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닉스라는 운영 체제가 1969년에 AT&T의 켄톰슨 에 의해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AT&T의 데니스리치가 C언어를 개발하면서 C언어로 이루어진 유닉스를 등장 시킵니다.
AT&T는 당시 미국의 공기업으로 (한국 통신과 같은 경로)정부와의 계약에 따라 유닉스를 상용화 하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미국 정부가 대학에 유닉스를 거의 무료로 소스까지 보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1977년 미국과 유럽의 125개 대학 500여 곳에서 유닉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렇다가 1981년에 반독점 규제라는 이유로 로널드레이건 정권에 의해 AT&T가 민영화 됩니다.
AT&T는 1983년에 시스템3를 발표 하고 이것을 상용화 합니다. 당시 라이센스의 가격은 400달러 였습니다. 이러다가 1984년에 시스템 3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가격은 800달러로 상승합니다.
만약 4인 연구소에서 유닉스를 사용하려면 OS 비용만 3천200달러가 필요했고 내부 필수유틸 각각이 모두 유료였습니다. 이것이 AT&T의 민영화 결과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맥이니 애플이니 개인용 컴퓨터는 사양이 된다고 해도 유닉스를 채용할 수 없었습니다. 가격 조건이 불가능 한 것입니다. 뭐 생각도 안 했겠지만 IBM은 애플을 모방한 조잡한 PC의 운영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에 의뢰하고 그 결과가 DOS입니다.
IBM이 시도한 것은 당시 개인 컴퓨터를 지배하던 애플과 같은 OS를 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 애플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GUI라는 개념을 가진 컴퓨터 맥킨토시를 출시합니다. 이를 통해서 전자출판 시대가 개막을 한 것이죠... 어찌 되었건 IBM은 IBM PC에서 돌아가는 맥킨토시를 마이크로 소프트에 의뢰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MS윈도우 OS입니다. IBM의 오픈 아키텍쳐에 의한 컴퓨터의 대중화 관련 자료를 찾아 보세요... 뭐 어찌 되었든 이 당시 리눅스의 등장은 유닉스 계열의 프로그래머들(이 사람들에게는 애플이나 윈도우가 장난감으로 밖에는 안보였을 겁니다.)의 공동체인 GNU프로젝트로부터 파생된 것인데.. 유닉스가 유료화 독점화 되면서(그 전에도 독점이기는 했지만 독점권을 사용하지 않았었습니다. 공기업으로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이 유닉스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1984년에 유닉스와 관련 유틸들의 가격이 2배 이상 상승하는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MIT에 근무하던 리처드 스톨만 이라는 사람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뭐 관련 자료를 찾아 보세요 유명한 사람입니다.) 자유 유닉스 구현을 시작합니다. 1985년 리쳐드 스톨만에 의해서 FSF(자유 소프트웨어 재단)가 창립됩니다. (아직 리눅스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여러 소프트웨어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리눅스의 역사는 1987년 네덜란드의 대학교수 앤드류 타넨바움이 유닉스를 모방한 미닉스라는 소프트웨어를 대학 교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당시의 유닉스의 가격은 <당시 수퍼 컴퓨터를 위한 대단히 정교한 시스템> 대학에서 간단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발을 합니다. 이것은 소스가 공개된 운영체체 설계 수업 용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당시의 테넌바움의 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는 수업 과제와 개인적 연구을 위해서 미닉스를 가주고 놀다가 1991년에 유즈냇 뉴스그룹에 개시글을 올립니다.
어떤 글이었는지 올려 줄께요.
(미닉스 1.1의 좋은 시절을 갈망하십니까? 사람이 사람 답고 스스로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작성하던 시절 말입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없고 당신의 필요에 따라 수정해볼 수 있는 OS를 만나고 싶어 못 견디겠습니까? 모든 것이 미닉스에서 동작한 때 좌절스럽습니까? 쓸 만한 프로그램을 동작하게 하기 위해 밤을 새울 일이 더 이상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 글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한 달 전에 말했듯이, 나는 미닉스와 유사한 AT-386 컴퓨터용 자유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침내 사용할 수 있는(당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단계에까지 이르렀고, 소스를 기꺼이 널리 배포하고자 합니다. 버전0.02일 뿐이지만..., 여기서 bash, gcc, gnu-make, gnu-sed, compress등을 성공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초기에 리눅스는 gnu프로젝트와 관계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라이센스도 GNU GPL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보시면 아시겠지만 FSF에서 개발된 컴파일러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었고(학생이 무슨 돈이 있나요?) FSF에서 개발된 터미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개발 환경 자체가 GNU환경 이었고 이것은 테넌바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되었건 토발즈의 이 자원 요청은 상당히 큰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당시 FSF는 허드 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완성되지 않았었고 아직도 개발중 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FSF가 리눅스와 함께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994년 3월에 공동체에 의해 버전1.0이 발표가 됩니다.
리눅스는 그 API가 파직스 표준을 준수합니다. 이것은 유닉스 표준 API 규약입니다.
리처드 스톨만에 의해서 제안된것입니다.
여기 까지가 리눅스입니다.
여기까지는
리눅스는 대부분 수퍼컴퓨터에서 사용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유닉스와 관계가 되는 것으로서
애플과, MS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애플과 MS에 관계 되는 부분은 리눅스 배포판으로서 리눅스 초창기에는 사용자가 커널을 깔고 이 위에 모든 소프트웨어를 결합하고 파일 시스템을 만들고 모든 소프트웨어를 파일 시스템의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설정하고 해야 했습니다. 왜냐구요? ms와 애플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애플과 ms같이 사용자를 위한 모든 소프트웨어가 함깨 들어 있는 사용자를 위한 통합 시스탬 즉 리눅스 배포판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영국의 맨체스터 컴퓨팅 센터 에서 1992년에 등장합니다.
배포판 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리눅스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리눅스는 커널 만을 이야기 하고
수많은 소프트웨어는 FSF에서 나오고
이것을 결합하여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배포판으로서
이것은 배포판 회사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배포판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면
최초의 배포판은 1992년 맨체스터 컴퓨팅 센터의 MCC Interim Linux
아직 살아 있는 배포판 1993년 슬렉웨어
비슷한 시기에 데비안
그리고 이후에 수세, 레드햇이 등장했고
2004년 우분투가 등장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리눅스 대충이라도 알고 있으면
리눅스가 윈도우와 맥을 베낀 것이다.
이런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초보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안녕하세요. 저도 초보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RET ;My life :P
반갑습니다 저는 리눅스 초고수입니다
근데 리눅스는 다 윈도우즈랑 맥 오에스 베낀 거 아닌가요? 심지어 온라인 뱅킹도 안된다면서요?
(....게시판 글 리젠이 안되신다길래... 후다다다다다다다닥...)
리눅스는 윈도우를 베낀것이 이닙니다.
유닉스라는 운영 체제가 1969년에 AT&T의 켄톰슨 에 의해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 AT&T의 데니스리치가 C언어를 개발하면서 C언어로 이루어진 유닉스를 등장 시킵니다.
AT&T는 당시 미국의 공기업으로 (한국 통신과 같은 경로)정부와의 계약에 따라 유닉스를 상용화 하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미국 정부가 대학에 유닉스를 거의 무료로 소스까지 보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1977년 미국과 유럽의 125개 대학 500여 곳에서 유닉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렇다가 1981년에 반독점 규제라는 이유로 로널드레이건 정권에 의해 AT&T가 민영화 됩니다.
AT&T는 1983년에 시스템3를 발표 하고 이것을 상용화 합니다. 당시 라이센스의 가격은 400달러 였습니다. 이러다가 1984년에 시스템 3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면서 가격은 800달러로 상승합니다.
만약 4인 연구소에서 유닉스를 사용하려면 OS 비용만 3천200달러가 필요했고 내부 필수유틸 각각이 모두 유료였습니다. 이것이 AT&T의 민영화 결과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맥이니 애플이니 개인용 컴퓨터는 사양이 된다고 해도 유닉스를 채용할 수 없었습니다. 가격 조건이 불가능 한 것입니다. 뭐 생각도 안 했겠지만 IBM은 애플을 모방한 조잡한 PC의 운영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에 의뢰하고 그 결과가 DOS입니다.
IBM이 시도한 것은 당시 개인 컴퓨터를 지배하던 애플과 같은 OS를 추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 애플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하는 GUI라는 개념을 가진 컴퓨터 맥킨토시를 출시합니다. 이를 통해서 전자출판 시대가 개막을 한 것이죠... 어찌 되었건 IBM은 IBM PC에서 돌아가는 맥킨토시를 마이크로 소프트에 의뢰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MS윈도우 OS입니다. IBM의 오픈 아키텍쳐에 의한 컴퓨터의 대중화 관련 자료를 찾아 보세요... 뭐 어찌 되었든 이 당시 리눅스의 등장은 유닉스 계열의 프로그래머들(이 사람들에게는 애플이나 윈도우가 장난감으로 밖에는 안보였을 겁니다.)의 공동체인 GNU프로젝트로부터 파생된 것인데.. 유닉스가 유료화 독점화 되면서(그 전에도 독점이기는 했지만 독점권을 사용하지 않았었습니다. 공기업으로서)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이 유닉스를 사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습니다. 1984년에 유닉스와 관련 유틸들의 가격이 2배 이상 상승하는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당시 MIT에 근무하던 리처드 스톨만 이라는 사람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뭐 관련 자료를 찾아 보세요 유명한 사람입니다.) 자유 유닉스 구현을 시작합니다. 1985년 리쳐드 스톨만에 의해서 FSF(자유 소프트웨어 재단)가 창립됩니다. (아직 리눅스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여러 소프트웨어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리눅스의 역사는 1987년 네덜란드의 대학교수 앤드류 타넨바움이 유닉스를 모방한 미닉스라는 소프트웨어를 대학 교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당시의 유닉스의 가격은 <당시 수퍼 컴퓨터를 위한 대단히 정교한 시스템> 대학에서 간단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발을 합니다. 이것은 소스가 공개된 운영체체 설계 수업 용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당시의 테넌바움의 학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는 수업 과제와 개인적 연구을 위해서 미닉스를 가주고 놀다가 1991년에 유즈냇 뉴스그룹에 개시글을 올립니다.
어떤 글이었는지 올려 줄께요.
(미닉스 1.1의 좋은 시절을 갈망하십니까? 사람이 사람 답고 스스로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작성하던 시절 말입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없고 당신의 필요에 따라 수정해볼 수 있는 OS를 만나고 싶어 못 견디겠습니까? 모든 것이 미닉스에서 동작한 때 좌절스럽습니까? 쓸 만한 프로그램을 동작하게 하기 위해 밤을 새울 일이 더 이상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 글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한 달 전에 말했듯이, 나는 미닉스와 유사한 AT-386 컴퓨터용 자유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침내 사용할 수 있는(당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단계에까지 이르렀고, 소스를 기꺼이 널리 배포하고자 합니다. 버전0.02일 뿐이지만..., 여기서 bash, gcc, gnu-make, gnu-sed, compress등을 성공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초기에 리눅스는 gnu프로젝트와 관계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라이센스도 GNU GPL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보시면 아시겠지만 FSF에서 개발된 컴파일러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었고(학생이 무슨 돈이 있나요?) FSF에서 개발된 터미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개발 환경 자체가 GNU환경 이었고 이것은 테넌바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되었건 토발즈의 이 자원 요청은 상당히 큰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당시 FSF는 허드 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완성되지 않았었고 아직도 개발중 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FSF가 리눅스와 함께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994년 3월에 공동체에 의해 버전1.0이 발표가 됩니다.
리눅스는 그 API가 파직스 표준을 준수합니다. 이것은 유닉스 표준 API 규약입니다.
리처드 스톨만에 의해서 제안된것입니다.
여기 까지가 리눅스입니다.
여기까지는
리눅스는 대부분 수퍼컴퓨터에서 사용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유닉스와 관계가 되는 것으로서
애플과, MS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애플과 MS에 관계 되는 부분은 리눅스 배포판으로서 리눅스 초창기에는 사용자가 커널을 깔고 이 위에 모든 소프트웨어를 결합하고 파일 시스템을 만들고 모든 소프트웨어를 파일 시스템의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설정하고 해야 했습니다. 왜냐구요? ms와 애플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애플과 ms같이 사용자를 위한 모든 소프트웨어가 함깨 들어 있는 사용자를 위한 통합 시스탬 즉 리눅스 배포판이 최초로 등장한 시기는 영국의 맨체스터 컴퓨팅 센터 에서 1992년에 등장합니다.
배포판 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리눅스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리눅스는 커널 만을 이야기 하고
수많은 소프트웨어는 FSF에서 나오고
이것을 결합하여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배포판으로서
이것은 배포판 회사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배포판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면
최초의 배포판은 1992년 맨체스터 컴퓨팅 센터의 MCC Interim Linux
아직 살아 있는 배포판 1993년 슬렉웨어
비슷한 시기에 데비안
그리고 이후에 수세, 레드햇이 등장했고
2004년 우분투가 등장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리눅스 대충이라도 알고 있으면
리눅스가 윈도우와 맥을 베낀 것이다.
이런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연말이고 해서 긴글 한번 적어 봤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다큐로운 댓글 (~ㅡ.ㅡ)~
life is only one time
아이고 ㅎㅎ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고 ㅎㅎ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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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i guru deva om...
ㄷㄷㄷ
개그를 다큐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리눅스의 재미있는 역사를 알게 되서 좋군요
....
안녕하세요 야동꿀님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