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부재

나빌레라의 이미지

꽤 오래전에 내 블로그에 동기에 관한 글을 올린적이 있다. 이 때와 지금이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동기 부재에 시달리고 있었던듯 하다.

글을 쓴지 거의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나는 약한 의지 덕에 외부에서 역치 이상의 동기 부여를 받지 않는한 어떤일을 스스로 의지로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질질 끌면서 예정일을 훨씬 넘겨 마무리 짓거나 아니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외부에서 부여되는 동기중 가장 효과가 좋은것은 무엇일까? 경우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범주를 줄여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확실한 효과를 주는 외부 동기 부여 기재는 무엇일까?

단언컨데 '돈'이다. 돈만큼 확실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주는 동기 부여 수단은 찾기 힘들다. 프로젝트가 예정된 날짜를 아주 많이 넘기거나(어느 정도 넘기는 경우는 꽤 많다.) 중간에 프로젝트가 엎어져 버린다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돈을 받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돈을 물어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면에서 생계와 직결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래서 돈은 확실한 동기 부여 수단이 될 수 있다.

돈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효과를 보는 것은 무엇일까? 불특정 다수 사람들과의 약속이라고 본다. 돈 역시 어떤 의미에서 돈을 주는 사람과의 약속이지만 그것 보다는 프로젝트가 끝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과의 약속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수 사람들과의 약속은 개인에게 은연중에 책임감을 만들어준다. 사회화 과정에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신을 뽐내고 싶어한다.(물론 겸손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무슨 프로그램을 언제까지 만들겠다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공언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와중에 나는 그것을 못만들겠다라고 말해 버리면 그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일 뿐 아니라 스스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사람들과 해 버린것이고 결국 스스로 가치를 깍아내린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두렵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 사람들과의 약속 역시 훌륭한 동기 부여 수단이 될 수 있다.

그외 특정 다수 사람들과의 약속도 동기 부여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기 부여의 효율성이나 동기가 주는 강제성은 앞서 두 경우보다 약하다. 특정 다수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여차하면 그들과의 타협으로 동기의 강제성이 소멸되거나 약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어떤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팀으로 작업하는 것이라면 세 번째 특정다수 사람들과의 약속 정도의 동기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 혼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것도 없다. 당연히 누구한테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기에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 수단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누구에게 공표하고 하는 일도 아니기에 두 번째 경우의 동기 부여 수단도 만들어 낼 수 없다. 한 마디로 동기 부재 속에서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예전 처럼 완성에 목적을 두고 완성을 위해 혼자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요즘은 스스로 잘 나오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는 만큼 내안의 열정이 식은 것인지 의지가 약해진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한것은 하고 싶으면서 하기 싫은 상태라는 것이다.

vim을 띄워놓고 끄지 않은채 거의 일주일 가까이 지났다. 매번 컴퓨터를 쓸 때마다 한 줄이라도 코딩해야지 하면서 vim에 커서까지 옮겨 놓지만 막상 키보드 위에 손가락이 올라가면 단 한 글자도 코딩하지 않고 생각만 하다가 결국 다른 소모적인 일들(미드 보기, 게시판질, irc질, TV프로 다운 받아보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한켠에서는 프로젝트해야 하는데...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뭔가 동기 부여가 필요한 시점이긴하다. 과연 무엇이 동기가 될 수 있을까.

댓글

tomahawk28의 이미지

아 ㅠㅠ
저는 이런 글이 동기부여가 됩니다..
자아비판을 하게 되는군요....(?)


Do you hear the people sing?

rainbird의 이미지

저의 현 상황과 너무나 일치하는 글입니다. 혼자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블로그등에 일정을 공개하고 거기에 맞춰서 진행하려는 노력이라도 오늘부터 해봐야겠습니다. 블로그등을 이용하면 어느정도는 강제성 부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느새 귀가하면 소모적인 일들(미드질, 게임방송 보기 등) 만 하다가 잠든지 꽤 되었습니다.

이런글 너무 동감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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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ion의 이미지

묘하게 혼자 있고 별다른 바쁜일이 없을때는 손이 안가다가
바쁘고 정신이 없을때 일이 생각나면서 짜투리 시간을 쪼개게 되는거같네요....

걍 저는 제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ㅎㅎㅎ

-----새벽녘의 흡혈양파-----

-----새벽녘의 흡혈양파-----

gurugio의 이미지


저는 예전에는 열줄짜리 main 함수 하나 만드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코딩하는 것이
부담 비슷하게 느껴지는걸 느꼈습니다.
(선배님들은 웃으시겠지만..)이러다가 코딩에 지치고 싫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래서 잘 안될때는 그냥 맘을 편하게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회사에서 치이고
집에서도 이상하게 여러가지 일진이 않좋아서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계속 이상한 사건들이 터지지만
안될때는 가만히 있으려구요.

취미가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만 하라고
누가 말하던데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먹고살기도 하면 좋겠습니다.

----
섬기며 사랑하면 더 행복해집니다.
개인 홈페이지가 생겼습니다 http://caoskernel.org
어셈러브를 개편중입니다 http://www.asmlove.co.kr

jachin의 이미지

우리나라 모든 프로그래머가 모두 느끼고 있는 심리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프로그래머들이 자주 먹게 되는, 라면, 빵, 햄버거 등에 뭔가 모를 첨가물이 들어 있어서 그럴지도...

저흰 이미 멜라민의 피해자가 아닐까요?
====
( - -)a 이제는 학생으로 가장한 백수가 아닌 진짜 백수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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