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오늘로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고백] 오늘로 한국 국적을 버리고...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36살먹은 남자다. 지난 달에 컴퓨터를
샀다. 할 줄은 알았지만 소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넷도
탐험하고 이렇게 요즘 인기있고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딴지일보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요즘 한국은 서용빈인가 하는
야구선수하고 김뭐인가 하는 가수들이 병역을 기피해서 시끄러운
모양이다.

갑자기 군대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난 오늘 한국국적을 버린 대신 뉴질랜드 국적을 얻었다. 이곳에
온 지 약 3년... 뉴질랜드 국적 얻었다고 정말 이나라 국민이
된 걸까? 천만에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도 난 이방인일 것이다. 난 그것을 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나 싫어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웬만큼 정착도 했고 내 명의로 된
작은 집과 배 한 척도 있다.

3년내내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지금은 일주일에 5일을
바다에서 보낸다. 난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곳에 와서 비로소 난 비슷하게 꿈을 이룬 것 같다. 고기잡이 배의
주인이 뭐 대단할 것까지는 없지만 틈나는 대로 바다를
그리며 나름대로 난 낭만을 느끼고 삶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때때로 외롭다는 생각이들 때도 있지만, 어차피 난 혼자가
아니었던가...

난 정말 한국이란 나라가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이곳에
왔다. 누구는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싫었다.
한국이란 곳이. 하지만 그래봤자 김치 못 먹으면 못 살고 좋아하던
한국노래 들으면 눈물 흘리는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다.

난 고아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 여동생 이렇게 둘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 두 분 다 차사고로 돌아가셨다. 서울로
오시던 고속버스가 다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천만원이란 돈이
보상금으로 나오고 난 부모님을 잃었다. 친척분들 말로는 그
운수회사 사장이 3성장군에 대단한 권력가 출신이어서
유가족의 힘으로는 그 정도 돈도 겨우 받아낸 것이라고 했다.

15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아버지께서 하시던 작은 동네 식료품점을
처분해서 그렇저럭 살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신문
돌리고 여동생은 대학도 포기해가면서 하나 뿐인 오빠를 위해
돈을 벌었다. 난 여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내 미래를 위해서
죽도록 열심히 그림을 그린 끝에 경희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3수를 했다.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형편상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공부 잘해서 학력고사 잘 치고 실기시험을 잘 봐도
최소한 대학 강사에게 레슨받지 않으면 대학 못 간다고
주위에선 충고를 했지만 난 무슨 소리냐며 무시했다.

난 용산고등학교를 나왔다.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놈이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거였다. 당시 나의 내신은
2등급에 학력고사 285점(체력장 포함)임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레슨 한 번 받지 못하고 동네 미술학원만 겨우 입시 석 달 전
갔었던 게 아마 3수의 고배를 든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

담임선생은 가난한 고아가 무슨 미술이냐며 그냥 연고대
아무과에나 가라고 하셨다. 나를 걱정해주신 것이었을까? 아니면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그런 것일까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아뭏든 난 끝까지 미대를 고집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난 군대에 가야 했다. 고아에 소년가장이나
마찬가지인 나를 병무청은 무슨 이상한 법규를 들어가며
현역대상자라고 했다. 여동생이 조그만 직업소개소에서 사무를
봤는데 아마 그게 이유가 아닌가 싶다. 어제 인터넷을 보니
배우 이병헌이도 소년가장이라 현역에서 면제사유가 되었다고
하는데 외제차를 타며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버는 소년가장도
한국에 있고 나처럼 현역가는 소년가장도 있고
한국은 정말 변하지 않는 다양성의 나라인 것 같다.

결국 난 대학생활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군대로 끌려갔다.
군대가는 날 용산역에서, 부모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여동생을
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오빠도 없이 혼자 살 계집애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차라리 나를 위해 돈벌어야 하는
동생힘도 덜고 잘되었다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군대에서 보낸 3년... 난 빽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터라 당연히
강원도 횡성으로 끌려갔다. 공병이었는데 상병 달기까지 거의
매일 안 맞고 살아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병장을 달기 한 달 전
진지를 파는 훈련을 하다가 졸병이 잘못 휘두룬 군용삽에
복숭아뼈를 크게 패여서 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휴유증으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발목부위가
퍼렇게 변하고 시린다.)

3개월간 수통에 입원해 있으면서 난 점점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한국사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통합병원의
현역병들은 빽이 좋다고 한다. 그 곳 방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이상하게도 체육대회를 하면 늘 방위가 이긴 것 같다.
달리기를 하건 족구를 하건...

제대 몇 개월을 남겨두고 난 의가사를 당하기 싫었다.
그래서 병원에서라도 좋으니 현역제대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횡성에서는 당시 훈련중 난 사고로 중대장이 진급에서
탈락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를 거부했고 그래서 치료가 다된 후에도
2주 동안을 대기하다가 결국은 용산 국방부에서 전역대기를 했다.

그 좋다는 국방부를 난 빽없이 가게 된 것이다. 그 곳에서의
몇 달간은 정말 나에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멍했다. 난
마땅한 보직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무반에 누워 있기도 뭐하던 차에
나에게 떨어진 임시보직은 국방부 청사 장군식당 청소 보조였다.
주로 방위와 현역병들이 보직을 담당하는 곳인데
웬만한 빽으로는 오지 못하는 자리라고 했다. 난 말년 병장이라
주로 다른애들이 청소할때 옆에서 담배만 피웠다.
하지만 타부대에서 온터라 고참대우는 받지 못했다.

말로만 듯던 장군식당.. 메뉴는 매일 달랐다. 중식 한식 양식,
난생 처음으로 뒷정리를 하며 캐비어란 것을 먹어봤다.
비프스테이크, 함박스테이크, 탕수육, 양장피, 오리탕, 한정식 등
비록 먹다 남은 것이긴 하지만 난생 최고급요리는 거의 다
섭렵했던 것 같다. 그 곳 사병들말로는 장군식당은 한 끼 당
당시 5천원의 부식비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이거 일반식당이면
한 끼 당 줄잡아도 5만원은 받을거라고 했다.

내가 제대할 무렵 사병의 급식을 담당하는 국방부 모 장군이
사병부식비 수십억 원을 착복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니면 국방부 사병들은 맨날 px에서 사먹어서 그런 것일까.

국방부 사병식당의 반찬은 한 마디로 돼지밥 수준이었다.
차라리 예전에 있던 횡성은 이곳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반찬이라고 나오는 게 간장에 버무린 마늘, 쉰 김치, 똥국이라
불렸던 된장국이 다였고 가끔가다 외국에서는 가축 사료로나
쓴다고 하는 팔뚝만한 맛 없는 수입 꽁치를 저급 식용유에 튀긴게 나왔다.

당시 한 끼당 700원이 사병부식비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아무리 잘쳐봐야 원가 2백원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모장군(이름이 기억 안 난다)이 구속되었을 때야 비로소 난 그 이유를 알았다.

다행이 군생활 중 친한 친구를 하나 건지게 된 곳도 바로
그 장군식당이다. 그곳을 담당하던 박 하사가 바로 그인데
동갑내기에 서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친해졌다.
당시 그는 마찬가지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그림을 포기하고
하사를 지원해 국방부로 차출된 케이스였는데 난 그를 위해서
제대하고 한 달 동안이나 매일 그림지도를 해주었다.

요즘도 그와는 종종 통화를 한다. 지금 그는 헌병대에 있는 걸로
안다. 아직도 국방부 장군식당 그렇게 맛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에엠에푸가 터져도 장군식당의 식탁은 변한 게 없고 오히려
더 찬란해졌다는 예상대로의 답을 그로부터 듣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역시 떠나오길 잘 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국방부를 지킨다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출근하는, 황금보직
방위병들의 아버지는 헌병대 사병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
장군이나 국회의원, 병원장, 은행장들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
6개월 방위들도 넘쳐났던 것 같고.. 거의 다 자가용을 타고
삼각지 다리 밑에 주차해두었다가 퇴근할 때 타고 가고..
몸도 헬스클럽들에 다니는지 다들 좋았던 것 같고... 횡성의
동료들까지 말 할 필요도 없다. 국방부 헌병대, 의장대 사병들은
대부분 저 밑 지방에서 차출되어서 휴가도 제대로 못하고
고된 업무로 발바닥이 갈라지는 판에...

내가 한국사회에 대해 심한 염증을 가지게 된 때가 아마
바로 이 군시절부터 였지않나 싶다.

군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동생이 3년 동안 나를 위해 부어놓은
적금을 타서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로도 충당했다. 내 주제에
좋아하는 여자도 생겼다. 열심히 그림도 그리고 나름대로는
정말 열심히 생활했다. 동생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가난한 티를 내기 싫어서 과하다 싶은 메이커 옷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이 년 동안 사귄 여자는 동양화를 그리는
당시 서울여대에 다녔던 여자였다. 지금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사귄지 이 년 만에 그녀의 집에 인사드리러 간것을
계기로 나는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철저한 염세주의자로 변했다.

가진 것 없고 부모도 없는, 거기다 가난한 그림쟁이 주제에
무슨 여잘 사귀나... 은행지점장이라던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집안에 들어왔다 삼십 분이 채 안 돼 현관문을 나서기까지
인사 한 번 받지 않았고 눈 한 번 맞춰주지 않았다.

사랑? 웃기는 말이었다. 그렇게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빈부의 차가 나는 남녀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을까? 난 순진했다. 그녀는 괴로워했고
결국 난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끝나고 나는 이를 악물고 그림을 그렸다. 3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생활 4년 내내 성남의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모은 돈 천만원으로 난 대학원을 준비했다. 졸업하자마자
어렵사리 동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국전 출품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 그려봤자 미리 수상자
다 정해놓고 서울대 홍대 돌아가면서 상타먹기 하는 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난 가진 것도 없고 심사위원 선생도
한 분 모르고 그 사람 제자도 아니며 주위 인맥이 좋은 것도 아닌 터라
한 번도 출품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그려서 출품한 작품이 일본에서
열리는 쿄토 국제청년미술대회에서 2위로 입상을 해서 상금
30만 엔과 난생 처음 3일 동안 일본 구경도 갈 수 있었다.
이후 다른 작품으로 독일 에센 지방에서 열리는 영아티스트
컴피티션에 출품해서는 3위 입상을 했다. 난 용기를 얻었고
동생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 대학교수가 되어 작품활동을
계속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단계인 강사 자리를 얻을 때
난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했다. 아무리 실력 좋고 뭐고간에 돈 가져오라는 말을
경희대부터 그 밑에 서열에 있는 학교관계자들로부터 (경희대보다
좋은 학교에 강사 신청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병자 짓이다.)
수십 번도 더 들었다.

마지막으로 대학시절 날 지도했던 지도 교수의 후배가 교수로
있다고 해서 추천받아 찾아간 모예전이라는 곳에서는 칠백
정도를 가져오라고 했다. 난 정말 토할 것 같았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라는 것을 알았다. 난 동생과
성남에 있는 12평짜리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로 집 앞에 동네유치원에서
미술선생하는게 다였다. 당시 월수 30만원 조금 넘게 받았는 데
직업 소개소 직원으로 있던 동생은 70 정도를 받았다.
밤에는 간간히 경희대 앞에 있는 입시미술학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그나마 대학다닐 때 담당교수가 다리를 놓아준
덕분이었다. 당시 하루 저녁에 만 원 정도를 일당으로 받은
것 같았다. 일년 조금 넘게 그 생활을 하면서 난 점점 더 한국사회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여동생은 직업소개소에서 경리를 맡아보았는데 가끔씩 소개소 차를
직접 운전하기도 했다. 같은 직업소개소 근무하는
후배의 생일 잔치를 하느라 그곳 소장과 직원들이 모두 음주였던
어느 날 모두를 집에 데려다 주고 자신도 집으로 차를 몰고
오던 중 잠실 탄천에서 음주 차량과의 추돌사고로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당시 선거철로 기억되는데 그때 국회의원 아들이 모는 차량과
충돌한 것이다. 당시 민자당 의원의 아들로 기억되는데,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조그만 탄천길에서 대학생 신분에 걸맞지
않는 그랜저를 시속 100 가까이로 몰았는데 여자친구랑 싸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역시 한국은 있는자들의 나라던가?

경찰서 형사들은 앞날 창창한 젊은이 앞길 망치지 말고 합의
봐주라며 음주사실도 기록하지 않았다. 은근히 우리 남매를
윽박 지르는 듯한 분위기에 우린 가진 것 하나 없는 약자로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치료비와 보상금 오백 만원을
병실침대 위에 던져두고 가는 의원 사모님의 모습을 그냥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사모님 운전기사 말로는 그것도 우리 남매 사정을
사모님이 듣곤 딱해서 백 만원을 더 금일봉 조로 준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도 동생의 휴유증은 한 달 정도를 더갔다.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한 달간은 내가 반대로 동생의
시중을 들었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유치원은 쉬어야 했다.
사고 나고 3개월간은 정신이 없었다. 그와중에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을까?

엎친데 덮쳐 무리를 한 끝에 군시절에 다친 발목이 재발되어
나 또한 움직이는데 큰 불편을 겼었다. 그러던 차에
예비군훈련을 내내 빼먹었다는 이유로 난 예비군 훈련법 위반으로
입건되었다. 동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서 동사무소에
가져가면 거기에 무엇을 더 첨부해서 내라, 뭘 더해서 내라,
훈련 면제 사유가 부족하다느니 어쩌니 옥신각신해서 차라리
발목이 부서지는 한이있어도 더러워서 훈련받아야겠던 차에
동생의 사고와 또 발목 상처의 재발로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발조치를 당한 것이다.

당시에는 예비군 훈련을 돈 좀있는 똥깨나 싸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많이 빼먹었다하여 신문에 보도된 일이 있을 때인데
정말 우습게도 입건된 사람들 중 내 이름이 맨 먼저 신문에 났다.
그것도 실명으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의사나 중소기업사장, 변호사 뭐 이런 직종이
많았는데 전부 이모 박모로 나고말이다. 법원에서
판사는 엄청난 정상참작(다리상처)이었다고 마치 무슨 은전이라도
베풀 듯이 판결을 내렸다. 벌금 100만원을 내고 석달 후
나는 3박4일의 예비군훈련을 마쳤는데 마지막 날 발목상처 재발로
결국 2주일간 병원통원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자비를
들여가면서 말이다.

동생과 함께 한국이란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영원히...

그래서 12평 시민 아파트를 처분한 돈 이천오백에 동생과
내가 평생을 모은돈 3천 만원을 깡그리 챙겨서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 온 것이다. 이곳에 와서는 부두 잡역부일서부터 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동생은 한국교민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3년을 둘이서 정말 고생하면서 돈을 벌어 결국 작년 말 나는
고깃배를 하나 장만해서 그걸로 생계를 삼고 날 위해 대학을
포기했던 동생을 뉴질랜드 제1대학에 들어보냈다.

동생은 지금 그곳에서 장애자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이
첫 번째 학기다. 바닷가 근처에 방 두 개짜리 조그만 집을 샀다.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아무런 사회의 편견도, 적어도
우리 남매가 사는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린 이곳에선
영원히 이방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언제나 불이익당하고
따돌림받는 이방인 아니었던가? 적어도 우린 이곳에서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하진 않는 것 같다. 아직 겪지 않은
인종차별이니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최소한 이곳은 노력한 대로
대가가 지불되는 사회다.

난 틈틈히 그림을 다시 그릴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공부를 좀더 해서 이곳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싶다. 이곳 대학에서
장학금 입학허가도 작년 겨울 받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
미루고 있다. 올 여름엔 조그만 겔러리에서 개인전도 열고 싶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작고 보잘것 없는 고기잡이 배의
선장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동정 받으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단지 한국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게 항상 자랑스런 것은 아니며
한국사회를 지독히 혐오한다고 그것이 죽을 죄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난 분명 죽을 때까지 한국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국적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난 아무리 달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이 사실이 너무 싫은 것이다.

어느 사회나 잘못되고 고쳐야 할 것은 있게 마련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해도 너무한 곳인 것 같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수단방법 안 가리고 모은 돈 있고 빽 있으면 한평생 죄짓고도
발뻗고 잘 수 있는 나라...

- 한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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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일보에서 퍼온 글입니다. 1999년 4월에 작성된 것입니다.

한번쯤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마지막에 던진 "한국인 ?" 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요?

?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저는 이해합니다.
저도 뉴질랜드 이민을 시도하여 영주권을 얻었다가
단지 외국에 영주권을 얻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쏟아지는
제약들을 견딜수가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1년만에
포기한 사람이니까...

지금은 그때에 영주권을 포기한것을 절절하게 후회합니다.
능력있으나 돈없고 백없는 사람들 글쓰신분같이 시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단! 젊을때...

..............................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젊을때는 몇살을 말하는 것인지

겨울아이 wrote..
저는 이해합니다.
저도 뉴질랜드 이민을 시도하여 영주권을 얻었다가
단지 외국에 영주권을 얻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쏟아지는
제약들을 견딜수가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1년만에
포기한 사람이니까...

지금은 그때에 영주권을 포기한것을 절절하게 후회합니다.
능력있으나 돈없고 백없는 사람들 글쓰신분같이 시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단! 젊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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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제가 보는 견해에서는 결혼할 때가 제일 좋은것 같습니다.
이때가 이민을 하려구 할때 가장 점수가 좋을때 입니다.
결혼과 함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죠. ^^;;

그리고 무일푼으로 이국땅에가서 시작할 수는 없는것 이니까.
첫직장을 2-3년정도 하면서 외국회사를 알아보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할테고...
그리고 졸업하고 몇년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한국사회를
어느정도 알았을테고... 나름대로 자신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판단이 섰을때 이므로...

그런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는것이 가장 큰 난관일것입니다.
이렇게 까지 야그하니 갑자기 심각해지는것을 느끼네요... ^^;;;

추신하면 영어는 웬만큼 되어야 겠지요?

.................

logotherapy wrote..
젊을때는 몇살을 말하는 것인지

겨울아이 wrote..
저는 이해합니다.
저도 뉴질랜드 이민을 시도하여 영주권을 얻었다가
단지 외국에 영주권을 얻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쏟아지는
제약들을 견딜수가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1년만에
포기한 사람이니까...

지금은 그때에 영주권을 포기한것을 절절하게 후회합니다.
능력있으나 돈없고 백없는 사람들 글쓰신분같이 시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단! 젊을때...

..............................

Fe.head의 이미지

1999년도에는 이랬군요..

지금도 그렇겠지요.^^

고작 블로킹 하나, 고작 25점 중에 1점, 고작 부활동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네가 배구에 빠지는 순간이야"

jachin의 이미지

-_- 정말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군요.

다 읽고 머리가 터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조리한 사실이 없어지는 그날이 올 때 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차리서의 이미지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난 경우군요.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사실은 또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습니다. 떠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일반적으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만 한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지만, 이것은 그저 또다른 방법이 더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절의 입장에서 중을 속이려고 지어낸 거짓말일 뿐입니다.

중요 참고: 지금부터 쓸 '죽이다'라는 낱말은 요즈음 널리 잘못 쓰이듯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다' 또는 '거의 죽을 만큼 혼쭐을 내다' 따위의 은유적인 뜻으로는 쓰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끊다'는 뜻으로만 쓰겠습니다.

중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은 바로 절간을 홀라당 태워버리고나서 혼자만의 힘으로 잿더미 위에 초석부터 다시 쌓아서 새 절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단, 미리 알아두어야할 주의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 기왕 태우기로 마음먹었으면 반드시 전부 다 끝까지 재로 만들고 생존자가 전혀 없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절간을 태우기로 마음먹을 정도의 극한 상황을 만드는 '타죽을 놈'들의 속성 상, 실낱 같은 목숨이라도 남아있으면 금새 원기를 회복할 뿐더러, 이 놈들은 전염성이 있어서 한 놈이라도 놓치면 다시 바퀴벌레처럼 증식하여 결국 거꾸로 자신이 타죽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똥뚝간 만큼은 그동안 정이 들어서 태우기 싫거나 평소 예뻐하던 어린 동자승 만큼은 타죽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냥 떠나야합니다. 어중간하게시리 태울 것 남길 것, 죽일 놈 살릴 놈 고르고 있을 만큼 미적지근한 정신상태와 각오라면 애초에 시도도 하면 안되는 방법입니다.
  • 곱게 타죽어줄 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절을 태우러 갔다가 절에 있던 다른 중들에게 거꾸로 역습을 받아 자기 혼자만 타죽고 마는 수도 있으며, 애석하게도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혹시 성공하여 절간과 중들을 완전히 초토화시킨다고 해도, 십중팔구 그 과정에서 팔이나 다리 한 두 개 혹은 눈 한 쪽 정도는 영영 못쓰게 될 각오를 해야합니다. 다 죽인 후 곧 자신도 뒤따라 죽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너희가 전멸하든가 내가 죽든가' 식의 일명 '또라이 정신'이 필수적입니다. 남 죽이는건 좋은데 나 죽는건 싫거든, 그냥 떠나야합니다.
  • 문답무용(問答無用)입니다. 애초에 이 세상에는 '보편적 정의'라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히 '각자의 정의'만 있고,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불행히도 이미 각자의 정의가 충돌해서 적(敵)으로 간주했다면, 더이상 서로 간에 정의를 논하거나 있지도 않은 보편적 정의 따위를 들먹일 필요는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내 정의와 네 정의가 애석하게도 충돌했고, 서로 도저히 비켜가지 못하니 둘 중 하나가 닥치고 사라진다"고 마음먹은 이상, 살인(殺人)이니 뭐니 의미를 부여하거나 자신의 정의를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눈꼽만큼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남아있거나 자신의 손에 묻을 남의 피에 신경이 쓰인다면, 그냥 떠나야합니다.
  • 이 방법의 궁극적인 최종 목표야 물론 새로운 절을 새로운 중으로 채우는 것이겠지만, 일차적인 선행 목표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절을 불태우는 것 뿐임을 잊어선 안됩니다. '새로이 만드는 것'은 한참 나중에 다시 생각하거나 말거나 할 일이고, 일단 지금은 그저 '현재를 지우는 것'에만 맹목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 타버린 잿더미 위에 새 절을 짓고 새 사람을 채울 일이 신경쓰이거나, 반대로 타버린 잿더미 위에 어딘가에서 마음에 드는 새 절과 새 사람이 뿅~ 하고 등장하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떠나야합니다.
  • 싸움의 목표를 건실하고 올바르게 설정해야합니다. 흔히 '내가 이기는 것'을 목표로 삼곤 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싸움의 본질을 흐리고 싸움 후에 회의감이나 자괴감 등 정신적인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는 나쁜 생각입니다. 올바르고 바람직한 목표는 '상대를 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발상입니다. 만일 절간과의 싸움에서 '내가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라면, 아예 싸우지 말고 그냥 조용히 떠나야합니다.
  • 일단 한 번 이 방법을 선택하면, 어쩌면 '내가 죽거나 나만 살아남을 때까지' 끊임없이 파괴와 살육을 거듭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미리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태우고 싶지 않은 절' 따위는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 지구상의 인간들 중 자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50억 모두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나서 덩그러니 홀로 남겨질지도 모릅니다. 멈추지 않는 파괴와 살육이 될지도 모르지만,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기왕에 시작해버린 것을 멈추지 말아야할 때에 전에 멈추는 것이지, 멈춰야할 때에 멈추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멈추지 못할까봐 두렵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고 그냥 떠나시면 됩니다.
결론적으로, 죽은 동자승의 시체를 무심히 밟고 서서 무(無)로 돌아간 잿더미를 행복한 마음으로 음미할 정신적 단련이 충분하거나 혹은 그러려던 중에 죽임을 당하는 것에 개의치 않을 각오가 되어있다면, 절을 떠나는 것보다는 절간과 중들을 태워버리는 것이 근본적으로 바람직하고 나은 방법임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요즘 본의 아니게 매일같이 각오를 새로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분노와 증오와 적개심과 살의로 똘똘 뭉친 이 각오의 끝자락에서 제가 미쳐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미치면 쓸 수 없게될 글을 아직 완전히 미치기 전에 빨리 써둡니다.

"나를 봐요 나를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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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자유마저 돈으로 사야하나보다.
사줄테니 제발 팔기나 해다오. 아직 내가 "사겠다"고 말하는 동안에 말이다!

elfs의 이미지

먹고살기도 힘든와중에 저 두 남매에게 절을 태우는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을것 같습니다. 저들이 희생할 눈꼽만치의 이유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지금의 현실이 행복하시길 바랄뿐.

전두환을 다시 감옥에 넣기위해 홀로 열심히 싸우는 MBC 를 보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바뀌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약간의 희망이 자꾸 움츠러 드는 기분입니다.

아직까지 이 나라를 운영해 나가는 자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는 밝습니까?

박영선의 이미지

elfs wrote:
먹고살기도 힘든와중에 저 두 남매에게 절을 태우는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을것 같습니다. 저들이 희생할 눈꼽만치의 이유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지금의 현실이 행복하시길 바랄뿐.

전두환을 다시 감옥에 넣기위해 홀로 열심히 싸우는 MBC 를 보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바뀌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약간의 희망이 자꾸 움츠러 드는 기분입니다.

아직까지 이 나라를 운영해 나가는 자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는 밝습니까?

이 나라의 미래는 밝습니다.

자꾸 변해가고 있잖아요...

저 위에 두 남매는 너무 힘이들어 절을 버리고 떠났지만, 조금 힘이 덜든 남아있는 사람들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가야죠.

수십년에 걸쳐서 바뀌어왔고, 요 근래들어서 부쩍 많이 바뀌고있는거 아닌가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희망을 가지고삽시다.

^^;;

cmcchoi의 이미지

여태 kldp 의 자유게시판이나 그런데에 그냥 흥미 거리로 읽어버리는 내용만이 있었습니다.사실 관심도 없었구요.

오늘 올라온 글을 보니 오래된이야기지만.
절실히 공감을 합니다.

한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매일 tv를 켜면 정치판이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힙니다.
말도 안되는 정책에.그걸 가지고 누가 맞는지에 대해 모두다 틀린 말을 합니다.
정말 살기 힘든나라입니다.

돈 없고 빽이 없고 거기다가 비빌 언덕마저 없다면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는 소음과 공해. 그리고 범죄만이 있는 나라라고 보일겁니다.
거리에 보십시요. 길거리에만 나가봐도 간단한 윤리적인 상식이 무너지는게 한국입니다.

저도 이제 집안에 가장이 되어야되서 미래를 생각해서 열심히 벌어볼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한국은 안되더군요..비빌언덕도 능력도 안되면 빌어먹고 살거나 남의 등을치고 살아야합니까?
청년실업이 몇만명이요???그래서요??그런데 사람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군요.
도대체 그 실업 청년들 화장실 청도소 불사하겠다는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가요??- 참고로 제가 장사를 합니다. -

한국은 부조리도 말도 안되는 소리도 많이 있지만. 여태 그냥 지나치고 무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나에게 전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는게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란걸 여태 살아오면서 몸으로 터득을 했지요..

그런데 오늘 뎃글 을 보다가 열이 받아서 글을남겨봅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는거라고요?
그걸 뎃글이라고 답니까?
위에 이야기를 보면서 느끼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도 그런 권련과 기득권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게으르고 능력이 안되서 그런다고 생각하는 당신들..

전 표현을 할때 맘에 안든 인간에게는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저도 물론 한국사람입니다. 하지만 .별 거지 같은 사람도 많이 있더군요.
장사를 하다보니 .정말 한국에 살기 싫고 저도 한국사람이지만 .
한국사람들 정말 싫습니다.

자신이 기득권의 존재에 들어간다고 느끼시는분들.
자세히 보세요.정말 기득권세력안에 들어가나.
우리나라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몇안됩니다.
중산층이요? 별 거지 같은 않은 소리 하지말라고 하세요. 그리고 국민소득 얼마요???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을 욕할게 못됩니다. 왜냐고요?
그런 정치인들을 우리가 뽑았기때문입니다.

뎃글을 보고 열이 받는군요.
누구는 떠나고 싶어서 떠나겠습니까. 거기가면 평생 이방인이 되어
더러워도 나라라고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해야되는데.

정말 가슴이 답답합니다.
역시 배운넘덜이 더 무섭군요.

shyxu의 이미지

elfs wrote:

전두환을 다시 감옥에 넣기위해 홀로 열심히 싸우는 MBC 를 보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바뀌고 있다라고 생각했던 약간의 희망이 자꾸 움츠러 드는 기분입니다.
아직까지 이 나라를 운영해 나가는 자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는 밝습니까?

제가 보기에 TV는 항상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사인곡선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패턴이라고 할까요.

뉴스도 보면 내용만 다르지 다 똑같은 얘기고
쇼프로도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하고
가요도 그 노래가 그 노래...
드라마는 맨날 질질 짜고...

전 그래서 왠만해선 TV 안봅니다.
내가 나왔을때는 보지만 -_-;;

Since 2003.
지금은 맥유저...
---
http://jtjoo.com

Vadis의 이미지

요즘 사회일면에서 나오는 기사들과 현재 주변상황들을 지켜볼 때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폭탄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모든게 연극을 한편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정치가역을 맡은 사람이 정치

역을 통해서 자기 욕구를 자아내고 다시 기업인들이 그 욕구를 받아 다시 자기욕

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 같군요.모든 것이 연극이라서 외적요소만 맡은 배역을

소화해내고 내면의 모습은 마치 오물을 뒤집어쓴 돼지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

는 듯 하군요.

진실은 정말 잔혹한 것 같군요.지금껏 태어나서 거짓된 현실에 대해서만, 배워왔

는데 지금에 와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 되었습니다.현실과

이상의 차이점을 우리는 몰랐습니다.다만, 앞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모

습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른 채 세뇌받은 후 사회에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기

분입니다.지나치게 부정적인 말인가요?

이제는 진실을 보는게 무섭습니다.진실조차도 거짓된 진실일지 모른다는 기분조

차들어서.......(죄송하네요..리눅스커뮤니티라는 것을 착각하고 있었네요....!!!

이왕 쓴 글이라 그냥 올릴께요...아 그리고 아바타를 바꿔야겠네요...)

좋은 날 즐거운 날....

멍멍멍의 이미지

내가 선택한 방법

다른 중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 남는다.

해방후 잘못된 사회로 이끈 주역들이 하나 둘 되지고

있습니다. 조그만 더 기다리면 .. ㅋㅋㅋ

codebank의 이미지

멍멍멍 wrote:
내가 선택한 방법

다른 중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아 남는다.

해방후 잘못된 사회로 이끈 주역들이 하나 둘 되지고

있습니다. 조그만 더 기다리면 .. ㅋㅋㅋ


:) 그런데 무서운 사실이 한가지 있죠. 잘못된 사회를 이끌어간 주역들이 다 사라진다손 치더라도
그들에게 배운 지식으로 그들 뒤를 잇고 있는 후학(또는 자손)들이 더 무서운겁니다.
자신들의 스승의 과오가 들어나면 자신의 입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좋던 싫던간에
자기 스승의 과오가 들어나지 않게 하기위해 노력하는것이죠.

----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불안해 보이는것은 사실입니다. 직접 겪어보고 있는 현실이니
그 자체가 뼈져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슨 부조리들이 그리도 많은지 뉴스를 이해하는것 조차가 힘들정도이죠.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건 각각의 존재들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발 조금 물러서서 현실을 내려다보면 그건 아주 뚜렸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뚜렸한 것은 바로 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의 인식이 어느 순간부터
분산되기 시작한지는 정확하게 집어내기 힘들지만 아마 의정부 여학생들이 전차사고로
숨졌을때 부터가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분산되기도 하고 다시 모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분명 그소리들은 시끄럽게 들리고
어찌보면 소음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시민들이 조용할 때는 언제일까요? 그건 강력한
지도자가 있을때 입니다. 즉,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을때 그리고 목표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 목표를 따라서 조용히 최선을 다하고 목소리조차 별로 크게 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강력한 지도자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개개인의
외침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부 언론에서는 큰일날 일처럼 떠들어대고 있지만 역사의 패턴으로 볼때는
큰일날 일이 아닌 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예전 국가들이 망해가고 새로 건국되어질때 일어나는 일들이죠.

저는 현 상황이 상당히 안좋아 보이기 때문에 좌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한 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위층의 부조리가 밝혀지고 그들의 과오가 나타나면 더이상 그들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될것이고
능력있는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또한 현재 힘들게 우리들을 옥죄고 있는 각종 문제들도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해결 되게
될겁니다. 환경이 변화가 되면 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고통이 수반되는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고통이 싫어서 회피한다면 그건 더 많은 고통을 가져오게 될것입니다.

제가 쓴글이 조금 황당하게 읽힐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가 볼때는 분명 우리사회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고 커다란 변화를 위해서 탈피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이럴때일 수록 자신이 속한 분야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좋은 소식이 조만간 있을거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여러분 힘들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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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문태준의 이미지

올해도 어김없이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신문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올해초부터 현대중공업(하청포함)의 노동자들은 벌써 10여명이 산업재해로 죽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 한명이 스스로 몸을 불살라 비정규직의 처참한 실태를 폭로하였습니다.

하루하루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정말 절망과 암담함에 빠집니다. 신용불량자가 몇백만을 넘어서고 가계빚은 3천만원에 육박하고 있더군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위의 제일 첫번째 글처럼 더욱 더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는데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그 가출한 어머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집에 있던 어린 아이들이 장난을 하다가 집에 불이 나 두명이나 죽었습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은 누구한테 책임이 있는 것일까요? 그 어머니? 그 아버지? 실은 우리 사회가 그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간것은 아닐까요? 물론 요즘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전 이해가 안 가는 것이 그래도 세계에서 20-30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인데 정말 이 사회는 그렇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출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IMF를 명분으로 삼아 회사에서는 엄청난 정리해고를 하고 나이가 40대인데도 명예퇴직을 요구받고 막상 젊은 20대는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소비를 진작시킨다고 카드발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였고 그 결과는 몇년뒤에 나타나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생계문제로 카드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아야하는 여동생등이 생겨나고 단 돈 몇백원을 훔쳐서 깜방에 가는 우리의 이웃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합니다. 또한 앞으로 태어나서 자랄 우리의 아이들을 정말 어떠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이민을 가는게 나을까 고민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절망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봅니다. 요즘은 1970년대 이후의 노동운동사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가 있었고 1980년대 피비린내나는 광주학살의 그 처참한 악몽에서도 오히려 그것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파쇼정권에 맞서 떨쳐일어났던 87년의 6월 항쟁이 있었기에 그나마 형식적인 민주주의제도라도 다시 복원될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 노동자가 아니라 공돌이, 공순이였고 사람취급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하여 이제 당당히 "인간선언"을 하였고 이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히 일어섰습니다.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열풍속에 우리나라도 대규모의 정리해고, 민영화가 추진되고 엄청나게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또 그에 맞서는 노동자와 민중의 싸움이 있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은 힘들지만 전 그래도 우리의 역사가 항상 절망속에서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새겨져 있습니다. 과거에 그렇게 열심히 싸워왔던 사람들의 노력들 위에서 우리가 서 있고 그래서 예전보다는 더 편하게 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다른 분이 글을 쓰신대로 중이 절이 싫다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절이 싫으면 그것을 바꾸어내야 합니다. 그것을 몽땅 태우고 새로 만들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연대주점이 있습니다. 우리네 삶도 힘들지만 동남아등지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노예와도 같은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60-70년대 우리의 노동자들이 달러를 벌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서 노예노동을 했다면 이제 어느정도 경제발전을 이루어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회사를 옮길 수 있는 자유도 없습니다. 불법체류자라고 하여 한국의 사장들은 이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엄청난 저임에 그들을 착취하고 때론 임금마저 체불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노동조건을 그대로 둘 경우 그것은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계속 비참하게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실은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주노동자와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을 하게 만드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절망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야합니다. 그 희망은 혼자서 개인적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이고 단결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하루하루 자신의 생활을 하기에도 급급하겠지만 나보다 더 힘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욱 더 소외받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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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http://groups.google.co.kr/group/sysadminstudy 시스템어드민 공부모임
http://tunelinux.pe.kr
http://database.sarang.net

matrix의 이미지

글쓴이와 답글 중에..
당대의 최고 권력자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군요.
최고 책임자에게 책임은 절대 묻지않는 사람들..
최고 책임자의 뒤에 반드시 대통령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 때..
이름만을 절대 부르지 않는 현상..
6년전부터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무능한 PM은 욕을 해대면서 무능한 최고 책임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 그러니까 명분에 약하고 정치인을 욕하면서도 자신이 지독하게 정치적인 사람들.
여기까지가 소위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기득권' 이란 이름으로 가진자와 과거의 것 모든것을 부정해 버리는 메조키스트들만 바글바글하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좋아지게 만든 것이 아니고 좋아졌다..란 말..
MBC,KBS 에 희망이란걸 걸고 그걸 보고 좋아졌다라고 믿는 사람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 투성이입니다.
방송국의 해설자의 말이 진리이며 다큐멘타리는 사실 그 자체만 방송을 하는것이며 민주화 투쟁이란 전부다가 선이였다고 믿는 이상..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한국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한국..
인터넷, 네티즌, 정의라고 하는 자신만의 명분으로 행하는 지독하게 주관적인 독설들.. 민주, 자주, 통일이란 말은 어떤 다른 것보다 심지어 생존보다 더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

국민의 수준.. 여기까지 입니다.

How do you define Real?

차리서의 이미지

cmcchoi wrote:
...(전략: 인용자 주)...
그런데 오늘 뎃글 을 보다가 열이 받아서 글을남겨봅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는거라고요?
그걸 뎃글이라고 답니까?

...(중략: 인용자 주)...

뎃글을 보고 열이 받는군요.
누구는 떠나고 싶어서 떠나겠습니까. 거기가면 평생 이방인이 되어
더러워도 나라라고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해야되는데.
...(후략: 인용자 주)...


아마 아니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제 글을 읽고 화가나신 것이라면 제 글의 요지를 완전히 거꾸로 받아들이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미친놈 소리를 듣기 싫어서 속에서 끓어오르는 과격함과 잔혹함을 애써 억누르고 숨기고 다듬어서 부드럽게 표현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해의 소지가 없을 만큼은 충분히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썼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혹시 글을 끝까지 다 읽어보지 않으셨던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여전히 제 글 때문이 아니었을거라고 믿습니다만, 만일 제 글을 읽고 같은 맥락(제 논지를 완전히 거꾸로 받아들인 맥락)으로 화를 내시는 분이 한 두 분 정도 더 나온다면, 제 문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

PS: 역시, '땀방울 이모티콘'이 필요해요. phpBB 웹 사이트에 가서 설명서를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모티콘 이미지와 매칭 패턴 추가가 간단하다면 제가 직접 이모티콘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패턴 문자열은 그냥 '^^;' 정도면 되겠죠?

--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자유마저 돈으로 사야하나보다.
사줄테니 제발 팔기나 해다오. 아직 내가 "사겠다"고 말하는 동안에 말이다!

zenguy의 이미지

제 인생의 목표도...역시나 이땅을 떠나는것입니다. 뭐 전혀 다른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올해 병특에서 국회의원 아들이 저를 튕겨내고 앉았습니다. 그친구 회사 출근도 안한답니다... 뭐 워낙 삐따기 성격으로 모든것에 불만을 가져왔던 저이지만.. 이땅에서 가진것 없고 힘없는 사람이 여유롭게 즐기며 인생을 보내는것은 힘든것 같습니다.

dgkim의 이미지

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문제점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albamc의 이미지

어느 나라나 문제점이 있구...
우리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많은것 같진 않습니다.
제 생각엔... 좀 잘산다고 하는 ...
나라들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다른 나라보다 적더군요...
경제 수준과 사회 부조리가 반비례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없는 개인으로서... 이나라에서 노력하던가...
부조리를 못참겠으면... 좀 덜한 나라로 가는것도 괜찮겠지요...
근데 제 입장에서 보면... 결혼도 해야하고...
결혼하면 덜렁 나가면 살 대책도 없고... :)

^^*

jedi의 이미지

dgkim wrote:
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문제점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리 후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에 산다면 문제점은 서서히 겪게 될겁니다.
후손이라면 아들, 딸, 손자 등 일텐데 그런 힘든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세상은 이런 곳이니까 적응하고 순응하면서 살아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는 너무 힘들거든요.

+++ 여기부터는 서명입니다. +++
국가 기구의 존속을 위한 최소한의 세금만을 내고, 전체 인민들이 균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착취가 없는 혁명의 그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 조정래, <태백산맥> 중에서, 1986년

박영선의 이미지

matrix wrote:
글쓴이와 답글 중에..
당대의 최고 권력자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사람은 없군요.
최고 책임자에게 책임은 절대 묻지않는 사람들..
최고 책임자의 뒤에 반드시 대통령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한 때..
이름만을 절대 부르지 않는 현상..
6년전부터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뭐가 어떻다는거죠?

Quote:
여기까지입니다.
무능한 PM은 욕을 해대면서 무능한 최고 책임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 그러니까 명분에 약하고 정치인을 욕하면서도 자신이 지독하게 정치적인 사람들.
여기까지가 소위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기득권' 이란 이름으로 가진자와 과거의 것 모든것을 부정해 버리는 메조키스트들만 바글바글하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내용이 좀 추상적이고 논리적이지못해서 이해하기 힘드네요.

Quote: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좋아지게 만든 것이 아니고 좋아졌다..란 말..
MBC,KBS 에 희망이란걸 걸고 그걸 보고 좋아졌다라고 믿는 사람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 투성이입니다.
방송국의 해설자의 말이 진리이며 다큐멘타리는 사실 그 자체만 방송을 하는것이며 민주화 투쟁이란 전부다가 선이였다고 믿는 이상..
이런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한국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민주화투쟁 전부가 선이라고 누가 그랬나요?

MBC,KBS 다큐멘터리를 보고 진리라 생각하며 좋아졌다고 믿는다는 사람이 있었나요?

Quote:
한국..
인터넷, 네티즌, 정의라고 하는 자신만의 명분으로 행하는 지독하게 주관적인 독설들.. 민주, 자주, 통일이란 말은 어떤 다른 것보다 심지어 생존보다 더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

국민의 수준.. 여기까지 입니다.

matrix님의 말씀도 지독하게 주관적인 독설로 보입니다만...

민주,자주,통일을 생존보다 우선하는분들이 어떻다는거죠?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소중한 가치들이고, 그런 가치를 우선하여 사시는분들은 존경받아야하는거 아닌가요?

국민의 수준... 어떻다는거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절망만을 주장하시면서...

절이 싫으면 바꿔야하고, 바꾸지못할망정 남아서 바꾸려는사람들에게 돌은 던지지말아야죠.

눈이 있으면 보세요.

대한민국이 변하는것이 안보이나요?

긍정적인 변화를 외면하는분들을 가끔씩 봅니다.

^^;;

sweetcorn의 이미지

저는 아직 20대 초반이라 잘 모릅니다만,
아버지를 보시면 대략 한숨이 팍팍 나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기 원래 글 올리신 분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간신히 상고 졸업하셔서 은행에 취직하셨습니다만..

희망을 가지시고 야간대학 다니시고..그래서 경제학 석사까지 건X대학교에서 받으셨습니다만.. 대략 은행에서 무시당합니다-_- 경기고 서울대 출신 분들한테 밀리지요...다행히 아버지는 은행 전산시스템 코어를 설계하신 분 중 한명이라..
아직까지 은행 다니십니다만..다른 상고 입사 동기분들은..다 은행..명퇴해서 나가셨더군요..

.....

지난 2월에 진급심사에서도 역시 같은 이유..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팅기셨습니다. 쩝 벌써 몇번째 이러는건지..하여간.. 아버지는 그래도 꿋꿋이 다니시는데.... 인제 나이도 50살 넘으셨으니.. 몇 년 못가서 퇴직하시겠지요..

요즘에는 중국어 공부하시더군요.. 직장다니시는것도 힘드신데. 그 와중에..
제가 왜 저거 공부하세요? 라고 물어보면..그나마 실력이라도 있어야 안 짤린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아버지 보면 대략 아들도 힘내서 외국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번쩍 듭니다. [/b]

bh의 이미지

한국인? wrote:
...
때때로 외롭다는 생각이들 때도 있지만, 어차피 난 혼자가
아니었던가...
...

아.....
여동생분 쾌차 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
이 아이디는 이제 쓰이지 않습니다.

nonots의 이미지

"나를 봐요 나를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졌어요."

이 말은 혹시 몬스터 라는 일본만화에 나온거 아닌가요..?
그 만화보고 상당히 충격받은적이 ...
..
내안의 악마가.... 점점 커가는듯한..


=== 건달의 경지를 꿈꾸며 ===

우겨의 이미지

선거는 완벽한 신을 뽑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보다 나은 사람을 뽑는 겁니다.

작년 대선에서의 선택으로 17대 총선에서는 기업의 돈대기가 사라진다면, 조금이나마 좋은 세상으로 다가선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고 불평하는 분들은 불평 불만만 하지 말고,
선거라는 4-5년마다 오는 느린 수단을 통해서 라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면 됩니다.

대한민국은 안되~, 원래 그런 민족성이야~ 라고 자포자기 유도하는 물타기에 속지 맙시다.

예전에 일본애들도 저런식으로 세뇌 플레이 했었죠.

maddie의 이미지

희망도 절망도 없습니다.

어떤 사회든 부당한 문제점은 있기 마련이며, 한국의 경우 정도가 심한 면이 있지만 다른데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겁니다.

확실한 것은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좃선이 떠드는 파퓰리즘이든, 딴나라당이 떠드는 좌경화(솔직히 이건 친일파가 싫으면 빵갱이다라고 모는 것 같습니다만)가 되었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론이 분열..어쩌구는 개소립니다. 민주주의는 다원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글의 분처럼 개같은 꼴을 당했을 때 시민들이 말을 꺼낼 수 있고 그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친일파 처단을 논하고 반미를 논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재조명하고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예전 영삼이 말대로 "역사가 평가하"고 있습니다. 막으려고 해도 막히지 않고 있습니다.

희망이냐고요?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도 희망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웃긴데, 희망도 절망도 아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늦게 시작된 겁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또 좌초되면 이는 절망이겠죠.

희망이 될려면 혁명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것을 모두 없애고 다시 세우는 것. 사회질서의 재정립. 그리고 씨를 말리는 숙청. 왜냐면 힘있는 자는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없는 자는 빼앗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엔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거기다가 꽉막히고 대화안되는 한국 기득권이라면 더욱더....

누구를 지지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아예 모든것을 때려엎어 버리는 혁명의 기운이 있다면 전 그걸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도 하층민의 젊은세대에 의해서.

힘없는자의 슬픔

박영선의 이미지

maddie wrote:
희망도 절망도 없습니다.

어떤 사회든 부당한 문제점은 있기 마련이며, 한국의 경우 정도가 심한 면이 있지만 다른데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겁니다.

확실한 것은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좃선이 떠드는 파퓰리즘이든, 딴나라당이 떠드는 좌경화(솔직히 이건 친일파가 싫으면 빵갱이다라고 모는 것 같습니다만)가 되었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론이 분열..어쩌구는 개소립니다. 민주주의는 다원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글의 분처럼 개같은 꼴을 당했을 때 시민들이 말을 꺼낼 수 있고 그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친일파 처단을 논하고 반미를 논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재조명하고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예전 영삼이 말대로 "역사가 평가하"고 있습니다. 막으려고 해도 막히지 않고 있습니다.

희망이냐고요?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도 희망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웃긴데, 희망도 절망도 아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늦게 시작된 겁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또 좌초되면 이는 절망이겠죠.

희망이 될려면 혁명의 기운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것을 모두 없애고 다시 세우는 것. 사회질서의 재정립. 그리고 씨를 말리는 숙청. 왜냐면 힘있는 자는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없는 자는 빼앗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엔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거기다가 꽉막히고 대화안되는 한국 기득권이라면 더욱더....

누구를 지지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아예 모든것을 때려엎어 버리는 혁명의 기운이 있다면 전 그걸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것도 하층민의 젊은세대에 의해서.

저는 혁명이 이미 시작됐다고봅니다.

일이십년전에는 불가능했던, 꿈도못꿨을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있잖습니까.

이나라에는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

가대기의 이미지

아마도 제가 전역후에 처음 보았던 글 같군요.

불행하기데 저런 불행이 저에게 겹친다면 저또한 어찌되 선택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격상 극닥적인 분노의 불길로 자신을 태워버릴수도있겠다면..

그런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서 총을 쉽게 구할수 없다는 것은 정말 어찌보면 행운(!)입니다. 저런 것들이 희망이 없는 사회 불안 요소들일것인데
일반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사회의 지기틀이 이완 되는것일 터인데
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것은 누리고 사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일텐데 끊임없는 사람들의 삶속에서 그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가치라는 것또한 유지 되는 것갈은데 희망이란 말대신 욕망을 채우고 그것을을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 올바르지 못한 방법들이 있다는것 까지는좋은데 이런것들이 일반화 되어생각 되는것 같습니다.

물론 아니라고 생각되는 분들도 있고.. 뭐 어느 사람 사는곳 쓰레기 없는곳이 있겠습니까만 자신이 크게 생각 되는 것이 공감 될수 없는 사회라면 그런것이
너무도 고통 스럽고 대안으로 차라리 이방인 처럼 사는것도 좋겠지요. 시실
이런것도 어느정도의 열정이 있을때 이야기도 다수는 숙명처럼 좋은 것을 회상하며 그냥 살아가지요.

그런데 특정인들만의 잘못이였다기 보다는 지금 사는 우리도 각자다른 이유로 모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또한 유년기 시절 상당히 염세적이였고 그 이유라면 아마도 아버지의 가족들을 보며 사람들의 유쾌하지못한 면을 많이 보았고 살아 가면서 그 이유를 달기에 급급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가 서른에 즈음하다보니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제 자신또한 별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제 자신 속에 증오를 심어가고 그것을 증폭함으로써
모든 정열을 바쳤던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또한 부정할수 없는 제 삶이였고
지금에는 많은 자성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진일보 한거죠....

쩝 까탈스럽고 종잡을수 없는 다혈질 덕택에 군생활시 고생했던 선후임병들이 생각나는군요.

에거 거기서라도 희망을 찿으셨다면 다행이지요. 여기서 또 작자다른 꿈들을 꾸며 그것을 이루려고 살아가겠지요. 그래도 그분 짧지 않은 사랑도 해보셨군요.
ㅋㅋ

몸으로 먹고 살던 건설쪽에 철근 기능공으로 좀있다 지금 쉬고 있는데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는지
아직 까지는 자유로운것이 좋네요. 나름데로 세상의 바닥을 훝으며 보내며 제나름데로 느낀바가 있습니다. ...

제 자신을 다루는 .. 가끔은 버리는것도 행복해지는 방법이더군요... 쩝.

Fe.head의 이미지

nonots wrote:
"나를 봐요 나를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커졌어요."

이 말은 혹시 몬스터 라는 일본만화에 나온거 아닌가요..?
그 만화보고 상당히 충격받은적이 ...
..
내안의 악마가.... 점점 커가는듯한..

저도 이것보고 "몬스터"를 생각했습니다.

이 작가의 만화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친구"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것 같군요..

"친구"가 진짜 생긴다면.. 저도 "친구"의 지지자가 될것 같군요..

겐지의 동료도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옛날보다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전에는 언론 매체에서 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직대통령한테
욕한번 쓴적이 없는데..

요즘엔 좀 다르죠.
이번엔 "악마의 성지"인 국회를 조금이나마 언론에서 욕하고 있으니깐요.

다만..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의문이군요.

경찰의 "전두환 대왕님" 보디가드 하기 정말 과관이더군요..
제가 초등학교때(80년도) 거금 만원과 부모님께서 내신 2,30만원의 상당의 "금강산 댐" 대응 "평화의 댐(두환이의 자금모으기)" 만들기 성금은 언제나 돌려 받을수 있을까요?

고작 블로킹 하나, 고작 25점 중에 1점, 고작 부활동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그때가 네가 배구에 빠지는 순간이야"

drops02의 이미지

KLDP에서는 안봤으면 하는 글들이었네요. 나름데로 글을 전부 읽으면서
느끼는것도 있고 도움도 되었지만..

별로 힘없고 빽도 없고 더더욱이 돈도 없는 입장에서..

그냥 잊고 내 나름데로 잘 살아가자는 것 뿐입니다. (잘못된 생각일까요?)

그저 잊고 현실도피를 하고 싶은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쉽게 밖으로 나오진
못하고 있습니다. :(

머리는 느려지고 늘어가는건 담배 꽁초 수..

불꽃오리의 이미지

본문만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글 올리면 역시 다~ 보겠죠? ^^;

저 남매...지금은 먼 이국땅에서 행복했으면 합니다.

세계 최고의 OS 개발자 - 오리
KLDP 가입시 해야 할 일
목표 : 세계정복
'X-MAS, 석탄일을 평일로 한글날과 오리의날을 국가공휴일로 만들자.'

nethyun9의 이미지

저는 이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도 저는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을겁니다.

펭귄맨의 이미지

우리나라의 현실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 아닐까요?

우리나라 욕하고, 정치인들 욕하지만, 그것들이 다 우리들의 자화상 아닐까요? 기득권들의 이기심. 시기. 질투 이런것들을 우리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집단에서 텃세, 이기심, 기술을 공휴하지 않고 혼자만 간직하려고 하는 이기심... 등이 얼마나 심한지 아십니까? 저는 엔지니어 시절 이런것들을 무수히 타파하려고 노력많이 했습니다. 허나, 결국 회의를 느끼고 그 회사를 떠났습니다만.....

권력욕.. 이거 군대를 겪어보신 분들은 알수있을 겁니다. 한낫 꼴같지 않은 상병,병장 달고 쫄따구 앞에서 위세떨려고 합니다. 마치 자기들한테 쫄병들이 좀 소홀히 하면 자길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한딱가리 들어가죠.

제가 군대에서 최초로 사람한테 실망한적이 한번 있습니다. 고참 군종병이 있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죠.. 휴가 복귀하러 시내에서 같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고참 왈

"에이 오늘 휴가 복귀해서 기분도 엿같은데. 애들이나 집합시겨?"

전 그이야길 듣고 아무말도 안했지만, 어이가 없었죠. 이게 대부분우리의 모습이죠. 병장만 되도 군대에서 이렇게 위세떠는데, 검사, 판사, 국회의원 되면 얼마나 눈꼴시려울지 않봐도 훤합니다.

전, 군대 쫄따구때 결심을 했습니다. "난 고참되면, 후임병들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겠다" 고 말이죠. 정말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랬더니, 졸라 개기는 놈들이 생기더군요. 아무튼 후회는 없었습니다. 제가 원한 것이니까요.

얼마전, 공공근로를 나갔습니다. 옆자리에 소아마비 장애인 아줌마랑 같이 문서입력작업을 했습니다. 같이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밥굶고 다니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그랬더니 그아줌마가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녜요. 많아요" 하는 겁니다.

전 부끄러웠습니다. 그 아줌마는 집에 수돗물이 않나와서 씻지도 못하고 나올때가 많았습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전산db 작업에 하청 기업들은 장애인들을 많이 고용합니다. 그래야 세금등에서 해택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아줌마랑 같이 일하게 된것입니다.

말로만, 분배 분배 외치고 다녔지.. 대부분의 사람들, 자기 주변에 증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그만 관심이라도 주고 있는지... 전 그렇게 못했습니다. 참 쪽팔린 일이죠.

제가 30대 초반입니다. 여러직종에 일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대기업연구원, 공무원, 공안, 트럭운전수....

사람맘이 간사하게 잘된 친구들하고는 선뜻만나지는데, 잘 못된 친구들 하고는 이상하게 거리가 쫌 꺼려지더군요. 이러면 않되는데... 하면서도, 제한된 시간동안 좀 나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좀 덜해집니다.

저만 그럴까요? 아닐껍니다. it 분야도 구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찔들은 중찔이나 하찔하고 별로 만나기 싫어합니다.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잇는 분 별로 없을겁니다. 하찔들의 열등감 때문인지.. 상찔들의 교만함 때문인지, 아니면 상찔과 하찔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확대해 보면 영락없이 판박이입니다. 검사끼리,판사끼리,재벌끼리,정치인끼리 끼리끼리...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펭귄맨

june의 이미지

전,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에 삽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저와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산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람에게는 행복추구권이 있기 때문에,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떠나는 것에대해서는 찬성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다만 떠나지 못한다면, 현재 위치에서 만족하는 법과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는 법을 찾아야죠.

암튼 씁쓸한 글이네요.

커피는 블랙이나 설탕만..

tinywolf의 이미지

방금전 피자를 먹으면서..

아이큐는 상대적인 수치이고.. 100이면 평균이니.. 전세계에 100이 안되는 사람이 절반정도 있다는 얘기들을 하다가..
-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단 왠만하면 100이 넘으니 엄청 똑똑한 나라구나..
- 애들도 너무 똑똑하니 고교 과정의 모든 과목들이 박사 만들 수준으로 어려워야 변별력이 생기겠지.. 그래서 어렵구나..
- 워낙 똑똑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할 능력이 되니 각종 부정들이 생기는 거구나..

하는 잡담들 하다가 내려온 참인데..

요즘들어 부쩍, 사람들이 조금 멍청하다면.. 순진하고 착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중입니다..

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