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인문학보다 더 우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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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losseum.wo.ro/ 게시판에서 펀글임다.

이글을 읽고 보니 상당히 타당성 있는 글이라고 생각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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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인문학보다 더 우월한 이유
글 작성 시각 : 2003.05.02 20:03:36


들어가는말: 시간의 절약을 위해 미리 결론부터 말한다면 자연과학이 인문학 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과대에서 하위권을 밑도는 학생들도 문과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노벨경제학을 수상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 전에 물리학과 수학을 연구했던 경우가 많다. 즉 물리학이나 수학분야에서는 주변인정도에 불과했지만 인문사회분야에서는 최고 일인자가 되는데는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편 예체능 분야는 인문학보다도 훨씬 지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그래서 '예술'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대학들의 합격점수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에서조차 예체능계의 합격점수는 놀라울 만큼 낮다는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물론 모든 예체능계 학생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자 그럼, 그 이유들에 대해 차근히 살펴보자.

1. 모든 학문은 깊이 들어가면 철학과 연결되고 또 철학을 깊이 파고들면 수학이나 기타 자연과학분야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지요. 예전에 철학자로 알려졌던 사람중에서도 후세에 학문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지요. 물론 요즘에도 인문학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학에 대해서도 해박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인문학 학자들은 수학이 어려워서 접근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핑계를 되지요. 수학은 자신의 학문과는 상관없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서로 차원이 다르므로 비교할 수 없다거나 우열을 정할 수 없다고들 하면서 교묘한 말장난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들 하지요.

2. 재미있는 현상은,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과학을 전공한 학자들에게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이유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웃어 넘깁니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학자들이 인문학자들에게 논리사고력이 떨어진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지죠. 왜냐하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더이상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종교인들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학자가 종교인들의 무지를 지적하면 살인을 당할만큼 엄청난 문제가 되지요. 즉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비난받으면 오히려 여유가 생기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지적받으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방어논리가 필요하므로 바빠지게 되지요. 또 과학자들은 인문학이 어렵다는 식의 엄살을 한가하게 피우곤 하지만, 인문학자들은 수학을 피해 인문학을 했다는 솔직한 고백은 대부분 숨기지요. 자존심 때문에.

3. 인문학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꽤나 권위있는 사람들은 자연과학분야가 휠씬 더 어렵다는 것을 내심으로는 인정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론에 수학적(또는 과학적)인 근거를 첨가하길 좋아하지요. 즉 그러한 근거가 없으면 말장난으로 전락할 뿐임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명성과 지적 우월감을 과시할 방법이 되거든요. 말장난의 추상적인 설명으로는 서로의 권위를 비교할 수 없으므로 어떤 객관적인 비교수단(또는 과시수단)이 필요하죠. 즉 최고의 인문학자라는 명성을 유지하려면 뭔가 구별되는 비교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 수단으로써 인문학적 방법만으로는 별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수학적 장식물로 포장하게 됩니다. 물론 수학적 장식물로 포장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을 잘하는 인문학자의 권위가 생기는 것이지만..

4.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인문학 학자들 사이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은(또는 모방하고 싶어하는) 서구의 학자들 사이에서 더 심각하게 발견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어설픈 과학지식으로 그러한 시도를 하다가 과학자들에게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일도 있답니다. 앨런소칼이 쓴 [지적사기]란 책에 그러한 사례가 아주 상세히 언급되어 있지요. 물론 앨런소칼은 최고의 물리학자는 아니었지만 인문학분야에서 내노라하는 학자들을 혼내주기에는 너무나 충분했지요. 앨런소칼은 인문학자로 위장하고서(여담이지만 인문학자가 과학자로 위장하려면 수학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부분을 극복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문학 학술지에 글을 실었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사태를 미리 예상하고 자신의 주장에 과학적 요설들을 섞었지요. 그랬더니 예상했던대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인문학지를 통해 극찬을 받으며 소개되는 사태에 이르렀지요.

5. 물론 앨런소칼은 얕은학문으로도 최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인문학 분야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지요. 인문학자들의 허세와 지적사기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허점투성이의 과학적 사실들을 올렸지만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분별할 수 없었던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는 그저 대단한 연구논문으로만 보였겠지요.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실력이 없으니 비판을 하지 못하고, 인문학 연구논문에 어려운 수식이 들어가고 하니 그럴듯 해 보이니 무조건 추켜세워 준 것이지요. 그렇게 극찬을 받으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결정적인 순간에 앨런소칼은 사실을 밝혔지요. 물론 그 일은 인문학계를 발칵 뒤집는 대사건이었지만 동시에 인문학자들에겐 가장 창피한 일이라서 모두들 쉬쉬하기 바빴지요. 덕분에 이 엄청난 뉴스가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문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공개된 비밀인 셈이지요.

6. 그리고 이과생과 문과생들의 대화를 통해서도 드러나듯이 어느쪽 학문이 더 우월하냐는 논쟁의 핵심은, 어느쪽 학문이 더 어려우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쉬운 내용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우월을 가리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국 학문의 난의도가 문제되는 겁니다. 얼핏보면 학문의 우월을 비교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것은 우월을 비교할 수 없어서가 아니고 사실이 밝혀졌을 경우 열등한 학문을 하는 쪽에서 강한 저항을 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색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또 깊이가 얕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체면도 고려해줘야 하고, 또 학문사이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고, 또 사실을 밝혔을 경우 잘난척 한다는 인격적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므로 과학자들의 체면도 걸려있는 문제고 해서 서로 내놓고 말하기는 꺼려한답니다.

7. 그럼 어렵다는 것은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어려운 학문은 개인사이의 편차가 매우 심하게 나타납니다. 쉬운 학문일수록 개인사이의 실력차이가 약하지요. 쉽다는 것은 비슷한 노력으로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정도가 강하다는 겁니다. 흔히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공부해야 할 양이 많다는 핑계를 갖다 붙이지요. 하지만 양이 많기로는 자연과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수학분야가 정말로 공부할 분량이 적었다면 개인사이의 편차가 매우 적게 나타나야 합니다. 또 학문은 분량뿐 아니라 이해의 '질'도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죠. 어려운 부분은 분량이 적더라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방정식은 매우 짧지만 그것을 이해하는데는 (과학자들 조차도)엄청난 시간이 필요하죠. 자연과학이 인문학보다 어렵다고 하는 것은 비슷한 수준으로 진입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인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차이나기 때문입니다.

8. 인문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문학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자연과학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또 수학은 원리만 알면 그 다음부터는 공부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학문이 추구하는 것이 뭔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모든학문은 정답을 찾기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정답을 찾는 일반 원리가 해당학문 분야에 부족하다는 것은 그 학문에 대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요. 수학은 정답있는 것을 모아놓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정답을 찾아내는 원리를 가장 많이 찾아내는데 성공한 학문의 역사성과 위력을 뜻하죠. 그리고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은 허튼소리로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답이 있기 때문에 쉽다는 말은 너무나 속보이는 변명이지요. 또한 그것은 수학에 대한 컴플렉스 반응이기도 하고요.

9. 수학은 인문학처럼 학문의 여러 분야 중에서 일부를 뚝 떼어낸 그 무엇이 아니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일반원리를 찾아낸 결과를 집대성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값진 결과를 끊이없이 찾아나서는 과정이 바로 수학의 과제이기도 하고요. 즉 수학의 언어가 수와 기호만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엄밀한 값으로 나타내는데 성공했다는 학문의 보편적인 깊이를 나타내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일반원리가 발견되지 못할때는 추상적인 언어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주장을 수와 기호로써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수학적 학문내용에 포함되는 절차를 밟은 셈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대상도 누군가 그것을 수와 기호로써 엄밀히 기술하는데 성공한다면 그 학자는 새로운 수학적 결과물을 추가하는 업적을 달성하는 셈이지요.

10. 이과대 출신 학생들과 토론에 임하는 인문대 출신 학생들의 토론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의 특이한 점이 발견되는데 인문학도 자연과학 못지 않게 논리적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냥 인문학이 아닌 인문과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죠. 그래서 요즘은 과학이란 꼬리말을 그들의 요구에 의해 모두 붙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점이 바로 그들의 진심이죠. 즉 그들도 학문의 핵심이 논리성이란 것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으며 자연과학이 걸어온 고뇌의 길을 경외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그렇습니다. 학문의 최종목적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논리성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모든 학문은 어느정도 논리적이며, 최소한 논리적 모델로 접근하려고 노력하지요. 따라서 인문학 역시도 자연과학만큼이나 논리성을 중히 여기지요. 다만 정답에 이르는 일반원리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 미완성의 학문일뿐.

p.s:
지적사기에 동참했다가 망신당한 학자들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대부분 거물급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이름을 대충 몇명만 거론하면 라캉, 크리스테바, 보드리야르, 들뢰즈등이 있다

eyefree의 이미지

이런 것을 논하는 것 자체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
논리정연하게 잘 쓴 글인 것 같기는 하지만...

만약 수능에 데셍이나 유화같은 과목이 있거나 체육실기의 배점이 높다면 예체능계의 점수가 낮다고만은 볼수가 없구요.

학문 분야가 쉽다라는 것은 그 분야에 처음 접근하기가 쉬움을 말하는 것이지 그 정수를 깨닫는 것은 어느 분야나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수학분야는 처음 접근하기가 인문학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겠죠.

무엇보다도...
"내가 니들보다 훨씬 어려운거 하고 있어. 니들은 이거 못하지? 그니까 내가 잘났어~" 라는 느낌이 풍기는 글이라 그런지 좀 보기 안좋습니다.

... Do It Now!!!

권순선의 이미지

저도 학교 다닐때는 수학 안하는 인문계통 친구들이 매우 부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인문계통에는 여학생들이 많으니... 8) ) 한편으로는 저런 쓰잘데기없는 공부를 왜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요. 그렇지만 학문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히 어느 것이 더 좋다/나쁘다 라든가 어느 것이 우월하다/열등하다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봅니다. 저같은 경우는 수학보다 철학이 훨씬 어렵던데요. :)

maylinux의 이미지

매우 맞는 논리처럼 보입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평가의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실 절대적인게 있을까여?)

사람의 능력을 수치에 대입하는..

비교를 하자면..

고흐의 그림을 보고, 붓의 터치 몇점, 색상사용 몇점,화가의 자질 몇점...
이렇게 점수를 매길수 없는 부분에 자의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것처럼
되는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글은..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출발한
잘못된 논지의 글이 아닐까 합니다..

아바타 제작기간~~ 무려 5초!!!

hyunuck의 이미지

저 글은 분명히 잘못된곳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문학 하는 친구들이 대체로 싸가지가 없는건 분명하죠. :-)

그들 자신도 분명히 과학의 토대(예를들면 인터넷)위에서 생활하고 발전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것은 오직 인문학을 하고있는 자신들이라고만 생각하며 과학에대한 고마움을 모르져.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인터넷의 역기능과 순기능등을 따져대는 일일뿐 과학의 토대인 이공계를 존경하려고 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제 논리로 원인을 분석해 보자면.....

전에 어떤분이 얘기하셨던가요?

Quote:
이공계 기피원인은 인터넷이다.

라고....

이공계 사람들이 아나로그 적으로 만나고, 토론하던 얘기들이 다 인터넷이라는 제 3의 공간으로 들어가버리고,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아무나 접근해서 탐구할 수 있고.... 학문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당연한 이유겠지요.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만남과,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날로그식의 기성세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깐요.

따라서 우리보다 아날로그 방식인 인문학이 아직까지 더 우세하고 선호받게 되는 것이지요.
앞으로도(디지털 사고가 중심이 될때까지) 이런상황은 계속되리라 생각되는데요....

영화(SF)에서나 보던 상황들이 현실화되는 시대에서는 상황이 분명히 달라질꺼라 생각됩니다 :-)

우리모두 그때까지 살아이씁시다. 흐흐흐

김충길의 이미지

링크의 내용으로 봐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비교가 아니라
인문학을 하는 사람과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의 우월성을 얘기하는듯 합니다.

감성이 위주인 인문학과 이성이 위주인 자연과학은 서로
우월을 따질수 있는 같은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역과학적 사고로 철학을 이해하기는 힘들고 이성적 사고로
어찌 감성적인 인문학을 보시려 하는지..

전 둘의 관계가 음양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로의 우열을 가릴게 아니라고 봅니다.

screen + vim + ctags 좋아요~

logout의 이미지

좋은 관찰이지만 결론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인문학쪽 사람들이 수학쪽에 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렇다고 그네들이 직관이나 문제 해결 능력에서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학문에서 수학의 중요성이 높아져 가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수학은 객관적인 학문의 정수입니다. 수학적으로 설명된 아이디어나 수학적으로 만들어진 모델링은 A가 보든 B가 보든 똑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열심히 노력하면 아무리 바보라도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요즘은 소위 humanity 라는 단어가 붙는 쪽에서도 수학적 연구 방법을 어떻게든 동원하려는 추세인데 그 이유도 이 객관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학문자체나 이쪽 분야 사람들이 자연계 쪽에 비해 떨어진다는 주장과는 하등 관계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즘은 이 객관성보다 오히려 subjectivity쪽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익숙해져 있던 사고방식인 "깨달음" 입니다. 도(道)를 깨닫는다는 표현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이 도라는 것은 객관적인 실체입니다. A가 깨달은 도나 B가 깨달은 도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도라는 것은 A라는 개인도 재주껏 자기 방식대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B라는 개인도 자기 나름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관성(subjectivity)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불교쪽의 깨달음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때 깨달음의 실체에는 "그거 그거"정도의 뜻을 가지는 도와 같은 두루뭉실한, 별 뜻없으면서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를 붙이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되면 수학으로는 연구 방법에 한계가 옵니다. 따라서 요즘은 이 모델링의 객관성과 그리고 실재의 주관성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있는 셈인데 아직은 별다른 뾰족한 수가 나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주관적인 아이디어로 연구를 진행시켜나가는데는 인문학 쪽 사람들이 익숙합니다. 어차피 학문은 상보적인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수학의 중요성이 강해진 최근에도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학문에서 수학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객관성 확보라는 방법론의 차원에서이지 학문 그 자체나 연구자들의 자질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응물이의 이미지

개인적으로 과학 인문학은 우열 가리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인문학쪽 분들이 저한테 그쪽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때는 -_-;;;
답답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_-
한달에 몇권씩 책을 읽어야 한다. 음악감상도 하고 미술감상도 하고 해야한다.
이건 인생에 있어서 '상식'인 내용이다 이정도는 알아야 한다...'

-_-;
제 기준에서 보면 수학,역학,전자기,열'통계,양자,고체.프로그래밍-_-;등등이
상식이 되어야 할내용들인데, 인문학 하는 분들한테
'물리랑 수학,프로그래밍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는거 아닙니까?'
라고 말하면-_-
으음-_-.....그분들은 기분이 좋을런지 의문이네요^^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상식'으로 인식되고있는것은
인문학쪽에 관련된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이라던지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글들은 대부분이 '인문학 출신'이
작성하고 있기때문이죠...(어디까지나 저의 짧은 생각입니다^^;; )

아무튼 그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식'이 다르다는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말꼬랑쥐~
아미로 한글쓸때
'ㅅ+ㅅ' 이렇게 시옷을 두번쓰면 쌍시옷이 되네요+_+ 오오옷

logout의 이미지

swimmingly wrote:

그들 자신도 분명히 과학의 토대(예를들면 인터넷)위에서 생활하고 발전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는것은 오직 인문학을 하고있는 자신들이라고만 생각하며 과학에대한 고마움을 모르져.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인터넷의 역기능과 순기능등을 따져대는 일일뿐 과학의 토대인 이공계를 존경하려고 들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저도 공대 출신이라 몇자 덧붙여 봅니다. 이 불만은 특히 한국의 이공계쪽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생각하게되는 토픽입니다.

우선, 거꾸로 질문을 몇가지 해 보겠습니다.

1. natural science나 engineering은 과연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인가요?

2. natural science나 engineering의 학문적 관심사에 인터넷의 역기능과 순기능을 따지는 일이 포함되는가요?

두 질문 모두 답은 아니다가 나옵니다. 그리고 두 질문 모두 사람이라는 원소로 이루어진 사회(society)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회라는 주제는 이공계에는 무척 낯선 주제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 아니꼽게 보이지만 --- 스스로를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인텔리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인터넷의 구조는 눈꼽만큼도 모르면서도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지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현재로서 그네들 이외에는 이 주제를 연구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공계라는 학문자체는 사회와는 거리가 멀고 사실 이공계쪽 사람들이 사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또한, 이런 얘기가 나왔을때 반론을 제기하고 반격할 수 있는 담론을 형성시키기보다는 화를 내는게 또한 이공계의 문제중의 하나이죠. 여기에 인문계쪽에서 그냥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입은 살아가지고 꼭 이공계에 고맙다는 얘기를 하기는 커녕 공돌이니 단무지라는 단어까지 때려붙이니 이공계 쪽에서 화날만도 하죠. 여기에 이공계의 사회적 지위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열불이 납니다. :)

그럼 이 게임은 소위 인문계들에게 이공계들이 항상 지는 게임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상 소위 멋모르고 "입만 나불대는" 인문계쪽 인사들은 인터넷의 효과나 논의해보고 그래도 사회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그 프리미엄으로 버티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 (이제는 출현도, 확산도 아닌 보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군요... )됨에 따라 이제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기술이 이미 등장해버렸습니다. 이 개념을 가장 정확하게 구체화 시킨 사람이 Lawrence Lessig이죠. Code라는 책을 쓴 사람인데 이 사람은 출신이 법학입니다. 이 책의 주요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사회를 규제하는데는 법이라는 code가 역할을 담당했는데 인터넷에서는 오히려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사용자를 규제하는 code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code를 누가 만드느냐... 바로 developer들입니다. 게다가 이 code라는 놈은 디지털이이서 쉽게 전체 인터넷으로 퍼져나갈 수 있고 하나의 킬러 코드가 전 인터넷을 규제 할 수도 있습니다. (항상 디지털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복사비용이 0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이제 developer들이 프로그램을 짤 때는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어떤 사회적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연하게도, 인터넷의 형성 초반에 히피 성향의 해커들이 개인의 자유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코드를 많이 써 낸 것은 어쩌면 행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현재 인터넷에서 이만큼의 자유로움이라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을 짤 때 이런 사회적 영향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히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은 이공계쪽 사람들이 재주껏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수학공식에.. 코딩 배울 시간도 빠듯한데 이것까지 하려면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이미 인문계쪽 사람들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고 따라갈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이 때 헤게모니를 이공계쪽으로 가져 올 수 있도록 하는게 좋겠죠. 역시 이공계에서 인문계쪽 토픽을 배우는 것이 인문계쪽 사람들이 수학에 프로그래밍 배우느라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시간이 훨씬 적게 먹합니다. 다만, 이 차이도 오래 가지는 못할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냥 이공계쪽 사람들이 막연한 기대로 기술이 사회를 점령할 그 날을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은 상황 자체는 이공계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 기회를 살리는 이공계쪽 사람들은 몇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요약하자면, 수학이나 프로그래밍 실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수학이나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의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이공계쪽 사람들이 차세대(?)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방편중의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 중의 하나가 오픈소스입니다. 갈 길이 구만리이긴 합니다만. :)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김경민의 이미지

학문 자체로는 우월성을 따지기 어렵다고 봅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는게 다르니깐 말이죠.. 전혀 별개의 것을 따지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말이죠.. 어떤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과학이나 공학적인게 필요하다는 것이죠..특히 수학의 경우 모든 것의 중심이 아닐까 싶네요.. 경제나 심리학에서도 연구에 있어 통계나 수학적인 것을 중요시하기도 하고 어떤것을 증명을 하는데 있어 수학적인 방법이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죠. 세상 모든것을 수학적으로 풀어 내기엔 힘들겠지만 보다 쉽게 나타 낼수 있는게 자연과학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자연과학과 공학이 우월 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코 학문 자체가 우월하다는게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기제가 될수 있다는 것이죠. 점점 모든것들이 서로 합쳐서 연구하는 경향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젠 그런 구분이 모호해지지 않나 싶네요..

Walking in the wind.

keizie의 이미지

thedee의 이미지

1. 자연과학과 인문학, 어느 것이 더 우월하느냐? 넌센스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2. 럿셀이 말하기를, 젊어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서 수학을 하였고,
나이가 드니 수학을 할 만치 머리가 안돌아가서 철학을 하였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철학할 머리도 안되어 정치를 했다...-.-

3. 사람들은 철학자 중에 위대한 수학자가 있었다는 것만 생각하는 거 같다. 예컨대 데카르트.
그러나 진실은, 진짜 위대한 진실은 이런 거다; 위대한 과학자치고 위대한 철학자가 아닌 사람은 없었다고. 대표적인 사람? 파인만!
노이만, 튜링, 아인쉬타인, 뉴튼, 패러데이, 갈릴레오, 슈뢰딩어, 보어, 하이젠베르크,... (생각나는 대로 썼다~)

4. 자연과학자는 수학을 가지고 철학하는 사람이다, I think.
그렇지 않은 과학자? 이 바닥 용어로 코더라고 불러야 할 거다.

5. 그러므로 철학이란, 혹은 인문학(이게 뭘까?)이란 자연과학을 위대하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철학이란, 혹은 ...이란 그 소설을, 그 영화를, 그 사람의 인격을 위대하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와 비슷한 말이다.)

서정민의 이미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학은 위대한 자연을 탐구합니다..
인문학은.. 이 자연에서 가장 특별난 존재인 인간의 사고에 대해 탐구합니다.

어떤 것이 더 월등하다는 것을 판단한다는 것은, 정답을 두개 놓고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것은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liberta의 이미지

먼저, 이 글을 퍼오셨다는 곳을 들렀는데; 밤새도록 하릴없이 공대 순위나 논하고 입학 점수로 학교 순위 매기기에 여념이 없던 게시판 훌리건들의 망령이 떠오르는군요. 글 전체를 싸잡아서 한 마디 하자면, 그다지 주의깊게 받아들일 가치도 없는 고등학교 4-7학년 수준의 생각으로 보입니다.

인문학에서 군계일학이란 결국 수학적 소양을 갖춘 소수? 그럼 자연계에서는 인문학적 소양없이 시험문제 잘 푸는 것 말고 또 뭘 더 잘 할 수 있을지? 하다못해 학계에서 교수 정도 해보려고 해도 전공분야 경력이 비슷할 경우 대인관계나 화술, 심지어 잡학상식 등을 갖춘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절대적으로 잘 평가받습니다.

인문학, 구체적으로 사회 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다 잘 아실 말이 있죠 - 새는 좌우의 양쪽 날개로 난다. 어느 한 쪽만 비대하게 큰 외날개짓으로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한 과학자(공학자)나 철학자(예술가)는 결코 기억되지 않습니다.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은 기억되지 못하는 학문과 함께 할 뿐이죠.

thedee의 이미지

Quote:
10. 이과대 출신 학생들과 토론에 임하는 인문대 출신 학생들의 토론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의 특이한 점이 발견되는데 인문학도 자연과학 못지 않게 논리적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냥 인문학이 아닌 인문과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죠. 그래서 요즘은 과학이란 꼬리말을 그들의 요구에 의해 모두 붙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점이 바로 그들의 진심이죠. 즉 그들도 학문의 핵심이 논리성이란 것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으며 자연과학이 걸어온 고뇌의 길을 경외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그렇습니다. 학문의 최종목적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논리성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모든 학문은 어느정도 논리적이며, 최소한 논리적 모델로 접근하려고 노력하지요. 따라서 인문학 역시도 자연과학만큼이나 논리성을 중히 여기지요. 다만 정답에 이르는 일반원리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 미완성의 학문일뿐.

저는 학문의 핵심을 논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말하자면 재미, 혹은 놀라움,...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뉴턴이 그의 대작을 발표했을 때 수많은 철학자들이 딴지를 걸었다고 하더군요. 뉴턴이 사용한 여러 개념들의 "논리적 헛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뉴턴이 세상에 밝힌 것은 ~ 식으로 계산하면 화성의 다음 위치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라는 것 뿐이었죠.

또, 아인쉬타인의 광속 불변의 원칙도 참으로 엉터리같은 고집입니다. 왜 그런 상식에 안맞는 전제를 아인쉬타인이 채택하였을까요? 어떤 논리적 근거가 있었을까요? 근거는 오직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전제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 관측값을 잘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수많은 과학 논문들이 쓰레기 통속에 던져졌습니다.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죠. 현실의 관측값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관측값에 맞추기 위해 이러 저러한 가정들, 새로운 힘, 새로운 입자, 새로운 상수들을 계속 추가합니다. 임시 사다리같은 거죠. 임시로 사다리를 놓는데 무슨 논리적 필연성이 있습니까? 일단 그렇게 하여 실험값과 잘 맞으면 되는거죠. 사다리들 사이의 간격이 1 센티인데 폭이 1미터인 사다리를 놓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사다리를 90도 돌리고, 사다리의 두께가 1 센티 미만이라고 해버리면 됩니다~.(정 안되면 철사로 된 사다리를 새로 도입하든가...) 그러다 어느날에고 블랙 먼데이가 올지도 모르지만...

가장 정밀한 경험 과학이라 할 수 있는 물리학의 예를 들었습니다.

~결론을 만들자니 힘이 드는데, 여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한계와 의의를 살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구요...

chunsj의 이미지

과학의 핵심이 논리성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에 있죠. 논리성은 진리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드신 것들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상태로 두면 그냥 가설이 되지 진리나 학문적 결론으로 아무도 봐 주진
않습니다. (물론 인문학자들은 완성되지 않은 사실을 이용해서 자신의 시설을
뒷받침하려 하기도 하지만 이건 권위에의 오류일 뿐입니다.) 그 다음에 꼭 따르
는 것이 그 가설에서 사용된 가정이나 상수의 실제적의미를 논리적으로 증명하
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십분 양보해도 공학적으로
실용적인 목적은 있을 수 있어도 물리학 이라고 불리는 학문은 그렇게 물렁
하진 않습니다.(물론 공학도 물렁하진 않습니다. 그냥쓰더라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사용합니다. 단지 수학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증명일 수 있다는 거죠.)

인문학이 학문적인 가치로서 상대적으로 무시를 당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과
정을 소홀히 하거나 또는 그런 과정이 없었는데도 우기는데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그것" 이라든가 하는 것은 그 단어가 말하는 진리를
모델링 하는 것에 대한 능력이 또는 그를 위한 연구가 아직 미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것이 불가능 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의
모델링을 이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한 방법을 못 찾았을 뿐입니다.

PS)
그러나 학문에서 추구하는 바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서 발전되어 있거나
미개하거나의 방법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순위 매김은 위험
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자체가 열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진리에 대한 접근 방법이 열등할 뿐이지...

thedee의 이미지

1. 당연히 물리학은 물렁물렁하지 않습니다. 특수한 솔루션이 일반화되어 가면서 그 의미를 해명해 가는 것도 당연하구요.

2. 님께서는 학문의 핵심을 진리라고 하셨는데요, 그 진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님께서 '진리'라는 말로 의미하신 것이 무엇인지요?

3. 님께서는 인문학의 방법이 열등하다 하셨는데, 저는 인문학이란 것을 전공했음에도 그 인문학의 방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인문학의 그 방법을, 하나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bxhs의 이미지

님의 학문의 우월성에 대한 논거가 결국 그 학문을 하는 구성원들의
수학점수에 따라 판정난다... 좀 유치하지않습니까.

수학=논리=정확한학문=학문의우월성?

knight2000의 이미지

"동양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동양철학 교수가 거품을 물던 생각이 나는군요.
동양철학에서 학문의 논리 전개방식은 기본적으로 귀납입니다.
연역은 "모든 경우에 대해서"라고 할 때에만 허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본다면 과학은 학문이 아니죠.
과학은 기본적으로 연역과 귀납을 모두 허용합니다.
특히나 수리 분야가 아닌 자연과학 분야는 그 탐구 방법이 귀납을 사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동양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배움"(학업) 가운데 하나일 뿐,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함량미달인 부분이 있다고도 했고요.

그냥 잡담이었습니다.

===== ===== ===== ===== =====
knight2000 of SALM.
SALM stood for SALM Ain't a Life Model.
SALM is not the life model, but SALM is just the life.

chunsj의 이미지

thedee wrote:
1. 당연히 물리학은 물렁물렁하지 않습니다. 특수한 솔루션이 일반화되어 가면서 그 의미를 해명해 가는 것도 당연하구요.

2. 님께서는 학문의 핵심을 진리라고 하셨는데요, 그 진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님께서 '진리'라는 말로 의미하신 것이 무엇인지요?

3. 님께서는 인문학의 방법이 열등하다 하셨는데, 저는 인문학이란 것을 전공했음에도 그 인문학의 방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인문학의 그 방법을, 하나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제가 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힘드네요. 하지만 시간,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고 주어진 조건에서 항상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유한한 언어로 정의
가능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인문학의 구체적인 방법의 이름에 대해서는 저는 인문학을 한 자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제를 제시함에 있어서 명확한 논리적 증명도,
그를 위한 명확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에티카 정도가 그걸 시도를 하기는
한듯 합니다만, 맨 처음에 이와 대우를 혼돈하는 실수를 했더군요.

thedee의 이미지

Quote:
진리를 제가 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힘드네요. 하지만 시간,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고 주어진 조건에서 항상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유한한 언어로 정의
가능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키에 이러한 정의는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개념에 좀 더 잘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 하신 의도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Quote:
인문학의 구체적인 방법의 이름에 대해서는 저는 인문학을 한 자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제를 제시함에 있어서 명확한 논리적 증명도,
그를 위한 명확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에티카 정도가 그걸 시도를 하기는
한듯 합니다만, 맨 처음에 이와 대우를 혼돈하는 실수를 했더군요.

에티카를 읽으셨군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책입니다. 스피노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이구요. (그러나 저는 에티카를 증명의 책으로 보지 않으며,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사용한 논증 구조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주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대상에 따라 방법도 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님께서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생물의 분류학이 수학적 논증 구조를 취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역사학에는 그에 맞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가장 불쌍한 학문 중의 하나인 천문학은 또 어떨까요?
(님께서 정의하신 진리 대로라면 이러한 학문들은 구제불능입니다...)

joone의 이미지

토론의 주제 내용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토론회에 나온 정치인들... 특히 검사, 변호사 출신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논리도 없고 핵심이 없기 본질 흐리기에 바뻐보이더군요..

이공계 출신 정치인이 누군지 몰라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이지만..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인문학을 공부한 분들이 세상을 지배해서 그런것이 아닐런지...

이공계 출신이라면 달라질까요?

snoman의 이미지

대학에서는 인문학(사학. 졸업논문은 한국근대경제사에 대한 것이었음)을 전공했고, 지금은 프로그래머질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

1. 처음 글을 올리신 분의 논지를 조금 거칠게 요약하자면, 수학적 엄밀성이야말로 과학의 정수이고, 거기에 무지한 인문학은 사이비 과학이거나, 머리가 모자라는 사람들의 학문이다!!
==> 여기에 대해서는 주절주절 쓰다 보니 위에서 다른 분들이 많이 쓰셨기 때문에 구태여 또 토를 달지는 않겠습니다.

2. 예체능의 합격 점수가 낮다. 그러므로 수준이 떨어진다.
==> 합격 점수 높은 분이 노래 잘 하고 그림 잘 그리고 만능 스포츠 선수이던가요? 그렇다면, 앞으로 대학 입학 시험에서 미술, 음악, 체육 점수를 다른 과목과 동등하게 배점해 봅시다. 글 쓰신 분, 대학 가기 힘들걸요.^^ 예체능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시험을 치르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가 나온 겁니다.

3. 인문학은 논리적 사고력이 떨어진다. 그 증거는 대다수의 인문학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것.
==> 뭐, 처음 글을 올리신 분이나, 여기 글을 올리는 대부분의 분들은 나름대로 다들 논리가 정연한 분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이공계 전공자는 안 그렇더군요. 학교 다닐 때, 교양 역사 과목을 강의하는 선배들의 시험 체점을 종종 돕곤 했는데, 이건 뭐 주어가 뭔지 술어가 뭔지... 맞춤법 틀리는 거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답안의 논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절반 가까이 됐습니다. 저언혀 논리적이지 않더군요.

4. 인문학은 수와 기호로써 일반 원리를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완성의 학문이다.
==> 수와 기호로 모든 것이 환원 가능하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한, 심하게 말하자면 헛소리입니다. 글 쓰신 분의 감정이나 자아라든지 정체성을 수와 기호로만 표현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뇌 피질 좌표 X, 좌표 Y 지점에서 발생한 화학 물질의 비정상적 불균형 대사에 의한 것으로써, 그 해결책으로 정량의 비타민과 아미노산의 정기적 보충이 요구된다. 또한 보조적인 방법으로 뇌 전두엽 부분 절개나 2.7V의 전기 충격 시술도 효과적이다, 운운... 웃기죠? 웃기잖아?
또 다른 측면으로, 자연과학은 '완성된' 학문입니까? 아직까정 고작 감기도 정복하지 못한 것이 우리 인간들의 과학 수준입니다^^.

5. 지적 사기에 대하여..
==> 한 마디로 인문학의 한심한 수준을 보여줬다는데 동의합니다. 그 책을 한 3년 전 쯤 읽었는데, 처절하더군요. 그런데요, 그 책을 쓴 사람들은 인문학이 3류 학문이라는 걸 증명하고자 했던 게 아니랍니다. 자기들의 글이 이런 논의(자연과학이 인문학에 비해 우월하다는)의 논거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안다면, 웃다가 자지러지면서 한 명은 호흡곤란, 한 명은 옆에 놓인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뇌진탕으로 사망하고 남은 한 명은 평생 정신병원에서 웃다가 일생을 마칠 겁니다.

6. 답글 단 분 중에, 정치인이나 법조인들이 한심하다, 이공계가 지배하면(아아, 그들이 지구를 정복했을 때~~~) 난세를 극복할 수 있을 터인데, 아아, 슬프도다... 라는 글을 올리신 분이 있군요.
==> 웃자고 올리신 글이죠? 진지하게 쓰신 글이라면, 당장 정신과에 뛰어가서 혹시 피해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진찰 받아보심이 어떨지^^.
일단, 정치인, 법조인과 인문학이 도대체 무슨 상관 입니까? 노통은 법조인 출신이면서 정치인입니다. 그 사람이 인문학을 전공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학설이군요. 사법고시요, 그거 인문학하고 아무 상관 없습니다. 법학이나 정치학이라면 몰라도(이것도 엄밀히 구분하면 인문계일지는 몰라도 인문학은 아닙니다). 이 글 쓰신 분도 지금부터 열심히 고시원에서 육법전서 파시면 사시에 붙을 수'도' 있습니다^^.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해서 이공계는 개피를 보고 있다는, 최근 몇 년 간의 이공계 전공자들의 푸념의 연장 선상에서 나온 말이겠지요. 근데, 다시 말하지만, 정치인이나 법조인들, 인문학은 쥐뿔도 몰라요.
더러운 세상을 욕하면서도 한몫 보고 싶어서 사시에 너도 나도 몰리는 현상-인문학이 아니라 인문계 출신들이 특히 심한데-은 자연과학 쪽에서도 의대 못 가서 안달하는 현상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건 인문계냐 자연계냐 이런 거 하고 전혀 상관 없는, 우울한 시대의 현상입니다. 근데, 이공계가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것이 인문계가 우리나라를 지배해서 그렇다든지, 이공계가 지배하면 나아질 것이라든지, 자연과학이 인문학보다 우월하다든지 이런 논리가 어떻게 튀어 나오는 건 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보기엔 거의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 꺼내는 수준의 논리 전개로 생각되는군요.
당장 돈 되는 것만 밝히는 사회,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보되는 사회... 이게 문제겠죠. 이공계에서도 수학이나 물리학, 천문학 하는 사람들, 그 전공 살려서 먹고 살기 참 힘들죠. 그리고 대다수 인문계 전공자는 이공계 출신들보다 더 천대 받는답니다.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데 死因은 무슨....

바람난꿀벌의 이미지

인문학이 도대체 필요한가요? 전 그게 궁금..
제가 생각해도 한심한 생각이지만 사실 저 같이 생각하시는 분들
조금 되실 듯 한데.. 없나요? -_-;;

답안 작성이 비논리적이라고 하시는데 그거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논리적 답안 작성 전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
이공계 학생들이 너무 수업부담이 커서 그런거 아닌지..
솔직히 이공계 학생들이 공부하는 만큼 공부할 필요 없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전 그냥 인문학이 누가 잘났나 하는 싸움 같아요.
유명하신 분이 한마디 하면 그런가 부다.. 뭐.. 논증거치는 것도 다 말싸움 같고..
인간을 연구한다 하는데.. 그러면 불의를 보고 한마디 해야 참다운 인간 연구가 아닌가요?

차라리 전부다 이공계에 학생을 보내고 인문학을 부 전공으로 하나씩 하게 하면 그게 좋지 않을까요? 만약 정말 인문학이 좋으면 그걸 하게 하면되고.
현재 대학에 인문학 학생들이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결국 고시 준비 뿐이고..

참여 정부 들어 기술직 공무원을 늘린다는데 전부터 그 많은 행시 인원들이 왜 필요한지 알수가 없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인문쪽에서 독점하는게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인이 진정한 대접을 받아야 그게 선진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쓰다보니 논지에서 많이 벗어났네요. 전 이공계 학문이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뭘 잘 모르는 건가요?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

서정민의 이미지

knight2000 wrote:
"동양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동양철학 교수가 거품을 물던 생각이 나는군요.
동양철학에서 학문의 논리 전개방식은 기본적으로 귀납입니다.
연역은 "모든 경우에 대해서"라고 할 때에만 허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본다면 과학은 학문이 아니죠.
과학은 기본적으로 연역과 귀납을 모두 허용합니다.
특히나 수리 분야가 아닌 자연과학 분야는 그 탐구 방법이 귀납을 사용하는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동양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배움"(학업) 가운데 하나일 뿐,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함량미달인 부분이 있다고도 했고요.

음 재미있는 논리인듯합니다. 하지만, 조그마한 인간이 모든 진리를 얻기에는 힘들기에 과학이 모든 것인냥 노력하는 인간도 필요한듯 보입니다.

한편, 동양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여,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모름지기 사고를 하는 그 자체가 깨달음이 되고 철학을 공부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NeoTuring의 이미지

꼭 우월하다 아니다..라기 보다는

만약 누군가가 IQ 200 이상으로 엄청난 천재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문학보다는 순수과학계통에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난이도면에서 인문학보다 이공계통 학문이 이해하기 어려운것이

사실이고, 깊이 들어갈수록 그만큼 엄청난 지능이 요구되기 때문이죠.

예전에 누군가와의 논쟁에서 이런 말이 나왔었습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한 증명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가?

물론 전자는 여러가지 함축적인 의미와 인생에 대한 상당한 경험을

거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보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전문으로 해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들도 난해하고 계산과정이 복잡하여

혀를 내두르는 것이 FLT의 와일즈 교수의 증명이라고 들었습니다.

FLT는 그래도 현재에 와서 풀렸지만,

여전히 수학계, 물리학계에는 이렇게 미결된 문제들이 산적해있죠.

이것은... 역시 천재들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과 근거들이

학문의 접근성의 어려움면에서 그리고 난이도 면에서 이공계통의 학문이

인문계를 훨씬 능가한다는것을 보여주죠.

그리고 끝으로... "인문학에는 정답은 없고, 역사만 있다.."

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NeoTuring의 이미지

그리고 학문이란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논리라는게.. 엄밀한 증명이나

증거를 제시하는것을 말하는건 아니고..

개념적인 구조물 형태로 존재해서 체계가 잘 잡혀있고.. 여기서 한 말이

저기서 부정되고 저기서 한말이 다른곳에서 다시 긍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죠.

그러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혼란이 발생하고.. 지식이 뒤죽박죽이

될 소지가 아주 큽니다.

학문이라는것은 그저 단편적인 지식들의 총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 정립된 학문이란... 성당처럼 잘 지어진 구조물과 같아서

각각의 지식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엮여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제가 파악한 인문학은... 체계가 잘 잡혀있다기 보다는

과거 수많은 학자들의 지식의 나열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원래 인문학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인문학은 뭔가 크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공계통은... 새로운 개념이 발생했을때 반드시 과거의 개념을

자신의 체계내로 흡수하여 정합적으로 완전히 설명해야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만...

인문학은 어떻게 된건지.. 그런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것 같더군요.

예를들어 고대 플라톤의 이데아 관념을...

현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안으로 성공적으로 끌어들여 잘 설명해놓고

그렇게 새롭게 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이론에 다시 영향을

주는 경우를 저는 본적이 없네요.

그냥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펼쳤다... 라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을뿐...

플라톤은 플라톤이고... 데리다는 데리다일뿐...

그래서 항상 이런 수식이 붙죠..

"플라톤에 의하면..."

"데리다에 의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수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적 진리에 대해 말을 했지만..

어느누구도 진리를 말한적이 없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냥 나열이죠...

"A에 의하면 어떻다더라"

"B에 의하면 저렇다더라"

"누구에 의하면 이렇다더라..."

수학이나 과학은 그 과정에서의 발전성이 엿보입니다. 앞으로 진전하는

모습이 눈에 빤히 보이는게 이공계통의 특징이죠.

그런데... 인문계통은 도대체가 그런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겁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와서 몇쳔년전의 해묵은 도가사상을 주장하는 김용옥씨가

인문학의 정체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하네요.

우리는.. 이제 시, 공의 해석에대해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출현으로

뉴튼식 접근을 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작은 스케일의 운동일 경우 계산의 편의성을 위해 계속 사용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인문학은 그럴 만한 소지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된다는거죠. 어떤것이 정답이고 아니고를 따질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간의 관계역시 모호하기 때문에

그냥 모호한대로 놔두고 그렇게 개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온갖 잡다한 지식들의 총합이 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인문학은 학문이라고 보기가 상당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지식(들)이죠.

인문학의 특징이 원래 그런것이라면...

그로부터 우리가 기대할것은 더 이상 없지 않나 싶습니다.

더 나올것이 있다면 예전에 나왔던것들의 우려먹기정도가 되겠죠..

thedee의 이미지

Quote:
학문의 접근성의 어려움면에서 그리고 난이도 면에서 이공계통의 학문이 인문계를 훨씬 능가한다는것을 보여주죠.

저 역시, 가장 난해한 철학 서적 중의 하나라는 과정과 실재보다 와일즈의 증명이 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일즈의 증명은 고도로 추상화된 기호의 범벅일 테이니 한 페이지도 온전하게 읽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험 과학 내에서도 물리학은 화학을 깔보고, 생물학은 아예 취급도 안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같은 물리학 내에서라도 이론하시는 분들은 응용 물리하시는 분들을 좀 낮춰 보는 거 같구요. 그러나 이러한 경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일정 부분은 어려운 연구를 한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터이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 경향성을 따라 이를 토론에 붙이거나 진지하게 공표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문적 소양은 완전하게 까발려 지는 셈이 되겠죠. 즉, 사람 유치해 지는 거죠...

thedee의 이미지

Quote:
그러니 온갖 잡다한 지식들의 총합이 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인문학은 학문이라고 보기가 상당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지식(들)이죠.

인문학의 특징이 원래 그런것이라면...

그로부터 우리가 기대할것은 더 이상 없지 않나 싶습니다.

더 나올것이 있다면 예전에 나왔던것들의 우려먹기정도가 되겠죠..

저는 솔직히 인문학이라 불리는 것들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학은 인문학인가요? 그럼 역사학은 학문으로 인정되기 힘든 건가요? (아직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았으니...) 언어학은 인문학인가요? 그럼 언어학도 학문이기에는 조금 미진한가요?
제 생각에 수학은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역사로 보나 철학과의 관계로 보나... 다른 의견 갖고 계신 분 있습니까?

위에서는 인문학으로 주로 철학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철학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플라톤은 영원한 대상을 갈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영원한 대상의 한 예로 수학적 대상을 지목했고, 수학을 영원한 대상에 대한 맛보기 학문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플라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괴델이나 펜로즈가 그런 거 같더군요.
물론 플라톤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수학을 문화적 현상의 하나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또 안티가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수학이 절대적 존재를 대상으로 하건 말건에 상관없이 수학에 절대적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생겨 난 것입니다. 훗설, 렛셀, 프레게, 힐베르트, 괴델,... 등등의 수많은 학자들이 이에 속할 거 같습니다. 튜링도 이러한 고민의 연속선 상에서 등장합니다. 튜링의 상태 머신은 바로 그러한 문제에서 파생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의 하나로 제안된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컴의 대부분의 대부분은 폰 노이만 방식이고, 노이만에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 튜링의 무한 머신이라는 것은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앞서 제기된 문제들은 해결되었을까요? 수학의 대상은 영원한 대상인가요? 수학은 인간의 종족적 활동의 하나인가요? 수학에 굳건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은 가능한가요? 수학 기초론이나, 논리학은 일상적인 수학 활동과 별개인 또 다른 수학 활동에 불과한 것일까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그러한 한에서 이러한 문제들은 철학의 영역에, 혹은 철학과 수학에 겹치는 영역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일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혹은 양화 가능한 형태로 전화되어 연산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적당한 선에서 새로운 학문을 형성해 갈 것입니다. 튜링의 무한 머신은 그것이 양화 가능한 선에서, 급기야 구현 가능한 선에서 컴퓨터 공학이라는 학문으로 편입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물론 철학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만 철학에 남으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은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둥의 비난을 하게 되겠죠...

끝으로 농담 하나 하겠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수학자는 노예였다는 거 아시죠? 에디슨도 수학에 약하여 수학 보조 기사를 두고 있었고요. 아인쉬타인도 역시 그렇고. 아마 많은 대학원생분들도 일종의 수학 보조 노릇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컴퓨터도 수학 보조 노릇을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구요.
괴델의 정리에 따르면 모든 것을 완전하게 형식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고, 그러므로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학 보조는 만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그건 인간의 몫입니다. 다행히도? 누구를 위해서 다행일까요? 수학자죠. 만일 그러한 수학 보조가 존재할 수 있다면 수학자라는 직업은 사라지겠죠. 사람들이 엄밀성, 증명 가능성, 체계성의 대표적인 학문으로, 그러므로 가끔은 가장 우월한 학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수학은, 스스로를 학문 리스트에서 지울 가능성이 가장 큰 학문 중의 하나인 셈입니다. (로봇이 연산하는 것을 학문이라 하진 않겠죠?)

NeoTuring의 이미지

제 글을 오해하신것 같군요. 저는 이공계통의 학문이 학문으로서의 '완전성'을 갖췄다거나,

완전한 연역으로 모든것을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적이 없습니다.

또한 수학이 철학과 전혀 공통되는 부분 없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 말한적도 없습니다.

괴델, 프레게 같은 수학기초론의 중요 거목들이 거론되는것을 보면 저를 논리실증주의자쯤으로 오인

하고 계신것 같은데 절대 그런건 아닙니다.

다만, 학문이라고 불려질 수 있는 정도라면 어떤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과학과 인문학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내용면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탐구하는 방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과학과 인문학은 대상을 추구하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과학은 다행(?)스럽게도 데카르트의

뛰어난 지성으로 그 탐구기반이 세워졌습니다만, 현재시점에서도 인문학의 경우는 마땅히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는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은 그 자체로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론들간의 체계가 상당히 잘 다듬어져 있고

같은 것에 대하여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그 문제를 오픈시켜 놓고 학자들간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 특정한 이론을 취할것이냐 말것이냐를

반드시 가려냅니다. 이러한 방식이 수세기동안 쌓여왔기때문에 현재의 과학은 잘 깎인 다이아몬드

처럼 어디하나 군더더기가 없고, 그 체계가 논리적인것으로 생각이 된다는겁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인문학은 어떻느냐? 우선 이쯤에서 인문학의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것 같은데요...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id=725628 을 참조해보면 인문학의 범위 자체가 광범위하고

칼로 무를 자르듯이 딱 규정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여기서 논구되는 것이 자연과학과는

대립적인 의미에서의 인문학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에 관련된

학문이라고 보면 될것 같습니다. 질문하신 역사학도 여기에 포함이 되겠죠.

알다싶이 인문학의 경우는 자연과학과는 전혀 다른 탐구방식을 취했습니다.(말이 좋아

탐구방식이지 거의 주먹구구식이죠.)

그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곶간에 쌀가마를 쌓아두듯이 지식을 그냥 쌓아 두는겁니다.

대체로 인문학자들은 언제 무너질지도 모를 이 쌀가마의 양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철학, 문학, 역사학 모두 이 방식에 있어 예외가 아닙니다. 그중에도 정도가 가장

심한것은 문학이 아닐까 하는군요. 수천편의 시와 수필 소설등을 마구잡이로

쌓아두고 이것을 나중에 되새겨보는 정도로 '문학가' 내지는 문학에 대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마구잡이라는것은 그 형식적인면 의미적인면

기교적인면 그리고 작품이 쓰여진 시대적인면 지역적인면 사상적인면등에 대해 엄격한

룰을 적용하지 못하고, 어떤때는 이런 기준을 사용했다가 또 어떤때는 저런 기준을 사용하는

혼돈스런 방식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잘 사용되는 방식은 곶간에 쌓인 지식들을 후대에 꺼내서

재해석하는 거죠. 분석이 아니라 해석이라는것에 그 한계가 있습니다.

분석은 새로운것을 만들어내는 힘을 가졌지만, 해석은 그냥 해석으로 끝납니다.

그나마 말씀하신 역사학의 경우는 그중에 약간은 체계를 갖출려는 노력을 하는것으로

보입니다만, 어느 지방에서 무엇이 출토되었으니 역사책을 이제 다시 써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것을 보면 역시 인문학으로서의 한계가 분명하게 보이는 분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과학자들은 어떤것에 대해 함부로 단정짓지 않습니다.)

끝으로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가 철학(그는 어떤 학문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학문'이라는 단어로 칭하지 않았습니다.)

에 대해 비판한 내용을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 싶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의견만
있을 터인데, 아주 많은 의견들이 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서로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모두 거의 거짓된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학문들에 관해 말하자면, 이 학문들의 원리는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어설픈 토대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견고하게 세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thedee의 이미지

너무 많이 써서 눈치가 좀 보입니다만...

Quote:
제 글을 오해하신것 같군요. 저는 이공계통의 학문이 학문으로서의 '완전성'을 갖췄다거나, 완전한 연역으로 모든것을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적이 없습니다. 또한 수학이 철학과 전혀 공통되는 부분 없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고 말한적도 없습니다. 괴델, 프레게 같은 수학기초론의 중요 거목들이 거론되는것을 보면 저를 논리실증주의자쯤으로 오인하고 계신것 같은데 절대 그런건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님의 글 어디를 보고 제가 님을 논리실증주의자로 오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어느 대목을 보고 님께서 이공 계열 학문의 완전성을 주장한다고 오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Quote: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 싶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의견만 있을 터인데, 아주 많은 의견들이 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서로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모두 거의 거짓된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학문들에 관해 말하자면, 이 학문들의 원리는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어설픈 토대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견고하게 세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님께서 인용한 데카르트의 말입니다. 정말 데카르트의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데카르트의 전략은, 모든 학문의 뿌리인 철학이 매우 허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철학을 굳건하게 만들어 다른 모든 학문들에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학문도, 예컨대 수학이나 물리학도 철학보다 더 견고할 수는 없습니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철학이란 모든 학문의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단적으로 모든 학문보다 우월한 학문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저는 데카르트의 이러한 주장을 비웃겠습니다.

앞서 제가 할 얘기는 다 했고, 밤도 깊었으므로 더 주절대지는 않기로 하겠습니다.

chunsj의 이미지

thedee wrote:
Quote:
진리를 제가 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힘드네요. 하지만 시간,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고 주어진 조건에서 항상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유한한 언어로 정의
가능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키에 이러한 정의는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개념에 좀 더 잘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 하신 의도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Quote:
인문학의 구체적인 방법의 이름에 대해서는 저는 인문학을 한 자가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제를 제시함에 있어서 명확한 논리적 증명도,
그를 위한 명확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에티카 정도가 그걸 시도를 하기는
한듯 합니다만, 맨 처음에 이와 대우를 혼돈하는 실수를 했더군요.

에티카를 읽으셨군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책입니다. 스피노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이구요. (그러나 저는 에티카를 증명의 책으로 보지 않으며,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사용한 논증 구조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 주기는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대상에 따라 방법도 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님께서 동의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생물의 분류학이 수학적 논증 구조를 취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역사학에는 그에 맞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가장 불쌍한 학문 중의 하나인 천문학은 또 어떨까요?
(님께서 정의하신 진리 대로라면 이러한 학문들은 구제불능입니다...)

분류학이 그 분류 자체에 대해서 증명이 될 필요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어떤 분류를 꼭 따라야 한다고 말을 하려면 그 분류가 왜
꼭 필요한지, 왜 제시된 방법으로 분류를 해야 되는지에 대한 논증을 필요
합니다. 역사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라고
주장을 하려면 그에 대한 논증, 여기서는 논리적인 증거 보다는 사실적인
증거가 더 중요하지만 역시 증명은 필요합니다. 천문학? 여기에 대해서는
왜 불쌍하다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천문학은 실험, 관측, 및
수학적 도구를 이용한 해석과 증명에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인문학의 예를 볼까요? 정치를 하거나 사회학을 하는 사람이
우리 정치의 정통성을 이야기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예를 들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에 정통성을 상실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
제가 볼 때는 그 이전에 정통성의 정의와 그 기준을 먼저 제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그 기준을 따라야 하는
사실적인 증명을 해야 합니다.(생물학의 분류학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왔던가요? 제가 볼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내세운 기준은 자신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지 객관적인 증명,
또는 논증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제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연
과학이나 수학이 완전한 학문은 아닙니다, 제가 볼 때는 완성도에 있어서는
다 그 학문이 그 학문입니다. 중요한 차이점은 이쪽은 적어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바탕위에 서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 왔지만 인문학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입장으로 다른 것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죠. 이 점에 있어서
방법에 있어서의 상대적인 열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ssif의 이미지

학문이라는것은 그저 단편적인 지식들의 총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 정립된 학문이란... 성당처럼 잘 지어진 구조물과 같아서

각각의 지식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엮여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제가 파악한 인문학은... 체계가 잘 잡혀있다기 보다는

과거 수많은 학자들의 지식의 나열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원래 인문학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인문학은 뭔가 크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공계통은... 새로운 개념이 발생했을때 반드시 과거의 개념을

자신의 체계내로 흡수하여 정합적으로 완전히 설명해야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만...

인문학은 어떻게 된건지.. 그런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것 같더군요.

예를들어 고대 플라톤의 이데아 관념을...

현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안으로 성공적으로 끌어들여 잘 설명해놓고

그렇게 새롭게 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다른 이론에 다시 영향을

주는 경우를 저는 본적이 없네요.

그냥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펼쳤다... 라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을뿐...

플라톤은 플라톤이고... 데리다는 데리다일뿐...

그래서 항상 이런 수식이 붙죠..

"플라톤에 의하면..."

"데리다에 의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수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적 진리에 대해 말을 했지만..

어느누구도 진리를 말한적이 없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냥 나열이죠...

"A에 의하면 어떻다더라"

"B에 의하면 저렇다더라"

"누구에 의하면 이렇다더라..."

수학이나 과학은 그 과정에서의 발전성이 엿보입니다. 앞으로 진전하는

모습이 눈에 빤히 보이는게 이공계통의 특징이죠.

그런데... 인문계통은 도대체가 그런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겁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와서 몇쳔년전의 해묵은 도가사상을 주장하는 김용옥씨가

인문학의 정체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하네요.

=>해석의 차이죠. 주관적인 해석의 차이입니다.과학과는 달리 인문학에서는 서로다른 논리적 접근을 시도합니다.즉 주관적인 요소를 객관화 시키려는 고전적인 방법론입니다.그것을 정체현상으로 보셨다는것은 무리인가 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 공의 해석에대해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출현으로

뉴튼식 접근을 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작은 스케일의 운동일 경우 계산의 편의성을 위해 계속 사용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인문학은 그럴 만한 소지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된다는거죠. 어떤것이 정답이고 아니고를 따질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간의 관계역시 모호하기 때문에

그냥 모호한대로 놔두고 그렇게 개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온갖 잡다한 지식들의 총합이 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인문학은 학문이라고 보기가 상당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냥 지식(들)이죠.

=>'지식이 될수도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이 인문학의 한가지 방법론입니다.이유는 개인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혹은 전체 사회에 대한 관찰및 고찰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리뭉실합니다.이런 부분이 과학과는 차이점을 가지고있습니다.

인문학의 특징이 원래 그런것이라면...

그로부터 우리가 기대할것은 더 이상 없지 않나 싶습니다.

더 나올것이 있다면 예전에 나왔던것들의 우려먹기정도가 되겠죠..

그럼 과학역시 우려먹기가 아닌가요?예전에 나왔던 이론들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을텐데....
인문학이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서로다른 시각에서 출발하는 두 학문의 우월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란 이야기 입니다.

봄들판에서다

thedee의 이미지

Quote:
중요한 차이점은 이쪽은 적어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바탕위에 서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 왔지만 인문학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입장으로 다른 것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죠. 이 점에 있어서 방법에 있어서의 상대적인 열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상에 따라 방법론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앞에서 제시하였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신다면 인용의 글과 같은 말씀을 반복하실 필요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동의하지 않으신지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음... 정치학이나 역사학 전공 교수가 신문에 쓴 컬럼이나 시론이 인문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인문학의 방법론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들이 그러한 신문 컬럼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들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도서관 가셔서 역사학이든, 언어학이든, 심리학이든 인문학 관련 논문들을 좀 읽어 보시는 게 더욱 유익할 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일요일 되십시요~

maddie의 이미지

저는 이공계열이나 인문계열이나 조합이 될 수 없는 한심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머가 잘났네 머가 잘났네는 우스운 예기라는 거죠.

저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만은 사회과학의 일종은 광고홍보학과를 전공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인문계열이 논리적이지 않다라던가 자신의 의견이나 사상의 나열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공계열의 학문을 하는 여러분들에게 인문계 학문을 연구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인문계 사람들도 이공계의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따지자면 인문계는 머리, 이공계는 몸이라 생각합니다. 머리만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몸만 있다면 현상유지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철학과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는 물리나 화학도 그 연구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사상적 배경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연구가 시작된 것이죠. 철학사를 공부해보신 분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철학이 전제되어 과학적인 발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 또한가지, 현세 이전 대단한 학문의 경지를 구축하였던 사람들 대부분 철학을 하고 이른바 이공계공부도 병행하였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철학의 어떠한 구현의 방법으로 수학을 이용하였다는 예가 있습니다.

요즘에 자신은 프로그래머이니 따른건 신경쓰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개발자들을 종종 봅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대로, 기획자는 기획자대로 자신이 하는 일 외에 것은 일이 많아져서 싫다기 보다 무조건 싫다라는 겁니다. 제가 다닌 학교의 학과 후배들은 광고대행사가 아니면 은행이라도 안간답니다. 미친 짓이죠.

결국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그러한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인문학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인문학도 이공계열학문과 같이 논증의 과정을 거치며, 특히 사회과학의 경우 실험실적 환경을 조성합니다. 모든 인문학이 실험실적인 환경을 꾸미지는 않습니다만은 이른바 "상식", 사회적으로 옳다고 판단되는 기준에 맞추어 이론을 진행합니다. 심지어는 예술 특히 문학같은 자유로운 학문도 우리가 언어라고 말하는 기본 상식과 아름답다 혹은 어떤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기본상식에 기본하여 그들의 세계를 전개하지 않습니까?

머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분명 한국의 인문계는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공계도 그리 남을 탓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써먹"고 "돈버"는 수단이 아닌 진정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탐구가 학문계에 존재했으면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요.

힘없는자의 슬픔

chunsj의 이미지

thedee wrote:
Quote:
중요한 차이점은 이쪽은 적어도 시공간을
초월하는 객관적인 바탕위에 서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 왔지만 인문학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입장으로 다른 것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죠. 이 점에 있어서 방법에 있어서의 상대적인 열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상에 따라 방법론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앞에서 제시하였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신다면 인용의 글과 같은 말씀을 반복하실 필요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동의하지 않으신지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음... 정치학이나 역사학 전공 교수가 신문에 쓴 컬럼이나 시론이 인문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인문학의 방법론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들이 그러한 신문 컬럼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들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도서관 가셔서 역사학이든, 언어학이든, 심리학이든 인문학 관련 논문들을 좀 읽어 보시는 게 더욱 유익할 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일요일 되십시요~

제가 위에서 쓴글을 자세히 읽지 않으신듯 합니다. 아니면 제가 잘 못썼거나...
위에서 말씀드린 것 처럼 어떤일이든 그 일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생물학의 분류학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고요. 문제는 그것이 그냥
한 사람의 분류에서 끝난다면 방법론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내 마음대로 기준을 정해서 분류를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이 남에게도 인정을 받으려면 최소한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학도 출신이라 인문학쪽의 많은 논문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몇개 안되는 글 들 중에서도 하나도(!), 단언컨데 하나도 논리적인 증명을 시도
한 글은 없고 신문의 시론과 마찬가지의 글들 뿐이었습니다. 다시말해서
그냥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방식의 문제는 그냥 그 주장이 개인적인
것으로 끝나면 상관이 없는데 그걸 통해서 마치 논리적으로 증명이 되거나
시도되는 다른 참진리(?)와 마찬가지로 일반 대중에게 강요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러한 점 때문에 방법론의 측면에서 열등함이 있다는 것이고 시정되거나
강요를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를 든 것은 그냥 그게 편할 것 같아서 였는데, 역사학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으니 저도 덧 붙인다면 저는 역사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접근은 비교적 타당합니다.
그들도 증명을 시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냥 주장일 뿐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증명의 탈을 쓴 주장이요.
그 까지는 괜찮습니다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아니면 진짜 증명을 하여야 합니다.

저는 대상에 따라 다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일부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려면 논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논증에 사용되는 논거, 가정, 공리 등은 시간과 공간에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답이 되었나요?

NeoTuring의 이미지

시간이 없으셔서 그랬나요? 저 위에 철학이 다른 모든 학문보다 우월하다..라는 결론을 맺은건

이상해 보입니다. 데카르트는 극단적인 회의론자로서 인문학은 물론 그 당시 과학이라

칭해진 것들중 경험과학적 측면에 기울어진것들과 기타 연금술과 같이 신비주의에 휩싸인것들

을 엄격히 배제시키고, 오로지 확실한것만을 받아들여 학문적 체계를 쌓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의 이런 주장으로부터 철학이 모든 학문보다 우월하다는 논거를

찾을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군요.

그리고 ssif님의 ..과학도 우려먹기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물론 우리가 피타고라스 정리나 뉴튼 역학을 배우는것을 부정하고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는 과학의 경우 기존의 체계를 흡수하는 새로운 학문 체계가

세워지고, 이 분야내에서 기존에 성립되었던 수많은 이론들이 통합적으로 잘 설명이

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론간에 질서가 생기고, 관계가 설정되어

학문 기반이 튼튼하고 또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이지요.

올바른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Extreme Programming 에서의 Refactoring 을

연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Refactoring이 없는 코드는 중복이 심하고

복잡하며 구조가 애매하고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코드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거죠. 이러한 Bad smell을 없애는것이 Refactoring의

역할입니다. 중복된것은 제거하고, 각 객체에 올바른 책임을 할당하고 객체간

관계를 명확히 하면 할수록 더 강건한 SW가 되는겁니다.

예를들어 현재까지는 물리학에서 상대론과 양자론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여

각 상황에 맞게 상대론과 양자론을 적용시키는 수준에 있는데, 이제는 이 둘을

통합하여 새로운 이론체계 안에서 이 두 이론이 잘 설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학계에서 꾸준히 진행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론과 양자론의

학문적 관계가 새롭게 정립이 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물리학의 수 많은 이론들

역시 그 체계안에서 새롭게 그 관계가 설정이 되는거죠. 그야말로 깨끗한

Refactoring이 이뤄지는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론간에 질서가 부여되고, 학문에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며 앞으로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생기는거죠.

끝으로 maddie님의 글은 상당부분 공감이 갑니다만, 인문학이 논리적이다라는 강변은

아무래도 이공계통의 학문만큼 인문학이 논리적이지는 않다는것에 대한 변명정도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공계통을 전공하였지만 다방면으로 두루 관심이 많아서 여러가지 분야의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인문학분야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개념이 더 불명확해지고

머릿속이 더 어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학자들의 사회구조와 연관된 여러 논쟁들을 보고 있자면, 더 그렇습니다.

양측의 논쟁이 팽팽한것은 어느쪽이든 상대에 비해 더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

보았고, 결국 대립되는 주장을 모두 다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둘다 받아들이지 말던지

하는 선택외에는 없다는것을 알게 되었죠.

제가 보는 인문학이란... 무질서함속에 존재하는 지식 정도랄까요..

물론 인문학과 과학은 각각의 존재 이유가 있고, 보완적이라는것에 대해서는

동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문학을 왜 굳이 '인문과학'이라 칭할까요..?

그리고 왜 이제야 인문학이 과학적 접근방식을 과학계로부터 수용하려 들까요?

(반대로 과학은 학문내부에 인문학의 어떤 개념을 끌어오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여태까지 학문적으로 정체되어있었고 잘못된 방식에 근거하였다는것을 스스로 깨달아서가

아닐지요?

thedee의 이미지

chunsj님께

Quote:
제가 위에서 쓴글을 자세히 읽지 않으신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서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순서에 따라 얘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처음 저는 학문의 본성이 논리성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님께서는 아마 저의 이러한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학문의 본성은 진리에 있다고 첨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께서 생각하시는 진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Quote:
시간,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고 주어진 조건에서 항상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유한한 언어로 정의 가능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 정의가 매우 협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껏하여야 실험 과학 정도에나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반례를 들었습니다.

A. 생물의 분류학: 분류 기준은 당연히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토론과 투표와, 권위와 전통과 편의와 정치를 통해 분류 기준이 정해지겠지요... 그러므로 분류 기준은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습니다. 님의 정의에 따르면 학문으로 인정받기 힘들 것입니다.
B. 역사학: 과거는 복원될 수도 실험될 수도 없습니다. 역사학의 명제는 검증 불가능합니다. 역시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C. 천문학: 천문학이 사용하는 데이터의 크기는 천문학의 대상에 비교하여 무의미할 정도로 작습니다. 천문학이 시공적 스펙트럼(우리는 우주의 과거를 보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해 주십시요.)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천문학은 수동적인 관측에만 의존할 뿐이고 반복가능하게 실험할 수 있는 수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지요. 그러한 측면에서 천문학을 불쌍한 학문이라 했던 거구요.

제가 이러한 예를 들었던 이유는 학문에 따라 즉, 대상에 따라 방법론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님은 이렇게 주장하십니다.

Quote:
저는 대상에 따라 다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일부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려면 논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논증에 사용되는 논거, 가정, 공리 등은 시간과 공간에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답이 되었나요?

이러한 글을 읽으면 저는 매우 혼란스러워 집니다. 저는 모든 대상에 대해 "그 논증에 사용되는 논거, 가정, 공리 등은 시간과 공간에 초월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임을 지적했습니다만, 님께서는 저의 그러한 주장에 일부 동의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곧바로 스스로의 얘기를 뒤엎는 얘기를 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Quote:
역사학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으니 저도 덧 붙인다면 저는 역사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접근은 비교적 타당합니다. 그들도 증명을 시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냥 주장일 뿐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증명의 탈을 쓴 주장이요. 그 까지는 괜찮습니다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는 저는 솔직히 님이 어떤 상황을 상정하고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지금 분명 학문의 본질, 그 방법론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일텐데요...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역사학자가 기원후 몇 년 이후의 신라 왕족은 토착 세력이 아닌 외래 세력이라는 가정을 세웠다고 합시다. 그 역사학자는 신화 분석을 통해, 또는 직제 개편등이 그 시기에 집중된 것을 보고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제 이를 증명하여야 합니다. 특정 시대 이후의 신라 왕족이 외래 종족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만일 미이라가 충분히 남아 있다면 유전자 분석이나 체형 비교 등등의 방법을 이용하겠죠.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언어 비교 분석을 하여야 겠지만 이러한 자료도 없다고 합시다.(미리 말씀은 안드렸습니다만 여기에는 서로 다른 종족은 서로 구별될 수 있는 유전적 특징이나 언어 사회적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이러한 가정에 합리적인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추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 이러한 가정에 이의 있으십니까?)
사정이 이러한 끝에 그 역사학자가 분석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분묘 양식이라고 합시다. 역사학자는 분묘 양식이 종족의 집단적 특성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으며 환경 변화에 대해 보수적인 경향성을 갖는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그러한가 증명을 시도하겠죠. 즉, 집단적인 종족 이동의 사례 연구를 통해 분묘 양식의 변화가 보수적인 경향을 갖는지를 연구할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그 역사학자는 이 방향으로의 연구를 포기해야 겠죠. 만일 어떤 종족이 자신의 원거주지를 떠나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원래의 분묘 양식을 유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이 방법을 종족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 결과 신라 경주 일대에, 문제의 그 시기 직전부터 시베리아 등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분묘 양식이 성하였다가 몇 세대를 지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시베리아 지대로부터 한반도에 이르는 루트에 유사한 양식의 분묘가 발견되고 있다고 합시다. 이러한 모든 자료를 통해 그 역사학자는 특정 시대에 신라 왕족이 외래 종족으로 교체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합시다. 증거로는 신화와 직제 개편, 분묘 양식의 경향성, 새로운 동물(예컨대 말)과 무기류의 출현 등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본 텔레비젼 다큐먼터리를 대충 얽어 만든 시나리오입니다만 저는 이러한 방식이 역사학자들이 연구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합니다. 개연성 높은 가정이지만 합리적인 방식으로 반박 가능합니다. 무엇이 "증명의 탈을 쓴 주장"이고,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것"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혹 가능하시다면 이러한 연구 방법 어디에 탈이 있고 강요가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본적으로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경험 과학과, 예컨대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은 방법론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리학은 대상을 추상화하는 가운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추상화란 예컨대, 대상의 무한한 속성 가운데 질량만에 주목하고 색깔, 모양, 크기 등은 사상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방법을 역사학의 대상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 아니겠습니까?

thedee의 이미지

neoturing님께

Quote:
시간이 없으셔서 그랬나요? 저 위에 철학이 다른 모든 학문보다 우월하다..라는 결론을 맺은건 이상해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이러한 충고를 많이 듣는군요...-.-

Quote:
데카르트는 극단적인 회의론자로서 인문학은 물론 그 당시 과학이라 칭해진 것들중 경험과학적 측면에 기울어진것들과 기타 연금술과 같이 신비주의에 휩싸인것들을 엄격히 배제시키고, 오로지 확실한것만을 받아들여 학문적 체계를 쌓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의 이런 주장으로부터 철학이 모든 학문보다 우월하다는 논거를 찾을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군요.

음... 데카르트는 극단적인 회의론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We can know all주의자라고나 할까요. 데카르트를 흔히 방법론적 회의론자라고 하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책을 읽어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학문 체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무의 뿌리(철학), 나무의 가지(그 밖의 모든 학문). 그런데 뿌리(철학)이 튼튼하지 않아서는 다른 여타 학문들의 확실성도 보증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런 걸 사상누각이라 하나요? 그리하여 데카르트가 기획한 것은 철학을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여타 학문의 기반으로 손색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요. 철학이 다른 모든 학문의 기반이라면, 단적으로 철학이 다른 모든 학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데카르트의 혼자 생각입니다.)

(추) 학교 졸업한지 오래되었고 제 곁에 책이 없어서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틀렸으면 지적해 주십시요. 스피노자는 어디를 가나 갖고 다니는데 데카르트한테는 아무런 호감이 없어서...

cybercat의 이미지

모든 것은 서로 균형있게 발전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생각됩니다. ^^;

chunsj의 이미지

thedee wrote:
chunsj님께
Quote:
제가 위에서 쓴글을 자세히 읽지 않으신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서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순서에 따라 얘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처음 저는 학문의 본성이 논리성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님께서는 아마 저의 이러한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학문의 본성은 진리에 있다고 첨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께서 생각하시는 진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셨습니다.

Quote:
시간, 공간에 제한을 받지않고 주어진 조건에서 항상 반복이 될 수 있으며 유한한 언어로 정의 가능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 정의가 매우 협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기껏하여야 실험 과학 정도에나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반례를 들었습니다.

A. 생물의 분류학: 분류 기준은 당연히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토론과 투표와, 권위와 전통과 편의와 정치를 통해 분류 기준이 정해지겠지요... 그러므로 분류 기준은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습니다. 님의 정의에 따르면 학문으로 인정받기 힘들 것입니다.
B. 역사학: 과거는 복원될 수도 실험될 수도 없습니다. 역사학의 명제는 검증 불가능합니다. 역시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C. 천문학: 천문학이 사용하는 데이터의 크기는 천문학의 대상에 비교하여 무의미할 정도로 작습니다. 천문학이 시공적 스펙트럼(우리는 우주의 과거를 보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해 주십시요.)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천문학은 수동적인 관측에만 의존할 뿐이고 반복가능하게 실험할 수 있는 수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지요. 그러한 측면에서 천문학을 불쌍한 학문이라 했던 거구요.

제가 이러한 예를 들었던 이유는 학문에 따라 즉, 대상에 따라 방법론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님은 이렇게 주장하십니다.

Quote:
저는 대상에 따라 다른 방법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일부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되려면 논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논증에 사용되는 논거, 가정, 공리 등은 시간과 공간에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답이 되었나요?

이러한 글을 읽으면 저는 매우 혼란스러워 집니다. 저는 모든 대상에 대해 "그 논증에 사용되는 논거, 가정, 공리 등은 시간과 공간에 초월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임을 지적했습니다만, 님께서는 저의 그러한 주장에 일부 동의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곧바로 스스로의 얘기를 뒤엎는 얘기를 하고 계신 겁니다.

그리고...

Quote:
역사학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으니 저도 덧 붙인다면 저는 역사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접근은 비교적 타당합니다. 그들도 증명을 시도 하니까요. 그러나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냥 주장일 뿐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증명의 탈을 쓴 주장이요. 그 까지는 괜찮습니다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것은 멈추어야 합니다.

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는 저는 솔직히 님이 어떤 상황을 상정하고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지금 분명 학문의 본질, 그 방법론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일텐데요...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역사학자가 기원후 몇 년 이후의 신라 왕족은 토착 세력이 아닌 외래 세력이라는 가정을 세웠다고 합시다. 그 역사학자는 신화 분석을 통해, 또는 직제 개편등이 그 시기에 집중된 것을 보고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제 이를 증명하여야 합니다. 특정 시대 이후의 신라 왕족이 외래 종족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만일 미이라가 충분히 남아 있다면 유전자 분석이나 체형 비교 등등의 방법을 이용하겠죠.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면 언어 비교 분석을 하여야 겠지만 이러한 자료도 없다고 합시다.(미리 말씀은 안드렸습니다만 여기에는 서로 다른 종족은 서로 구별될 수 있는 유전적 특징이나 언어 사회적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이러한 가정에 합리적인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추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 이러한 가정에 이의 있으십니까?)
사정이 이러한 끝에 그 역사학자가 분석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분묘 양식이라고 합시다. 역사학자는 분묘 양식이 종족의 집단적 특성을 구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으며 환경 변화에 대해 보수적인 경향성을 갖는다고 가정하고 실제로 그러한가 증명을 시도하겠죠. 즉, 집단적인 종족 이동의 사례 연구를 통해 분묘 양식의 변화가 보수적인 경향을 갖는지를 연구할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그 역사학자는 이 방향으로의 연구를 포기해야 겠죠. 만일 어떤 종족이 자신의 원거주지를 떠나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원래의 분묘 양식을 유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이 방법을 종족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사 결과 신라 경주 일대에, 문제의 그 시기 직전부터 시베리아 등지에서 흔히 발견되는 분묘 양식이 성하였다가 몇 세대를 지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시베리아 지대로부터 한반도에 이르는 루트에 유사한 양식의 분묘가 발견되고 있다고 합시다. 이러한 모든 자료를 통해 그 역사학자는 특정 시대에 신라 왕족이 외래 종족으로 교체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합시다. 증거로는 신화와 직제 개편, 분묘 양식의 경향성, 새로운 동물(예컨대 말)과 무기류의 출현 등을 제시할 수 있겠지요.

예전에 본 텔레비젼 다큐먼터리를 대충 얽어 만든 시나리오입니다만 저는 이러한 방식이 역사학자들이 연구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합니다. 개연성 높은 가정이지만 합리적인 방식으로 반박 가능합니다. 무엇이 "증명의 탈을 쓴 주장"이고, 무엇이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강요하는 것"인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혹 가능하시다면 이러한 연구 방법 어디에 탈이 있고 강요가 있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본적으로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경험 과학과, 예컨대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은 방법론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리학은 대상을 추상화하는 가운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추상화란 예컨대, 대상의 무한한 속성 가운데 질량만에 주목하고 색깔, 모양, 크기 등은 사상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방법을 역사학의 대상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 아니겠습니까?

진리와 정의내림을 혼돈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일부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학문에서 사용되는 정의내림에 대한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자연수량 1을
하나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One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논증이라
는 것이 들어갈 여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학문의 목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분류학은 체계적인 분류를 통해서, 만약 생물학이라면 그 종들간의
유사성이나 진화론에 대한 증명을 위한 뒷받침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다른 목적을 가지는 것입니다. 역사학이나 천문학(말씀하신대로 시간의 관
점에서 비슷할 수있겠습니다.)도 그 과거의 사실을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논증을 시도할 수 있겠습니다만 반복적인 실험은 말씀하신대로 적어도 현재는
불가능 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과거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가 예측가능한, 예를 들어 아주 단순화 하자면 y=x^2과 같은 트렌드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느냐 아니냐가 역사학과 천문학의 큰차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과정에 대한 노력은 하나는 있어왔고 다른 하나는
아예 없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뒤집은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아무나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면 또는 동의를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고(이것은 논증 보다는 편의성의 의미
입니다.) 그 정의를 이용한 명제를 주장하려면 논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로 드신 경우에 대해서는 저는 상당한 증명에 대한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일부 제가 그 분야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형식
적으로는 괜찮다고 보입니다. :-)

일단 서로 다른 종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할 것
입니다. 유전적 특징과 언어 사용이 다른 종족을 서로 다른 종족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무덤 양식을 다르게 쓰는 종족으로 서로 다른 종족으로 할 것인지가
먼저 정의가 되면 그 다음 부분에 대해서는 적어도 하나의 논란의 여지는
제거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종족이 분묘양식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가 없는가에 앞서서 제가
생각하기엔 어떤 분묘양식이 특정 종족의 경우 왜 그런 양식을 선택하게 되
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먼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환경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관습의 영향인지, 아니면 경우에 따라 다 다른지, 이게 먼저 결정이
되면 분묘 양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지 아니면 다른 걸 알아봐야 될지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저는 사학자가 아니라 제가 의문을 가지는 내용에
대해서 이미 논증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전제에 대한 확실한
서술 또는 그에 대한 논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증명의 탈을 쓴 주장이라고 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학교다닐때 배웠던
삼국통일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한 것입니다. 언급하신 것과 같은 내용은 저는,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증명에 가깝습니다.(비록 엄밀하지는 않지만)

용어나 적용에 대한 일관적인 방법론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시 반복해서 말하는 꼴이 되었지만 명제에 대해서,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을 하려면 논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원래 목적은 진리의 탐구이고 이를 위해서 부차적인 연구 또는
작업이 수반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분류학은 저의 관점에서는 작업입니다.
수학에 있어서의 기호학과 같이 말입니다. 그 목적은 분류 그 자체도, 기호
그 자체도 아닙니다.

NeoTuring의 이미지

토론과는 약간 동떨어진 내용으로 전개되는것 같은데...

어쨋든 thedee님의 글중에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데카르트에 대해 약간 이상한 주장을 하시고 계신듯 한데...

그는 그가 탐구하는 대상에 대해 철학이라고 규정짓지 않았습니다.

방법서설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것은 학문을 추구하는 방법론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성에 의한 명증한 인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방법적 회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료구조나 알고리즘 과목에서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Divide and Conquer 가 바로 여기서 처음 제시됩니다)

그는 오히려 그때까지의 과학이나 심지어 수학까지도 상당부분 미개한 방식에 의해 탐구되고 있다고 생각하여

마치 후일에 공리주의적 접근을 주장했던 수학자 힐베르트와 유사한 정도의 엄격한 연역에 의한

논리추론 방식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그냥 한번에 튀어나온것이 아니라 회의에 회의를 반복한 끝에

얻어진 가장 근본적인 것에 해당합니다.

제가 여러가지 철학서적을 읽어본바... 전문수학자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사람치고 그처럼 사고가 엄격하고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은 여지껏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시는 바 대로 그 자신이 철학자이기도 하였고, 또 동시에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누가보더라도 정도가 심한(?) 회의론자이고, 그의 저작들을 보고 있노라면 철학자라기 보다는 과학자에

가까웠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론중에 저는 과학적 탐구 방법론의 기틀을 세웠다는 의미에서 데카르트를 얘기했던것인데..

thedee님이 약간 다른 방향으로 글을 이끌어 가시는것 같아.. 이렇게 사족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chunsj님의 글을 보다보니 제가 주장하는 부분과 연계되는 구석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 약간 언급하고자 합니다.

chunsj님의 글을 짧게 요약한다면...

해당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여야 학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정도가 되는것 같습니다.

보편타당성은 주관이 배제된 객관이고, 그것은 우리가 오관과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객관성을 지칭하는것일 겁니다. 그리고 오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객관성은 '증거'가 될것이고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객관성은 '증명'이 될겁니다.

사실 엄밀성의 정도를 따지자면 '증명'이 '증거'보다는 훨씬 앞섭니다. 증거라는것은

귀납논리로 이뤄져 있고, 우리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가 명확한 이상 인간의 경험에 얽매여있는

증거에 대해서 완벽성을 요구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증명이라는것은

순수히 연역논리로서 따져질 수 있는 선험적인(비 경험적인) 것입니다.

3단논법 "인간은 모두 죽는다. 나는 인간이다. 따라서 나는 죽는다."이 바로 연역의 가장

단순한 형태죠.

괴델이 밝혔듯이 증명이 꼭 참인것과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쨋든 정합적으로 맞기만하면

그것은 맞는 증명이 되니까요.

우리가 인간인 이상 수학이 아닌 다른 학문에서 엄밀한 증명까지를 요구할수는 없을겁니다.

그러나 최소한 증명을 하기위한 노력을 경주하는것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무엇이 가정이고 무엇이 그 가정으로부터 유도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것이 이것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따라서 이런 체계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오는데 이 결론을 실제 세계에

적용해보니 어떠한 결과가 나와서 처음의 가정이 맞다거나 틀리다거나 하는 식의 다소

거칠지만 증명을 위한 대체적인 프로세스를 밟을수는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증명'을 '증거'로서 확인해보려는 일반 물리학에서의 대응설적 진리관과도 일치하는

태도에 해당합니다만, 이정도 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모든것을

'가정'인 상태로 놔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인문학 분야에서는 거의 이런 시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을뿐만 아니라

논증보다는 주장이 앞서는 상태에서 어떠한 가정을 사실로 그냥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겁니다. 마치 일신교에서 아무런 근거없이 그냥 신을 믿으라하는것과

같은것이죠. 그러니 인문학은 학문으로서도 그 성립근거가 약하다고 생각할수 밖에

없는거죠.

단언컨대 논리라는것은 설득의 기술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한다면 논리가 없는 주장은 종교적인 도그마에 불과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거죠.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논리가 뒷받침되는 주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언젠가는 수긍하게

되는것이 바로 논리의 힘입니다.

인문학은 많은 부분이 주관적인 주장과 확인되지 않은 가정들로 뒤 범벅인 상태에 있는것이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그것을 논증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는것에 관심도 없는것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의 특정 주장들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겁니다.

정리하자면...

저는 각 이론체계간의 정합성을 말씀드린것이고, chunsj님은 학문이 기반하고 있는 논거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결국 같은 주장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시말해서 인문학의 결과물들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객관성이 떨어집니다 || ==논리가 부족합니다)

현재로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방법은 그냥 그것을 받아들여 지식을 쌓아두는것 외에는

없다고 보여지고.. 인문학이 왜 그러한 어설픈 학문기반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것은 계속 그 상태로 머물러 있게 된다면 앞으로 인문학의 미래는 어둡게

될거라는 겁니다.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인문학자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할걸로

생각합니다.

thedee의 이미지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특히 NeoTuring님의 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정말 무지하게 많습니다만 이쯤에서 논의를 접는 것이 제게 무척 이로울 거 같습니다. 사실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은 진작에 다 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얘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 제 속 맘이 별로 편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죠. 단순한 사실 관계 확인일 뿐입니다. NeoTuring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Quote:
어쨋든 thedee님의 글중에 잘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고 넘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데카르트에 대해 약간 이상한 주장을 하시고 계신듯 한데...

그러나 님 스스로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올리지 않으셨는지요?

Quote:
끝으로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가 철학(그는 어떤 학문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학문'이라는 단어로 칭하지 않았습니다.) 에 대해 비판한 내용을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 싶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의견만 있을 터인데, 아주 많은 의견들이 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서로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모두 거의 거짓된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학문들에 관해 말하자면, 이 학문들의 원리는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어설픈 토대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견고하게 세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끝에 문단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학문들에 관해 말하자면, 이 학문들의 원리는 철학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어설픈 토대 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견고하게 세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철학이 다른 학문들의 토대라는 얘기입니다....

(끝으로 두 분의 마무리 발언을 들을 수 있으면 무척 즐겁겠습니다. 저만 한마디 찍 싸고 도망가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닐 듯 하여...^^)

NeoTuring의 이미지

thedee님이 가리키신것은 '기존의 철학에 기반한' 학문들을 지칭하는것입니다.

오히려 데카르트는 철학이고 수학이고 간에 다 무시해버리고 그가 새롭게 모든 학문을 평정(?)하여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명확한 논리에 입각한 '보편수학'을 구상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관련 책자를 읽어보심이 나을듯 하군요...

ggak의 이미지

많은 분들의 얘기에 공감합니다만..
문제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학문의 각 분야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할을 분담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각 분야의 '주류'라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역이 최고라고 주장합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자연과학이던, 인문학이던 모두 발전해서 '인간'을 이롭게 하면 그만입니다. 분야간 우월을 따지는 것은 오직 '주류' 학자들의 밥그릇 지키는 행위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목소리 높이고 서로 깎아내리는 것은 그냥 포기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에 휘둘리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결론적으로, 만일 주위의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한다면
"그쪽으로 몸담아 (정치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싶은 모양이군" 하면서
그냥 무시해 버리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snoman의 이미지

허허, 참, 여기서 토론하는 분들은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분들인데, 대단하십니다. 대학 졸업한 지 10여년이 지났고, 철학책을 들추지 않은 것도 거의 그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솔직히 데카르트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도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철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어쩌고 하는 얘기 말고는. 부끄럽네요^^.

그리고 백 번을 양보하더라도 당대의 인문학이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분명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역사학계에는, 제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이런 체념조의 말이 있습니다. 스승이 죽기 전에는 학설을 바꿀 수 없다는... 변명을 하자면 이런 거지요. 인문학의 경우 그것이 당대의 우리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중세나 근대 초기의 많은 자연과학자들이 기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는 연구를 했다가 죽거나 박해를 당하고 자기의 신조를 꺾어야 했던 일이, 인문학에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제는 진화론을 주장했다고 죽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모처에 끌려가 작살날 각오를 하지 않고서 인문학을 진지하게, 거침없이 연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뭐, 멀리 볼 필요 있나요? 서동만 교수나 최장집 교수 사건 같은 것도 있는데. 원로 미대 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비판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교수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국립' 서울대에서. 인문학에서 마녀 사냥이나 이단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인문학의 연구 대상이 인간이라는 것이지요. 아인시타인마저 열 받게 많들었던 양자의 주사위 노름보다, 어찌보면 인간이 더 연구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요? 위에서 어느 분이 학문이라면 최소한 시공의 문제를 떠나 보편타당한 정리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이 어느 정도 그런 부분에 성공한 것은, 인문학자들이 게으르고 멍청한 탓도 있고 자연과학자들이 애쓴 덕분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그 대상의 영향이 크지 않나 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최소한 관찰 대상의 균질성이 보장되지요. 하지만 인간은 각자가 다 다릅니다. 표본 조사라는 것이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요. 어느 분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만, 실험을 통한 재현도 불가능하구요.

그리고 자연과학도, 인문학 보다는 형편이 좋습니다만, 그렇게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요? 고작 32가지(!) 정도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양자 현상의 원인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죠. 관찰자가 양자 운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경실색, 경천동지한 거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죠. 우우리 인문학에서는 그 정도 불확실성은 불확실성으로 끼워 주지도 않습니다^^. 자연과학이 그렇게도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한 성숙한 학문이라면, 지금 같은 '위험사회'는 도래하지 않았을 겁니다.

역사학에서도 한때 실증주의 역사관 같은 것이 득세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랑케라든지 하는. 영국이나 미국은 인문학에서도 이런 학풍이 강한데, 단행본 한 권 읽으면 예증이나 사례 분석이 한 3분의 2는 되더군요. 그런데 그것이 과연 성공적이고 인문학이 따라야 할 미래인가 하는데는 분명 회의적입니다. 방법론의 일부일 뿐이겠지요. 헤겔 이래로, 특히 좌파 인문학을 휩쓴 변증이론도 있군요. 인문학에서 웃기는 현상의 하나는, 하나의 이론과 방법론이 득세하고 체계화하는 순간, 동시에 그것이 학문의 발전을 가로막고 타락하게 하는, 하나의 이데올리기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저는 말이죠, 자연과학 같은 곳에서도 순수한 물리학이나 천문학, 수학, 인문학 쪽에서는 철학, 역사학 같은 것의 위기가, 돈 안 되는 것을 천시하는 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만, 내적으로는 상상력의 위기가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답니다. 누가 더 우월하네 방법론이 어쩌네 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더욱 더 정밀한 논증과 실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이론적 정밀성의 고도화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상상력이야 말로 학문(자연과학이든 인문학이든)의 심장이 아닐까요?

다윈의 진화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화석이나 고립된 지대에서의 생물종의 발전 양상을 추적하고 엄밀한 분석을 통해 과학적 결론을 끌어냈다는 사실보다도, 그런 개개의 현상을 통해 종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엄청난 사고의 단절과 비약을 이뤄냈다는 겁니다. 아인시타인도 그렇고, 하이젠베르크도 그렇고, 아, 호킹의 경우도 있군요. 이런 것을 잊은 채, 이론의 정밀함과 구현의 정확성을 따지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그 일부분인 엔지니어링의 문제로 귀결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이거 또 토 다는 분이 있을까봐 하는 얘긴데, 엄밀성이나 정확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엔지니어링을 비하하는 것도 아니구요. 저도 엔지니어랍니다^^)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데 死因은 무슨....

NeoTuring의 이미지

snoman님의 의견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대상자체의 특성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난해한것은 학문을 탐구하는데 있어 탐구의 '대상'과

탐구자의 탐구방식 즉, '방법'에 대해 무엇이 주가 되고, 무엇이 부가 되어야

하는것이냐 하는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탐구대상에 대해 우리의 인식상태가 새롭게 설정되는것이 맞는것 같기도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의 인식상태에 맞게 대상을 받아들여야 하는것 역시

맞는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러셀은 보통의 수학과 수리철학간의 차이점을 말하고자 할때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연구대상 자체에 있는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정신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임마누엘 칸트는 다음과 같이 얘기를 하고서는...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인식이 모두 대상에 따라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대상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선천적으로 개념에
의해서 규정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인식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전제하에
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이번에는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따라서 규정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상정한다면 형이상학의 여러 가지 과제가 보다 잘 해결되리
라는 것을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이렇게 했을때 얼마나 형이상학의 제 문제들이 잘 풀릴 수 있는지를

실제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언급했듯이 대상에 따라 인식이 규정되어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때 대상을 인식에 맞추어야 하는지 또 그 반대여야하는지에 대한

약간이나마 근거있는 지침은 어디에도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무엇을 꽉 붙들고 무엇을 이것에 투영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유보시켜야 할 줄로 압니다.

분명한것은 대상이든 인식틀이든 그 둘 모두 학문을 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는 점이겠죠.

그리고 이제 우리가 정말로 앞으로 해야 할일은 그것이 인식틀이든 대상이든

간에 확실하게 하나라도 붙잡고 한발짝이라도 진전을 시켜 나가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설령 앞으로 나가다가 도저히 뚫지 못할 벽을 만나게 되더라도 우리는

그로부터 유효한 성과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뚫지 못할

벽이라서 그 길은 이제 가지 말아야 하는 길로 표식을 해둘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제 입장에서는 인문학에서는 이런 시도가 매우 적어 아쉽다는 것이고..

그래서 인문학의 성과는 '역사' 이상을 뛰어넘지 못하는 정도로 미미한걸로

생각합니다. 문학을 공부하는것은 곧 문학의 역사를 배우는것과 같고

정치를 공부하는것은 곧 정치의 역사를 공부하는것과 같으며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곧 철학의 역사를 공부하는것과 같다.. 라는 겁니다.

이것은 무언가를 확실히 붙들고 진전함이 없이 그저 암중모색중에 있는

이론들의 집합을 배우고자 하니 그것의 역사를 배우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방향으로의 진전을 위해서는 확고한 학문기반이 필수적이고, 이에앞서

명확한 방법론이 세워져야 하는것 역시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과학은 이런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정도의 강력한 틀이 존재해왔죠.

그리고 그 도중에 여러가지 패러다임의 변환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과학은 어떤것이든 그 패러다임 내부에서 확실하게 인식되는것

을 붙들고 앞으로 진전하는 방식을 취했고 이것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인문학은 그런면에서 있어서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죠.

그래서 인문학이 어느시점에선가부터 정체된것처럼 보여지는겁니다.

무언가... 활력이 없고 에너지가 다한듯한 그런 모습...

참 암울하게 보이죠.

codebank의 이미지

8) 여려운만큼 재미도 있군요.
지루한 오후에 참신한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다만 학문적인 연구가 존경받는 사회에서 논의가 되어야할 문제인것 같군요.
우리나라처럼 모든것이 입시시험위주로 체계가 이루어져있는 나라에서는 저런 평화스러운 논의는
당치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매체라고 불리우는 곳들에서도 대입이라고하면 입에 거품을물고 서로 생생내기 바쁘고
사회전반적으로 대입에 맞춰져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학을 못나오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대학나와서 취업못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정규교육만 받고도 취업하거나 성공하면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회가 안쓰러울 뿐입니다.

어디에서 논의를 했든지 우리나라가 아닌곳에서 이루어진 논의같군요. :tw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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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pbear의 이미지

the grown-ups always talk about figures...
from little prince

maddie의 이미지

인문학이 일정 부분 이공계에 비해 논증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완전히 과학적인 과정을 초월하여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철학과 같은 인문학의 경우, 누가 이렇게 이야기하였다...라던지 일반적인 통념상 그렇다..라던지..로 많은 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비과학적이라고 한다면 머 그럴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공계 학문에서 증명의 방법을 삼는 그 논거의 증명방식은 철학에서 연유하였다는 사실은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이론은 이미 다 나와있는데 왜 답이 안나오느냐라고 물으신다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혹은 인간이란게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더라..라고 답하고 싶구요.

심리학을 인문계로 쳐주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컴퓨터도 인지 심리학의 학습이론과 지능이론에서 힌트를 얻은 기계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심리학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철학에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사실도 염두해 두셔야 합니다.

인문과학에서 같은 문제의 결과치가 다르게 나올 수 있는것은, 그 결과를 내기 위한 실험실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미 결론이 난 이론에 대해 다른 실험실적 환경을 구축하여 결과를 내는 것도 하나의 쟝르로 인식되기도 하죠.(특히 광고의 경우는 더합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 중엔 인문계를 전공하신 분들이 얼마 안계신것 같습니다. 언젠가 투표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름대로 재미있을 듯.

힘없는자의 슬픔

afsadfsaf의 이미지

요즘 토론같은거 제대로 해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이런 오래된 곳에도 글 한번 남겨 봅니다.
제가 이런거 너무 좋아하거든요... ㅠ.ㅠ
뭐.. 어쨌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모든 논리적이다는것은 인간이 맞다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3은 3이다" 라는 이론이 있다면, 인간이 저것이 참이라고 느낄때 "3은 3이다" 라는것이 참이다.
하나 더 들어보자. "인간은 모두 선하게 태어난다" 라는 이론(??)을 살펴보자면, 역시 인간이 저것이 참이다 라고 느낄때 저 이론은 참이다.

그리고, 더이상 인간이 새로운(이것은 틀렸다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것은 증명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 라고 여겨진다.
집 한채가 인간에게 만족할만큼 지어졌을때에, 이것이 완성되었다 라고 여겨지는것과 다르지 않다.

우월감 얘기를 해 보자.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비해 우월하지 않아보인다 하는 느낌이 드는것도 일리가 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문학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인문학에 비해 우월하지 않아보인다 하는 느낌도 일리가 있다.
모든것은 여러가지 생각이 가능한데, 자연과학은 무조건 한가지 답만을 맞다 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문학 입장에서는 그것이 매우 간단하고 무시 할만하게 보인다.
어짜피 언젠가 답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그런데 철학자가 이렇게 생각하는것은 자신에대한 모순적 생각이다.)

아뭏든, 그래봤자, 모두 인간이 맞다고 느끼는 것들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맞다고" 생각하는 뇌의 매커니즘 자체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모든 학문은 그저 인간이 관심을 가질만큼 아름답거나, 재미있거나
하기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왜 허울좋은 말들로 학문을 치장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 자체마저도 아름답기 때문일까?
그런면에서, 토론은 정말 아름다움의 진수이다. :D

그럼.

L-System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yubgipenguin wrote:
요즘 토론같은거 제대로 해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이런 오래된 곳에도 글 한번 남겨 봅니다.
제가 이런거 너무 좋아하거든요... ㅠ.ㅠ
뭐.. 어쨌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모든 논리적이다는것은 인간이 맞다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3은 3이다" 라는 이론이 있다면, 인간이 저것이 참이라고 느낄때 "3은 3이다" 라는것이 참이다.
하나 더 들어보자. "인간은 모두 선하게 태어난다" 라는 이론(??)을 살펴보자면, 역시 인간이 저것이 참이다 라고 느낄때 저 이론은 참이다.

그리고, 더이상 인간이 새로운(이것은 틀렸다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것은 증명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 라고 여겨진다.
집 한채가 인간에게 만족할만큼 지어졌을때에, 이것이 완성되었다 라고 여겨지는것과 다르지 않다.

우월감 얘기를 해 보자.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비해 우월하지 않아보인다 하는 느낌이 드는것도 일리가 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문학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인문학에 비해 우월하지 않아보인다 하는 느낌도 일리가 있다.
모든것은 여러가지 생각이 가능한데, 자연과학은 무조건 한가지 답만을 맞다 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문학 입장에서는 그것이 매우 간단하고 무시 할만하게 보인다.
어짜피 언젠가 답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그런데 철학자가 이렇게 생각하는것은 자신에대한 모순적 생각이다.)

아뭏든, 그래봤자, 모두 인간이 맞다고 느끼는 것들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맞다고" 생각하는 뇌의 매커니즘 자체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마지막으로,
모든 학문은 그저 인간이 관심을 가질만큼 아름답거나, 재미있거나
하기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왜 허울좋은 말들로 학문을 치장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 자체마저도 아름답기 때문일까?
그런면에서, 토론은 정말 아름다움의 진수이다. :D

그럼.

제 머리속 뇌가 님의 말씀이 맞다고 자꾸 손으로 명령 내보내라고 하는데요.
손이 마우스로 갖다가 키보드로 가서 뭔가 친글이 이글이 되었군요. 2줄.

lsj0713의 이미지

yubgipenguin wrote:

모든 논리적이다는것은 인간이 맞다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틀립니다. 논리라는 것은 컴퓨터의 OR이나 AND 연산처럼 분명한 것입니다. 머리 구조가 다르다고 1과 1을 AND 시켰을때 0이 나오고 그러는가요? 갑이 하면 1이고 을이 하면 0이 되는 것을 논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인 전제가 틀릴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전제가 맞다면 그 뒤에 추론되는 모든 것을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논리입니다.

yubgipenguin wrote:

예를 하나 들어보자. "3은 3이다" 라는 이론이 있다면, 인간이 저것이 참이라고 느낄때 "3은 3이다" 라는것이 참이다.

단순히 느낌만으로 참이다 거짓이다 따지지는 않습니다. 이 우주상의 어떤 지성체가 봐도 명백한 사실인 것,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 학문이고 과학입니다.

yubgipenguin wrote:

하나 더 들어보자. "인간은 모두 선하게 태어난다" 라는 이론(??)을 살펴보자면, 역시 인간이 저것이 참이다 라고 느낄때 저 이론은 참이다.

그리고, 더이상 인간이 새로운(이것은 틀렸다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면, 그것은 증명되었다 또는 완성되었다 라고 여겨진다.
집 한채가 인간에게 만족할만큼 지어졌을때에, 이것이 완성되었다 라고 여겨지는것과 다르지 않다.

몇백년전, 인간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고, 한동안 새로운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론이 참이던가요? 인간은 자신이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인간이 없던 먼 옛날에도 우주는 잘만 굴러갔습니다. 우주가 돌아가는 법칙이란건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의 참과 거짓 여부는 인간하고 전혀 상관없습니다.

yubgipenguin wrote:

우월감 얘기를 해 보자.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비해 우월하지 않아보인다 하는 느낌이 드는것도 일리가 있다.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문학은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실례지만 인문학을 전공하고 계십니까? 인문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인문학에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모욕입니다. 인문학도 자연과학 못지 않게 많은 자료들을 참고해야 되고, 어떤면에서는 자연과학보다도 더 어려운 조건에서 논리를 쌓아가야만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yubgipenguin wrote:

자연과학이 인문학에 비해 우월하지 않아보인다 하는 느낌도 일리가 있다.
모든것은 여러가지 생각이 가능한데, 자연과학은 무조건 한가지 답만을 맞다 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문학 입장에서는 그것이 매우 간단하고 무시 할만하게 보인다.
어짜피 언젠가 답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그런데 철학자가 이렇게 생각하는것은 자신에대한 모순적 생각이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자는 사이비입니다. 헬륨 원자 하나에 포함된 양성자의 수가 2개라는 것은 객관적인 진실인데 어떻게 해야지 여기서 여러가지 답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까? -_-;; 어떤 문제들은 답이 하나이고, 어떤 문제들은 답이 여러개이고, 어떤 문제들은 답이 없습니다. 학자라면 당연히 열린 생각을 가지고 진실을 받아들여야 할텐데, 답의 갯수를 가지고 학문의 우월을 생각하고 있다면 엉터리라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yubgipenguin wrote:

아뭏든, 그래봤자, 모두 인간이 맞다고 느끼는 것들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맞다고" 생각하는 뇌의 매커니즘 자체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위에서 말했듯이, 컴퓨터나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현대과학이란 그렇게 어설픈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의 메커니즘 따위와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yubgipenguin wrote:

마지막으로,
모든 학문은 그저 인간이 관심을 가질만큼 아름답거나, 재미있거나
하기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왜 허울좋은 말들로 학문을 치장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 자체마저도 아름답기 때문일까?
그런면에서, 토론은 정말 아름다움의 진수이다. :D

그럼.

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여러개라 할 수 있지요. 학문의 가치를 한마디로 단언하는 것은 재미있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올바른 답에 근접했다고는 할 수 없지요.

greeny의 이미지

위에서 말했듯이, 컴퓨터나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현대과학이란 그렇게 어설픈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의 메커니즘 따위와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컴퓨터는 당연히 인간이 생각하는대로 굴러갈 것이고,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괴델선생, 맞나요?)
인간이 뇌의 메커니즘을 벗어나서 사고할 수 있나요?

인간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인간의 뇌로 사고하며, 그것이 객관적인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김용옥선생이 맨날 얘기하는 1+1=2 라는 명제는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자' 라는 약속이지, 다른 외계인들도 자연수, 더하기 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극장의 우상? 무슨우상이지?)

lsj0713의 이미지

greeny wrote:
위에서 말했듯이, 컴퓨터나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현대과학이란 그렇게 어설픈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의 메커니즘 따위와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컴퓨터는 당연히 인간이 생각하는대로 굴러갈 것이고,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괴델선생, 맞나요?)
인간이 뇌의 메커니즘을 벗어나서 사고할 수 있나요?

인간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인간의 뇌로 사고하며, 그것이 객관적인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김용옥선생이 맨날 얘기하는 1+1=2 라는 명제는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자' 라는 약속이지, 다른 외계인들도 자연수, 더하기 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극장의 우상? 무슨우상이지?)

인간이 인지하는 '현실' 그 자체를 의심한다면 더이상 할말 없습니다. 우리가 매트릭스 안에 살고있을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단순히 님의 꿈에 나오는 엑스트라일지도 모르니까요-_-;;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존한다면, 우리 눈이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거라면 적어도 몇가지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외계인들은 하늘의 별을 셀때 정수가 아니라 연속의 개념으로 세서 루트 129389018398009213개라고 셀까요? 원자 속의 양성자를 셀때도? 적어도 지구인 이상의 지성과 문명을 갖춘 존재라면, 외부의 현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 어쩔수없이 현실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정수의 개념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요.

그리고 괴델의 정리는 정수체계에 대한 공리 공준 자체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수 없다는 얘기였지 모든지 알수없다는 그런 허황된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데나 갖다붙일만한 얘기는 절대로 아니죠. 그 자체만으로 정수 체계가 참이라는 증명은 할수 없지만(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증명할수 없다' 입니다), 정수 체계가 참이면 그안에서 추론된 모든것이 참이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참이면, 거기서 추론된 모든 것이 참이라는 것도 맞는 문장입니다.

외계인들이 1+1=2라고 하는지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수와 덧셈 뺄셈이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 그들도 그것을 이해하고는 있을 것입니다.

greeny의 이미지

lsj0713 wrote:
greeny wrote:
위에서 말했듯이, 컴퓨터나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 객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현대과학이란 그렇게 어설픈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뇌의 메커니즘 따위와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 과학입니다.

=>컴퓨터는 당연히 인간이 생각하는대로 굴러갈 것이고, 외계인이 봐도 맞다고 생각하는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괴델선생, 맞나요?)
인간이 뇌의 메커니즘을 벗어나서 사고할 수 있나요?

인간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인간의 뇌로 사고하며, 그것이 객관적인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김용옥선생이 맨날 얘기하는 1+1=2 라는 명제는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자' 라는 약속이지, 다른 외계인들도 자연수, 더하기 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극장의 우상? 무슨우상이지?)

인간이 인지하는 '현실' 그 자체를 의심한다면 더이상 할말 없습니다. 우리가 매트릭스 안에 살고있을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단순히 님의 꿈에 나오는 엑스트라일지도 모르니까요-_-;;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실존한다면, 우리 눈이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거라면 적어도 몇가지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외계인들은 하늘의 별을 셀때 정수가 아니라 연속의 개념으로 세서 루트 129389018398009213개라고 셀까요? 원자 속의 양성자를 셀때도? 적어도 지구인 이상의 지성과 문명을 갖춘 존재라면, 외부의 현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면 어쩔수없이 현실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정수의 개념을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요.

그리고 괴델의 정리는 정수체계에 대한 공리 공준 자체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수 없다는 얘기였지 모든지 알수없다는 그런 허황된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데나 갖다붙일만한 얘기는 절대로 아니죠. 그 자체만으로 정수 체계가 참이라는 증명은 할수 없지만(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증명할수 없다' 입니다), 정수 체계가 참이면 그안에서 추론된 모든것이 참이라는 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참이면, 거기서 추론된 모든 것이 참이라는 것도 맞는 문장입니다.

외계인들이 1+1=2라고 하는지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수와 덧셈 뺄셈이 현실에 존재하는 이상 그들도 그것을 이해하고는 있을 것입니다.

혹시 뉴튼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절대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외계인이 우주라는 구슬을 가지고 논다라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로 생각되는데요?
과학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불확정성 원리에서 관찰을 위한 빛 때문에 전자의 운동이 바뀌는 것을 '불확정' 이라고 합니다. 빛을 쪼이지 않았다면?
외계인들이 1+1 개념이 없고 양자역학의 확률개념으로 세상을 보고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죠

제가 이 토론방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든 학문의 근본은 철학이며 철학은 인문학이라는 겁니다.

사족 : 대다수의 공대출신들이 좋아하시는 컴퓨터 논리는 이미 몇백년전에 완성된 논리학의 아주 작은 일부분입니다. (저도 공돌이입니다)

afsadfsaf의 이미지

네.. 철학은 역시 모든 학문의 기반이죠.

철학은 그저 대학의 학과목중 한 과목이 아닙니다.
진정한 철학이라는것은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든 의문점들을 풀어나가는 학문입니다.

인간 그 자체
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또는
인간이 보는
또는
인간에 관련한 모든 것들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풀려 하는 학문이 철학입니다.

그러니까 철학은 여러가지 인간의 욕구들 중 "호기심" 을 해결하기 위한 것 이라고 할 수도 있죠.

결국 철학 == 학문 입니다. QED :shock:

PS. 참고로 철학은 이것이 어떤학문이다! 하고 따로 분류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통틀어서 철학이라고 분류한 것 뿐입니다. 그런면에서 일부분만을 철학이랍시고 가르치는것들은 "가짜 철학자" 입니다.
주입식 교육의 비극적 결말이죠 ㅠ_ㅠ

L-System

lsj0713의 이미지

greeny wrote:
혹시 뉴튼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네. 저는 그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 어떤 무엇이 있건 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뉴턴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세계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별 관심 없습니다. 저에게 중요한것은 현실이고 이 안에서 어떻게 끝을 추구하는가 입니다. 장자가 말했던 대붕과 참새의 비교와 같이, 널리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발밑을 내려다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발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정수의 개념은 계속 쓰이며, 수학체계도 여전히 같은 것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뉴턴 역학이 이 우주상의 모든 곳에서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블랙홀의 특이점이라던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별 무리없이 적용 가능하죠.

우리가 매트릭스안에서 사는 것일지라도, 최소한 우리가 사는 매트릭스 안에서는 매트릭스 안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절대 진리란 존재하지 않을 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 안에서는 절대 진리가 존재합니다. 정수 체계 자체가 자기 스스로는 성립이 안되는 절대적이지 않은 체계이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히 참인 정리들이 성립되는 것처럼.

본래의 토론 주제로 돌아와볼까요. 저는 인문학을 과학의 부분집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한가지 방법이죠. 현실을 더 잘보기 위해서 현실 밖의 것들을 끌어들여 비교할수는 있지만, 결국 그 목적은 현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바로 이 세계 입니다.

당연히 두개는 한몸이므로 어느것이 우월하다 할 수 없습니다. 머리와 심장 중 어느것이 우월한지 말할 수 없으므로.

greeny의 이미지

...

singai2001의 이미지

결국 자연과학이 더 우월하다고 결론을 내시는 걸 보면서 참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편가르기를 하려는 학문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학문적인 편협함에 사로잡혀 있는지 다소 느끼게 됩니다. 주제에서는 벗어나지만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논지의 글들이 요즘 이공계가 많이 소외당하니까 그 반발심리로 이런 억지성의 글로 다소 만회해보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어느정도 논리적인 구조는 갖추었지만 설득력은 없군요. 인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결여되어있다는 겁니다. 인문학을 자연과학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너무 유치합니다. 즉 너무나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모든 걸 바라보려고 한다는 거죠. 그 편협함을 극복해야만 학문을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mbistel의 이미지

흠... 자연과학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많은 편의를 재공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대생이 많든 차를 타고 다니고있고.. 출판시에.. 사람들을 고된 조판작업에서 해방되게 해주었고... 많은.. 숫자 노가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자연과학은 인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배푼 것임니다...

그런대.. 인문과학을 하는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의 인문과학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가령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봅시다 나름데로는 열심히들.. 하시고 계시겠지만.. 일제시대의 잔제를 제대로 청소하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의 실제 조상인 환인 환국 단군... 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정말로 위대한 민족이었다고 말해주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우리나라 종교적인 문헌인 음부경을 본다면 그것이 중국등에서 수입되고 있는 '기'문화가 우리쪽에서 벌써 있어왔음을 알 수 있지만... 또 이런것을 현대적으로 고증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또 누가 있습니까?

사실 인문과학 및 철학에도.. 정말 고도화된 논리.. 객관화된 대사을 모델링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역입니다. 많은 분들이 주역을 점보는 학문이라고 잘못 아시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주역의 어플리케이션인... 명리학일 뿐입니다.. 주역은.. 자연의 순환과정을 떠서 그것을 음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컨대 낮이오면 밤이온다.. 와 같은 논리가 고도화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낮이오면 밤이 온다는게.. 천리로서 합당한 것이므로... 그걸 이용해서 점을 보는 것이. 맞는겁니다... 이 주역은 병법과 의학 정치에도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죠... 공자도 사실은 주역을 공부하던 학자였습니다...

우리가... 주로 자연과학에 있는 사람들이 인문과학 하는 분들에 대해서 뭐라뭐라 하는것은.. 우리가 차만들어서.. 핸드폰 만들어서.. 배만들어서.. 국민들 먹여 살릴때.. 인문과학 하는 사람들이 과연 뭘했나?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물건너 온걸 좋아합니다. 그런대... 일본에서는 많은 인문학 학자들이 나서서 그들의 문화를 아끼도록 의식을 바꾸었습니다. 일본풍의 게임도 나오고... 음악도 나오고 또 인기를 얻고... 수출도 합니다. 그런대.. 우리나라는.. 인문학을 한다고 하면.. 정계나.. 법조계.. 그외? 경영? 그정도가 떠오를 따름입니다.

그동안 많이 배고팟겠지만. 인문과학인들이.. 그간 인문분야의 체계화... 및 활성화.. 등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한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에 언급된 내용대로... 억지 논리가 아니라... 고도로 닦여지고 객관화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면 수학에 꿀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인 주역도 과거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인문과학 연구하시는 분들이... 연구실에 박혀서.. 자신의 분야를 파는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퍼트리는 것도 중요하죠..

사실... 프로그래밍 언어라는게.. 인간이 만든거중에.. 조금 똑똑한 넘인 컴터에게 대화하는 방법일 뿐인데.. 그보다 더 고급 두뇌인 사람에게 말하는 기술이... 어떻게 천박하다 하겠습니까?

다만... 결론적으로 인문인들이... 게을렀다라고 말하고 싶군요..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부를 가지고 있다는게 못마땅한 것이고.. 그럼 휘리릭..~

afsadfsaf의 이미지

음 학문을 평가할때는 학문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하는게 아닐까요.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이나 풀리지 않은 문제를 푸는것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똑같은 풀리지 않은 문제를 풀 뿐인거니까요. 이런점에서 둘 다 가치있는 학문이라는것은 변함이 없죠 ^_^

사회에 기여하는 영향은,
아예 애초부터 자연과학과 인문학 자체가 적용되는 분야가 다릅니다.(가끔 합작;;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인문학(?)은 우리의 감성을 키워주는데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물론 일부 제대로 된 학자들만)

자연과학(??)은 우리의 귀차니즘-_-을 해결해 주는데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이것도 일부 정상적인 기술자들만)

그러나 둘 다 연구 해보기에 너무도 즐거운 학문일 뿐입니다.

그런데,
문학의 아름다움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 잘 모르는사람들은
자연과학만 우월해 보일테고
호기심이란걸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문학만 우월해 보이겠죠.

괜히-_- 플레임 워 거리로 우리의 좋은 친구인 학문;; 들을 끌어들이지 맙시다;;
이런식으로 편가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늘어날 수록 대한민국의 후진국화가 가속화됩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버릇없는초딩" "멍청한국회의원" "애만도못한 어른" 등등을 따라하면 안되겠죠?

L-System

izlley의 이미지

글 정말 많네..

학문을 평가한다? ㅇㅇ

그냥 자기가 공부하는 학문에 만족하면 되는거지 머리아프게 뭔 평가 ^^

호아의 이미지

izlley wrote:
글 정말 많네..

정말이지 많네요.
그리고 님도 일조하셨구요.

thedee wrote:
과학자들은 관측값에 맞추기 위해 이러 저러한 가정들, 새로운 힘, 새로운 입자, 새로운 상수들을 계속 추가합니다. 임시 사다리같은 거죠. 임시로 사다리를 놓는데 무슨 논리적 필연성이 있습니까? 일단 그렇게 하여 실험값과 잘 맞으면 되는거죠.

여기에는 얼마간 부연설명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1. (후학의 입장에서) 어떤 (물리)이론의 전개과정을 따라가보면 논리적 필연성이 결여된 혹은 부족한 (가설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님의 말마따나) 그렇더라도 실험값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3. 그러나 이 (가설적인) 부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계란 노른자?)
4.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논리적 필연성이 사라진 벼랑끝에서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 (좌절하고 맙니다)
5. 이 순간 뉴우튼이나 아인시타인 같은 카리스마가 소위 가설이란 구름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6. 따라서 논리적 필연성이 애매모호하면 할 수록 여기에는 역사적인 천재가 요구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7. 제대로된 이론의 경우 과거에 행해진 모든 실험값과 일치할뿐만 아니라, 아직 행해지지 않은 미래의 실험(값)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님의 글에서 엿보이는 냉소를 미소로 바꾸시는게 어떨지요.
아뿔사, 저까지 일조를..
:wink:

thedee의 이미지

글도 많지만... 토론이 계속 되고 있다는 거 자체가 놀랍네요.

Quote: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논리적 필연성이 사라진 벼랑끝에서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 (좌절하고 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존의 이론 가지고 설명이 안되는 현상 앞에서 당황하는 거죠. 그리고 좌절하는 게 아니라 누가 빨리 해답을 찾는가를 놓고 피말리는 게임을 시작하는 거죠. (노벨상은 내꺼얏~)

Quote:
이 순간 뉴우튼이나 아인시타인 같은 카리스마가 소위 가설이란 구름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논리적 필연성이 애매모호하면 할 수록 여기에는 역사적인 천재가 요구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역사적 천재나 어떤 카리스마가 요구된다기 보다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일어나게 된다고 해야 겠죠. 양자론이 개발되는 과정만 보아도 수많은 학자군이 등장합니다. 이론 검증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실험이 행해지고, 동시에 그 함의에 대해 엄청난 토론이 벌어집니다. 시대가 같이 움직입니다.

Quote:
제대로된 이론의 경우 과거에 행해진 모든 실험값과 일치할뿐만 아니라, 아직 행해지지 않은 미래의 실험(값)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얘기하셨습니다. 실험값을 잘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 좋은 이론입니다.

Quote:
님의 글에서 엿보이는 냉소를 미소로 바꾸시는게 어떨지요

냉소라니요? 경험 과학의 경우 어떤 이론에 권위를 부여할 근거가 실험값 말고 또 있나요?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죠. 부러운 일이기도 하고요...

gtsgts의 이미지

무엇이 나를 성공한 철학자로 되게 하였는가를 알아보려고 하니, 나는 매우 당황하게 된다. 훌륭한 감각과 지성을 갖추면서 근면과 인내가 뒤따르기 때문인가? 적당한 자신감이나 열성이 필요조건이 아닌지? 지식을 순수하게 얻는 것과, 마음의 만족이 지식을 얻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기쁨보다는 결과로서 생기는 명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이 아닌지? 나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과학자로 성공을 하고 명성을 얻을 수 있겠건만, 그들이 항상 명성과 세상사람들의 칭찬이라는 보수를 기대하였다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한 사람은 마음 속에 질투와 서운함의 그림자가 항상 들어서게 되는 법이니, 그러한 감정을 품고 있으면서 과학의 발견을 이룩하는 사람이란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위대한 천재성과 그 능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몇 번이고 이 연구소에서 천재를 찾아 보았으나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에 적합한 정신 활동에 건전하게 헌신한다면 성공적인 위대한 실험 철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을 보아왔다.

<FROM FALLING BODIES TO RADIO WAVES> 1984 by Emilio Segre
<고전물리학의 창시자들을 찾아서> 에밀리오 세그레 지음, 노봉환 옮김

-읽고 있는 책인데 도움이 될 것 같군요-

가는길

호아의 이미지

thedee wrote:
글도 많지만... 토론이 계속 되고 있다는 거 자체가 놀랍네요.

(기대하지 않았던) 님의 답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Quote:
Quote:
제대로된 이론의 경우 과거에 행해진 모든 실험값과 일치할뿐만 아니라, 아직 행해지지 않은 미래의 실험(값)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얘기하셨습니다. 실험값을 잘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 좋은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실험값 10을 설명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다양한 (수리물리학적) 이론이 존재합니다.
(A) 10 = 4 + 5 + 1
(B) 10 = 4 * 5 / 2
(C) 10 = 5 ^ 4 / 625
(D) 10 = y(4, 5, x)

여기서 두 숫자 4와 5는 기존에 알려져 있는 광속 등과 같은 물리적 상수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두 상수가 물리법칙을 나타내는 어떤 연산에 관계되어 있군요. (아마 가설이겠지요)
그리고 가설을 이용하여 실험값을 설명하기 위한 '논리'라는 이름의 조미료(?)가 첨가되어있습니다.

실소를 금치못할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적(electro-magnetic) 용어를 이용하여 역학적(mechanical) 현상을 이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용적으로 아무 하자없습니다)

따라서 말씀드렸다시피, 미래에나 행해질 (현존하지 않는) 실험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실험값을 예측하는 이론인가? 하는 것이 의미를 갖게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기준도 있기는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론자체의 아름다움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캄의 칼날)

실험값을 잘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 물론 좋은 이론일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이론이 (당연히) 실험값을 잘 예측한다고 뒤집어 말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말이 그말 같을 수도 있겠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아하..하고 무릅이라도 치시길 (차마) 바랍니다.

thedee의 이미지

솔직히 님의 말씀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Quote:
실험값을 잘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 물론 좋은 이론일 수 있습니다만..
이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이론이 (당연히) 실험값을 잘 예측한다고 뒤집어 말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의 인용이 무슨 뜻이죠? 님의 글 전부 다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특히 위의 인용글은 저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생각됨에도 그 의미를 알 수 없기에 각별히 질문 드리는 것입니다.

실험값을 잘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이 "좋은 이론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좋은 이론을 선별하는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론이 얼마나 우아하느냐, 포괄적인 응응력을 갖느냐 하는 것 등등은 부차적일 것입니다.
예컨대 양자 역학과 뉴턴 역학 중 어느 것이 우수한 이론일까요? 양자 역학이라고들 하겠지요? 왜 그렇게들 생각할까요? 양자 역학이 새로운 세계관을 함의하고 있어서? 그 체계가 아름다워서? 아니죠. 양자역학은 뉴턴 역학으로는 도전 불가능한 수준의 정밀한 실험값을 설명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리고 제가 실험값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좋은 이론이라고 얘기한 까닭은 모든 과학 이론이란 가설일 뿐임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각 실험은 그 이론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2000년 짜리 이론이든 아인쉬타인이 주창한 이론이든 모든 물리학 이론은 실험, 현실, 현상이라는 절대신을 통해서만 이론으로서의 존립 근거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모든 이론은 실험 앞에 평등하다~
그리고 모든 과학 이론이 가설이라는 얘기가 과학의 학적 토대가 미약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얘기하는 거죠.
(과학이 가설적 학문이라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시나요?)

호아의 이미지

과거에는 흔히 (오감에 포착된)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갖가지) 이론들이 고안되곤 했습니다.
따라서 이론의 생명은 주어진 실험(값)을 설명가능한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서는 이론에 의하여 거꾸로 실험(값)이 생명을 부여받고 있다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론에 따라 제안된 (오감과 동떨어진) 현상을 확인한다는 것은 더이상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Quote:
아인쉬타인이 주창한 이론이든 모든 물리학 이론은 실험, 현실, 현상이라는 절대신을 통해서만 이론으로서의 존립 근거를 갖는다는 말입니다. 모든 이론은 실험 앞에 평등하다~

어떤 시계수리 기술자가 알맞은 연장이 없어 기묘하게 생긴 시계내부를 확인하지 못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펼친다는 (아인시타인?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이론에 따라서는 시계내부가 '아날로그'이거나 '디지탈' 혹은 '기타등등'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에 의한 실험(값)의 정밀한 해석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아인시타인이 양자역학을 끝내 거부(?)한 것은 바로 이같은 입장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유명한 말이죠)
아인시타인은 과학이 가설적 학문이라는 사실에 (아마도)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thedee의 이미지

Quote:
아인시타인은 과학이 가설적 학문이라는 사실에 (아마도)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이론 물리학자들은 과학이 가설적 학문이라는 사실에 불편해 할 것입니다. 아인쉬타인도 예외는 아니죠.
마찬가지로 실험 물리학자들은 이론 물리학자들을 껄끄러워 할 것입니다. 이론 학자들이 걸핏하면 실험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딴지를 걸기 때문이겠죠. - 어디서 읽은 이야기이지만, 이론 물리학자의 전형이라 칭해지는 파울리가 실험실 근처에만 나타나면 측정값들이 엉망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실험 조수 하나를 실험실 입구에다 망을 세웠다는 전설같은 얘기도 있죠.

누구의 말이든가...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문의 본질은 자유라고요.
그 자유는 상상력의 자유입니다.
자연과학이든, 인문학이든 그 본질은 자유이며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이란 종은 그 상상력을 대화와 관심, 접근, 개방을 통해 얻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따위" 토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대가 얼마나 부자유스러운 시대인가, 상상력 부재의 시대인가를 고백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oops:
자유로운 상상력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학문 간의 대화이지, 어느 것이 더 우월하느냐는 따위의, 마치 마징가가 세느냐 짱가가 세느냐와 같은 말싸움이 아닐 것입니다. :oops:

역사학자들의 논문에서 수학 방정식을 기대하지 마십시요. Y = X^2 같은 아름다운 그래프가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요.
진정한 여행자라면 이탈리아에 가서 한국에서 볼 수 있던 것을 볼 수 없다고 짜증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간 이유는 그 곳이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다시 돌아오십시요, 한국으로. 그러면 한국은 이미 새로와져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인문학을 한다고 뻐기시는 고귀한 분들에게도 똑같이, 아니 더 가혹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자유의 부재는 학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hexagon의 이미지

본문... 안읽었습니다.
댓글 읽다 말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학문의 우월성. 논의 가능하긴하지만,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정신적, 감성적 기준으로 논의 한다면, 과학은 아직 정신문명에 기여하기는 커녕 과학의 방법으로는 정신문명을 이해 조차 못하는 부분이 산더미 같죠...

물질적, 이성적 기준으로는 정신문명이나 인문학은 아직 이론적 체계가 잡혀 가고있는 분야라고봅니다.

궁극적으로는 정신문명과 인문학도 완숙한 단계에 이르게되면 과학과 마찬가지의 체계를 갖추고, 명료함을 갖게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사실 현대 과학도 명료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 않나요? 끈이론도 불명확하고, 힉스입자에대해서도 불명확하고...

근데 왜 유독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논하는 철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까여야되는거죠?

제 생각에 인류 문명히 무한히 발전한다고 가정하면 언젠간 모든 분야가 과학이란 이름을 달게 될거 같습니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이란 단어들이 생긴거 처럼 철학도 뭔가 과학이란 이름을 달게되지 않을까요?

vamf12의 이미지

댓글과 본문을 정독 하진 않았습니다.

클래맨트 코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http://www.google.co.kr/search?hl=ko&newwindow=1&client=firefox-a&rls=org.mozilla%3Ako%3Aofficial&hs=uJ8&q=%ED%81%B4%EB%A0%88%EB%A9%98%ED%8A%B8+%EC%BD%94%EC%8A%A4+%EC%A7%80%EC%8B%9D%EC%B1%84%EB%84%90&btnG=%EA%B2%80%EC%83%89&lr=&aq=f&oq=
과학이 인문학 보다 우월하다고 과학도가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_-

fender의 이미지

과학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라면 인문학(Humanities)은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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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그놈 한국 사용자 모임 - 그놈에 대한 모든 것! - 게시판, IRC, 위키, 갤러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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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pig1995의 이미지

멋지군요! (뭔가 살짝 중의적인 삘도 나고...)

Real programmers /* don't */ comment their code.
If it was hard to write, it should be /* hard to */ read.

yuni의 이미지

인문학이던 과학이던, 박사학위는 철학박사 학위가 나오지 않나요?

한국의 학위는 공학박사 이런지 모르지만 어쨌던 영어로는 다 철학박사이니, 여기에 심호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학문에 우열이 어디 있을까요?

==========================
부양가족은 많은데, 시절은 왜 이리 꿀꿀할까요?
=====================
"지금하는 일을 꼭 완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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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가족은 많은데, 시절은 왜 이리 꿀꿀할까요?
=====================
"지금하는 일을 꼭 완수하자."

남십자성의 이미지

수학 자연 과학 전산학이 제일 우월하며, 사회 과학이 그 다음이며, 예술과 문학은 제일 밑입니다.

JuEUS-U의 이미지

2시간에 걸쳐서 이 글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한심한가 쭉 써봤는데,
이 글에 반박을 단 제가 다 부끄러워지더랍니다.
그래서 중요한 부분만 남기고 다 지웠습니다.

보통 앨런 소칼의 테러 애피소드에서 끽 넘어가는 모양인데,
엘런 소칼이 비판한건 "모자란 인문학"이 아니라 "부패한 포스트 모더니즘"입니다.
대륙의 철학자들이란건 미국의 철학자들을 의미하는거고
"누가 썼느냐"와 "얼마나 그럴싸한가"로 논문을 평가하던 세태를 비판한겁니다.
것도 철학 한정으로 말이죠.
1996년 그 사건 이후로 철학은 재성찰의 시간을 가졌고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 같은게 생겨나고 이래저래 바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논문이 유명한 잡지에 실린건
논문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그 잡지가 논문을 전문적으로 검토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논문 자체도 읽기가 난해해서 정리좀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는데 거절했다더군요.
여기서 편집자는 그냥 어떤 과학자가 소통(?!)을 원하는구나 해서 그냥 게재해버린겁니다.

그리고 2006년에 물리학자들이 사회과학 논문과 물리학 논문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한 과학자들이 있더랍니다 = _=)....
그만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거죠.

결국 앨런 소칼 사건은 그저 재미난 해프닝에 불과하고
과학의 우월성을 증명하는데에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예시입니다.

그저 글을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만들 뿐입니다.
솔직히 이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반박할 가치도 없습니다...

DebPolaris의 이미지

생각해볼만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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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가르쳐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고쳐가는 사람을 '해커'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노하우를 거리낌없이 나눌 줄 아는 사람을 '진정한' 해커라고 한다.
-Rob Flickenger 'Linux server hacks'
http://he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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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가르쳐주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고쳐가는 사람을 '해커'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노하우를 거리낌없이 나눌 줄 아는 사람을 '진정한' 해커라고 한다.
-Rob Flickenger 'Linux server hacks'

DEBIAN TESTING, KDE...
debpolaris.blogspot.kr

laerad84의 이미지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 답글이 달리는걸 보면 이 화제는 최고의 떡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방금 미끼를 물었고요... 저는 이학도 입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인문학과 이공학의 차는 없다고 생각되네요. 각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나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이학은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세상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하여 인문학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어떤 원리로 존재해왔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탐구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fender님의 의견과 같은 의견일까요?

제가 인문학에 바라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좀더 사회의 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하고,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도올이란 분이 어떤사람이고 무었을 바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동양의 고전과 철학을 사회에 퍼트려 사람들의 사고에 풍부함을 부여한 것은 인문학자로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인문학자분들이 우리나라가 껴안고 있는 문제들(인구감소, 정치불신(정치인들의 의식부재), 도덕의 부재(개인의 경험과 판단에 치중함), 사회격차, 새로운 기술의 사회에의 영향)에 대하여 그 원인의 해석과 해결방안의 제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brianjungu의 이미지

공대나와서 인문학쪽 일을 하고 있는데
엘런 소칼 책 한권 읽으시고 대단히 깊은 감명을 받으신 모양이네요. 저런 시간낭비를 다 하시고.
현대철학이 과도하게 난해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장난같은 면도 있지만
세상 모든 학문과 예술에는 장난기와 황당함, 그리고 진지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과학이 인문학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해서 대체 뭘 하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되네요.

neocoin의 이미지

2번 후반 종교인과 과학자들의 관계와 이야기에 대해서는 좀 생각할 꺼리를 던저 주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