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와 고스톱의 마인드 차이

차리서의 이미지

다른 글타래에서 도박을 유흥으로서 안전하게 즐기기 위한 지침에 대해서 쓰다가, 문득 서양식 포커와 동양식 고스톱 사이의 엄청난 마인드 차이에 생각이 미쳐서 따로 글을 씁니다.

자칫 서양 문화에 대한 사대주의로 오해받을지도 모르는 발언이지만, 저는 종종 친구들과 재미삼아 포커를 즐기긴 해도 절대 고스톱에는 손대지 않습니다. 각각 서양과 동양에서 발달된 (그리고 얼핏 비슷해보일지도 모르는) 이들 두 게임에는 두 세계가 가진 기본적인 마인드의 차이가 고스란히 배어있고, 그만큼 서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어쩌면 도박이 취할 수 있는 여러가지 특성 중의 양 극단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죠. (이중에서 저는 포커의 마인드에 공감하고, 고스톱의 마인드와는 완전히 상극입니다.)

포커의 룰, 그 중에서도 ‘베팅’이라고 불리는 제도를 천천이 곱씹어보면 개인주의의 정수가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모든 플레이어에게는 판돈을 걸 때마다 (1)원하는 액수로 상향조정하거나 (2)최종적으로 상향 조정된 액수에 따르거나 (3)승부를 포기하여 피해액을 동결할 수 있는 선택권이 균등하게 주어지고,
  2. 이 선택권은 절대적으로 각 플레이의 고유 권한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일체 참견할 수 없으며,
  3. (기본 규칙에만 의거하는 포커의 경우) 한 판이 끝날 때 최종적으로 각 플레이어가 잃게되는 액수는 정확히 위 1항의 (1)이나 (2)를 선택함으로써 각자 스스로 자기 손으로 내건 액수일 뿐
이라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도박장이나 동네에 따라 세부 규칙이 조금씩 변하긴 하지만 (하프 룰이라든가 레이스 상/하한 규정 등), 전체적인 개인주의의 틀을 해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포커의 세계에 존재하는 제1정의는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은 서로 대등하며, 이를 기반으로 서로를 존중하여 ‘각자’가 바로선 이후에야말로 비로소 ‘우리’가 성립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고스톱의 룰을 보면 그야말로 전체주의의 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스톱의 점수제 일괄 적용 룰을 보면:

  1. 일단 경기를 시작하면 어떤 플레이어에게도 중도에 승부를 포기할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고,
  2. 한 판이 끝날 때 최종적으로 각 플레이어가 잃게되는 액수는 각자의 점수와는 전혀 무관하며, 오로지 승자의 점수에 의해서만 정해진다
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즉, 고스톱의 세계에 존재하는 제1정의는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우리 모두가 다함께 책임지며, 남이 저지른 일도 우리 모두가 다함께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은 각자이기 이전에 먼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이며, ‘우리’를 위해 각자는 희생되어야하기 때문에 개인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포커든 고스톱이든 모두 100% 실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결국 많든 적든 확률과 운의 영향을 받게된다는 점에서 도박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만, 같은 도박이라고 해도 그 기본 마인드가 철저하게 상극인 셈입니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던 차에 지나치듯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 저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입게되는 피해는 아무렇지 않게 감수할 수 있지만, 제 자신의 탓으로 인해 입게되는 피해는 정말로 스스로 용서가 안돼요.” 당시의 이야기 맥락 상 ‘외유내강’을 뜻하는 매우 좋은 의도였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후배는 저와는 완전히 상반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점도 확실히 알게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굳이 대놓고 반대 의견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래?”라는 짧은 댓구로 넘어가버렸지만 말이죠.

제 경우에는, 오히려 제 자신의 탓으로 인해 입게되는 피해야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할 수 있더군요. 어느 누구도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의 탓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길길이 뛴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명히 제게 선택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지 못했을 때 입게되는 피해에 대해서 두고두고 가슴을 치며 원통해한다는게 정확하겠군요.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면, 그 결과가 어떠하든 아무렇지도 않지만 말이죠.

재미있는 점은, 위에서 말한 후배는 저와는 반대로 고스톱은 매우 즐기는 반면 포커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 친구라는 점입니다. 뭔가 ‘빈정이 상한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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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ino의 이미지

고스톱은 그나마 판돈이 점수에 의해서 정해지잖아요.
특별한 경우 아니면 점수가 그리 많이 오르진 않죠.
포커는 한순간에도 리더에 의해서 판돈이 엄청 오르기도 하고,
막판에 따라가던 사람들이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만들죠.
(물론 그게 포커의 재미이기도 하죠)
제가 보기엔 도박성은 포커가 훨 강한듯.
(개인적으론 전 어떤 도박도 즐기진 않습니다)

vio:

samjegal의 이미지

도박이나 게임은 단순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듯 합니다.
판돈이 크던 작던.. 쉬우니까 다 같이 할수 있고
이게 또 중독성이 좀 있거든요 ㅋㅋ


/*
* 한순간에 불과한 인생에서 내가 있었다는 증거를
* 기록해두고 싶기에 사람은 외부기억에 그걸 맡긴다.
*/

bus710의 이미지

차리서 wrote:
얼마 전에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던 차에 지나치듯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 저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입게되는 피해는 아무렇지 않게 감수할 수 있지만, 제 자신의 탓으로 인해 입게되는 피해는 정말로 스스로 용서가 안돼요.” 당시의 이야기 맥락 상 ‘외유내강’을 뜻하는 매우 좋은 의도였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후배는 저와는 완전히 상반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점도 확실히 알게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굳이 대놓고 반대 의견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래?”라는 짧은 댓구로 넘어가버렸지만 말이죠.
:)

잘하셨어요, 그 후배 분께 잘 해 주심이 좋겠습니다. 8)

life is only one time

khris의 이미지

저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이지만 동시에 완벽주의자라서...

타인이 휘두른 칼에도, 스스로가 부린 칼에도 아파하고, 용서하지 않습니다.

타인이 휘둘렀으면... 당연히 내 책임이 아니니까!

내가 휘둘렀다면... 왜 이따위로 행동했던걸까!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체하며 웃고 지냅니다.

왠지 자멸감에 빠지기 쉬운 캐릭터로군요. 8)

굳이 택하라면 포커를 택하겠습니다.

모든것은 저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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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ourt -S gothick elegant
khris'log

ed.netdiver의 이미지

뻥카가 통한다/안통한다는 별 상관이 없을까요? :D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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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 \(´∇`)ノ \(´∇`)ノ \(´∇`)ノ
def ed():neTdiVeR in range(thEeArTh)

warpdory의 이미지

가끔 천원에서 오천원정도 거는 국가대표 축구경기 결과를 빼고는 돈이 걸리는 내기/도박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다만 ... 현재 핸드폰에 있는 강호동 신맞고 ... 는 잔액이 350 억이 넘었습니다. 이거 KTF 로 가면 350 원이라도 주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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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kall의 이미지

핸드폰을 바꾸고 핸드폰으로 고스톱을 치면서 느낀것이..고스톱은 말그대로 '난놈이 왕이다'라는 거죠..고를 부를지 스톱을 부를지 결정하는건 점수가 난 사람이니까요. 제가 볼때는 공동체라기 보다는 전제군주에 가까운 위치 같은데요. :)

점수가 나면 왕이 되고 게임을 지배하게 되죠. 다른 플레이어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한다기 보다는 지배자에게 끌려 다니게 되는거죠.

하지만 한번났다고 무작정 방심할 수 없는것이..역전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죠. 그렇게 되면 아무리 났다고 해도 무작정 고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결국 왕이라해도 백성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lol:

특히 아무런 장점도 없지만 모이면 가장큰 위력을 발휘하는 피를 보면..민중의 힘은 무섭죠. :)

개인적으로는 고스톱을 더 좋아합니다. 치다보면 절대적으로 이길 수 있는 찬스가 한번쯤은 오니까요. 전체적으로 방어로 일관하다 기회가 왔을때 확실히 눌러버리는 맛이 꽤 좋더군요.

끝으로, 화투는 '섰다'라는 포커와 유사한 배팅룰을 가진 게임이 이미 있습니다..그럼 다양성을 가진 동양의 문화가 더 우수한거군요. ;)

ps. 검색해보니..섰다의 기원이 투전이라는군요. 화투가 들어온 뒤로 쇠퇴했다는데..그럼 우리는 이미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일제를 겪으면서 전체주의에 물들게 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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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이길 수 있는자는
무슨짓이든 할수있다..
즉..무서운 넘이란 말이지 ^-_-^
나? 아직 멀었지 ㅠㅠ

kida의 이미지

안녕하세요 유령 키다군 입니다.. ^^;;

Quote:

1. 일단 경기를 시작하면 어떤 플레이어에게도 중도에 승부를 포기할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고,
2. 한 판이 끝날 때 최종적으로 각 플레이어가 잃게되는 액수는 각자의 점수와는 전혀 무관하며, 오로지 승자의 점수에 의해서만 정해진다

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즉, 고스톱의 세계에 존재하는 제1정의는 결국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우리 모두가 다함께 책임지며, 남이 저지른 일도 우리 모두가 다함께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은 각자이기 이전에 먼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이며, ‘우리’를 위해 각자는 희생되어야하기 때문에 개인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양의 또 다른 트럼프 게임 중 하나인 훌라의 경우는 위의 원칙을 대부분 따릅니다.
이런게임들의 장점이라면 같이 오래동안 즐길수 있다는 거겠죠.. (고스톱이나 훌라의 경우에는 한 세트의 시간이 다른 게임보다 상당히 깁니다. )

고스톱이나 훌라와 같은 게임은 이득을 획득한다는 개인의 목적보다는 이득이야 어찌됐건 모인자리에서 같이 어울려 노는것에 더 큰 비중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ps) 피박의 경우는 자기 책입니다 -_-;;;

안경 미소녀가 좋아~!

Berlin의 이미지

아쉽게도 훌라는 국산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포커, 바카라, 블랙잭 다 베팅 위주로 가는 게임이죠...
하지만 브리지나 하트는 베팅 위주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도박성이 떨어진다고들 하더군요.
서양 카지노에선 솔리테어도 도박에 끼워주더군요. ^^;;

뭐 화투로 하는 게임도, 짓고땡이나 쪼이, 섯다, 월남뽕같은 건 베팅으로 가는 거구요. 삼봉, 육백, 민화투, 고스돕같은 베팅 없이 점수만 따라가는 게임들이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뿐이지 다양한 화투 룰을 놓고 보면 베팅하는 게임이 더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정말 독한 맘 먹고 도박판 뛰는 사람들은 베팅으로 하는 게임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도 하구요.

ps) 진정한 자기책임은 피박이 아니라 고박이죠 ;;

ydhoney의 이미지

국가가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도박

1. 주식

2. 로또

다 함께 즐겨보아요. 8)

cjh의 이미지

둘다 할줄 모르니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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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펙토 페트로눔

cronex의 이미지

Berlin wrote:
.......
하지만 브리지나 하트는 베팅 위주가 아닙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도박성이 떨어진다고들 하더군요.
.....

브릿지는 체스, 체커과 함께 세계 3대 마인드 스포츠라고 하죠.
(물론 이건 서양인 기준이므로 동양쪽 기준으로 하자면
바둑, 장기, 마작 정도를 들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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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이~! 나한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었냐~?
광란의 귀공자 데코스 와이즈멜 님이라구~!

eminency의 이미지

ydhoney wrote:
국가가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도박

1. 주식

2. 로또

다 함께 즐겨보아요. 8)

경마와 경륜도 있지요 -0-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잠언 6:5

seoleda의 이미지

잘 나가는 사람을 다른 2명이 견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고스톱치면서 제일 미운 사람은 먼저 나라고 밀어 주면, 지혼자 피박/광박 면하는 놈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자신이 전혀 앞이 보이지 않을때는 판을 없을 수 있는 쇼당이라는 룰이 있어서 좋습니다.

가끔은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고달퍼도 절대로 포기 하지 말자는 교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p.s. 머 그렇다고 제가 고스톱을 즐겨하는건 아니고요,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서 하는 정도 입니다. ^^

ydhoney의 이미지

eminency wrote:
ydhoney wrote:
국가가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도박

1. 주식

2. 로또

다 함께 즐겨보아요. 8)

경마와 경륜도 있지요 -0-

근데 경마와 경륜은 아무리 잘 해도 손해는 크고, 갑부되기 어려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