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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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매너.

제목을 책 읽기의 매너라고 했지만 좀더 정확히는 "공부를 목적으로 책 읽을 때의 매너"라고 하고 싶다. 왜 그렇냐면 나는 책 읽는 것을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나눠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유희를 위한 책 읽기고 두 번째는 공부를 위한 책 읽기다.

유희를 위한 책 읽기는 소설, 시, 수필, 경전 등 지식의 습득보다 정신적 만족 혹은 영혼의 평안을 목적으로 하는 책 읽기를 통칭하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구분이다. 그리고 공부를 위한 책 읽기는 전공, 직업, 학술 등 자기 계발 및 학문적인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책 읽기를 통칭하겠다. 이 두 가지 책 읽기 중 공부를 위한 책 읽기에는 책을 읽는데 있어서 자세 혹은 매너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에서 그것에 대해서 아주 기본적인 것을 말할 것이다.

나는 전공과 직업의 특성상 아주 허접하고 어줍잖은 영어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된 원서를 많이 읽었고 읽고 있고 읽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 원서는 거의 99.9%가 공부를 위한 책 읽기다. (공부가 목적이 아닌 이상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은 정신이나 영혼이 피폐해 질 뿐 전혀 유희에 도움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 원서 독서량의 약 세 배에서 네 배 이상의 한국어 책을 공부를 목적으로 읽는다. 나는 기술자고 내가 공부를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은 대부분 기술을 습득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앞으로 공부를 목적으로 읽는 책은 기술 서적을 읽는다고 표현하겠다.

기술 서적은 원서 말고도 번역서로도 많이 읽는다. 그리고 이 번역서의 절대 다수도 영어로 된 책이 번역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읽는 기술 서적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영미권 책과 한국인 저자가 쓴 책. 번역서 역시 영미권 서적을 번역한 책이 많기 때문에 영미권 책으로 분류하겠다. 한국인 저자가 쓴 책은 한국 기술 서적이라고 칭하겠다. 영미권 기술 서적과 한국 기술 서적을 읽다 보면 두 종류간에 어떤 경향이 보인다.

나 말고도 위에서 언급한 영미권 서적으로 공부를 하는 많은 엔지니어들은 영미권 기술 서적과 한국 기술 서적 차이에서 다들 표현이 다르고 느낀것이 다르겠지만 나와 같은 경향을 발견했거나 아니면 어렴풋이 나마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경향의 차이를 단적으로 불친절함과 친절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영미권 기술 서적은 불친절하다. 한국 기술 서적은 과도하게 친절하다. 이게 무슨 말인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리눅스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설명한 두 권의 책이 있다. 한 권은 미국 오라일리사에서 출판한 "Linux Device Drivers" 일명 '말책'이다. 또 다른 한 권은 한국 한빛 미디어사에서 출판한 "리눅스 디바이스 드라이버"다. 두 책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고 사실상 같은 제목이다. 하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의 범위는 "Linux Device Drivers"가 훨씬 넓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책의 두께는 "리눅스 디바이스 드라이버"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두껍다.

"Linux Device Drivers"는 어떤 용어나 개념을 설명할 때 간단히 한 번만 설명하거나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 용어가 궁금한 독자는 직접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다른 자료를 찾아야 한다. "리눅스 디바이스 드라이버"는 어떤 용어가 나오면 반복적이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 소스 코드의 삽입 방식도 차이가 있다. "Linux Device Drivers"에는 인용한 소스코드가 전체가 실려있지 않다. 모두 조각 코드로 되어 있다. 독자들은 책만 보면서 코드를 따라가면 소스코드를 완성할 수 없다. 책에서 지시하는 사이트에서 소스코드를 받아서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놓고 책과 소스코드를 보며 이해해야 한다. "리눅스 디바이스 드라이버"는 모든 소스코드 전문이 반복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사실 이것때문에 책의 두께가 많이 두꺼워 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표적으로 두 권의 영미권 기술 서적과 한국 기술 서적의 차이를 비교했다. 많은 반론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두 종류 기술 서적의 경향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빌려온 내 독후감이니 제발 태클은 걸지 말아주기 바란다. 아무튼 위 단락에서 봤을 때 영미권 기술 서적은 분명 한국 기술 서적보다 불친절하다. 소스코드도 다 안나와서 책만 봐서는 제대로 실습을 하거나 이해 할 수 없다. 독자가 귀찮다. 한국 기술 서적은 정말 다른것 없이 책 한권만 봐서 안의 내용을 다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두 권역의 독자들의 성향차이 때문일 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더 친절한 설명을 요구한다. 어느 정도 팔렸던 번역서를 번역한 모 역자의 말을 들어보면 원서에 없는 부가적인 설명을 추가하는 작업이 책 번역 작업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즉, 불친절한 기술 서적이 한국어로 바뀌면서 친절해 지는 것이다. 한국의 기술 서적을 읽는 사람들이 영미권의 사람들 보다 수준이 낮기 때문에 친절한 책을 원하는 것일까? 분명 아니다. 이는 공부를 위한 책읽기에 대하는 독자들의 자세나 매너의 문제라고 본다.

기술 서적이라는 것은 그 주제가 어떤 것이든 책 한 권 만으로 그 책이 다루는 주제의 모든 관련 지식을 다 전달할 수 없다. 현대 과학 기술은 전 분야가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 권에 다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은 여가 선용이나 정신적 평안을 위해서 기술 서적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스스로 공부를 다짐하고 그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공부는 스스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은 공부를 위한 안내자일뿐 책은 선생님이 아니다. 책에는 질문이나 의문에 대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나 의문을 풀기위한 안내 혹은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책의 서술은 그 안내나 방법을 위한 최소한의 정보만 있으면 된다. 책의 서술이 이해가 안가거나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면 책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그것을 찾아서 공부해야 한다. 책에 그것에 대한 내용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저자를 욕하면 안될것이다. 저자는 신이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이 정도 일것이다하고 예측해서 어느정도의 정보를 제공해 줄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켜 줄 순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영미권 기술 서적의 서술 방식을 선호한다. 어떤 주제에 대한 책을 쓴다면 그 주제에 대한 내용만 서술한다. 곁다리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다른 책을 읽든 인터넷 검색을 하든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든 그것은 독자가 할 일이지 저자가 해줄 일이 아니다. 다만 독자가 정말 귀찮아 할것 같은 것은 저자가 해준다. 주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곧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것 저것 곁다리 지식 혹은 한 번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용어 설명등으로 이런 저런 간선도로를 만들다 보면 결국 고속도로 조차도 곧게 뻗어가지 못하고 삐뚤 뻬뚤해 져서 책은 주제를 잃고 방황하게 된다.

공부를 다짐하고 책을 샀다면 그 책의 서술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술 서적을 읽는 사람들은 오로지 책만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구글(혹은 네이버?)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 모르는 용어가 나왔다고, 모르는 서술이 나왔다고 책의 내용이 부실하다고 욕할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모르는 자기 자신을 먼저 탓하라. 저자는 자신의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정도 지식은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세한 설명을 안한 것이다. 본인이 그 내용을 모른다면 본인은 저자가 설정한 독자보다 수준이 낮은 것이다. 수준 낮은 본인의 지식을 일차적으로 탓하고, 그런 다음 검색하라. 검색하면 답이 나온다. 그리고 이해한 다음 다시 책을 읽으라. 그렇게 한다면 조금 전까지 욕했던 책의 내용이 사뭇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권의 책을 다 읽는다면 욕하며 읽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스스로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로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이 매너다. 그것이 내 생각이다.

댓글

나빌레라의 이미지

이 글은 모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제 책이 설명을 많이 안하고 어려우며 윈도우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았다는 악성 서평에 분노해서 쓴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윈도우에서 시그윈도 설치할 줄 모르면, 공부를 해서 설치한 다음 읽던가...-_-;;; 아님 아예 책을 사질 말던가... 왜 애써 책쓴 사람에게 상처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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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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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rasis의 이미지

책을 집필해본 경험자로 말씀드리자면, 책이란 지식을 전달해주는 도구 이전에 하나의 상품입니다.

저또한 독자들이 일정 수준이상의 지식과 매너(?)가 있어 주변 설명 없이 주제만 명확하게 기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출판사의 요구로 인해 기초 수준의 내용을 많이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은 상품이기 때문에 구입하는 독자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IT 서적의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는 것을 잘 아실것입니다. IT 기술 서적중에 초판인쇄도 다 팔지 못하고 손해가 난 책이 수두룩 합니다.

우리나라 IT 기술 서적은 독자층이 얇기 때문에, 출판사는 쓸데없이 책 내용을 늘려가면서라도 초급-중급-고급에 이르는 모든 독자층을 커버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외국은 아무래도 독자층이 넓고 전세계를 상대로 책을 판매하기 때문에 초급, 중급, 고급 수준에 딱 맞추어 책을 출판해도 무리가 없지 않나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악성 서평에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인터넷에 공개된 문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하게 마련인데, 돈주고 산책인데 오죽 하겠습니까... 독자들이 요구한 내용을 다음판에 반영하고 고쳐나간다면 더욱 질좋고 완성도 높은 책이 될것입니다.

brianjungu의 이미지

한국독자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주석을 요구합니다.
특히 IT번역서적에 대해서는 그런 주석이 많고 상세할 수록
더 양질의 번역이라는 생각이 존재하지요.

매너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그건 나빌레라님 개인의 성향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번역서에 주석달아주는것에 찬성입니다.
기사번역을 몇번 해본적이 있는데, 항상 주석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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