건 83년인가 84년에 애플 베이직으로 짠 숫자 사이에 콤마 넣어서 오른쪽 정렬하는(basic의 print using문) 서브루틴을 기고한거였다고 기억됩니다.
86년인가 누가 터보파스칼로 멀티윈도우(지금의 윈도와는 좀 다른.. 터보C 2.0기억하시는 분이라면 그것과 유사한)라이브러리를 기고 했었는데... 몇달후 이찬진씨가 이걸 개선한 기사를 내놓았었죠. 그걸 보면서... 햐 이 사람 독특한 재주가 있구나했던 기억이 납니다.(상당히 인상적이었나봐요 지금도 기억하는걸 보면) 그 무렵 저도 무슨 탁상용 계산기 프로그램의 도움말 출력 루틴을 보고 PC의 비디오메모리 구조를 알아내고는 팝업윈도를 구현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의 화두는 PC에서의 한글 구현이었는데(마소가 특히 집중하던 분야죠)..
후일 표준이된 KS완성형도 없었던 시절이고 주로 삼보의 hp(나중에 thp, nkp가된프로그램)에서 사용하던 "상용조합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죠. 한글 글꼴 문제.. 입력기 문제.. 출력 문제.. 등등등 끝도없는 한글 이슈들이 나오곤 했었습니다. 전 당시 8비트 애플에서 16비트 PC로 이전하는 과정이었는데(애플에 대한 애정+경제적인 이유로 늦어졌죠) CP/M에 한글 구현한다고 삽질했던게 마지막었던것 같네요.
이 시기의 또다른 화두는 PC통신이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접했던건 엠팔이었던 같습니다. 그리곤 잊고 살았는데... 88년인가 무렵에 갑자기 사설 비비에스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호롱불과 인토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나는 "표하사네 사랑방"도 문득 떠오릅니다.
그리고 케텔, 천리안...
케델의 두루물과 게오동은 OSC등이 기억나네요. 천리안은 부유한 사람들이나 쓰는 거였습니다 -.-; 하이텔이 되기 전까진 말이죠.
컴퓨터학습은 "마이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학생과 컴퓨터"는 망했죠.
PC라인과 PC어드밴스라는 새 잡지도 생겼습니다.(이건 좀 더 나중인가요?)
개인적으론 이 시기가 단어 그대로의 PC (개인용 컴퓨터)의 황금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기도하고... 처음으로 컴퓨터를 통해 돈같은 돈을 벌어본 시대이기도 하지요.

5. 인터넷 등장
아마 고3과 대학 입합 무렵이었던거 같습니다.
그래도 고3인지라...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습니다.
시기적으로 이게 먼전지 어느게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전 인터넷을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접했습니다. archie, ftp, gopher였던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아직 웹은 없었습니다. 서강대 아키 서버가 기억나는군요 archie.sogang.ac.kr? 맞나요?
솔직히 전 인터넷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몰랐습니다.
후일 시대착오로 판명된(?) 유니텔, 나우누리 같은 포스트-PC통신이 시작된것도 이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갔죠. P77무전기와 하나워드를 벗삼아..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되뇌이던 동안에도 바깥 세상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죠.

6. win3.1의 성공과 ms의 성공시대
군복무시절이었는데 휴가를 나와서 학교 전산실에 놀러갔더니...
모든 컴퓨터에 같은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더군요. 큰 글꼴 작은 글꼴... 그래서 후배에게 물었죠. "아래아한글 새 버전 나왔냐?"
그것이 "모자익"이었습니다.
win 3.1과 트럼펫 윈속의 결합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습니다. 가끔 이 시대를 회상하는 "인터넷의 숨겨진 역사"류의 글을 읽다보면 "트럼펫 윈속"의 존재를 너무 작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ibm의 os/2가 등장했지만 거의 무시당했죠.
악필옹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저에겐 그랬다는 겁니다 ;)
최초의 OS/2에는 GUI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OS/2는 너무 느렸습니다. 특히 부팅이 겁나게 느렸던 기억이 납니다.
geoworks의 앙상블도 기억에 남고.. deskview 386... drdos도 기억이 나네요. 조금 더 전의 일이지만 DRI의 GEM에 벤추라 퍼블리셔를 깔아놓고... 그걸 그대로 따라하면서 DTP프로그램을 만들던 기억이 나네요. 화면과 프린터의 도트비율 1:1로 WYSIWYG을 실현한 엉뚱한 프로그램이었죠.
drdos도 참 좋았었는데... (MS가 win3.1과의 호환성을 회피했다는 음모론이 돌았죠) win3.1을 돌리는데 문제가 있다는 이류로 점점 잊혀졌습니다.

7. linux등장 (사실 여기 적으면서 생각해봐도.. 등장할 당시에는 존재감도 없었다고 기억됩니다)
제가 처음 리눅스를 깔아본게... 93년인가 무슨 슬랙웨어였던것 같습니다. 무슨 잡지의 부록으로 나왔었는데 당시 주변에 시디롬을 갖고 있는 친구가 한명 뿐이어서... 모두들 하드를 빼서... 그 친구네 집에가서 복사해왔죠.
1배속 시디롬으로 그거 복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것 같네요
그렇게 설치만 해보고 잊고 살았습니다.

8. NT와 os/2의 한판 승부. 그러나 승자는 win95
리눅스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말이죠...
저는 여전히 주류에 속해 있었습니다.
NT와 OS/2의 한판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정작 승자는 win95였습니다.
당시 8메가 486DX4-100머신에 NT 3.5를 깔고 비주얼씨 2.0(1.5였나요?)를 돌리던 기억이 납니다. 느렸지만... 정말.. 튼튼했다고 기억됩니다. 일부러 NT를 죽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까요...
NT가 죽기 시작한게 NT 3.51 그리고 일명 시카고 패치라고 일컬어지는 3.52패치..이후였던거 같습니다. NT의 모양새가 win3.1(엄밀히는 IBM SAA/CUA)에서 win95의 시작메뉴 형태로 바뀌던 시절이었죠. NT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바가 등장한것도 이무렵이었던 같습니다.
넷스케잎에서 듀크가 덤블링하는 애플릿을 돌려보면서 탄성을 지르던 기억이 납니다.
ASP를 처음 보면서 한 코드에 서버에서 실행할 코드와 클라이언트에서 실행할 코드가 공존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던 기억이 납니다. 일종의 분산시스템이었던건데.. CGI도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 정신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win3.1 win95의 연타석 홈런을 날린 MS는 수많은 적들을 각개격파했습니다.
워드스타에 이어 지존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워드페펙, 클리퍼와 폭스프로(이거 원래 MS꺼 아닙니다)의 반격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애시톤테이트(결국 볼랜드를 거쳐서... 망하죠), 절대 지존이라고 믿었던 로터스 마저 무너지더군요. 볼랜드는 의도적으로 살려두었습니다. 빈사상태였지만 말이죠...
이제 MS에겐 적이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이미 MS와는 아주 다른 출신 성분을 가진 무언가가 반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죠. MS와 부딪히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전세계를 인공위성으로 묶어버리겠다던 MSNetwork의 꿈을 이미 실현한(비록 인공위성은 아니었지만) 인터넷과 웹이 있었던거죠.

9. ie와 netscape의 한판 승부
플러스팩과 함께 데스크탑에 자리잡은(OSR2였나요?) IE 3.0(2.0이었나요?)은 악몽이었습니다. 역시 넷스케잎 3.0gold가 최고였죠!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넷스케잎에게 기회가 있었습니다. MS가 MSNetwork(지금의 MSN과 다른...말하자면 유니텔같은 PC통신)에 미련을 갖고 있었으니까요. 지금의 MS가 되기까지 빌게이츠의 최대 업적을 꼽는다면 SCP에서 DOS를 사서 IBM에 납품한것.. OS/2의 공동개발로 얻은 지식을 win3.1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팔아먹은거... 그리고 MSNetwork을 신속하게 포기하고 인터넷으로 방향을 선회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직은 넷스케잎이 강자였지만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넷스케잎 4.0(이름하여 커뮤니케이터!)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죠. 아무도 모뎀으로 14메가의 네스케잎4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win98에 그냥 깔려있는 IE면 충분했죠. 넷스케잎에서 부랴부랴 이것저것 다 떼어내고 넷스케잎 네비게이터 4.0(이제 7메가쯤으로 줄었죠?)를 내놓았지만... 이미 상황 역전. 그리고 순식간에 게임 오바였습니다.

10. ms의 독주 -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워드스타, 워드퍼펙, 로터스, 애시톤테이트를 연속으로 KO시키면서 성장한 MS는 볼랜드, 디지탈리서치, 노벨에 이어 넷스케잎을 마저 희생물로 삼아 지존의 자리에 오릅니다. 재미없는 시대... PC역사에 있어서 암흑의 시대의 시작이죠.
MS를 비난하는 의미의 "암흑의 시대"라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안전한지는 모르지만 재미도 없는 법이죠.
저도 한참동안은 MS의 그날아래서 즐겁게 살았습니다. 근데... 선택에 여지가 없다는 것... 그리고 내게 주어진 선택이 항상 MS가 가진 보따리에서 나온 다는 것... 즉 내가 MS보다 앞서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나더군요.

제가 MS에 반감을 가지게된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했습니다.
비주얼 C 1.5를 쓰던시절... CToolbar클래스가 없었습니다. 툴바라는 용어조차 정립되기 전이니까요... 그런데 VC++ 1.5와... 오피스(아마 6~7버전쯤 되지 않았을까요?)는 그걸 멋직게 쓰고 있었죠. 그래서... 저도 열씨미(!) 만들었습니다. MyToolbar가 만들어진거죠. 그런데 VC++ 2.0이 나왔을때 힘이 쭈욱 빠지더군요. MFC에 CToolbar가 추가된것입니다. 제가만든 MyToolbar은 아무 쓸모가 없었죠. 그런데 VC++ 2.0의 툴바는 MFC의 CToolbar와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도킹이 된다는 거죠. 떼었다 붙였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당시로썬 혁신적이 었습니다. 아예 떨어져있거나 붙어있는 것은 많았지만 그렇게 떼었다 붙였다하는 건 거의 없었죠. VC++ 2.0과 Office빼고 말이죠(아마 Office 95였다고 기억됩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만들었습니다 MyDockToolbar를! 그러나 VC++ 4.0이 나왔을때... MFC에 떡하니 박혀나온 툴바를 보게되었죠. 이쯤 되니 좌절 보다는 화가 나더군요. 내가 VC++로 만든 어플리케이션은 항상 MS의 그것(만들때 사용한 VC++포함)보다 한발 늦다는 사실에 화가나더군요.
결국 전 자바 진영으로 급선회 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델파이로 이것저것 해먹었죠. 비주얼씨도 유용한 수입원이었습니다. C++빌더도 그렇군요.
리눅스로 전향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니텔 프개동에서 공동구매한 알짜리눅스 6.0과 미지의 한글/X를 시작으로 리눅스와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11. f/oss의 전면 등장
저같은 사람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선택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개발자들같은 크리에이티브가 강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고 해도 시키면 하길 싫어지는 족속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F/OSS에 발전이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등따시고 배불리 살수 있는 제국의 식민지 보다는... 춥고 배고파도 내나라 삼천리를 원하는거죠.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좀 더 시간이 지나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무진장 길게썼네요-.-;;;

너무 더워서 물한바가지 뒤집어 쓰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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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le has left your eyes...

ed.netdiver의 이미지

퇴근해서 씻고 피곤해 누워서 컴터켜기도 귀찮아 PDA로 kldp 들왔다가 iolo님의 글을 봐버렸습니다. 도저히 댓글 안달고 그냥 잘수가 없어 이렇게 다시 컴터앞에 앉고 말았습니다. :D

오오옷.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져 허우적댔습니다.
:cry:

이렇게 멋진글을 올려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게 이렇게 나래이션식 회상식 글들 모음이었습니다.
마치 revolutionOS나 code linux같은 필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렇게 진짜 iolo님의 글을 읽고 나니, 구성과 플롯을 어떻게 짜야할지가 정말 고민됩니다.

모처럼 소중한 이야기, 자료들을 받아모아놓고서 정작 구성을 엉터리로 하면 큰일이겠다 싶어진거죠. :(

역시 필름형식에서는 인터뷰, 나래이션이 자유로울수 있겠는데, 지면상으로 당시의 긴장감을 그대로 옮겨가면서도 본래의 줄기를 놓치지 않는다는게...

그래도 애초의 생각은 다른분들의 의견개진과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진 변할것 같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한편의 재밌는 소설을 읽은것같은 기분을 전하고 싶은게 욕심입니다.

아 역시 구성을 좀더 많이 고민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정리가 안되는군요.
iolo님과 같은 산 증인이자 무림고수님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모으고(편집은 절대 안할 생각입니다) 정리하는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이야기들을 어떻게 하면 Hacker, F/OSS 문화의 틀 속에 담아낼지가, 혹은 도출할지가 가장 중요할것 같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반가운 맘에^^;...
archie.sogang.ac.kr
맞는것 같은데요?^^; (제 메모리가 부실하긴 합니다만...)
ㅎㅎ 입학해서 전산실에 첨 들갔을때의 어색함과 gopher의 좌절이 떠오르는군요.

학교이야기. 여기선 일종의 암묵적 터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학교전설도 만만치않을것 같거든요?
그쪽 이야기도 좀 끌어내볼 수 있을까 싶은 맘에 별 좋지도 않은 출신학교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전 서강대 전자과 92학번입니다.
<주접>사실 순수 S/W업이란게 뭔지도 잘 모르는 어중이입니다. h/w, s/w사이의 박쥐인생에 신호처리쪽이다보니..^^; 흑... 맨날 오면서도 꼽사리같은기분... :cry: </주접>

확실하지는 않은 얘기입니다만 우리나라에 첨 ethernet혹은 PDP11이 들어온게 저희 학교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쯤 얘기하면 발끈하실 분들이 좀 계시려나요? :D

뭐 인생이 그렇듯이 남을 것은 남고 흘러갈 것은 흘러가는 법.
이렇게 수다떨던 일도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흐지부지될겁니다.
그런대도 별로 득도 해도 없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수다 한번 떨어보는것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혹시 너무 이야기 포커스를 과거로 맞추어버려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 오해 접어주세요.
그럴 자격같은게 제게 있을리 만무하지만, 이곳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한국 Hacker, F/OSS문화,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개인적 망상에서 비롯되어 시작해본 일입니다.
과거에 미래가 있다는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재밌게 들어볼수 있을테니까요.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글쎄요... 8)
그러니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들도 다 실사로 담아볼 요량입니다.
개인적인 경험담들도 거침없이 털어놔주세요.(어떻게 책임지려는건지...ㅜ.ㅜ; )

아 5시에 일어나야되는데... 이만 줄이겠습니다.
멍한채로 주절거려봤는데 그냥 post하고 잘랍니다.
좋은 밤들 되세요.
아 재밌는 꿈꾸고 싶당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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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 \(´∇`)ノ \(´∇`)ノ \(´∇`)ノ
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warpdory의 이미지

iolo 님께서 불을 지피셔서 저도 좀 써봅니다.(그렇다고 irc 에서까지.. 압력을 가하시다니)
지극히 제 경험적이고 제 중심적으로 적겠습니다.

제가 처음 컴퓨터라는 것을 본 게 초등학교 2 학년때, KOEX(지금은 COEX)에서 무슨 과학전시회 하면서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애플 2 컴퓨터를 처음 본 것이었습니다. 인천 제물포역에서 전철 타고 신도림에서 갈아타고 다시 2 호선을 삥 돌아서 삼성역까지 쭈욱 가는 멀고 먼 여정이었지요. 정말 신기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얼음땡, 술래잡기, 비석치기에 몰두하던 초등학교 4학년 어느날,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싸게 컴퓨터를 판다며 애플 2+ 한대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리고 애플소프트베이식 500 제.. 라는 두꺼운 책도 한권 같이 주시더군요. 동네에서 컴퓨터라는 걸 처음 가진 아이가 저였습니다.

1년쯤 그 책에 있는 예제들을 열심히 입력하고 .. 놀고 그러던 어느날, 4,5 집 정도 떨어진 곳에 살던 같은 반 친구도 애플 2 를 한대 구입합니다. 가서 열심히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때 제물포역 지하상가에 생긴 파인소프트라는 컴퓨터 가게를 알게 됩니다. iolo 님의 글에서도 나온, 500 원 받고 게임 복사해주던 가게입니다. 인천 살던 저에게 청계천(그땐 용산이 없었습니다. 지금 용산전자상가 자리엔 청과물 시장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이나 세운상가까지 가기는 너무 멀었었지요. 파인소프트에서 게임을 하나 복사해 와서 .. 집에서 돌리고 .. 친구랑 잘 놀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네트웍에 눈을 뜹니다. 애플 2+ 의 뒷면에는 오디오 단자가 2 개 있습니다. in/out 단자인데, 이것을 서로 오디오 케이블로 연결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해보니 잘 되더군요. 이쪽에서는 bsave(binary save 기능입니다. 주로 게임을 다른 테이프에 저장할 때 쓰던 기능이죠.)시키고 저쪽에서는 bload(bonary load 기능)로 받아들입니다. 다시 컴퓨터를 들고(애플 2 는 들기도 쉽습니다.) 친구집에 가서 약 20 미터쯤 떨어진 곳을 오디오 케이블로 연결해서 전화로 하나.. 둘.. 셋 ! 해서 하니깐 에러가 뜹니다. 나중에 신호 감쇄니 .. 하는 걸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그게 왜 그런지 미스터리였지요.

그리고 중학교에 갑니다.
중학교에 가면서 생긴 변화가 5.25 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장착했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10분에서 20분씩 테이프에서 불러와서 게임하던 것을, 단 1분도 안 걸리게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테이프에서는 마냥 다 불러들일 때까지 기다려서 에러 나면 볼륨 조절해서 다시 .. 다시 ..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런 게 없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중 2 때.. 시게이트 10 메가바이트 하드디스크를 막내고모부가 선물로 주셨습니다. 크기는 지금 씨디롬 크기 정도 됩니다. 그리고 Geos 라는 GUI 운영체제를 돌립니다. iolo님께서 말씀하신 geoworks 앙상블의 전신쯤 되는 놈입니다. 마우스대신 조이스틱으로 돌릴 수 있었는데, 저는 조이스틱이 없어서 esc 누르고 i/j/k/m 을 눌러가며 방향키를 대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애플 2에는 커서키가 따로 없습니다. esc + i/j/k/m 조합이 커서키로 동작합니다.) 조이스틱은 고 2 때 마련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슬슬 청계천/세운상가 출입을 시작합니다. 토요일이면 친구 몇을 꼬셔서 세운상가 가서 게임 구경하다가 .. 침만 흘리고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이때 일찍 눈을 뜬 친구 놈 하나는 컴퓨터 가게가 아닌 비디오나 플레이보이 잡지를 열심히 사와서 학교에서 비싼 값에 파는 장사 수완을 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그 녀석은 걸려서 정학먹고 된통 혼났습니다. 그래도 .. 고등학교때도 열심히 그렇게 해서 돈 벌더군요. (세운상가 한번 갔다가 오면 3,4 만원씩 생기니 그때로서는 꽤 괜찮은 장사였습니다.)
집에서 열심히 나름대로 코딩한 뒤에 디스켓에 저장해서 세운상가에 가서 동작시켜보곤 했었지요. 그때 배웠던 팁들이 꽤 많은데, 애플 2 + 의 메모리는 48 KB 입니다. 전체 메모리가 64 KB 이고 그중 16 KB 가 롬인데, 여기에다가 16 KB 짜리 메모리 확장 카드를 꽂으면 램을 64 KB 로 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꼼수가 있었으니, 바로 하드디스크가 있으면(플로피로도 되지만, 플로피는 너무 느립니다.) 최대 1 메가바이트까지 메모리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방식이지만, 그때는 아주 획기적이었습니다. 바로 4 KB 또는 8 KB 단위로 하드디스크에 이미지 파일을 하나 만들어두고 거기에 페이징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64 KB 의 작은 메모리를 매우 넓은 1 MB 의 기본 메모리로 확장시켜서 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IBM PC/XT 호환기종을 구입했는데, 기본 메모리가 640 KB 라는 말에 기운 빠지게 만든 주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학교때 상업 과목을 배웁니다. 이걸 나중에 유용하게 써먹게 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대충 성적이 반에서 10등 근처에서 놀았는데, 1학년 여름방학때 부모님 두분 다 교통사고로 1 년쯤 입원하시게 됩니다. 이때 저는 방황하는 사춘기(?)였고… 성적은 곤두박질 칩니다. 드디어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에서 뒤에서 10등을 합니다.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호출하셨고… 병원에서 학교에 가신 어머니는 성적표를 보시고 선생님과 모종의 협상을 하십니다. 그것은 … 패도 좋다. 죽이지만 마라. 였습니다. 죽도록 맞은 저는 … 2학년 2학기에 처음 치른 모의고사에서 반에서 20등이 됩니다. 이때 어머니는 조이스틱을 사 주셨습니다. 드디어 .. Geos 에서 키보드 대신 조이스틱을 쓸 수 있었지요. 그리고 다시 상품을 내거셨습니다. 반에서 10등안에 들어가면 IBM PC 사준다. … 이 말에 눈과 귀가 열리고 정신이 혼미해진 저는 … 밤을 세워가며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 드디어 중간고사 바로 다음 모의고사에서 전교에서 20등을 합니다. 이게 제가 받아본 성적 중 최고의 성적입니다.
의기 양양하게 성적표를 들고 부모님께 보여드렸고… 드디어 TwinHead 사의 SuperSet 모델 PC/XT 를 상품으로 받습니다. 하지만, 선물로 받고 게임 몇판해본 뒤 바로 고 3 이 되면서 컴퓨터 생활은 … 잠시 접습니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 3 이 공부외에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죽지 않을 정도로 맞아도 할말 없는 ‘죄악’이었으니까요. 이성친구/만화/컴퓨터/게임/놀기 …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전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아침 6시에 등교해서 밤 11시 30분까지 자율학습하고 12시 30분쯤에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1년 하고도 몇 달쯤 합니다.(고 2 중간고사 지난다음부터 고 3 모드로 돌입했으니…)

그렇게 고 3 이 지나가고 대학이라는 곳에 갑니다. 역시 부모님은 낚시를 하십니다. 대학교 들어가면 386 컴퓨터를 사주겠다 ! 였습니다. 저는 이 미끼에 충실히 낚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한달쯤 있다가 386 DX 33, 램 2 메가, 하드디스크 80 메가바이트, 허큘리스 그래픽카드(흑백…), 모뎀이 달린 컴퓨터를 제가 쓰게 됩니다. 이때부터 다시 컴퓨터를 가지고 장난을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시작한 게 용돈 벌이었습니다. 당시에 한참 8 비트에서 16 비트, 32 비트로 기종변환들이 되고 있었고, 용산이나 세운상가에 가면 버리는 애플 기종이나 MSX 기종이 많았습니다. 이걸 주워와서 … 거기에다가 몇가지 장치 붙여서 당구장에 팔았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당구장에서 포인트 누르면 삐리링.. 소리 나면서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에 체크 되고, 다시 ‘아줌마 났어요.’ 하면서 포인트 누르면 삐리링 .. 소리 나면서 컴퓨터에 입력되면서 시간 계산 되는 거였지요. 등록금과 용돈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리퍼라는 언어를 알게 됩니다. 일종의 DB 언어인데, 처음에는 애시톤 테이트사의 dBase 씨리즈에 내장된 언어였다가 나중에는 독립적인 언어가 됩니다. 한때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 내용의 반이 클리퍼일 때가 있었지요.
중학교때 배운 상업을 기초로 해서 … 조금 더 공부해서 클리퍼로 프로그램 짜서 업무용으로 팔았습니다. 이짓을 1994년까지 했습니다. 윈도즈 95 나오면서… 도스기반의 프로그래밍은 거의 무너지면서 안하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하고… 학교에서 전공과목과 씨름하던 1995년 어느날 … 제가 있던 실험실(자취방비를 다 술먹어서 실험실에 기생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원생 형들이 모두 신나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56K 였던 학교 네트웍 라인이 256K 로 확장되었었습니다. 웹페이지 하나 열기가 힘들었는데.. 확확 열리더군요. 그리고 정확히 1년이 지난 1996년 여름 어느날 … 256K 에서 다시 T1 으로 확장 됩니다. 이때는 정말 파티였습니다. 드디어 … 드디어 … 워크래프트 2 를 안 끊기면서 게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중반 정도까지가 아마도 공개소프트웨어의 절정기였었다고 봅니다. 하이텔(케텔 -> 코텔을 거쳐 드디어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여긴 갑부나 쓸 수 있었지요. 종량제라는 괴물로 인해서) .. 의 자료실에는 자기가 짠 프로그램과 소스들을 올려놓고 다운 받아서 문제점이 뭐고 … 이걸 좀 개선하면 좋겠다. 이런 글들을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MdirIII, ls, 21세기 워드 등등… 물론, 소스까지 공개는 안했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공개였고, 나중에 상용화된 프로그램도 몇 개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반골기질이 좀 있나 봅니다. 남들이 많이 쓰는 건 이상하게 별로 쓰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애플 2 쓸 때도 남들은 그냥 apple soft basic 썼는데, 저는 단지 속도가 조금 더 빠르다는 이유로 integer basic(말 그대로 정수연산만을 합니다. 그래서 속도가 빨랐고, 그 이유로 몇몇 게임이 integer basic 위에서 돌아갔었습니다.)을 테이프나 디스크에서 로딩해서 썼었고, 386 으로 바꾼 다음에는 바로 용돈을 다 투자해서 trident 8900cl VGA 카드와 램을 8메가로 늘린 다음에 OS/2 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OS/2 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거 쓸만한 프로그램도 없는데 뭐하러 쓰느냐.. 고 하지만, 쓰는 사람들에게는 ‘저런 저런…’ 이라는 소리가 나올만합니다. 물론, MS 오피스도 없고, 포토샵도 없지만, 있을 건 다 있고, 쓰는 데는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엄청난 사용자들의 공로덕분입니다. 윈도즈의 cygwin 와 비슷한 emx … 다른 점이라면 cygwin 은 윈도즈랑은 조금 따로 놀지만, emx 는 거의 OS/2 의 필수 요소라는 점입니다. gcc 로 컴파일 되는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emx 로 동작하며 이것은 OS/2 에서 꽤 많은 GNU util 및 다른 애플리케이션들이 잘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FireFox, GIMP, Gnome, mplayer 등등 … 물론, 어느정도의 포팅과정은 있어야 하지만, 어쨌건 돌아갑니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 현재 OS/2 사용자들이 거의 얼굴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적기 때문에 한글화(정확히는 i18n 에서 한글 메시지라든가.. 등등…)가 안되고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http://hobbes.nmsu.edu 등에 가보면 소스가 공개된 프로그램들이 꽤 많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OS/2 를 쓰고 있고요.
이런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고…

그리고 리눅스를 접합니다. 1993년에 SLS 배포판을 디스켓으로 몇번 깔아보고 때려쳤다가… 슬랙웨어 1.몇 버전을 다시 깔면서 리눅스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하이텔 리눅스 동호회 대표시삽도 해먹습니다. 뭔가 리눅스로부터 얻은 게 많습니다. 그건 바로 ‘재미’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프로그래밍에서 손 뗀지 몇 년이 지나서 코딩 한줄 못하지만 … 패치 한번 하려면 patch –p1 이었나.. 하면서 해야 하지만 재미납니다. 그리고 .. 지금도 리눅스 잘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리눅스… 그리고 Free/Open Software 는 저에게 더 많은 ‘재미’라는 것을 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더 재미난 게 생기면 그쪽으로 옮겨가겠지만, 한동안은, 그리고 꽤 오랫동안은 저와 같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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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주절 주절 쓴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위주이니... 그냥 한번 읽었다.. 저런 놈도 있구나.. 생각해 주세요.

--- 중간에 오탈자가 좀 있어서 고쳤습니다. 온라인에서 쓰다보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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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ed.netdiver의 이미지

흑흑, 제가 감사드려도 되는 입장인지는 무지 헛갈리지만 감사합니다.
iolo님에 이어서 warpdory님까지...(실은 이분은 언제 글올리시려나 했답니다^^; )

앞서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자발적으로 글 올려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계시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게 어려우신 분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봤으면 합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 여쭙는게 도리이겠으나, 저역시 생업의 압박이 있다보니 서면으로 진행하는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래서 이부분에 대해 의견을 구합니다.

1. 인터뷰 대상 선정.
- 어떤분들을 인터뷰할지를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임인건님이랄지...^^;
- 개인적으론 차리서님 어머님 인터뷰가 기대됩니다. 물론 허락해주신다는 전제가 있겠지만요.
- 장혜식님, 최준호님같으신 당대의 쟁쟁하신 분들의 인터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희망대상자분들의 contact point를 알고 계신 분들의 정보제공도 고맙겠습니다.

2. 인터뷰 항목
- 어떤 질의가 있으면 좋을지 의견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근황이라거나 하는 일반적인 내용보다도, 회상을 부탁드린다거나, 공유했던 program이라거나, 당시의 Hacker, F/OSS문화에 대한 상을 그려주십사한다거나...

3. interviewer
- 관심있으신 분들께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해주시고 그 내용을 올려주시면 최고입니당 :D

인터뷰와 관련한 내용은 이렇고, 그밖에 지금 진행하는 이 글타래와 관련한 어떤 의견도 환영합니다. :D (저같은 넘도 이러고 있잖습니까? ㅎㅎ. )
빙신 삽질하네같은 손님 댓글도 좋습니다. 최소한 읽어보셨다는 관심의 표현이니까요.ㅋㅋ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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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codebank의 이미지

지나는 길에 재미있어서...
아~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OS/2의 참패의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OS/2는 사실 굉장히 앞서 나갔었던 OS였다고 생각합니다.
OS/2가 나올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기본이 5.25"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OS/2는 3.5" 플로피 디스크로만 부팅이 가능하게 만들었었죠.
또한 고급 사용자들을 목표로한듯(일명 돈있는 사람만 써라...) 몇몇 주변장치들이
자신의 맘에만 들어야 설치가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당시의 OS/2부록을 받고 설치를 하려고 3~4일을 끙끙대다가 겨우 설치했지만
그러한 집입장벽 때문에 다시 MS-DOS로 돌아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기억으론 '내가 그냥 LINUX를 쓰고만다.'였던것 같습니다.)
안전성 면이나 편리성(당시 Win 3.1과 거의 똑같은 인터페이스였죠.)은 아주 좋았던
씁쓸한 OS로 기억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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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warpdory의 이미지

codebank wrote:
지나는 길에 재미있어서...
아~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OS/2의 참패의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OS/2는 사실 굉장히 앞서 나갔었던 OS였다고 생각합니다.
OS/2가 나올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기본이 5.25"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OS/2는 3.5" 플로피 디스크로만 부팅이 가능하게 만들었었죠.
또한 고급 사용자들을 목표로한듯(일명 돈있는 사람만 써라...) 몇몇 주변장치들이
자신의 맘에만 들어야 설치가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당시의 OS/2부록을 받고 설치를 하려고 3~4일을 끙끙대다가 겨우 설치했지만
그러한 집입장벽 때문에 다시 MS-DOS로 돌아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기억으론 '내가 그냥 LINUX를 쓰고만다.'였던것 같습니다.)
안전성 면이나 편리성(당시 Win 3.1과 거의 똑같은 인터페이스였죠.)은 아주 좋았던
씁쓸한 OS로 기억됩니다. :)

네..
실제로 IBM 이 OS/2 를 마케팅하면서 겨냥한 유저층은 일반 유저가 아닌 업무용, 그러니깐 회사를 상대로 개발을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1985 년쯤을 기점으로 외제 PC 에는 3.5 인치 플로피 디스크가 기본으로 달려서 나옵니다. 제가 1989년에 구입한 대만산 XT 조차도 5.25 는 옵션이고 3.5 인치가 기본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부팅 디스켓은 3.5 인치 디스켓이 기본입니다. 물론, 5.25 인치 디스켓도 제공을 합니다. 아마 잡지 부록으로 구하셨다면 3.5 인치 플로피 디스켓만 제공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윈도즈 3.1 과 거의 같은 UI 라면 ... 1.3 정도군요. 2.x 되면서 부터는 WPS 가 들어오면서 완전히 바뀌거든요. 1.3 은 ... 하드웨어 무지하게 많이 탔었습니다. 버전도 PS/2 버전과 일반 PC 버전, 그리고 지원되는 하드웨어도 IBM 에서 인정한 것들만 되었었지요.
몇몇 주변장치도 대만산 싸구려나 옥소리 카드 정도 빼곤 거의 다 지원했습니다. 다만 몇몇 메인 보드의 키보드 바이오스 때문에 문제가 됐었지요. (옥소리라면 이가 갈립니다. 그 이후의 훈테크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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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ed.netdiver의 이미지

음 이런건 어떨까요?
어느 part에 두고 이야기를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chapter나 section을 두고
각 OS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요.
drdos니 beos니 하는 비운의 os들도 자리를 만들어보는거죠.
warpdory님의 개인사(?^^; )회상신들도 os2/warp에 대한 section에서 풀어보고 한달지...

생각해보면 지금 전 너무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 출판사 끼고 책 한권은 너끈히 나올 이야기들을 이렇게 open site에서
불특정 무작위 논의만으로 진행하려고 한다는게...
하지만 어쩐지 까이꺼 대충하면 어떻게 될것도 같은건, 아무 개념없는 무지렁이의 소치인걸까요? :D

부질없다 하지마라라던가, 이미 여기저기서 대강 나왔던 얘기들 뭐하러 또 하는거냐라던가, 아무 잡담이라도 환영합니다. :l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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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 \(´∇`)ノ \(´∇`)ノ \(´∇`)ノ
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johlim의 이미지

제대후 복학해서 Terminal에서 Gopher 쓰고, Workstation에서 Mosaic 쓰던 기억

딱 10년전인가요 ?

A better tomorrow

ed.netdiver의 이미지

으흐흐, 여기저기서 암약(?)중이신 구시대분들을 끌어 내보고 싶은 바램도 있었습니다. :D
굳이 외국에서만 F/OSS문화 모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기존의 그런 정신이 있었(을것이)다는 것을 확인도 해보고 싶구요.
지금은 PC방 통닭집하고 계신 분들일지라도...
현재의 우리들에게 뭔가 도움이 안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다 정리하고 나면 뭔가 마음 뿌듯할것 같기는 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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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권순선의 이미지

qed wrote:
으흐흐, 여기저기서 암약(?)중이신 구시대분들을 끌어 내보고 싶은 바램도 있었습니다. :D
굳이 외국에서만 F/OSS문화 모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기존의 그런 정신이 있었(을것이)다는 것을 확인도 해보고 싶구요.
지금은 PC방 통닭집하고 계신 분들일지라도...
현재의 우리들에게 뭔가 도움이 안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다 정리하고 나면 뭔가 마음 뿌듯할것 같기는 합니다. :D

일단, rough하게나마 목차를 먼저 뽑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올라온 글들만 가지고 먼저 목차를 뽑아서 위키에 올리고 글들도 적절히 잘라서 붙이면 비어 있는 목차는 다른 분들이 스스로 채워 주시겠지요. 위키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이 글타래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위키 페이지에 명시해 두고요. qed님께서 draft 목차를 먼저 위키나 이 글타래에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은 분위기 떴을 때 해치워야지 안그러면 사그라들거든요. :-)
ed.netdiver의 이미지

네, 실은 목차를 뽑는게 꽤 고민스러워서요.
뭐랄까 일반적인 나열식, 서술식 문서보다는 차라리 소설이나 다큐식이 좋을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draft인것뿐이니 차차 고쳐지면서 하면 되겠죠?
일단 하기 구성은 그냥 normal한 wiki문서포맷(?)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

0. 들어가며 // 목적, 문서 구성을 설명(목차편성기준등)
PART A. 연대적 기술 //인터뷰나 자발적 참여 나래이션들이 여기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1. 한국 전산의 태동기
2. PC천국의 시기
3. F/OSS의 시기(90년대 ~ 현재)
PART B. Issue적 기술
4. 역사 속으로 사라진 OS, Application들
5. F/OSS의 여러 issue들 //뭐가 있을까요?^^;
6. 정리 //각 시기별, issue별로 Hacker, F/OSS문화에 대한 도출 및 고찰

아 그리고 저는 한번도 독립된 wiki문서를 만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잘 만드시는 분께서 개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

생각해보면 bbs에서 wiki로 자리를 옮기면 참여가 줄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어 어느정도 틀 잡히고 나면 이전해볼 요량이었지만, wiki쪽이 더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당. :D

근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긴 한건가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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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ed.netdiver의 이미지

헉, 순식간에 며칠이 지나버렸군요.
얼른 wiki에 page를 개설해야 할텐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글 보시는 분들께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제가 wiki에 익숙하지 않아 어떻게 새 page를 만들지, layout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아는바가 전혀 없습니다.
실은 login을 할랬더니 pw도 잊어버리고...ㅠ.ㅠ

그래서 이 글 보시는 분들중에 수고스러우시더라도 page를 열어주실수 있으실지 부탁드립니다.
초보자 코너 밑에가 어떨지 싶습니다만...
제목도 만드시는 분께서 만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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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ed.netdiver의 이미지

경고 들어갑니다.
3일내로 wiki page안만들어주시면!!!

4일 기다리겠습니닷!!!

무섭져?^O^// (푸퍼퍽)ㅜ.ㅠ;

그래도 안만들어주심....
제가 걍 겅부해서 만들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당. (이건 진짜 무섭... 8) )

어떤 그림이 나와도 전 책임 ㅤㅇㅡㅄ습니당. :D :D :D :D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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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iolo의 이미지

기다리지 말고 만드십시오.
아무도 만들어 주지 않을 껍니다.

공부를 해서 만드셔도 좋고 안하고 만드셔도 좋지만...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같이 고쳐나가면 되는 일 아닙니까?

어떤 그림이 나와도 책임이 있습니다. qed님이 발제자니까요-o-

혹시 이달 마소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겁니다.

기사는 좀 무성의하지만... 핵심 인물(?)들의 이름이 나와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
the smile has left your eyes...

ed.netdiver의 이미지

핫 iolo님이닷^^;

흐, 넹 잘 알겠습니다.
이런 저런 자잘한 핑계들이 있지만 가장 큰건 같이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습니다. :D

그림에 발뺌한건 wiki page layout을 잘 만들지 못할까봐 드린 말씀일 뿐입니다.^^;

iolo님, warpdory님, 순선님등 여러 분들의 관심과 수고를 이미 받아버렸는데 어떻게 그냥 그만두겠습니까?^^; (아마도 그랬다간 산에 묻어져버릴지도.ㅋㅋ)
아직 시작도 안한 일인 걸요.ㅎㅎ

말은 거창하게 꺼내놓고, 실은 저도 걱정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대강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면 나오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있고, 이런게 있다면 newbie들, 혹은 최소한 F/OSS의 테두리밖에 있는 이들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좀 있고 그렇습니다.

ㅎㅎ, 제가 마소를 구독하지 않아서 몰랐더랬습니다.
생각해보니 순선님의 기고도 있고할텐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ㅜ.ㅜ
꼭 사서 읽어보고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하루되세요.

- 큰맘먹고 6-stable로 cvsup하던 qed가...

참, wiki는 금주내로는 열어볼 요량입니당.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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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lawch의 이미지

흠...다시 불을 지펴보고자 글타래를 엽니다.
위키에 조금 수정을 가해봤는데, 이미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저것 자료 찾다보니 "함께 하는 재미"가 뭔지를 알겠네요. ^^
개인적으로 ed군님의 생각처럼 각 연대별 구분에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식이었으면 좋겠는데.
iolo님의 글을 시간별로 잘라서 해당 항목에 붙여도 될까요?

글구, 요즘 저도 마소 본지가 오래되었는데 :oops: 순선님의 기고가 어떤 내용인가요?

권순선의 이미지

제가 기고한 내용은 f/oss 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연대기(?)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8월달 마소지가 판매되고 있으므로 원래 작성한 원고 전체는 8월 이후에 공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체 내용은 9월에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둘 생각입니다.

p.s. 현재 8월호 마소 특집 1부의 내용은 제가 원래 썼던 내용중의 일부를 발췌하여 다른 필자분들의 작성 내용과 섞어서 작성되어 있으므로 제 홈페이지에 게재할 내용과 잡지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ed.netdiver의 이미지

권순선 wrote:
제가 기고한 내용은 f/oss 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연대기(?)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8월달 마소지가 판매되고 있으므로 원래 작성한 원고 전체는 8월 이후에 공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전체 내용은 9월에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둘 생각입니다.

p.s. 현재 8월호 마소 특집 1부의 내용은 제가 원래 썼던 내용중의 일부를 발췌하여 다른 필자분들의 작성 내용과 섞어서 작성되어 있으므로 제 홈페이지에 게재할 내용과 잡지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네, 역시 그랬군요. 실은 읽다보니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순선님 기고문인지 잘 알수 없었더랬습니다.

lawch wrote:
흠...다시 불을 지펴보고자 글타래를 엽니다.
위키에 조금 수정을 가해봤는데, 이미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저것 자료 찾다보니 "함께 하는 재미"가 뭔지를 알겠네요. ^^
개인적으로 ed군님의 생각처럼 각 연대별 구분에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식이었으면 좋겠는데.
iolo님의 글을 시간별로 잘라서 해당 항목에 붙여도 될까요?

글구, 요즘 저도 마소 본지가 오래되었는데 Embarassed 순선님의 기고가 어떤 내용인가요?


흐 실은 이 글타래 시간지나면서 어째 뻘쭘해져버려 걍 묻어지게끔 post를 꺼리고 있었더랬습니다. :D
아 그렇다고 lawch님께 다른 뜻으로 말씀드리는건 아니구요.
이왕 시작한 일인데 꾸준히 채워나가는게 쉽지는 않네요.
바로 바쁘단 핑계...히~

실은 마소 기고글보고는 쫄은탓도 좀 있답니당. :D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어째 이렇게 적는게 어색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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