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권순선의 이미지

요즘 부쩍 옛날 생각이 나서 예전에 놀던(?) 곳에서 제 흔적을 찾아보니 제가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날이 1996년 10월 5일이더군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모습으로 오긴 했는데 처음 시작했던 때를 찾으니 제가 썼던 글이지만 참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쓸쓸하기도 합니다. 그게 벌써 1996년이었다니... (왜 쓸쓸하지...)

그런데 모티프 라이브러리 이야기는 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

저 시절을 기억하는 분이 과연 계시려나....

쓴사람: cessi (어쭈구리 놀구있네~~)      글상자: <computer/Unix_Linux>
날  짜: 1996년 10월 5일(토)  7:02 AM
제  목: [초대]드디어 홈페이지 새단장을 끝냈어요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오늘밤을 꼬박 샌 결과 방금 홈페이지가 완성되었
습니다.

내용은 초보자를 위한 리눅스 소개, 리눅스 사용법, 관련 링크 사이트, tip, 모티프
라이브러리 배포 등입니다. 이중 가장 흥미가 가는 부분은 아마도 모티프 라이브러리
일텐데요......
저는 이 라이브러리의 성능을 보장할수 없습니다. 한 번도 컴파일에 성공한 적이
없고, 제대로 사용해본 적도 없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이거 가져 가셔서
한번 써 보십시오. 그리고 된다 안된다. 제게 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으아아~~머리가 어질어질 하네요.....밤을 꼴딱 샜더니......
하지만 이제 기분은 개운하군요. 많이 많이 오셔서 보고 가세요.......

주소는 http://www.yonsei.ac.kr/~cessi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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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ssi@bubble.yonsei.ac.kr
<  >
                                                http://www.yonsei.ac.kr/~ce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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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bak의 이미지

네.. 그때부터 저는 이미 ROM이었지만 말이죠..

음.. 아마도 순선님이 그런 사이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다닐때.. - 사실
그때 동호회에서 별안간 나타나서 막 이런 말씀을 하셨던걸로 기억하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음 귀찮다. 말 꺼낸 사람이 먼저 만드슈.. 등등의 약간 냉소적인 반응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만.

뭐 결국 이런 훌륭한 사이트가 나왔고.. 그때 와아. 이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가지 여전히 아쉬움을 가지는 부분은 DocBook 채택후 문서량이 엄청 줄어든것 정도... 넵..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된 이야기 군요.. 전 그때 학생이었는데.. 음 아아 빈둥빈둥 거리면서 놀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codebank의 이미지

1996년도 당시라면 LINUX가 한참 음지에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을때가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MS-DOS에서 한글 라이브러리가 MS-Windows 95때문에 힘을 잃어 가고 있었고
반 MS세력(?)들이 LINUX에서 프로그램을 작성하자고 해서 한참 LINUX에서 프로
그램을 작성했던것이 기억나네요.
회사에서는 MS-DOS를 사용하는데...
LINUX를 설치한 사람중에 X를 띄울 수 있는 사람은 절반정도였고 그리고나서 하고
싶었던것이 한글을 출력시키는 일이 아니였을까요?
그러다보면 좀더 쉬운 방법으로 X-Window 응용프로그램을 작성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결국에는 그 방법이 모티프였던걸로 기억나는군요.
그런데 이것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저작권때문에 LINUX에서 모티프사용에 제약이
걸리니까 생겨난것이 Lesstif였고... 등등등의 사건 사고가 있었군요... :-)
얼마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그렇게 오래되어버린 이야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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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sangheon의 이미지

뺑이를 치고 있었네요. 8)

처음 유닉스라는 녀석인연을 맺은게 91년 12월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SCO 유닉스와 인터랙티브 유닉스를 빌려서 설치했었는데, 인터랙티브를
꽤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네요.

그 뒤로 제닉스 가지고 조금 놀다가, 머드 한다고 솔라리스 조금 쓰고,
리눅스라는 놈이 나왔다더라...해서 설치하려다가 설치 중 정전으로 하드에
이상이 생겨서 그 뒤로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

그 후에 언제 다시 리눅스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이것저것 쓴지는 오래됐는데 금새 흥미를 잃어버리는 성격 탓에
초보 신세를 절대 못 면하는군요. ㅋㅋ

--

Minimalist Programmer

송지석의 이미지

쿨럭..

저는 그때..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수능 시험 준비하고 있었네요. 애궁 (이런 이런, 나이차가.. ㅠㅠ)

제가 하룻강아지였을 때 많은 분들이 닦아 놓으신 것이 있어서 kldp 같은 데에서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참 고맙습니다.

trashq의 이미지

송지석 wrote:
쿨럭..

저는 그때..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수능 시험 준비하고 있었네요. 애궁 (이런 이런, 나이차가.. ㅠㅠ)

제가 하룻강아지였을 때 많은 분들이 닦아 놓으신 것이 있어서 kldp 같은 데에서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참 고맙습니다.

저도 그때 수능 시험준비를.... -_-a

동갑이신거 같은데 너무 멀리 계신것같은 느낌이... -_-;

음... 더욱더 분발을... s(-_-)z

이넘의 서브컴은 왜 자꾸 리부팅 되는겨... ㅠ_ㅠ

세상이 뭐라하든... :)

맹고이의 이미지

우아.. 96년도라면 전 중학교 2학년쯤 되었던것 같습니다-_-;;
리눅스의 'ㄹ'는 당연히 모르고..
컴터는 재껴두고 하루종일 플스만 가져놀았던 시절이네요-_-
대학교 들어와서야 겨우 쬐끔 알게되었는데.. 흠냐
아직 갈길이 너무 먼것 같습니다..
열심히 해야지..!

sh.의 이미지

리눅스를 처음 설치해본게 그해였던거같네요
386DX에 슬랙웨어였는데.....
리눅스 10분 가이드(인포북), 이책 보면서 깔았던가?
ㅎㅎ 지금도 제자리 책꽃이에 얌전이 꽂아놨습니다.
당시 저는 고2였죠^^
386에 리눅스 깔고선, 할게 없어서 다다음날쯤 다시 도스 설치한것같네요 하하

유닉스를 처음 만져본건
중2때던가? 종로에 있는 서울정보처리학원을 다녔더랬는데
실습실에 컴퓨터가 IBM의 메인프레임이었던것 같습니다
터미널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대로 자기 자리에 붙어있는 account치고 들어가서
(자리 순서대로 계정하고 비번이 tty1/tty1, tty2...이랬던거같네요)
옆자리 형하고 talk하고 뭐 그랬죠 하하
그때 강사가 동시에 컴파일하지 말라고.. 그럼 너무 느려진다고
주의를 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좀 열심히 계속 할걸.. 지금은 별로 할줄 아는것도 없고 에구구..

버그소년의 이미지

96년 재대후 후배녀석이랑 학교 골방에서 리눅스를 가지고 삽질하던때가 생각나네요.. ^^;

그때는 랜카드가 BNC도 달린 10M짜리가 한 3-4만원정도 한것같은데..

돈이 없어서 프리터포트로 486 두대를 연결해서 DOOM II를 멀티로 해본다고 엄청 삽질을 했었죠.. ^^;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구.. 되더군요..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

그걸 가지고 리눅스로 연결도 해 보구... 흠....

졸업여행비 삥땅처서 거금 10만원이나 들여가며 더미허브도 장만하고...

옛날 생각이 많이나고 지난과거얘기만 하는건 현재나 미래가 과거보다 못하단 뜻인지.. 쩝..

아~ 그때가 그립네요..

가끔은 밥을 굶어도 살 수 있다.

albamc의 이미지

전 그때 대학교 1학년 이었는데...
리눅스엔 관심도 없고 ... 오직 술만 퍼마셨다는.. ㅡ.,ㅡ
이런 얘기 나올때마다 ...
아 이제 나도 어느정도는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픕니다...

^^*

mtorange의 이미지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화면이 나와서... 나리한마당이네요..

처음에는 solaris용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linux로 포팅했었지요.... 아마 지금도 linux서버에서 서비스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별로 없지만..

10년전에 5.25 inch floppy 3장으로 386 PC에 SLS(아시는분이 계실라나..) 버전 설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저 PC에서 shell prompt가 뜬다는 사실이 신기했었는데..

인터넷도 안되던 시절 학교에 가서 3.5 inch floppy 40장에 slackware 받아와서 한장씩 갈아끼워가면서 깔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는 시간이 남아 돌았었는지, 한번 깔다 floppy read error라도 나면 첨부터 다시 해야 했다는.......

인포북에서 나온 리눅스 10분 가이드를 보셨다는 분도 계시네요.. 친구랑 같이 썼던 책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리눅스 서적이었지요.. 그게 교보문고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나서 갑자기 리눅스 책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죠....

요즘은 대형 사이트의 메인서버로도 linux가 많이 쓰이니.. 격세 지감을 느낍니다..

pynoos의 이미지

전, Warcraft II 를 kali 라는 IPX tunneling 프로그램을 구해서 외국애들과 놀면서 ladder 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는데.. 그 비슷한 홈페이지를 c 로 cgi 구현해가면서 만든 시절이었지요.

교수님이 잠시 연구실을 비우는 통에 Network으로 만나는 게임의 세계는 Network과 Web 등의 매력에 한참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학교 네트웍이 subnet이 안되어 network traffic이 많아져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486 linux에 lan card 두장꽂아 bridge 프로그램 받아다가 만든 기억이 납니다.

모든 지식은 어떻게 하면, kali를 사용하여 Warcraft 2 를 잘할 수 있을까에 맞추어져 있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순위를 조절하여 좀더 흥미를 돋울 수 있을까..
이런 고민하며 겜했던 ....

폐인의 삶.

권순선의 이미지

mtorange wrote: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화면이 나와서... 나리한마당이네요..

처음에는 solaris용으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linux로 포팅했었지요.... 아마 지금도 linux서버에서 서비스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별로 없지만..

10년전에 5.25 inch floppy 3장으로 386 PC에 SLS(아시는분이 계실라나..) 버전 설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저 PC에서 shell prompt가 뜬다는 사실이 신기했었는데..

인터넷도 안되던 시절 학교에 가서 3.5 inch floppy 40장에 slackware 받아와서 한장씩 갈아끼워가면서 깔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는 시간이 남아 돌았었는지, 한번 깔다 floppy read error라도 나면 첨부터 다시 해야 했다는.......

인포북에서 나온 리눅스 10분 가이드를 보셨다는 분도 계시네요.. 친구랑 같이 썼던 책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리눅스 서적이었지요.. 그게 교보문고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고 나서 갑자기 리눅스 책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죠....

요즘은 대형 사이트의 메인서버로도 linux가 많이 쓰이니.. 격세 지감을 느낍니다..


맞습니다. 나리한마당.... 저때가 제가 학부 4학년때였는데 거의 저기서 많이 놀았었죠. 10분가이드 리눅스 책은 저도 샀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 책이 처음 서점에서 리눅스에 대해 다룬 책이었고요. 서울역에서 집에 내려가려고 기차를 기다리다 시간이 남아서 잠깐 지하의 한양문고(지금은 없어졌죠)에 갔다가 책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내용도 보지 않고 바로 사서 두고두고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책은 그 뒤에 잃어버렸습니다. :( )그책의 저자분이시라니 정말 반갑습니다.

저자분의 이름을 찾으려고 구글 선생님에게 물어보다가 우연히 아래 홈페이지도 발견했군요. 아마 5-6년 전은 족히 된것 같은데 옛날생각 진짜 많이 나네요.

http://kmh.ync.ac.kr/unix/linuxFAQ/aboutlinux.html

fx2000의 이미지

오네요...

신기합니다...@.@

그당시엔 어떤 식으로 계정을 나눠줬는지...

궁금하네요~^^

세상은 견고하고 삶은 유희가 아니다...

se7enkey의 이미지

:o

저 위엣분이 말씀하신 ....

리눅스 10분 가이드(인포북)...

저도 그책 기억납니다.

리눅스책이 서점에서 한글로 나왔다는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realian의 이미지

정말 오랫만에 보는 화면이군요..

동아리 형이 공개 게시판 소스 뜯어고쳐 만들었었는데..
그때 저런 형식의 비비가 몇개 있어서 (릴리, 이대, 등등.. 많았죠..)
그쪽 중의 한갠가 보다.. 했었는데 나리에도 계셨었다니 기분이 묘하네요..

요즘도 되기는 합니다.. 정말로 사람이 없죠..

정말 95,6,7년 그때는 텍스트 비비의 전성시대였던거 같습니다..
98년인가..부터.. 홈페이지 열풍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더군요...
졸업전에 있던 동아리에서 관리를 했던지라.. 가끔 들어가보곤 하는데..
웹 화면보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 :wink:

오랫만이라서 반가워서 끄적여봤습니다.....

..........No Sig.........|
-------------------+

realian의 이미지

fx2000 wrote:
오네요...

신기합니다...@.@

그당시엔 어떤 식으로 계정을 나눠줬는지...

궁금하네요~^^

그때는 학교에 인터넷 제대로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었습니다..

bubble 이라는 호스트에서 개인 계정을 분양(?) 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교내 전산원 가서 신청하면 되었었던거 같군요...
www 도메인에서 바로 계정 주었던 것은 좀 나중의 일 같군요...

유료로 쓸수 있는 ibm 쪽 플랫폼도 있었던 것 같고..

재미있었던건.. bubble(그때는 네임서버, 메일서버 혼자 다 했었습니다..) 이라는 시스템 말고
suny 라는 시스템도 잇었는데.. 이 불쌍한 suny는 마루타 였습니다...

bubble이랑 똑같은 종류의 시스템이라서..
bubble에서 하드웨어 fail 발생하면 suny꺼 뽑아다가 껴서 썼습니다...

신청하기 귀찮아서 알음알음으로 suny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그때마다 슬퍼했죠..
불쌍한 suny..

요즘이야 머.. bubble이라는 호스트 네임도 사용계속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머신은 DNS로 쓰고.. 메일서버, 웹서버 등등 다 분리되었죠..

참고로.. 우리의 불쌍한 suny는 결국 98년 어느때쯤인가 생을 마감했던 거 같군요...

p.s. 그때는 10Base2 동축케이블로 텍스트 환경에서 telnet 접속해서 수강신청 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물어보니.. 공대쪽에 기가비트 이더넷 공사를 하고 있다더군요...
세상이 좋아지긴 했나 봅니다... (아니면.. 등록금이 많이 올랐거나요.. 8)

..........No Sig.........|
-------------------+

june8th의 이미지

bubble과 suny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옛 생각이 나네요..
집에서 suny로 telnet 접속해서 slip -p 로 인터넷 연결해서 썼었더랍니다.
왜 그렇게 썼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당시 집에서 co-lan (이름 맞나요?)이 최고의 네트워크 환경 이었죠.. :-)

fx2000의 이미지

http://yis.yonsei.ac.kr/service/application_down.html
http://www.yonsei.ac.kr/yu/ecampus/computer/computer_02.html

(아, 이 써니는 그 때 써니가 아닐련가...--a..)

여튼......옛날 얘기들으니 재밌네요..

suny를 개인 홈페이지용으로 분양하는거보니..

www.yonsei.ac.kr로는 홈페이지분양 안 하나 보네요..

엥..

하나 가지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세상은 견고하고 삶은 유희가 아니다...

낙엽의 이미지

으아.. 92년도에 처음으로 Unix를 5.25' 플로피 33장으로 설치했던 기억이 나네요. :-( 상당히 끔찍한 작업이었죠.

처음에 밉스 터미널에서 작업하면서 이런 터미널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10년이 훨씬 지난일이 되어버렸네요.

전 첨에 대우 MSX가지고 놀았는데요 :-)

주변에 친구중에 apple을 가지고 노는걸 보고 부러워해서 근 반년을 떼쓰다시피해서 MSX를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나왔던 소년잡지에 게임 코드가 올라와서 그걸 다 도화지에 옮겨서 대형 폰트로 바꾼뒤 처음 코딩을 했던것이 제 첫 코딩이었죠.

물론 0과 O를 구분못해서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았지만요 ㅎㅎ

당시 io로는 테잎레코더를 사용했는데(음악듣는것과 동일한 테잎이었죠) 그 삐~~ 소리를 들어야 복사가 되는줄 알고(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시끄러운 와중에도 알카로이드와 wiz라는 게임을 친구한테 복사해와서 집에서 밤새며 오락했던 기억도 납니다.

흐음.. 어느새.. 벌써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이 좀 이상한 생각이 드네요.

warpdory의 이미지

리눅스 발전의 계기... 원동력(?)
리눅스를 처음 어떻게 만났습니까 ? 그리고, 어디에 쓰는지 ? 그리고, 왜 쓰는지요 ?

이승운 (akpil@kldp.org)

조금 지난 얘기부터 꺼내보도록 해보겠다.
1993년 군대에서 막 전역하고 나와서 학교에 놀러 갔다가 원자핵물리를 전공하는 어떤 선배가 졸업논문 쓴다고 좀 도와달라고 해서 밥한끼에 넘어가서 실험실에 앉아서 하안글이나 워드스타인줄 알았는데, ex 라는 편집기로 이상한 것을 입력하고 있는 것을 처음 봤다. 물리과나 수학과가 아니면 유심히 보지 않으면 뭔지 모를 이상한 기호들이 화면에 떠 있고, 확장자도 txt 나 hwp, doc 가 아닌 tex 인 파일들은 하드디스크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선배가 ‘이 파일들이 뭐에요 ?’ 라는 나의 질문에 답 대신 줬던 책은 The TeX Book 라는 책이었고, LaTeX를 ‘라텍스’라고 읽었다가 엄청나게 무식하다는 말도 들었다. - TeX 은 ‘텍’ 이라고 읽고 LaTeX 은 ‘라텍’ 혹은 ‘레이텍’ 이라고 읽는다.
그런데, 당시 도스에서는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64KB - 640KB 가 아니라 x86 CPU에서 세그먼트 하나의 단위인 64KB - 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TeX 파일은 컴파일을 해서 dvi 로 만들어서 그것을 다시 포스트 스크립트파일은 ps 로 변환시켜 인쇄를 해야 하는데, TeX 파일이 조금 커져서 64KB를 넘기면 컴파일이 안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좋은 해결책이 있었다. 바로 OS/2 였다. 집에 있는 386 컴퓨터를 학교로 들고 가서 OS/2에서 EMTeX 으로 64KB 가 넘는 파일들도 간단하게 epm 이라는 OS/2 내장 문서 편집기의 도움으로 편집하여 처리하였다. 선배도 OS/2를 깔아서 쓰려고 하는데, 문제점이 있었다. 당시 OS/2 는 AMI 바이오스에서는 키보드 바이오스가 F 버전 이상의 것을 요구했는데, 그 선배의 보드는 8 이었다. 키보드 바이오스가 보드에서 떼어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당시에 OS/2 사용자들은 용산이나 청계천에서 바이오스 F 버전을 3천원 정도에 사서 쓰고 있었는데, 선배가 쓰던 보드는 땜질이 되어 있어서 불가능했다.
통신상에서 이리저리 게시판을 뒤지고 다니다가 PC 급에서 기본 메모리 제한을 받지 않는 운영체제 중에 리눅스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용산으로 뛰어가서 3.5인치 디스켓 60여장에 복사해 왔다.
그전에 학과 서버로 SunOS를 쓰고 있었기 명령어나 그런 것은 그다지 생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TeX 도 가져다가 깔고 - TeX 의 글꼴 파일(메타 폰트) 컴파일 하는데만 3일은 걸렸었다. -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텍스트 환경에서만 쓸 수 있었다. X 가 잡히지를 않았었다. X를 띄우고, 그 위에 한텀을 띄워서 한글을 쓸 수 있게 되고, 그러기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 X를 띄우고, Xeyes를 띄워서 마우스를 이리 저리 빙빙 돌리면서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 그러면서 점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리눅스는 8년이 지났다.
처음엔 TeX에서 메모리 제한없이 작업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던 리눅스가 지금은 HWP/X R5 도 깔아서 이 글도 쓰고 있고, 가우로 하이텔에 접속하여 글도 쓰고, xmps 로 동영상도 보고, xmms 로 mp3 도 듣고, 허접하지만, 내 웹페이지도 돌리고 있고, 아직은 영어만 되어서 조금 불만이지만, 스타오피스로 2주에 한번씩 있는 세미나 프리젠테이션 자료도 만들어서 발표하고 있다. 거기에 가끔 퀘이크 류의 게임도 하고, 심심할 때면 시스템 부하를 얼마나 버티나 궁금해서 커널 컴파일에서 make -j 옵션을 줘서 시스템 로드가 50을 넘기는 것을 보면서 ‘음 오래 버티는군.’ 이라고 지켜보기도 하고, 특정한 배포판에 얽매이는 게 싫어서 레드햇의 rpm에서 벗어나 데비안도 깔아 보다가 하드 홀랑 날리고, 그나마 /home 은 백업을 해둬서 살리기도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재미있어서 하고 있는 일이다. GNU 선언문 혹은 성당과 시장을 읽고 눈물을 흘리면서 밤새 흥분에 휩싸여 ‘와 난 리눅스 쓸 꺼야.’ 라고 했다면 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GNU 선언문을 읽은 건 리눅스를 쓰고 난지 한참 뒤인 1998년 여름방학때였다. 읽고 나서도 별로 감동을 받은 것도 없었다. 그저 ‘음 이런 내용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재미난 것을 하다 보니 계속 쓰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Apple II+ 라는 8비트 컴퓨터를 처음 만지면서 컴퓨터를 쓰게 됐지만, 그동안 리눅스만큼 많은 재미와 흥미를 불러 들였던 적은 없었다. 그 ‘재미’ 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커널 해킹이나 VGA 카드 등의 해킹을 통해 드라이버 지원이나 성능향상에 기여하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음악을 듣고, 동영상 보고, 게임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배포판 여러개를 섞어가며 최적의 환경을 만들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일주일씩 밤새워서 리눅스를 최적화 시키고 난 다음에 rm -rf / 하는 재미로 리눅스를 깔아보는 재미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저렇게 깨끗하게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운영체제도 PC 급에선 만져보기 쉽지 않다.

어느 누구도 리눅스를 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리눅스 개발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도움을 주고, 아직은 불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 그런 일들을 하는 것을 왜 그러느냐고 한마디로 줄인다면 “재미가 있어서”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고통, 분노, 힘듦 등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지만, 심심하다는 것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고통이 있으면 아프다고 소리라도 지를 수 있고, 화가 나면 책상에 있는 마우스라도 집어 던질 수 있고, 힘든 일은 투덜거리기라도 할 수 있지만, 심심할 때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리눅스는 그러한 심심함을 이길 수 있는 “재미있는 무엇”이다. 그 무엇이 장난감이 될 수도 있고,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일거리일 수도 있다.
리눅스를 쓰면서 많은 재미를 느꼈었다. 커널이 새로 나오면 어떻게 하면 덩치를 줄여서 메모리 1byte 라도 더 쓰게 할까 하면서 커널 컴파일 수십번 해 보기도 하고, X윈도에서 글꼴 바꿔 보려고 설정파일 수십번 뒤지고, 사운드 카드에서 소리 나게 하려고 OSS, ALSA 등을 이 잡듯이 뒤지면서 찾아내서 그 사용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은 앞서간 사람들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더 발전 시켜서 더 편하고 좋게 개발하고... 그러면서 리눅스는 더 쓰기 편하고 강력해졌다고 본다.
재미를 느껴서 리눅스를 쓰게 되고, 쓰면서 불편한 점을 편하게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면서 리눅스는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리눅스의 매력이고, 리눅스 발전의 원동력이다.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미”라는 것 말이다.

--------- 이랬었군요.


---------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sh.의 이미지

..........문제점은
10분에 볼수가 없는 책이라는 점이죠 :(
10분씩 끊어 보라는 뜻이었을까요? :)

저자분이시라니 정말 반갑네요~!
오주일씨이신가요? 책에는 오주일 著 라고 적혀있는데......

이 책은 지금도 어쩌다 한번씩 꺼내봅니다
리눅스를 주로 쓰지를 않아서 명령이나 옵션이 잘 생각 안날때 찾아보곤 하네요

mtorange의 이미지

bs0048 wrote:
..........문제점은
10분에 볼수가 없는 책이라는 점이죠 :(
10분씩 끊어 보라는 뜻이었을까요? :)

저자분이시라니 정말 반갑네요~!
오주일씨이신가요? 책에는 오주일 著 라고 적혀있는데......

이 책은 지금도 어쩌다 한번씩 꺼내봅니다
리눅스를 주로 쓰지를 않아서 명령이나 옵션이 잘 생각 안날때 찾아보곤 하네요

오주일은 저랑 같이 책을 썼던 친구고요.. 저는 그때 "10분 가이드 유닉스" 라는 책을 출판했기 때문에 책 저자명에 제 이름은 안넣었습니다..

그 친구도 지금 저랑 같은 회사에서 프로그램짜고 있습니다. ^^

fuzzy의 이미지

codebank wrote:
1996년도 당시라면 LINUX가 한참 음지에서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을때가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지는 그때 당시(96년)에 군대에서 뺑이 치고 있었다는 ㅡ,.ㅡ
97년도에 제대했지여...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fuzzy의 이미지

방금 책 배송받았거든여.

대용량 데이터베이스 솔루션 I,II 두권 다샀져.

근데, I권이 1996년에 초판을 냈네요.

이 책을 낸 회사 정말 잘 나가던데요.

아마도 십분만에 튜닝하고 몇천만원을 받아갔다는 전문가도
이회사 소속인듯..

역시 회사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10년은 걸리나 봅니다.
요즘 1,2년 된 벤쳐 회사들 어렵다고 그러는데, 어쩌면 당연한
단계인듯..

10년, 20년이 지나면 자연히 회사는 안정화될거라는... 그만큼 많은
기간이 소요될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리눅스도 어쩌면 그마만큼의 기간이 소요되어서, 더욱더 성장하겠져
지금도 안정적이긴 하지만 ㅡ.ㅡ;

권순선의 이미지

자유게시판에 어떤 분이 flash mob에 대해 올리신 글을 읽고 이곳의 몇몇 사이트 오픈 기념일에 맞추어서 한번 flash mob이란걸 해보면 참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각 사이트들의 개설 일자를 꼽아보던 중 이곳의 모태가 된 96년도의 제 개인 홈페이지 개설일이 바로 얼마전 10월 5일이란걸 뒤늦게 떠올리곤 지나온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 글을 나리비비에 올린게 바로 엊그제 일인 것 같은데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그동안 저는 학교를 졸업했고, 아저씨가 되어 직장에 다니면서 예쁜 와이프랑 결혼도 했고... 기쁜 일, 슬픈 일...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새로운 사람, 떠나가는 사람, 말없이 사라진 사람, 소식이 궁금한 사람, 말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반갑게 나타나는 사람.... 7년이란 세월이 짧지 않은 세월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아낌없이 공유해 주셨으며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계신 분들이 계신 것을 보니 기분이 좋네요. 그런 분들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이곳은 벌써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KLDP 개설 7주년을 자축하며 냉장고에서 캔맥주나 하나 꺼내서 마셔야겠습니다.

kookooo의 이미지

fx2000 wrote:
suny를 개인 홈페이지용으로 분양하는거보니..

www.yonsei.ac.kr로는 홈페이지분양 안 하나 보네요..

정말 옛날기억이 새록 새록이군요.... 8-9년 이상 된거 같군요..
하긴 지금도 학교에 있으니 좀 나은 편이지만요..

연세대학교 전체 홈페이지를 구축하면서 www.yonsei.ac.kr은 가져갔구요..
suny는 여전히 개인위주입니다. 또 tobit 이라는 놈도 생겼는데 거의 활용도는 없는거 같습니다. sunny는 개인 tobit 은 기관...

그리고 bubble이 하던 메일 서비스는 mail.yonsei.ac.kr 로 바뀌었습니다.
그당시 MX 레코드를 몰라서 그랬는지 -_-;;; 그럴리야 없겠지만....???

한때 연세대학교 전체 메일 서버의 이름을 공모한다고 했던거 같아요...
그 메시지 보고.. 왜 id@yonsei.ac.kr 으로 안쓰고? 했었는데 -_-;;;;
결국은 mail.yonsei.ac.kr 에 id@yonsei.ac.kr 로 되었더군요..
현재는 웹메일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요..

95~96년도에 한참 유행하던 BBS, 시대에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lily와 nari 는.. 후후... 그때의 DEC 울트릭스 였던 lily 는 몇년전부터 BBS 기능은 없어지고 이메일 전용으로 사용되었던거 같습니다.

오랜만에 옛기억이 -_-;;;

advanced의 이미지

전 그때 중3이었던 기억이..

그때 프세에서 리눅스 특집을 다루었었을꺼에요

그때 부록으로 슬랙웨어를...

전 그때 하루 며칠 정도 삽질해서 리눅스를 설치했다가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결국 지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다음엔 대학교 1학년때 군대 가기전에 휴학하고 리눅스를

만졌었습니다.

그때 잠깐 만지고 갔는데 너무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군대에서 외박 나올때마다 보았던 http://screen.sarang.net

스샷들중 아쿠아 테마를 보고 꼭 전역 하면 그놈에 아쿠아테마 써야지

다짐 했던것이 지금 까지 왔네요

- Advanced -

lunarainbow의 이미지

제가 처음 kldp에 오기 시작했던것이 대학교 1학년때니깐.. 벌써 꽤 오래 지났네요.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 여기던 kldp가,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것 같아요.

7년이라니... 이제 얼마 안있으면 자그마치 10년이나 지나는 것이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김충길의 이미지

리눅스 사용하기 위해 slackware 배포판을 5.25인치 플로피에 몇십장
밤새 다운로드 받은 기억이 나네요..

그걸 설치해볼 컴터가 없어서 학과 컴퓨터실에서 놀던 기억이..

screen + vim + ctags 좋아요~

김충길의 이미지

10분가이드 그 책 사서 본거 같군요.

작은 문고판 사이즈 맞나요..

mtorange wrote:
bs0048 wrote:
..........문제점은
10분에 볼수가 없는 책이라는 점이죠 :(
10분씩 끊어 보라는 뜻이었을까요? :)

저자분이시라니 정말 반갑네요~!
오주일씨이신가요? 책에는 오주일 著 라고 적혀있는데......

이 책은 지금도 어쩌다 한번씩 꺼내봅니다
리눅스를 주로 쓰지를 않아서 명령이나 옵션이 잘 생각 안날때 찾아보곤 하네요

오주일은 저랑 같이 책을 썼던 친구고요.. 저는 그때 "10분 가이드 유닉스" 라는 책을 출판했기 때문에 책 저자명에 제 이름은 안넣었습니다..

그 친구도 지금 저랑 같은 회사에서 프로그램짜고 있습니다. ^^

screen + vim + ctags 좋아요~

fibonacci의 이미지

제가 95년도에 대학 입학해서 리눅스를 처음 구경했었습니다.
슬랙웨어가 깔린 커널도 1.x대였던, 학과 서버였습니다.
기종은 펜티엄 90정도로 기억합니다.
그 옆에 피자박스 SUN 2대가(super sparc) 감히 PC는 따라올수 없다는 듯, 거대한?20인치 모니터와함께 위용을 뽐내고 있었죠..
4년뒤에 이 두놈은 리눅스 PC서버의 실용성에 밀려 폐기처리됩니다만 -_-;

그때는 초고속 인터넷을 학교에서밖에 쓸수 없던 시절이라,
서버의 계정은 ztelnet을 이용하여, 나우누리에서 프로그램 받는데 주로 썼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
그때까지는 리눅스란것이 단지 경이의 대상이었고, 그 자체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97년인가? 프세를 샀는데 알짜레드햇이 들어있었습니다.
너무나 깔고 싶어 집에 깔았었는데.. P133 64M RAM -_-;물론 그때도 고속 인터넷은 기억도 못하던 시절. 네트워크 없이 리눅을 하려니까 너무 심심하더군요.
그래서 학과 컴실에 몰래 한대를 리눅스 깔다, 교수님께 발각? 을 당하고
그후 4년동안 학과 서버는 제가 관리했습니다. 요새는 리눅이 많이 퍼져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다룰줄 알지만 그때만 해도 리눅을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SUN관리하기가 귀찮아서,(SUNOS가 알게모르게 리눅과 달라서...) SPARC용 리눅을 깔아서 SUN을 사용하기도 했었고, NeXT 에 NeXT용 리눅을 깔아보기도 했었습니다. -_-; 학교 물건가지고 별장난을 다쳐봤네요

저는 kldp는 98년에 처음 알았습니다.
펭귄이 있던 kldp배너가 전 개인적으로 더 귀엽고 좋은데요^^;
여하튼 잡담이 길었네요..

No Pain, No Gain.

ssamjin의 이미지

그러니까...회사라고 첨 들어와서 만진게 VAX705 였네요...
그때 한동안 VMS와 Unix 공부하고 있었는데...(음...아마 90년 이었을꺼여요...)
한참뒤에 Linux를 플로피 수십장(지금은 기억도 안남...) 가지고 깔고나서(결국 담날 결근처리했음)
Shell Prompt가 내 PC에서 뜨는것 자체가 신기했었는데....
(요즘 반성 많이 하고있음...그래도 그땐 직딩생활 힘들어서 지식 나누는거 생각도 몬했음...ㅠㅠ)
.....
그리고 나서 또 한참뒤...몇날밤새워 XLib 가지고 프로그램짰더니...
며칠뒤 선배가 Motif 깔아서 몇시간만에 더 그럴싸한 거 보여줄때의 허탈감....
....
그리고...한참의 또 한참뒤....
....
지금 난 뭘하고 있는지....ㅠㅠ...(얄팍한 잔머리 가지고 Linux 업무용DB Applicaiton 서버 장사 한다우...ㅠㅠ)
.....
그래도 그때 그시절 얘기 들을 수 있는 데가 있어서 참 좋군여....^^
....
여기계신 모든 이에게 참 좋은 날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쌈 안하고 살까...ㅠㅠ

stannum의 이미지

전투복 입고 열심히 대침투 작전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ㅡㅡ;

lobsterman의 이미지

저의 경우는 그 당시 군대를 재대하구서 os/2 워프를 열심히 삽질하던 시기였읍니다.

인터넷을 이제막 접할수 있던 시절이었구요...

하이텔 os/2 동호회가 그 때 당시 저에게는 유일하게 드라이버 공급역활을 했었던것 같았읍니다.

아래한글에서 os2용으로 포팅하여 배포를 해서 받은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을 스켄했읍니다...^^;

아직도 가지고 계신분이 계신지 모르겠군요...?

os/2에서 돌아가던 제일 쓸만한 프로그램이었읍니다.

리눅스는 알짜 6.0을 486dx2 50/메모리 4메가/하드 170메가/SVGA/...

사양에서 설치를 했었던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무한한 상상력과 강한실행욕구는 엔지니어의 마지막 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