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어느 물리학자가 보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
정말 보기 드물게 좋은 글입니다. 꼭 끝까지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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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어느 물리학자가 보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 /가이우스
“이공계 위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제언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1971년 생으로, 1990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부 5년 다니는 동안은 열심히 데모만 하다가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지난 2001년 박사 학위를 받고 2001년 3월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BK21 사업단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물리학자입니다. 아직은 내세울만한 업적도 없고 박봉(연봉 1400)에 시달리지만 나름대로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인구에 회자되는 이른바 “이공계의 위기”에 저 역시 큰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각종 언론에서 제기하는 위기의 진단과 해결책이 뭔가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대학, 그리고 물리학과, 그것도 입자물리 이론이라고 하는 매우 좁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이라, 다른 분야에 대해 제 분야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특히, 공과대학의 세세한 형편이나 분위기는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 영민치 못한 관계로 제 생각이 제 주변의 매우 협소한 고민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도 사실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이공계” 종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으리라는 판단에 제 짧은 생각을 글로 옮깁니다.
저는 많은 중요한 통계적 수치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본문에 간혹 인용하는 숫자들도 혹 잘못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 점 미리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편의상 경어가 아닌 평어로 쓰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이공계의 위기인가, 공대의 위기인가?
최근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의 위기의 “증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고등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
- 이공계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딴짓---사시나 행시, 아니면 수능 다시 봐서 의·치·한(의대·치의대·한의대) 등---을 많이 한다.
- 대학생들이 졸업해도 취직이 잘 안된다.
- 어렵게 취직을 해도 돈을 많이 못 번다.
- 저임금에 만족하고 살려고 해도 사회적 박대와 국가적 냉대가 심하다.
- 그나마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도 점점 빨라진다 (원래 빨랐다).
- 이 모든 현상을 듣고 보고 자란 고등학생들이 더더욱 이공계를 기피한다.
- 이로써 이공계 위기(혹은 기피)의 악순환이 완성된다.
각종 매체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떠도는 이공계 위기와 관련된 내용은 위 싸이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공계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도 위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좀 더 축약해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는데 왜 대우가 이 모양이냐”로 요약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왜 내가 고민하는 것은 저기 없을까, 왜 다른 업계 종사자들 얘기처럼 들릴까, 난 이공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이공계생들이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거나 창업하는 반면 나는 계속 학교에 남아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내 고민이 깊어질수록 나는 위의 “악순환 공식”이 그저 사태의 겉모습, 극히 일부 드러난 부분만을 표현할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이건 제대로 된 진단이 아닐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내어 올 수 없다.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공대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회사에 취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대생과 그 중의 다수인 기업체 엔지니어의 “처우개선”이 “이공계 위기”의 처음과 끝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공대생의 위기”에 불과하다. 물리학자로서의 나의 고민, 나의 위기, 나와 내 동료들의 암담함은 그 뻔한 레퍼토리 --- 열악한 환경, 냉대와 무시 등 --- 로 담아 내기엔 뭔가 부족하다.
이공계의 위기는 결코 공대의 위기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공대의 위기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공계의 위기는 또한 이공계“만”의 위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2. 패러다임의 변화, 이공계의 위기의 본질은 학문의 위기이다.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내 주장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내 주장을 논증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공계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학문의 위기를 들고 나온 중요한 계기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공계 위기의 현실이나 해결책들이 지극히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학문과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각자 따로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아마 다들 잘 이해하리라고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 내의 내적 논리, 다른 그 어떤 분야의 논리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매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우리나라 '이공계'가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사실이고 또한 내세우고 싶은 치적이 많긴 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주장들이 나중에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가 있다. 왜 학문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경제발전에서만 찾아야 하는 건가?
한 나라의 학문의 발전과 융성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적 발전의 맥을 도도히 이어가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들이 한낱 돈 몇 푼의 논리에 빗대어 얘기되어서야 학문이 경제의 노예밖에 더 되겠나.
이공계인들의 푸념을 단순화하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에 크나큰 도움을 줬는데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자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 결국 돈을 얼마나 벌어 들이느냐로 가치매김해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자인 나로서도 이와 관련해 할 말은 많다. 대한민국 대표 상품인 반도체 개발에 고체 물리학이 기여한 바는 가히 절대적이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곳이 유럽 공동 입자 가속기 그룹 (CERN)이고, 전기를 발견하여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사용료”를 내게 한 장본인도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였다. 그러나, 예컨대 전자기 유도의 발견의 가치가, 지금까지 인류가 전기 사용료로 지불해 온 액수로만 매겨질 수 있을까.
돈벌이가 지상명령인 기업체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체를 벗어난 다른 곳 (특히 대학) 에서까지 이런 경제논리가 팽배해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당장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공계인들은 나가 죽으란 말인가. 경제논리는 몇몇 잘 나가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좀 더 많은 돈을 얻어내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전체 이공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내세워 사회적 가치판단을 내리게 하여 결국 자기가 속한 그룹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다.
경제논리는 당연하게도 기업에서 대환영이다. 그들은 고급 인력과 고급 기술과 고급 지식을 아주 값싸게 얻을 수 있다. 돈 안 되는 이공계 분야를 마치 손 안 대고 코 풀 듯 이공계 자체의 몸값 높이기 경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 정책에 의해, 그리고 전 사회적인 돈벌이 지상주의에 의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에 매몰되면 결국 이공계 위기의 문제는 밥그릇 싸움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공계'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면서,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기업이나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혹은 경제발전의 원천기술을 만들어내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 쯤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경제논리가 빚어낸 비극이다. 그런 '이공계' '과학기술자' 속에서 나 같은 입자물리학자가, 남극 세종기지의 대원들이 설 자리는 없다.
이공계의 위기가 이렇게 전면화되기 몇 년 전인 1995년 경 주요 대학에서 학부제가 실시되며 많은 대학 교수들은 우리 나라 기초 학문의 위기를 경고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년쯤 전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았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지금 이공계의 위기는 1990년대에 줄기차게 경고되었던 이른바 “학문의 위기”의 완결판인 셈이다.
이공계 문제를 경제논리가 아닌 학문의 논리로 바라봐야만 이공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지식이 온전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학문적 성과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나 언론 뿐만 아니라 이공계인들조차 자신의 존재 근거를 “경제발전”에서 찾았었다. 이런 관점은 근본적으로 기업 중심적이기 때문에 이공계 자체의 발전 논리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공계가 정말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지금처럼 이공계가 경제논리 앞에서 경쟁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사회와 기업에서 “모셔 가도록” 하려면 이공계 스스로의 존재 근거와 자신만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즉, 기업체들이 경쟁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에서부터 이공계를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있는 학문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만 집중되어 있는 이상 이공계 위기에 대한 의미 있는 대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기껏해야 이공계생 장학금 지급이나 고위 공직자 쿼터제 등의 땜빵책 뿐이다.
3. 학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학문이 융성하지 않고서 한 나라나 세력이 융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 보면 그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학문이 살아나야, 학자들이 대접받아야 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그 진부한 말을 나는 이공계 위기에 대한 근본대책,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 나라의 물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나라의 인문학이 융성해야 된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가?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발전하고 융성하여 학자들이 넘쳐나고 대중화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 것이다. 목소리의 크기보다는 이성과 토론이 지배하고 다양한 가치들이 그 존재의의를 서로 인정받으면서 상호침투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이런 사회풍토 속에서라야만 그 어떤 다른 학문도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다. 물리학이나 여타의 공학도 이런 비탕 위에서 제자리를 찾아 발전할 수 있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 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잘하는데 창의적인 연구는 약하다고들 한다. 그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문학적 풍토의 척박함이다.
이렇게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학자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된다. 아니, 정부가 나서서 기초학문 하는 학자들을 중심에 놓고 국가 정책을 펴야 학문이 발전한다. 그래야, 기업체에서 공학자, 물리학자를 “우습게” 혹은 “싸게” 보지 못한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전반적인 국가 정책은 정반대이다. 국가와 정부 관료들이 먼저 나서서 학자들을 “우습게”, 그리고 “싸구려” 취급한다. 어떻게 하면 대기업들에게 고급 인력을 값싸게 공급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이래서는 학문이 죽는다.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이공계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우리 나라 인문학의 위기, 혹은 사망선고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누가 인문대 대학원 진학해서 공부하려고 하겠나. 교수도 태부족이고 병역 특혜도 없다.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라고 있다. 주로 고문서들 보관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속에 어떤 문서들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다. 박사급 인력을 몇 명만 투입하면 값진 논문들 쏟아질 판이라는데, 이걸 못할 정도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1년에 몇 억이면 아주 훌륭하게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데도 그 몇 푼 안 되는 설비비가 없어서 자료들이 먼지 뒤집어 쓰고 썩어 간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인문학 수준이 이 모양이니 프랑스에서 이걸 트집 잡아 외규장각 도서 못 돌려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가, 퇴계와 율곡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연구소가 일본에 몇 배나 더 많은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을 10년도 넘게 준비해 왔는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고구려를 공부하니 어쩌니 난리 법석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 땅의 인문학이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 일일이 경우를 다 세기도 힘들다.
오랜 군사 독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편법과 술수, 반칙, 적당주의, 지역주의, 권악징선 등등이었다. 이런 폐습들이 이제는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로 발목을 잡고 있다. 원칙을 세우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귀찮거나 번거롭다거나 바보같은 짓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기본”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선진국 진입이나 소득 2만불 시대를 말할 수는 없다. 지난 국민의 정부가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도 아마 이런 맥락이었으리라.
기본이 바로 서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 사회의 기초학문, 특히 인문학을 제대로 세워 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얘기하는 “국민들 의식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한 사회의 인문학의 성숙도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여태껏 우리 나라 정부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학문을 진흥하려고 한 정책을 잘 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틀을 잡고 태평성대를 이룬 시대에는 빠짐없이 학문장려책이 중요 국책사업으로 들어가 있다.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지 무려 반 세기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 제대로 된 국책 사업으로서의 학문진흥책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군사 독재가 30년 이상 지속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문학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당시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학자들의 경고가 이제는 전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이공계 위기로 다가왔다. 한두 해 동안에 이공계 위기가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 나라 전반적인 학문의 위기가 말기암 시기까지 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만큼 그 처방도 담대하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4. 문제는 돈이 아니라 MIND이다.
우리나라의 기초학문이 튼실하지 못한 이유를 흔히 여유롭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돌리곤 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일류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라는 공식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당장 몇년 안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세계에서 도태되고 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초 학문에 “한가하게”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정말 우리 나라에 돈이 없어서 이 땅의 기초 학문이 아사 직전인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국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의 마인드를 문제 삼고 싶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라는 세계 13대 경제 대국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예컨대, 제일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이 무려 30조가 넘는다. IMF 이후 금융권에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이 내가 들은 것만 200조 가까이 되고 그 중 60% 이상이 회수 불능이라고 한다.
경제 논리에서 따져 보자면 이렇게 공적 자금을 붇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논란도 많을 것이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우리 나라 재경부 관료들은 자기들 생각에 은행 하나가 쓰러지면 국가 경제가 결단날 것이라고 판단되는 그 즉시 수십 조원을 동원한다. 그 돈의 원금조차 제대로 회수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도 그 많은 돈을 끌어 댄다. 그만큼 은행 하나의 흥망성쇠가 국가 존망과 직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대학이 망해가고 중고등학교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재경부가 언제 수십 아니 수 조 원이라도 긴급 투입한 적이 있었나 라는 것이다. 학문이 망해 간다고 아우성친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건만 국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게 어찌 부실은행 하나의 존망보다도 못할 수 있단 말인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재경부 나으리들은 적어도 학문의 중요성, 대학이 쓰러져 가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 그것이 국가의 존망에 곧바로 직결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전혀 체감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학문에 관한 마인드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디 이 뿐이랴.
정부에서는 선뜻 큰 돈을 들여서, 아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서 학자들과 연구소와 대학들을 위해 장기적인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이 융성해지려면 갖가지 제도와 시설과 사회 시스템이 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인재 양성 인프라가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내실 있게 구축될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회 간접자본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된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였던 인천국제공항을 볼까. 여기 들어간 돈이 약 5조원(?)이다. 애초에 인천 앞바다에 바다를 메워 거대한 허브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 자체에 반대도 많았다. 건설하는 동안에는 내내 부실공사 시비와 경제성이 의심받았다. 인천공항은 아직 적자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중요한 국책 사업이라며 그대로 밀고 나갔다. 성공 가능성이 100%여서가 아니었다. 신공항의 존재가 향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SOC 중의 하나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와 걱정과 우려와 적자를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왜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학문 인프라 구축에는 하지 못하나.
또 어떤 사람들은 재원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또한 뜻을 먼저 세우고 방법을 찾으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조세와 국방은 국가 정책의 근본을 이룬다. 사회 일각에서는 부유세 신설도 제기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들한테서 특별세 걷어 오로지 학문진흥에만 지원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법인세 1%를 주장한다. 연간 2천억원 정도 된다. 연간 2천억이면 내가 알기로 현재 진행 중인 BK사업보다 오히려 많을 것이다. 마인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국방비를 제대로만 써도 돈을 좀 남길 수 있다. 현재 군납비리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하다. 우리 나라 한 해 국방비는 대략 17조 6천억 정도 된다. 그 중 60만 대군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데에 적어도 60%가 쓰인다. 이런 곳에 들어가는 군납품은 그리 중요한 기밀이 될 것도 없다. 이거 모두 인터넷 경매 붙이면 적어도 반값에 조달할 수 있다. 예전에 정부 모 부처에서 부처 조달품을 인터넷을 통해 경매로 조달한 결과 예전보다 70%의 비용을 절감한 예가 있다.
17조원의 60%면 10조가 넘는다. 그 중 절반을 아끼면 연간 무려 5조원이 남는다. 병사들 먹이고 재우는 문제,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학자들 먹이고 재우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루라도 병사를 먹이지 않으면 국가 존위가 위태롭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학자들이 굶고 있어도 또한 국가 존망이 위태하다는 것은 아무도 느끼지 못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MIND이다.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이것 뿐이겠는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은 헛말이 아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성공적으로 잘 했다. 차세대 생존전략 10대 과제 선정해서 올해부터 당장 연간 3조원씩 들어간다. 잘하는 일이다. 이제는 학문진흥을 위해서도 제발 장기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BK21 사업은, 우선 예산 규모 면에서 “국가적 사업”에 끼지 못한다).
돈 없다고 하기 전에 우리 “마음”은 있기나 한지, 학문이 망해 가는 것이 은행 문 닫는 것만큼, 휴전선 장병들 굶기는 것만큼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먼저 자문해 보라.
5.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위기 극복 방법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정부에서도 간혹 학문을 진흥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은 잘 하는데 (특히 선거철에),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 다음에 나오는 대책들 보면 나 같은 과학자들 속을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한다.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내놓는 대책의 비전은 원론적인 얘기들 뿐이고 구체적인 정책은 급조된 땜빵들이 대부분이다. 이공계 위기를 정말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싶다면, 다음 제안에 귀기울이기 바란다.
첫째, 경제논리를 버려라.
둘째, 고속철 하나 더 건설한다는 심정으로 “국책사업”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
셋째, 고급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라.
넷째,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라.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은 앞서 이미 장황하게 설명했었다. 특히 첫 번째 항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부연하자면, 이제는 제발 학문에 “투자”한다는 표현 좀 자제했으면 한다. 적어도 투자의 우리에게 사회화된 의미는, 이를테면 1000원 지금 집어 넣으면 머지 않은 미래에 (보통 정부 관료들은 1년을 못 참는다) 1300원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라고 할 수 있다. 학문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입안자들 머릿속에는 마치 증권시장 가서 주식 사는 것과 같은 생각이 맴돌 것이다. 정부 관리들이나 여타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학문의 발전은 요원하다.
이 분들에게는 학문이란 실패의 연속, 잘못된 모델링의 반복, 끝없는 시행착오,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의 반복,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도전, ... 이라는 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게다.
학문에 돈 쏟아붓는 것은 결코 이런 개념이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그냥 “돈 버리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대지진 참사로 고통받는 이란 정부에 구호물자를 보내고 구호금을 1억 달러 쯤 보냈다고 하자. 이게 투자인가? 지금 형편 좀 좋을 때 못 살고 힘든 나라 도와 줘야 우리가 힘들 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보장형 보험이라도 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구호금은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장병들 밥 먹이고 옷 입히면서 우리는 “투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음식과 좋은 장비는 군대의 사기를 높일 것이고 결국 더 확실한 방어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얼마 더 안정화될 것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장병들 복지를 더 증진시킬 수 있을지 경제학자들이 계산하지 않는다. 돈 놓고 돈 먹는 “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비용이다. 한 국가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만 하는 그런 돈이다.
학자들에게 쓰는 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 이론 물리학, 이거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돈 못 벌어 준다. 나한테 1년에 1억원을 연구 지원비로 준다고 해서, 내가 그 돈을 1년이나 2년 후에 1억2천만원 혹은 2억원으로 되돌려 줄 수 없다. 내 연구 성과가 산업적으로 이용되어 내후년에 큰 돈을 벌어다 줄 가능성? 물론 0이다. 그러니까, 제발 기초 학문 하는 사람들한테 돈 몇 푼 쥐어주면서, “이 연구의 산업적 효용성” 이런 질문 하지 말기 바란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거 없다. 혹여 몇 단계 거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내 연구 성과가 경제발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북경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 앞바다에서 해일 일으키는 수준에 비견될만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초학문 살리려면 학자들한테 돈을 펑펑 쏟아서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면 우리 나라는 중진국에 머무르게 되고 당연히 지불해야 되는 돈이라고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우리의 재경부 나으리들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며 선진국 진입과 소득 2만불 시대는 머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이나 재경부 관료들은 이런 데 쓰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잘못된 선심공약으로 쓸데없는 “저속철” 만드느라 내다버린 18조가 훨씬 아깝다.
실제로 돈을 쏟아 버릴 때에, 학자들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평가는 해야 할 것이고 자금의 차등지원 또한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학계에서도 연구비를 사적으로 빼돌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전혀 없지 않을 테니까, 사실 학계 내부에서 개선할 점도 분명히 많다.
이런 점들을 인정하면서 내가 정부나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제발 다른 논리나 메커니즘이 아닌 지극히 학문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요컨대, 학문에 “투자”하지 말고, 인류 공동의 지적 산물을 만들어 내는 일에 경제대국에 걸맞는 “댓가”를 지불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을 어디다 어떻게 “버려야” 할까? 정부에서 이공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미 각 대학에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기치로 내걸고 석박사 인력들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런 인력들을 제대로 흡수할 스펀지가 없다. 이는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석박사 인력은 그 자체가 “값싼 고급 노동력”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대학이 이들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대학원 정원만 늘리고 BK사업으로 대학원생들 월급 대 주는 것은 종국적으로 기업들만 살찌우게 되어 있다.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홀대받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런 구조적인 결함이 큰 역할을 한다. 도처에 널려 있는 게 “공돌이”인데, 어느 기업주가 비싼 돈 주고 엔지니어 데려 올까.
당장 대학에 가서 이공계 대학원생들 붙잡고 물어보라. 연구 활동에 가장 큰 장애가 뭐냐? 아마 십중팔구는 ‘불안한 미래’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나서 이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기업이나 산업체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사람들이 학위 받고 나서 연구를 계속하든 취직해서 돈을 벌든, 어쨌든 갈 곳이 많으면 이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반대로, 지금처럼 오갈 데가 거의 없으면 이들의 몸값은 곤두박질친다. 즉, 정부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학위를 받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 된다. 너네들이 알아서 직장 구하라고 하지 말고, 정부에서 인위적으로라도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런 고급 인력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학문이 발전한다.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대학과 기업을 연결시켜서 신기술을 계속 개발해 내고 이것을 산업적으로 응용하여 좋은 제품 만들어 낼까에만 고민을 집중해 왔다. 최근 대통령의 화두라는 이른바 “클러스터”라는 것도 이런 기업중심적인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는 당연한 것이, 그 단어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대통령이 차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는 사실 죽도 밥도 안 된다. 기업 중심적인 산학협동의 결과로 얻은 신기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이는 대학의 자율성과 창조적 생명력을 좀먹는다. 대학과 연구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학 중심에서, 지식 창조자의 관점에서, 학자들의 시각에서 이들이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마당을 충분히 만들어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 결과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수두룩하다. 기업들이 어떤 집단인가. 돈에 미쳐 돈 벌려고 환장한 곳이 바로 기업 아닌가. 정부가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돈 벌고 싶은 사람은 대학 주변에 얼쩡거리게 마련이다. 아쉬우면 자기들이 돈 줘서 “투자”도 하고 건물도 지어주고 인적교류도 하고 그럴 것을 굳이 정부가 세금 빼 주고 부지 마련해 주고 하면서 멍석 다 깔아줄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관점을 180도 전환해서 대학과 학자들과 학생들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의 몸값을 정부가 높여줘야 한다. 정부가 고급인력들을 싸구려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펴지 않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능 있는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것에 대한 지불이 후하지 않다. 이공계 기술자, 엔지니어 등등 뿐만 아니라,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는 것에 대한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도 좋은 예이다. 이런 풍토는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데에 큰 걸림돌이다 (물론, 투명한 조세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의 손끝만 거쳐도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체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사람의 손길과 능력을 거치는 것에 매우 비싼 값을 매겨준다. 그래야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양산된다. 우리 나라는 정반대다. 정부에서 이들을 비싸게 취급해 주면 기업체가 이들을 홀대할 수 없다. 마치, 양곡수매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제 구체적인 제안을 좀 해 보자면, 정부에서 이공계생들의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마련해 줘야겠는데, 무엇보다 연구소 많이 짓고 대학에서 교수 자리 많이 늘리는 게 시급하다.
연구소 얘기부터 먼저 해 보자. 연구소 지어 달라고 하면 또 무슨 산업적 연계 이런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업이나 산업이나 돈벌이나 이런 거하고 전혀 상관없는, 정말로 연구원들이 아무 생각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런 “순수” 연구소 많이 지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집중하면 특수한 산업적 목적의 연구소는 오히려 기업에서 앞다투어 지어줄 것이다.
일본의 동경대나 도호쿠 대학 같은 곳에는 학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속 연구소가 딸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컨대, 물성과학 연구소 같은 곳에 박사급 인력이 백 명 이상 모여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데, 예를 들자면 금속 A와 금속 B를 비율을 계속 바꿔가며 섞어서 그 합금의 강도, 광택, 전도도 등 기본적인 성질들을 계속해서 조사해 나가는 그런 일들 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뭐 그런 일에 박사급 인력이 필요할까, 그런 단순한 일 하는 데 무슨 연구소까지 지어서 난리를 떨까 싶지만, 그렇게 해서 쌓인 데이터는 그 자체가 중요한 학문적 성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일단 그렇게 학문적 성과가 쌓이면 어떻게든 그것으로 돈을 만들거나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일본이 미국도 부러워하는 전투기 복합일체 성형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미국 우주 왕복선에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들이 쓰이는 게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엔 이런 연구소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었는데, 특히 인문학 관련 연구소 많이 세워야 한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퇴계 연구소 짓고, 율곡 연구소, 고려청자 연구소, 고구려 연구소, 한글 연구소 (이미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재 복원 연구소, 등등등. 이런 연구 기관들이 대학원 과정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면서 오갈 데 없는 대학원 인력들을 흡수해야 한다. 이렇게 세워질 연구소들은 향후 우리 나라의 중요한 씽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무작정 연구소만 지으면 안 된다.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또 돈타령이나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가장 성공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은 고등과학원 (KIAS)이다. 고등과학원이 얼마나 훌륭한 성과들을 내고 있는지는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논문편수나 인용횟수 등에서 정말 “세계적인” 연구소라 할 만하다. 이곳의 1년 예산이 겨우 100억 정도밖에 안 된다. 물리, 수학, 화학 등 세 분야가 모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돈이 아니다. 법인세 1%면 이런 연구소 약 17개 운영할 수 있다. 기초과학이나 공학 계열의 연구소는 설비비가 많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 계열의 연구소는 거의 돈 들어갈 일이 없다. 건물 올리고 나서 월급이나 제때 주고 빵빵한 컴퓨터 몇 대만 갖다 주면 사실 그걸로 족하다. 그게 몇 푼이나 되겠나. 1년에 1조원씩만 인문학 연구소 육성에 붓는다고 하면 고등과학원 급의 연구소를 무려 100개나 굴릴 수 있다. 지금은 워낙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연구소 100개 지어도 연구원들이 없을 터이지만.
연구기관의 확충과 함께, 대학 교수들의 양적 팽창 또한 시급하다. 국민 1인당 교수 비율 따져보면 아마 미국이나 일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물리학과의 경우를 보자면, 서울대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진이 서른 명 안팎이다. 그런데, 제대로 물리학 하려면 적어도 배 이상의 교수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모든 대학의 교수진이 배 이상 늘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카이스트 같은 곳을 거점으로 지정해서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진을 한 100명 정도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면, 이런 대학이 전국에 한두 곳만 있어도 한국 물리학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교수진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다른 대학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지금도 부족한 공간문제도 있고 특정 분야만 특혜를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교수진의 양적 팽창을 주장하는 것은 이제는 기초 학문에서도 우리가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초 과학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전문가의 태부족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학계가 받는 고통은 의외로 크다.
각 분야별 전문가가 소수이면 학자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한 학자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평가는 바로 그 커뮤니티 내부의 평가이다. 외부의 사람들은 사실 누가 어떻게 연구하고 논문 쓰고 세미나에서 무슨 질문들 하고 이런 거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논문 편수는 허수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부에서 연구비 지원할 때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가지 못하는 수가 생긴다.
과중한 학과 업무 부담으로 인해 자기 연구에 몰두할 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그리고, 뭔가 연구를 하려고 해도 주위에 같이 토론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수진 100명에다가, 각 교수가 연구원 한 명씩만 데리고 있어도 박사급 인력이 한 울타리에 200여 명 모여 있게 된다. 이 정도면 정말 뭔가 해 볼만하다. 고급 인력이 모여 있다는 것은 바로 정보와 지식이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보의 집중과 빠른 유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새삼 강조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요컨대, 연구소를 많이 짓고 대학 교수를 양적으로 팽창시키고 하는 것들을 통해 박사급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확보해 주고 전반적인 “규모”를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대규모 연구 단지 혹은 거대 프로젝트의 유치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돈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일이라 우리 나라가 중심이 되고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을 끌어들여 해외자본 유치한다고 해도 국가 경제의 허리가 휠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거대 프로젝트는 그만큼의 “값어치”는 충분히 해낸다.
일본의 고에너지 연구소 (KEK)를 예로 들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물리학자와 엔지니어가 수천 명이다. 이 자체가 이미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KEK 내부의 Belle 입자 검출기 그룹은 최근 입자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들을 연거푸 해 냄으로써 미국과 함께 이 분야의 양대 거점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이로 인한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 개선은 말 그대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학자들은 중요한 결과가 나온 논문을 읽으면서 항상 Belle Collaboration이라는 연구그룹 이름을 접하게 되고 수많은 일본학자들의 이름과 일본 대학들과 일본 연구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일본의 가속기”로 인식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한달 단위로 아니, 일주일 단위로 이런 “국가 광고”를 접한다고 생각해 보라. Belle의 중요한 실험 결과 발표는 아사히 신문 1면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 1면에도 실린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KEK 등지에서 입자물리 실험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남의 나라 가서 하는 실험이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하나도 안 남는다. 반면에, 일본은 이미 이 분야에서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번에 새로 승인된 JPARC 계획까지, 일본 열도에는 모두 네 개의 입자 가속기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나라 지구상에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과가 한국에 고스란히 남는” 그런 프로젝트 벌여야 한다. 우리 나라의 현재 수준은, 양양에서 벌이고 있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에 고작 30억 쯤 들어간 정도다. 당장 우리도 가속기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분야든, “국책사업”으로서의 거대 프로젝트도 이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기초학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대형 연구단지가 들어서면 그것이 파생시키는 고용효과가 엄청나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사무직이나 여타 제반 설비들, 인근 상권 형성 등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들이나 사회의 기초 학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체가 매우 훌륭한 국가 이미지 광고 매체가 될 것이다.
6. 대한민국의 새로운 생존전략
군사정권의 개발 독재에 의한 노동집약적 수출로 우리가 먹고 사는 구조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일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저임금에 바탕한 제조업으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도 사회 일각에서 낡은 구조에 기대어 먹고 살기를 바라는 기업이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높이 평가되어야 할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앨빈 토플러 그룹을 불러다가 이른바 “국가 컨설팅”을 의뢰한 것이다. 그 결론이 무엇이었던가. 기존의 경제 구조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정보화와 지식 기반 산업의 육성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파격적이고 담대한 계획이었다. 심형래를 신지식인으로 지정한 것도 자기 기술과 자기 능력이 있는 장인들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음을 던진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초고속 통신망을 안방까지 까는 등 정보화의 인프라에 대한 개념은 있었을지언정, 인재 양성의 인프라에 눈 뜨지 못하고 신지식인 선정으로 그친 것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정부가 생각한 우리의 새로운 생존 전략은 고급 인력의 양성을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의 육성이다. 이 방향성은 매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믿을 것은 결국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머지않아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의 경제블럭이 형성될 가능성이 많은데, 저임금에 바탕한 중국 제조업과, 높은 기술력과 탄탄한 기초에 기반한 일본 제조업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 남을 길은 고급인력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 산업의 급성장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나는 단지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영상매체 산업의 급성장과 일정한 성공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함께 한계점도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 나라의 문화적 잠재력과 산업화의 가능성에 밝은 빛을 보여준 한편으로, 결국 우리가 극복해야 할 벽은 핵심적인 “컨텐츠”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는 최근 흥행에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패인을 분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제작비 120억원이 들어간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시나리오와 구성의 밋밋함이 가장 큰 패인으로 꼽힌다. 결국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말인데, 이것이 바로 핵심 컨텐츠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핵심 컨텐츠는 어떻게 생겨날까?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 이들은 따로 교육되고 따로 성장한다. 우리 나라 애니메이션 수준이 그림 그리고 색칠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도 여태 죽을 쑤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스토리 작가”의 부족 (그리고 기획역량의 부족)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문학의 깊고 넓은 저변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끼게 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수준은 결국 그 사회의 인문학의 수준이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그냥 영국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뉴튼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힘의 개념도 학자들에 의하면 이른바 헤르메티시즘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마술, 마법사, 고양이, 빗자루, 늑대인간 등의 코드로 통하는 문화적 전통이다. 인문학이 발전해야 기초과학이 발전하고, 또 기초과학의 발전이 인문학 발전을 돕는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지금 일본이 야심차게 내세우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보고서 꿈을 키워 온 공학자들이다. 풍성한 인문학적 인프라, 지식기반이 전통적인 굴뚝산업과 결합되면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제조업과 지식기반 산업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에 반대한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흥행이 성공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상당수가 인터넷 소설과 관계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상산업의 핵심 컨텐츠인 “스토리”가 바로 인터넷 상에서 태어난다는 점 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높은 가능성과 기대감을 주는 부분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단지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주었을 뿐이다. 영화사를 중심으로 해서 소설 쓰는 초보 작가들 연결시켜 준 것도 아니고 대학 국문학과와 충무로를 산학협동으로 연계한 적도 없다. 정부에서는 그저 능력 있는 작가들이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최대한 확보해 주는 데에 주력하면 된다. 그것이 돈벌이로 연결되는 것은 민간에서 다 알아서 하는 일들이다. 대신 정부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규칙과 질서만 부여하면 된다.
이공계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이와 같은 시각이어야 한다. 학자 개개인들, 공학도 개개인들에게 간섭하는 형식으로는 이공계가 죽는다. 기업체 입장에서 이들을 돈벌이 아이디어맨으로 치부하는 이상 이공계의 미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그 장을 만들어 줄 것인가, 이들이 기본적인 최저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을까, 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사회 봉사의 기회를 줄 것인가 등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고급인력들에게 후한 값을 쳐 줘야 그 성과물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은 이런 고급 인력을 사용하는 댓가를 비싸게 치룰 것이고 그만큼 다른 비용을 절감하면서 품질의 고급화를 꾀할 수 있다. 고급 인력의 육성과 지식 기반 산업- 이를 통해서만 대한민국이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고, 선진국 진입과 세계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7. 맺음말 -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
결론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공계의 위기는 대한민국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된 현상이기 때문에 그 처방 또한 국가의 존망과 결부시켜 마련되어야 한다. 한강 물 깨끗하게 하려고 들어가는 돈이 연간 2~3조원이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기약하려면, 내 생각에 적어도 이만큼의 액수가 매년 기초학문 육성에 “버려져야 한다.” 이 대책이 단발성 땜빵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정말 국가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고위 공무원들의 “인식과 마인드의 변화”이다.
맺기 전에, 입자 물리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테바트론이라는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가 있다. 그 기계를 처음 만들 때,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펜타곤이 여전히 돈줄을 쥐고 있으니까...) 청문회를 했다. 그 청문회에 나온 물리학자가 윌슨이라는 사람인데, 입자 물리학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긴 매우 유명한 과학자다. 국방위원들이 물었다.
"그 가속기가 국토 방위와 무슨 상관이 있지요?"
그러자, 윌슨이 대답했다.
"이 가속기가 조국을 지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미군이 이 가속기를 목숨 걸고 지키게 될 것입니다."
윌슨은 테바트론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초대형 가속기를 운영하는 데에는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모조리 동원된다. 그런 것들이 굳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을 가져다 주는지 계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 입자 가속기의 과학자들이 인터넷을 처음 고안해 낸 것 또한 경제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계산할 수도 있듯이. 그러나, 그런 거대 가속기의 존재,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 낸 과학적 발견들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학문의 존재 의의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돈 몇 푼 더 벌어주는 가속기 때문에 미군이 목숨을 걸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 가이우스
저 글을 쓰신 분이 원하는 그런 환경이 되고...지금 연봉의 2배
저 글을 쓰신 분이 원하는 그런 환경이 되고...
지금 연봉의 2배 3배 받으며...
잠깐 눈 한번 감아주면 여기저기에서 용돈 찔러주는
그런 환경이 되어서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실 수 있다면 정말 존경할만한 학자가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생각하는 건...
학부땐 좀 어리버리 하다가...
석사땐 좀 순수하다가...
박사땐 좀 열정이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 어째서...
교수나 선임이나 이런 딱지가 붙으면 "개" 가 되는 건지 --; 알 수 없습니다.
참... 한탄이었습니다.
워낙 장황한 글이라서 읽기에 상당히 힘이 드는군요.일단 저글에서는
워낙 장황한 글이라서 읽기에 상당히 힘이 드는군요.
일단 저글에서는 기초 학문을 위해서는 경제논리를 배제하는 MIND가 필요하다는 것이 주라고 보이는군요.
저는 경제논리를 도입하지 않는 이공계 학문은 죽은 학문이 되거나 나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예산이라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결코 넉넉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이래저래 투여할 곳이 많으므로 하나를 늘이면 하나를 줄일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실에서, 단순히 기초학문에 '비용'의 개념으로 투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기초학문을 하는 학자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자기만족'이며 이는 '경제논리'를 넘어설 만큼의 중요한 사항이 되어야 합니다.
즉, 기초학문 연구자들은 전투적으로 돈을 버는데 투여되는 엔지니어(저는 공학박사는 학자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엔지니어 입니다)에 비해서 자유롭게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더 강한데, 이들에게 똑같은 대우를 해줄 수는 없읍니다. 따라서 공학을 하는 엔지니어들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결과의 성과물'이 투입된 '비용'에 비해서 얼마나 효과를 보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하며 이를 바탕으로 평가와 대우가 결정되어야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게 싫으면 그 사람은 좋은 대우를 포기하고 좀더 편안하고 생활이 보장되는 시스템으로 갈 수 밖에 없읍니다.
원 글의 저자는 대다수 학자가 아닌 국민의 돈으로 자유롭게 자기 하고 싶어하는 연구를 하는 학자들을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고 경제논리의 배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반대로 이공계의 위기를 타파하기위해서는 좀더 철저한 '경제논리'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즉, 자유로운 학문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것은 최소한의 생존만을 위한 수준을 넘어서면 된다고 봅니다.(물론 포닥비 1400만원은 좀 심하죠.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의 노동강도에 비해서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읍니다) 하지만, 적어도 돈을 벌어내야하는 high risk, high return에 관련된 기업에서 일하는 이공계 출신 연구,개발자들은 당연히 많은 보상도 받을 수 있지만 그에 따른 해고의 위험을 안고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읍니다. 그러한 해고의 불안정성이 싫다면 경제적인 이익은 포기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겠지요.
경제적인 논리를 더 철저하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이공계생의 능력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따라서 자본주의의 논리대로 철저히 차등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과 마인드가 도입되어야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런 자율성이 없이 동일한 잣대로 만든 규정이 연구와 학문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공계출신들은 하향평준화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BK포닥은 1400만원(연세대는 짜군요. 서울대는 1800만원인데)을 받고 일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읍니다. 그사람이 어떠한 능력을 갖던, 어떠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하지만, 냉혹한 경제논리가 적용이 된다면 똑같은 BK포닥이라고 할지라도, 그사람의 능력과 앞으로의 전망을 바탕으로 차등적으로 연봉을 지급할 수 있어야만 하고 이것은 기초학문에 대해서도 똑같이 평가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경제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학사졸업자는 얼마... 석사졸업자는 무조건 얼마... 박사학위자는 무조건 얼마...)의 구조로서는 돈은 돈대로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않고, 이공계 기피는 더 심해질 뿐입니다. 즉, 능력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더 벌고 편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되는 의사,변호사,금융계로 갈 수 밖에 없읍니다.
발에 차이는 것이 소위말하는 명문대 석,박사에 유학파 석박사인데, 소위말하는 허접박사(죄송합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이 학교 차별하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와 똑같은 잣대로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평등 시스템'으로 과연 누가 사람을 뽑을 것이며 연구비를 지급하고자 하겠읍니까? 90% 이상이 줄줄 새버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현재, 엄청난 청년실업자와 이공계 구직란이 문제로 보이지만 사람을 뽑고 연구,개발를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읍니다. 보통 연구소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를 연봉 4500~5000을 주고 뽑는데, 취직못한 박사도 널렸지만 뽑을 수 있는 박사는 하나도 없는 지경입니다. 박사도 박사나름이라... 그 돈을 주기에는 너무 아깝고 국가예산 낭비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는 박사학위자가 발에 차이고 있읍니다. 하지만 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라도 데려오고 싶은 박사가 있고 능력이 뛰어나도... 이사람에게 더 많은 대우를 해줄 방법이 없읍니다. 왜냐면 박사 초임은 규정되어 있으므로...
즉, 무조건 박사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던 아니면 그냥 학위만 있던 무조건 저돈으로 규정되어 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구인-구직 시스템과 연구환경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저도 이공계의 일원이고, 지금 연구도 하고 일도 하고 하는 입장이지만... 저는 이공계의 위기는 정면돌파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으로, 단순이 많은 수의 연구자와 학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맞는 직종에 적합하도록 훈련된 소수정예로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맞다고 보고...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교수 및 연구자... 심지어 대학까지 도태할 수 있는 한은 최대한 도태시킨후에 다시 지원과 방향을 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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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위의 리눅스 윈도위의 윈도우 리눅스위의 익스플로러
퍼가겠습니다.좋은 글 감사합니다.가이우스...어
퍼가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이우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말이죠.
음.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공대생이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대생이다보니 솔직히 저는 모든게 경제논리로 밖에 생각이 안됩니다.
엔지니어는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학자와 엔지니어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때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엔지니어가 아니고
그 기술의 시류를 생각하지 않으면 엔지니어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도 항상 생각하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란 생각입니다.
먼저 저런 학문의 부흥을 통해 기술을 발전할 토대를 만들고
그 기술로 먹고 살것이냐
아니면 기술에 집중해서 번 돈으로 학문을 부흥시킬 것이냐
무엇이나 우선 먹고 살아봐야 예술이든 머든 할테니까요.
저도 학문없이 기술에만 집중해서는 결코 고 부가가치를 생산해 낼 수 없다고 봅니다.
일종의 딜레마죠. 저희와 같은 어중간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려면
어느 것이 좋은지.. 저는 그래도 후자쪽이 더욱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한몸 조국 경제에 바칠까 해서 공대에 왔는데
음.. 제 한몸 사리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C++, 그리고 C++....
죽어도 C++
당장 회사에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투자 대비 위험도도 높고 기간도 오래
당장 회사에서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투자 대비 위험도도 높고 기간도 오래 걸리는 신규 기술 연구보다는 당장 수익을 만드는 곳에 치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고급엔지니어는 필요가 없고 응용력이 뛰어난 초중급엔지니어만 필요하게 되고..... 그래서 사오정이니 삼팔선이니... 이공계는 35세 넘어가면 영업이나 관리쪽으로 넘어가야된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겁니다.
이공계도 관리자급으로 많이 포진해서.. 위와 같이 단기적 이익에만 추구하는 것의 위험성과 기술과 경영상의 관점 모두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을 이해못하는 경영자니까 단기적 이윤 추구 밖에는 못하게 되고... 기술투자를 꺼리게 되는겁니다.
반대로 이공계에도 경영같은 커리큘럼을 도입해서 이공계생들에게도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고 회사의 관점에서 자신의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어야하는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정계나... 고위 공직자에도 이공계 출신들이 많이 포진하여 제대로된 이공계 정책을 입안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공학이 아닌 기초학문등은 정부 지원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는것 같습니다.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 글을 다른 곳에 퍼트린 적이 있기에..:-)
그리고 이 글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현재의 이공계의 위기는 이공계만의 위기가 아니다.10여년전부터
지적되어져왔던 기초 인문학의 위기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공계
의 위기로 확장된 것이다.즉 우리나라는 현재 !학문!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라는 것입니다.
해결 방안이야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테니 이 글이
제시하는 방안들이 좀 그럴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이공계의 문제점을
인문계와 연관시킨 것은 상당히 맘에 드네요.
그리고 이 글이 각종 신문사에서 내놓는 이공계관련 기사들보다
훠얼~~~씬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아직 이공계 학부 3학년이지만...열심히 해야겠죠...
그리고 정부에서도 올바른 대책(땜방용 대책이 아니라..)을
내놓기를 빕니다...
p.s.이번 정부는 이공계에 대한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은 할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놓는 정책들은 별로 맘에 안드네요...뭔가 획기적인
정책을 바랍니다.
글이 워낙 길어서 듬성듬성 대충 읽었다가 리플을 보고차분히 다시 읽어
글이 워낙 길어서 듬성듬성 대충 읽었다가 리플을 보고
차분히 다시 읽어보니 좋은 글이 군요.
죽어가는 이공계보다 이미 죽어있는 인문계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너무 우습게 알고 있죠.
그 보이지 않는 것들 덕분에 보이는 것을 얼마나 더 잃어 봐야 개념이 좀 잡힐런지...
고속전철의 예는 상당히 쉽게 와닿는군요. 꼭 그렇게 뭔가 눈에 보여야 가치를 인정 받으니..
이공계가 작물이라면 인문계는 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천기술은 씨앗이랄까요.
좋은 토양에서 작물이 자라면 다시 씨앗이 열리고 그 씨앗이 새로운 작물이 될텐데, 우리는 그동안 거름을 너무 아꼈습니다.
그렇게 땅을 다 버려놓고 작물이 제대로 안자란다고, 좋은 씨앗이 없다는 비판만 하죠.
지금의 정부정책은 급하다고 화학비료만 쏟아부으려 들고 있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ps. http://www.ddanzi.com/ddanziilbo/79/79sc_3001.asp 이글의 버전업이군요..2002년에 쓰인 글이던데..그때나 지금이나 변화는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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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이길 수 있는자는
무슨짓이든 할수있다..
즉..무서운 넘이란 말이지 ^-_-^
나? 아직 멀었지 ㅠㅠ
정말 주옥 같은 글입니다...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다시 돌아
정말 주옥 같은 글입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정말.. 이공계나 인문계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하기 힘듭니다...
'투자' 와 '연구' 의 차이점.. 솔직히.. 헤갈릴수도 있습니다.
'10년간 연구하면 100조의 효과를 얻을수 있다'
는.. 말은 어불성설인것 같네요...
이공계,인문계를 떠나서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학문의 위기하는것입니다.
아바타 제작기간~~ 무려 5초!!!
멋진 글이군요. 쓰신 분과 가져와 보여주신 분 두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멋진 글이군요. 쓰신 분과 가져와 보여주신 분 두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공계 위기를 학문의 위기로 보면서 인문계 절명, 자연계 황폐화, 이공계 박살로 연결되는 고리를 보셨다는 것에 다시 한번 탄복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역시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당장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
역시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이익만을 생각을 하니...
위의 글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면 점점 변화 하겟죠?
흐음...
바로 그거죠.
대부분의 이공계 출신들의 취약점이 바로 이런 논리인데 '떡을 달라.. 얼마건간에 던져 달라..' 이거죠.
돈에 미쳐 돈 벌려고 환장한 곳이 바로 기업이란 말과 과거의 정책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그 휴유증때문에 이런 사회가 악순환되는 것이란 논리는 전형적인 책만 읽은 사람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어쩔 수 없는 상황..그러니까 노동집약적 산업으로는 도약이 불가능하다..이 논리 역시 20년전 상식에 속한 내용의 재판입니다.
'위기'란 '절정'이 있었을때 쓰는 말인데.. 믿기지 않겠지만 그 이공계의 전성기인 시기가 바로 이 분이 그토록 혐오하는 군사 독재 정권이었습니다.
철저한 경제 원리의 적용으로 검증이 끝난 곳에 자본이 투입되는게 순서라고 봅니다. 말 그대로 '무조건' 연구소만 지을 수는 없기때문입니다.
'학문적 성과'는 평가할 집단이 있을때 쓰는 말입니다.
위기란 이런 평균적인 집단이 사라졌을때 쓰이는 말로 보이며 현재 이공계의 수준으로 볼때 적절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이공계의 위기가 사라지는 때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가 나타나는게 아니라 전반적인 이공계 수준의 향상이 있을때 라고 봅니다. 돈을 버려도 그런 결과가 올지 모르며 Technology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뀔때 일지도 모릅니다.
인식.. 글쎄요..
1000명의 7급공무원의 생각보다 1명의 1급 공무원의 생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죠.. 경험상..
그 한명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지 모릅니다.
이미 왔다 갔다는 것도 믿기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How do you define Real?
인문학의 황폐
이공계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인문학의 황폐화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글을 읽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문학이 융성하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만큼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상당수는 기초 학문에 대한 mind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이공계를 좀 더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정부 부처에 많을수록 이공계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열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Re: 인문학의 황폐
아니겠지요.
연역 과정 어디선가 오류를 범하셨슴다.
정부에서 인문학에 투자를 많이 해도
인문학은 대학과 연구소에서만 융성하겠지요.
요새같이 먹고 살기 힘들때에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줄리도 없고
(사람들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나 아침형인간이 성공한다
또는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이런 책만 봅니다.)
정부 부처에 들어가려면 7급이나 행정고시를 봐야 합니다.
인문학보다는 대학들가자마자 논스톱의 고시생처럼
죽어라 고시공부만 한 사람들이 정부부처에 들가는 거지요.
인문학이 융성해지면
공돌이들은 의사나 금융쪽 뿐만 아니라 인문학자에 대해서까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되겠지요.
개념없는 초딩들은 좋은 말로 할때 DC나 웃대가서 놀아라. 응?
공학은 경제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만 science는 그렇기 힘들죠.s
공학은 경제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만 science는 그렇기 힘들죠.
science는 전략적으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논문하나에 가격을 매긴다면 .. 그게 가능할지..
과학이 부실하면 공학은 더 부실해집니다.
공학자가 이론까지 한다는건 무리죠.
screen + vim + ctags 좋아요~
[quote]공학은 경제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만 science는 그렇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요? 단순히 몇몇 scientist들의 just for fun을 위해서요?
science에 경제논리를 도입해서는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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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위의 리눅스 윈도위의 윈도우 리눅스위의 익스플로러
(난 이공계를 가고싶었는데.. 젠장젠장.. -_-;;)
(난 이공계를 가고싶었는데.. 젠장젠장.. -_-;;)
--
이 아이디는 이제 쓰이지 않습니다.
...
저도 공학분야는 경제논리를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이미 공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경제적인 개념(최소의 비용으로 최고 품질의 product를 산출해야 한다는 목표)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어찌보면 당연한것 같군요.
그런데 기초과학분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그 자체로 혁명적인 이론이지만, 이것이 여지껏 사람들 실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해냈는지의 여부를 따진다는것은 좀 우스운 일 같습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상대론에 대해서가 아니라 광전효과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당시 위원회에서는 상대론이 뛰어난 이론이긴 하지만, 이것이 인류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실용적으로 어떻게 현실속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따질수가 없어서 상대론을 노벨상의 대상에서 제외시킨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초과학분야는 말 그대로 너무나 기초적이어서 사람들의 눈에 가시적으로 어떤 연구성과가(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나길 기대한다는것이 너무나 어려운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때문에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경제논리를 떠나 학문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투자가 있어야 할것이라 보는데 제 생각엔 어차피 여러가지 사정으로 국가에서 이를 뒷받침 해주지 못한다면, 규모의 경제를 이룬 대기업에서 솔선수범하여 기초과학에 과감히 투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볼때도 상당수의 기초과학분야가 다국적 기업의 연구소에서 크게 발전이 되고 있으며(IBM, AT&T, 셀레라제노믹스등) 그 성과는 이미 그곳에서 노벨상수상자들이 배출되고, 세계 최고수준의 논문과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는것에서 입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국가가 해줘야 할것을 안 해준다고 떼쓰는 아이마냥 불만을 토로하고 뭔가를 기대하는것보다는 그래도 이쪽계통의 마인드를 비교적 잘 이해할만한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서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보다 기초가 될만한것에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것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최소한 국가에 기대하는것보다는 100배 더 나을것 같지 않습니까? :) )
이제는 한국도 먹고 사는것에만 급급하여 한치앞도 못보는 소경의 신세를 벗어나 중후장대한 비전과 그에 걸맞는 투자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uote]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테바트론이라는 세계 최대의 입자 가
이 말이 무척 가슴에 와닫는군요. 우리나라는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좋은 글이네요
이글로 전혀 별개로 생각하던 여러 문제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문계 위기를 먼저 해결한 후, 이공계 위기를 해결하자라는 의견은 머리를 띵하게 하네요.
글 쓰신 분이 물리학자라고 하신 것처럼, 과학자의 입장에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전 이공계 위기를 말할때, 과학과 공학을 싸잡아서, 문제로 삼고, 해결도 싸잡아서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듭니다. 과학과 공학은 요즘 대학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비슷해지는 경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과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고, 공학은 과학을 이용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할 것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네요.)
그래서, 과학계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먼저 살리는 것이 좋지만, 공학계는 경제논리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학계의 경제논리는 위험합니다. 이것이 과학계를 부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이는 당시 노벨상 심사위원들의 경향이 이론물리학보다 실험물리학쪽으로 치우쳐있어서 입니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인 상대성이론으로 상을 받지 못한 것이지요. 노벨상도 사람이 주는지라, 심사위원의 삐딱함에 의해 정말 받아야하는 사람이 못받은 경우가 꽤 많은 곳입니다.
결국엔. 대학이 잘못되었다는 말로 평가가 됩니다. 모든 학문의 기초토양은
결국엔. 대학이 잘못되었다는 말로 평가가 됩니다. 모든 학문의 기초토양은 대학이 아닐까요. 대학이 개판이니 인문계니 이공계가 모두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꺼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문계의 사망은 제가 인문계 출신으로서 보기에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것도 큰 문제지요,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머든 돈이 되는 것만 한다라는 풍조때문에 학문자체가 경시되고 그 결과 공학계통까지 무너졌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최고 기본이 아닐까합니다. 사실 기초학문이 무너진 것도 학생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의대나 법대등 강요에 의한 전공선택이 원인이라는 생각입니다. 결국에 실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모인곳이 기초학문군이 되어버렸고 그나마도 편입이니 전과니 해서 다 빠져나가는게 사실이니깐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참 답답합니다.
힘없는자의 슬픔
우리나라의 행정관료들이 자신의 임기보다 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더라도 진행
우리나라의 행정관료들이 자신의 임기보다 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더라도 진행한 만큼의 성과에 따라 경력을 인정받을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지 단기 프로젝트에 치우치지 않고 장기 프로젝트도 진행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완료되지 않은 프로젝트도 성과에 따라 평가 해주는 풍토가 정착 되면 "기초과학 저변 확대"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도 행정관료들이 관심을 가지고 프포젝트를 진행할수 있겠지요.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quote="MyCluster"]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요?
몇명 과학자들의 단순재미라니, MyCluster님의 식견에 실망했습니다.
만일 과학자들이 돈욕심이 있었다면,
미적분학에 특허를 걸어 보세요,
뉴튼은 떼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엔진에 곡률 개념 이용하죠,
이 돈은 모두 가우스한테 가야하나요?
피타고라스 정리를 한번쓰는데 돈을 얼마씩 줘야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과학에 경제논리를 도입하면 이렇게 됩니다. 8)
공학자들이 대부분의 수학공식을 공짜로 쓰지 않습니까?
과학자들이 연구결과를 공개하는것도, 사실은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에 의해 결과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래서 인류가 공유해야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GPL인 것이죠.
No Pain, No Gain.
TV 편성표를 보니 2월 8일, 그러니까 오늘 저녁 11시 30분에
TV 편성표를 보니 2월 8일, 그러니까 오늘 저녁 11시 30분에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1부> 라는 프로를 하네요.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흔히 프로젝트라고 하는 과제들이 문제입니다.과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
흔히 프로젝트라고 하는 과제들이 문제입니다.
과제가 어떻게 진행되느냐 하면 .. 보통 3년입니다. 창의과제라는 게 9년짜리로 일반적인 과제 중에서는 가장 길기는 하지만 ... 그건 좀 예외적이죠.
그렇다면 보통 어떻게 진행되느냐.. 대학의 경우를 예를 들자면 ...
과학재단이나 학술진흥재단에서 하는 보통 과제들은 9월에 시작해서 다음년도 8월 31일에 끝납니다.
그렇다면 1차년도 과제를 시작하면 ...
9월달부터 돈이 나와야 장비를 사든지 어쩌든지 합니다. 그런데... 그건 서류상입니다. 실제로 처음 돈이 나오는 빠르면 11월 말쯤이고 보통 그 다음년도 1,2 월에 나오게 됩니다. 즉, 9월달에 '실험시작 !'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때쯤 돈이 지급이 되기 시작하니, 그때부터 필요한 장비나 부품, 소모품 등을 주문할 수 있죠. 예전같으면 미리 사서 돈을 나중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지금은 '연구비 카드' 라고 해서 LG 카드와 연계해서 신용카드로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입금이 되어야 카드를 만들 수 있고, 그게 카드 발급되는 게 1,2월이 됩니다.
그러면 주문을 하면 뭐 그 다음날 오느냐.. 아니죠. 용산 인터넷 쇼핑도 아니고 ...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주문하면 빠르면 3일, 일반적으로 일주일 이고... 만약에 외국에서 주문(주로 미국이나 유럽이죠 뭐.. 가끔 일본)하면, 빠르면 2주, 늦으면 3개월.. 통관에서 문제 있으면 6개월도 그냥 넘어갑니다.
- 제가 관리하는 장비중 하나가 장비 주문부터 해서 설치까지 3년이 넘게 걸린 것도 있습니다. 과제가 끝난 뒤에 설치했죠.
그렇게 해서 3년 과제의 처음 1년의 반은 후딱 지나갑니다. 그러면 보고서 써야 하는데, 8월 31일까지 ... 라면 8월까지 보고서를 써서 보내느냐.. 그게 아니라 6월말에서 7월중순까지는 써서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심사' 내지는 '심의' 라는 것을 거쳐서 9월달부터 2차년도 과제를 계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니까요. 그런데.. 이 심사라는 게 과연 열마나 객관적인지... 얼마나 제대로 평가하는지는 ...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한번 '빠꾸' 먹어서 다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명조 11pt, 여백 20, ... ' 이런식으로 지정된 보고서 양식에서 여백이 5point 만큼 밀려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다시 인쇄해서 제본만 해서 보내서 통과됐었죠.
그러면 이제 2차년도 과제가 시작됩니다. 가끔 통과 못 돼서 과제가 그냥 끝나는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통과 되면 2차년도 실험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역시 돈은 ... 빨라야 11월.. 보통 1,2 월달에 지급 됩니다.
.........
그리고 3차년도 까지 끝납니다.
그러면 그동안 했던 결과를 가지고 또 더 진보된 실험을 진행하면 좋지만 .. 거기서 끝납니다. 물론, 다음에 따는 과제를 그런 식으로 잡아서 진행할 수 있다면 행운이죠.
자.. 그러면 연구비를 한번 보면 ....
예를 들어서 포항 가속기 연구소에 박사과정 학생과 석사과정 학생.. 이렇게 두명이 가서 3일간 실험을 한다고 하면 ... 일단 잠자리는 가속기 연구소 내에 있는 숙소에서 잔다치고... 밥과 교통비는 있어야죠.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되느냐 하면 ... 과제주체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박사과정은 새마을호를 탈 수 있지만, 석사과정은 무궁화호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식사의 경우도 박사과정은 한끼에 3500 원으로 되어 있고, 석사과정은 2500 원입니다. 제가 포항을 가면 이용하는 수원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는 포항까지 가는 게 없습니다. 동대구 역에서 내려서 한참 기다려서 갈아타고 가든가, 그냥 새마을을 타고 가야 합니다.
물론.. 교수가 연구비 정산을 이리저리 돌려서 어찌 어찌 하기는 하지만, 하여간에 저런 식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물리학회나 다른 학회를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숙박비도 ... 어찌 보면 말도 안되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 모 과제의 경우는 하루 1만원 으로 숙박비가 잡혀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몇년전 꺼죠.
좀 긴 과제로 .... 제대로 된 실험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놈의 보고서에 치이지 않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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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이번에 긴글 나왔군요. ^^; 저도 긴글 쓰고 싶지만, 읽으시느라 지치신
이번에 긴글 나왔군요. ^^; 저도 긴글 쓰고 싶지만, 읽으시느라 지치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씁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엔지니어의 길을 택한 공돌이입니다.)
기업도 좋은 인재 데려가려면 대학에 돈을 쥐어주며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쓰고, 대학도 매번 등록금 올려서 학교 광고하지말고 제대로 된 시설과 자료들을 갖춰서 학습할 수 있는 공간 마련을 하기 위해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대학 도서관이란 곳들이 제대로 된 기술서 하나 비치해 둔곳이 없냐구요!!!! 버럭버럭버럭!!! 원서에 신간이라 없다는게 말이되욧!!!!
[quote]몇명 과학자들의 단순재미라니, MyCluster님의 식견
평가시스템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고, 그나마 되는 평가마저 안면과 정으로 연결되는 현재의 학문풍토에서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받아가서 결과는 고사하고 제대로 재미도 추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때, 그나마 just for fun이라도 하고 있다면 다행이겠지요.
과학자들이 발견한 정리에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서도 공학에서 사용하고 있고, 이걸로 인류에 기여했다라는 증거로 본다면, 그 반대의 논리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인류에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제가 말하는 경제논리는 적어도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할때는 그 프로젝트에 연구 자금을 대는 사람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그럴듯하고 사기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근거가 필요하고 그 근거가 막연히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인류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라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없겠지요.
제가 보기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보편적인 인류발전에 기여한다'라는 것은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연구비가 투여된 인문학과 자연과학중에서는 저 내용에 맞지 않는 것이 더 많았다고 보이는군요. 물론 이것은 사회과학도 마찬가지고, 공학이라고 예외는 없겠지만요. 그것이 연구자의 불성실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연구시스템의 불성실때문인지. 아니면 프로젝트라는 경제논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1993년인가 부터 공대 정원이 2배로 늘었읍니다. 당연히 신입생이 늘면, 그에 따라서 학교의 교수 인원도 늘어야 정상이지요. 부실교육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처음 증원된 교수인원은 영문과와 수학과에서 반씩 뽑았읍니다. 증원된 공대생의 '교양영어'와 '미적분학'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였읍니다. 공대교수들은 방방 떴읍니다. 영어와 수학을 차라리 공대에서 필요한대로 가르치겠다... 라고...
이것이 한국의 이공계를 보는 현실이고, 대학내에서의 학문의 서열화입니다. 지금도 학교 수첩에서 단과대의 명단은 가나다 순으로 표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가나다 순으로 표시하게 되면
간호대, 가정대(이제는 생활과학대), 경영대, 공대, 농대... 사회과학대, 인문과학대, 자연과학대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소위말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하는 교수들 눈에는 학문이 아닌 가정대,간호대,공대,농대 가 대학의 앞을 차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건 국내 대표적인 대학인 서울대의 홈페이지에서도 나타나있읍니다. http://www.snu.ac.kr/about/organization/ 의 교육기관을 잘 보십시오. 인문대,사회대,자연대 다음에 가나다 순입니다.
저는 앞의 펀글이 결국 이공계의 위기는 자연과학계의 위기고 그것은 인문학의 위기다... 라고 이야기해서 학문을 살리지 않고는 이공계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 기저에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기피에 대한 항변이라고 보이고, 이것은 결국, 여전히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자초한 면이 상당하다고 볼 수 밖에 없지요.
경제적 논리를 학문에 부여할 수 없다라고 하지만, 그 학문이라는 것이 인문학과 자연과학 밖에 없고, 나머지는 경제논리에 철저히 무장되기를 강요받는데, 두 분야만 고고한 학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것은 다른 학문(물론 학문이 아니라, 응용기술이라고 평가받지만...)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을 인정해달라고 하는데에서 기인했다고 보이는군요.
결국 이공계의 위기라는 것이 두리뭉실하게 명칭을 섞어서 사용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계와 공계를 확실히 분리(이것도 그렇지만...)하던지 아니면, 연구비를 투여하기에 앞서, 시일이 급하고 결과가 필요한 연구를 하는 곳에는 많은 보상과 결과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당연하고, 시일이 오래걸리고 결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연구에는 필요한 만큼의 연구와 최소한의 보상만을 부여하는 형태로 구분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이는군요.
그렇게 함으로써, 적어도 노력한 만큼 댓가가 나온다는 분위기가 이공계에도 당연히 있어야하고, 위험을 감수하기 싫고, 결과에 쫒기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그에 맞는 댓가를 받도록 하는 시스템이 바로 제가 말하는 '경제논리'이지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High Risk, High Return
이것이 이공계에 확실하게 적용되도록 한다면 위기가 상당히 해소될거라고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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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학문과 경제논리는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문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글쓴이도 그런 뜻이 아니라 학문이 경제논리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다
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단지 학문을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학문이 내포하고 있는
근본적인 매커니즘을 이해하였으면 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듯...
그 매커니즘을 존중해가면서 투자를 해달라는...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각자 따로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아마 다들 잘 이해하리라고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 내의 내적 논리, 다른 그 어떤 분야의 논리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매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
그게 그건가...;
사실... 애매하지요...이공계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은 사회전반
사실... 애매하지요...
이공계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은 사회전반적인 구조개선과 맞물려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법대,한의대,수의대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몇년이 지나면 결국 저쪽도 경제적으로 치열한 투쟁을 벌릴 수 밖에 없고, 결국 돈이 안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돈을 억수로 버는 소수로 구분이 되겠지요.
현재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처방이 필요한 것은 분명아닐것이지만... 결국 '돈문제'가 상당히 지배되고 있는 실정이고... 이에 대해서 이공계 종사자들의 내부에서조차 문제를 보는 시각과 대처방안이 제각각이라는 것이지요.
이공계 내부에서도 어느정도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보이는군요.
순수과학, 응용과학, 생산기술, 현장기술 등등에 따라서 현실과 방안은 전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학문내부에서도 research와 development는 구분지어져야하는 상황에서, 두리뭉실한 '이공계의 위기'라는 단어로 구분짓기는 힘들겠지요.
그리고, 이공계라고 부르는 쪽은 종사자에게 더 많은 노력과 새로운 기술의 습득을 요구받고 있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라리 그 노력이면 의대나 법대를 가면 돈을 더 벌 수 있고 편한데... 라는 논리때문에 기피한다고 보이는 것이지요.
제일 쉬운 방법은 돈을 벌고 싶으면 위험과 노력이 따라야하고, 좀 안정적이고 편하고 싶으면 경제적인 것은 좀 포기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확립되어야하는데, 그렇다고, 의사나 변호사보고 돈을 못벌게 하는 방법은 없으니까... 차라리 이공계도 노력과 위험을 감수한다면 돈을 많이 벌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만들면... 돈을 벌던지 편하게 살던지 하는 것을 사람들이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군요.
편하게 살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면... 그건 힘들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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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MyCluster"]과학자들이 발견한 정리에 사용료를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만들어낸 오염은, 석유를 가공하여 사용할수 있게 만든 기술의 바탕을 만든 화학자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자동차 업계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알아듣기 어렵다면 쉽게 설명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회뜨라고 칼을 만들었더니 그걸로 조폭이 칼부림을 했습니다. 누구 잘못인가요?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아마도 경제논리를 따라가는것이 시대변화이고,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위기를 겪는것인데 무엇이 문제이냐?" 제가 듣기에는 그렇게 들립니다만...
이 논리를 다른 예를 들어 말해보죠(님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학 서열화가 한국의 시대변화이고 공교육이 그것에 따라가는것 뿐인데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냐?"
두 논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기초학문이 왜 필요한지, 전인 교육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것이 공통점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8)
No Pain, No Gain.
[quote]기초학문이 왜 필요한지, 전인 교육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것이
모르는것이 아니라, '기초학문만이 필요하고 전인교육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을 '기초학문이 왜 필요한지, 전인 교육이 왜 필요한지 모른다'라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님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뒤를 자르시는 경향이 좀 있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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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MyCluster"][quote]제가 보기에 '인문학과
외국의 환경에 비하여 열악하고 사회에서 저평가되기 때문에, 우수한 논문이 나오기도 힘들고 나와도 인정받기 힘든 구조인건 확실합니다만, 한국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외국과는 다르게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왜 그렇게 없는지는 도통 이해할수 없군요.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자연과학에 투자한다는 것이 님의 주의인건 알겠지만, 그런 마인드가 문제라는것이 펀글의 요지이죠.
High Risk, High Return.. 좋습니다...
저는 지금 돈도 못버는 주제에 수학공부하는 High Risk 입니다.
응용수학도 아니니, 무슨 기업에 돈벌어줄리는 없을것입니다.
만일 제가 Invention of Mathematics 같은 유명저널에다 논문을 기재하면
(수학계에서 5위권 내에 드는 저널이죠.)
우리나라에서 High Return을 해줄수 있을까요?
공학이 아닌데도 말이죠....
경제논리가 따라간다면 절대 불가능입니다.
No Pain, No Gain.
[MBC 스페셜]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1부> 지금 방송중
[MBC 스페셜]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1부> 지금 방송중
2월 8일, 저녁 11시 30분
지금 방송중입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Re: [MBC 스페셜]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1부> 지금 방송중
저도 녹화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미국편이군요.
screen + vim + ctags 좋아요~
[quote]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자연과학에 투자한다는 것이 님의 주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와야 자연과학에 투자한다... 가 논점이 아니죠. 이해하기 힘들게 썼다면 제 잘 못이군요.
제가 말하는 논리는, 가시적인 성과 여부를 떠나서 일단 이공계 내부에서 경제논리를 도입해서 도태해야할 곳은 정리하고 난 다음에 다시 투자를 하자는 것이지요.
펀글의 논리는 학문이라는 것은 경제논리와는 구분해서 투자해야한다는 것이지만, 저는 한정된 자원(돈이지만)을 무작정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다 투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중에서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투자할 만한 곳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한다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가 가실른지요?
제가 말하는 경제논리는 결과가 나오는 것만 투자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평등하고 획일적으로 투자하고 나눠먹기로 가는 것은 전혀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저도 프로젝트 안하고 있는거 아니고 님도 알겠지만, 쓰레기 같은 프로젝트에 엄청난 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을 이공계 종사자들은 알면서, 어차피 날라갈 돈 대충 먹고 보자는 논리가 팽배해있찌요.
그런 상황이라면 더 철저한 경제논리로, 수학을 연구한다고 할때, 그 기초학문이 공학에 대해서 도태되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기초학문내에서도 도태시켜야할 곳은 도태시키고 제대로 할 곳에 집중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지 않으신지요?
지금은 아시다시피 쥐꼬리 만한 과학재단 연구자금을 전국의 기초학문이라는 곳이 비슷하게 나눠갖고 있고, 그러면서 다들 불만만 팽배해있죠. 다른 분야도 말할것도 없고...
이런면에서 당연히 경제논리를 도입해서 제대로 결과 못내는(그 결과는 돈이 되던, 수학적으로 성공한 논문이 되던 그건 각자의 동네에서 알아서 판단할 문제죠)그런 연구팀은 당연히 사라지는 것이 맞겠지요. 물론 그 평가기준이나 시스템은 차후의 문제이겠지만요.
현재처럼 만인의 평등 모드에서는 아무도 만족할 수 없고, 결국 공멸의 길로 갈 수 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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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MyCluster"]제가 말하는 논리는, 가시적인 성과
학문중 도태되어야 할것을 도태시켜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경제논리로 도태시킨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태되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을 학문이나 당장 경제적인 가치가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공학이 아닌이상 기초과학은 아무리 최신조류를 따라간다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기초과학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학계 내부를 정화시킬수 있는 곳은 학계 자신입니다. 외부에서 돈으로 도태시키려고 하면 권력을 쥔 무능한 교수들이 도태되는 것이 아니고, 힘없는 최신조류를 공부한 젊은 과학자들만 도태되겠지요. 예컨데 정부지원이 줄어들고 자연계 지원이 줄어들면, 줄어드는것은 교수월급이 아니라, 강사자리와 강사월급입니다.
우리나라 학계도 옛날하고는 많이 틀립니다. 지금은 조교수가 되어도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90년대 후반부터 임용된 교수님들은 (기준이 모호해 말이 많긴 하지만)논문등 연구업적으로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계약직입니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도 간판보다는 능력으로 변하고 있고요.
결국, 돈줄을 쥔 관리들이 어떤 학문이 어떤 가치가 있겠느냐를 판단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_-; 과학자들이 공무원이 되어 정책을 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No Pain, No Gain.
[quote]학계 내부를 정화시킬수 있는 곳은 학계 자신입니다. 외부
학계 내부 정화를 학계가 해야한다는것이 맞겠지만 이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에는 회의가 드는 것이지요. 권력화된 교수들이 모든 평가와 예산지원 등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보니...
돈줄을 쥔 관리들은 결국 현재의 학계의 평가시스템을 믿지 않는다고 밖에 볼수 없고, 그들은 결국 그런 골치아픈 평가를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결국 닭이냐 달걀이냐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공계의 위기 원인은 외부에서 오는 것 뿐만아니라 내부의 고질적은 병폐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것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알수가 없는...
P.S 최근에 모 연구소에서 나름대로 기술개발을 하겠다고 총 30억원짜리 프로젝트를 만들었나보더군요. 그런데 이것을 총 10개의 세부과제로 나누고, 그 세부과제에 다시 팀을 5~6개로 나누고, 한팀에 교수가 3명정도 붙더군요.
이걸 정부에서 이공계를 살린다고 50억 100억 프로젝트로 만들어봐야 새나가는 돈만 늘어날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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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아는건 없지만서도...
전 윗 글에 전적으로 공감이 갑니다..
뭐.. 딴지를 거시는 글들을 보니 공학자한테 경제 논리가 필요하다는 글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본글은 경제논리로 해결할수 없는 것을 정부가 해달라는것 아닙니까?
그리고 공학자는 뭐 땅파서 최소비용으로 최고품질의 생산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 잖습니까.. 그 기반 기술은 결국 기초 과학이 쌓아줘야하는 것아닌가요..
그리고 전 기초 과학자들을 위한 시설 만들어서 just for fun이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아까운줄 몰라서 그런것이 아니라.. 그들이 just for work로 연구하든 just for fun으로 연구하든.. 기초 학문의 대규모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 주는것으로 그들의 역활은 끝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중에서 쓸만한(경제적으로) 가치를 지닌걸 골라내고 다듬는건 공학자, 엔지니어가 하면 되는것이고요..
아주 편협한 시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혼자서 뭔가 할수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보는 저로서는 기초를 쌓는 사람들은 기초만 착실히 쌓아주고 그것의 경제적 가치를 뽑아내는 이들은 그것만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경제적)일꺼라고 봅니다..
하지만 기초 학문이란건 백년지대계가 아닐까요. 이런일은 정부가 맡아 줘야 하는거겟죠?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공교육의 부실화 부터 인문학 위기, 대학의 위기, 이공계 위기 전부가 연결된듯 하군요..
윗글에서 나타난 걸 보자면.. 우리나라는 이공계의 위기라며 엔지니어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려고 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경제적 가치를 가려낼 기초 학문은 조잡한 메모 한장인것처럼 보이는 군요.
가장 밑에는 많은 기초학문의 자료들, 그위는 아래층에서 건저올린 경제적 가치를 지닌 기술들.. 그위에는 기술을 응용한 상품....
이런 배치가 되줘야 올바를듯한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있는 듯하네요..
그리고 인문학, 이학, 공학 역시.. 순서를 반대로 보고있는건 아닌지..
솔직히 윗글에서 인문학과 이공학 사이에 상당한 갭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뭐.. 이학도로서 다 매꾸기는 힘들지않을까요.. ^^
제가 보기에도 제발 인문학을 국가정책적으로 연구했으면 합니다..
민족성, 민족 자아, 자주성 이런것은 다 인문학에서 오는 것 아닙니까..
모 자동차 광고처럼.. 10년을 생각하면 기술이지만,
100년을 생각하면 철학이 아닐런지요..
국내에 터잡은 기업들에게 100년을 내다 보라는건 무리라고 봅니다.. 민간 기업이 기초과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시는데..AT&T IBM 이것들은 초국적 기업아닙니까? 이미 저들은 왠만한 국가를 능가하는 재력을 지니고않나요? 저들 기업이 무기사서 무장만 하면 아마 국가하나 만들어 질겁니다.. 삼성한테 100년을 내다보라는건 아직이 아닐지.. 삼성은 10년까지만 생각해줘도 고마울것 같네요..
백년지 대계를 세우는건 역시나 국가가 해줘야할 역활 같습니다.
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사실 철학적인 개념의 혁신 아닙니까?
그리고 윗글에서 토론할사람이 없다는 애기는 정말 가슴에 와닿군요..
사실 제가 사대입니다 ㅡㅡ;; 컴퓨터 교육과인데.. 저는 공학도 체질이지만 주위는 다들 교사체질이 많은지라.. 같이 기술에 대해 애기하고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굉장히 찾기 어렵다는... 오죽하면 제가 1명만 있엇으면 하고 다닌다는....
인간은 뭉쳐있을때가 강하다는걸 느낍니다..
[quote="fibonacci"]과학자들이 공무원이 되어 정책을 하는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
이 아이디는 이제 쓰이지 않습니다.
달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너무 빠르게만 진행된 사회적인 성격
달걀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빠르게만 진행된 사회적인
성격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이런 토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그한예가 아닌가 싶네요..
우리나라가 경제규모는 굉장히 크다고 하지만
아직은 개발도상국을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중진국입니다.
우리는 안된다는 자조 보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져 보는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너무 빨리 해왔지 않습니까?
이제는 교육이라는 대세는 천천히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지 합니다.
개발자들의 궁극적 비전은 ?
돈 못더는 공학도... 팔리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공학도...?과연
돈 못더는 공학도... 팔리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공학도...?
과연 이런게 존재나 하는 것일까?
이런 사람은 돈많은 한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공학과 경제는 물을 만드는 수소와 산소와 같다...
근데 지금 우리에게 아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모두들 목말라 있다.
근데... 무언가가 부족하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하양 지훈'>
#include <com.h> <C2H5OH.h> <woman.h>
do { if (com) hacking(); if (money) drinking(); if (women) loving(); } while (1);
돈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초과학, 공학, 그리고 돈...
돈이 되지 않는 건 쓸모가 없나요? 적어도 공학은 그렇다고 하시는 분이 많으시네요. 하지만, 모든 가치가 돈으로 계산될 수는 없잖습니까. 돈으로 환원하여 계산하기가 힘들거나, 아예 그럴 수 없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물론 경제적 가치라는 것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만, 사회에 존재하는 가치라는 것을 모두 돈으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GNU Project를 포함한 자유소프트웨어 활동들이 경제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얘기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경제적인 가치만으로 말해버리면 정말 중요한 가치들이 사장되어 버리는게 아닙니까. 애초에 경제적인 가치만을 얘기했다면, GNU Project는 존재할 수도 없었겠죠.
Re: 돈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GNU로 돈 버는 사람들이 있으니깐...
아주 좋은 발명이죠...-_-ㅋ
이 개념 이걸 이용한 서비스들...
아주 좋은 상품인것을...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하양 지훈'>
#include <com.h> <C2H5OH.h> <woman.h>
do { if (com) hacking(); if (money) drinking(); if (women) loving(); } while (1);
어이없는 글도 있더군요.
“이공계 살리기, 왜 그래야 하지" 라는 글도 있더군요.
http://www.cultizen.co.kr/content/?cid=1488
황당해서, 제 블로그에 반박글 쓰는 중입니다. (http://jaju.net/blog/)
우수하지 않아요. '우수한'은 옛날 만화 CityHunter에서 따와서 쓰던 별명. ;-)
대략 , 잘하면 잘 될것입니다.이슈화 될만한 내용은 아닌,보편적인
대략 , 잘하면 잘 될것입니다.
이슈화 될만한 내용은 아닌,
보편적인 사회적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프로그래머는 돈은 못 번다 라는걸 이슈화나 해볼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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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Copy&Paster 이다. 나의 화려한 기술 조합에 모두들 나를 두려워 한다. 나도 코드 Maker 이고 싶다.
제 자신이 아직 그러지 못해서 이런말 하기 좀 그렇지만..결국 자기자
제 자신이 아직 그러지 못해서 이런말 하기 좀 그렇지만..
결국 자기자신이 하기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 하면.. 그땐 사회제도나 환경을 개선 해야 겠지만..
(전 정말 이공계로 가고 싶었는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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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디는 이제 쓰이지 않습니다.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신 분이 쓰신 글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정부의 ``이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신 분이 쓰신 글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정부의 ``이공계 살리기'' 정책들에 대해서 뭔가 꺼림찍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쏟아 붓는다 해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의 이유를 이 글이 깨닫게 해주더군요.
사실 원글을 쓰신 분의 논리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저도 고교 시절이나 대학 초년 시절만해도 학문의 순수성 보전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 학문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참고로, 저는 과학고등학교를 수료했고 전산학을 하는 공대생입니다. 고교나 대학 초년 시절에는 물리학이나 수학, 그리고 인문학에도 많은 흥미를 가지고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진짜로 과학밖에 모르는 공돌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속세에 점차 물들어서인지 머리 속에 확고했던 학문의 순수함에 대한 생각도 파고드는 경제의 논리 앞에서 소리없이 파묻혔던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치 먼지 쌓인 옛 일기장에서 완전히 잃어버렸던 자신의 옛모습을 되찾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간 제가 경제 논리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사실, 특히나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습니다. 요즘에는 무슨 간단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더라도, 이걸 어떻게 응용해야 제품으로/서비스로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에 시달렸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당장에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흥미있는 주제는 혼자서 자료도 뒤적이고 틈틈히 구현도 해보지만 이런 것들을 취미 이상, 그것도 ``직업''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몇 군데 일해본 회사에서 하는 업무들이 대부분 저런 취미 수준도 못되더군요. 생동감이 없습니다. 개발을 하더라도 결과물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어딘가 부실합니다. 돈만으로는 기술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더군요. 물론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겠죠, 돈은 무얼하든 필요하니.. 연구소들이 많이 생겨 부담없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만 학문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결과들이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 문제로 휴학을 했습니다. 병역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업계로 나와 산업 전선에 뛰어들 지, 학계에서 꾸준히 공부해서 연구를 할 지를 먼저 정해야만 했습니다. 그간 몇 차례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빼고는 줄곧 학교 생활이 전부라, 연구가 적성에 맞는 편이지만 그래도, 회사 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full-time으로 크고 작은 회사에서 일해보고 산업기능요원으로 구직도 해보면서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당장 오늘의 잔재주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터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의 노예가 되어 (그렇다고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내일 없는 나날을 보내는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같이 일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부분 비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저 돈을 굴려 불리는 방법이나 큰 돈이 오가는 일에 어떻게 손을 댈 수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대부분입니다. 제 자신도 그 속에 같이 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자연히 그렇게 변해가더군요. 돈에 코가 꿰인 사람들.. 그런 분위기의 기업과 사회에서 기술 개발이며 산업과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요?
원글을 쓰신 분의 주장대로 학문에 채워진 경제의 논리라는 족쇄를 풀어버려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 사회의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인문학, 과학과 기술이 죽어가면서 산업 침체와 청년 실업, 거기에 의대 법대를 보내기 위한 교육비 증가가 출산 기피로 이어져 인구 고령화, 인구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돈이라면 눈이 뒤집히고 목숨도 맞바꾸는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경제 논리에 세뇌돼 무너지는 우리나라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유 경제(?; 정확한 명칭/분류는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구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인간성을 현실에서 운용하기 위한 운영체제입니다. 쓰고 있는 운영체제에서 돌리기 적합하지 않은 일은 해서는 안되는 겁니까? 경제 논리에 맞지 않은 학문은 그만두어야 합니까? 바뀌어야 할 것은 학문의 정체성이나 우리들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운영체제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면 세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내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인지, 시대가 나를 살려두는 것인지. 빠른 시일 안에 목숨 걸고 지킬만한 것들이 넘쳐나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Re: 어이없는 글도 있더군요.
내용을 요약하면 가난하게 살면서 인문학으로 자위해라가 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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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essential, if man is not to be compelled to have recourse, as a last resort, to rebellion against tyranny and oppression, that human rights should be protected by the rule of law.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 블로그에도 써놨지만..만약 울니라의 국영기업중에 이공계만 우선해서
제 블로그에도 써놨지만..
만약 울니라의 국영기업중에 이공계만 우선해서 뽑은 기업이있다면 아마 그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엘리트집단일껍니다.
아쉽게도 그렇게 뽑으려했다면 미련 빠순이같은 금뺏지아져씨들과 다른 공뭔아져씨들이
개지랄을 떨겠죠?(표현이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런말 나올때면 욕을 가리지않습니다. 죄송이라는말보다는
이해라는 말을..)
물론 저역시 전산을 초딩때부터 지금껏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향중입니다. 공뭔될라구요.
공뭔되서 돈 수천억 받고 그만둘렵니다. 아니 짤리는 그순간까지 돈받을려고 은행계좌 열어둘지 모릅니다.
안주면 협박해서라도 있는돈 다 갈고리고 긁어다 돈방석에 눕고싶습니다.
그 씨커먼 돈으로 울부모님 호강이나 실컷시켜드릴렵니다.
그러다 걸려도 대가리뻣뻣하게 들고 다닐렵니다.
나 그렇게 돈긁는다는데 비리니 잡아간다니 지랄거리면 공무집행방해죄로 대가리 짤라버릴껍니다.
왜냐면 그들도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저도 그럴테니까요.
정말 제생각이 어이가 없죠? 욕나올라고 하죠? 제가 텔레비 볼때마다 그랬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이변이없는한 그럴꺼같습니다. 제가 해왔던것에대해 한점 후회가 없어야하는데
지금 저는 물에빠진 생쥐꼴이군요..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열이 받을만치 받았습니다. 공뭔되면 착실하게 돈부터 긁어 모울렵니다.
내가 그간 전산공부한만큼 모울랍니다.
필요하다면 죄다 죽여버리고 사람머리위에설렵니다.
장담컨데 사회에서 이공계를 버린죄가 얼마나 큰지 결국 뼈저리게 느낄껍니다.
그런 인간들 미안하지만 사물하나 구분못해 썩어문들어진 동태눈알과 썩을때로 썩어문들어진 뼈와 피가 거꾸로솟게하는 구멍난 염통과 누렇게 기름낀 창자와 부어오를대로 부어오른 간댕이 등들을 내밀고
죄다 죽어버렸음좋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꼭 그렇게 죽어버렸음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좋지못한글써서.. 그런데 공감하실분들이 있을꺼라생각합니다.
이상이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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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불안한곳에서 일한곳을 젤싫어합니다.
그런곳에서는 생산능률도 오르지않습니다.
매일 언제짤릴까 언제 부도날까 하는 그런곳에서 일하는게 젤싫습니다.
그런걱정을 하는것자체가 내게는 낭비이고 나 하나의 낭비가 결국엔 아주작은 국가적인 손실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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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SS bless you... ^^*
글이라는 것이 말과 달라서 퇴고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글은 말과 달리
글이라는 것이 말과 달라서 퇴고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글은 말과 달리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퇴고의 과정이 더 필요하겠지요.
가슴속에 쌓인 것을 배설했고 공감했다는 느낌보다는, 님이 뱉어버린 배설물을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침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군요. 아침은 좋아야 하는데 그것이 깨져서 몹시 화가 납니다.
다음에는 표현은 덜 과격하되 의미의 전달은 더 명확한 글로써 다시 한번 뵙기를 희망합니다.
내 블로그: http://unipro.tistory.com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2부> 오늘 방송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2부>
2004년 2월 15일, 오늘 저녁 11시 30분에 지난 1부의 미국편에 이어
2부 프랑스편을 방송합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일단은 인구가 있어야... ㅡoㅡ아직은 몇천만 인구가 먹고 살기도
일단은 인구가 있어야... ㅡoㅡ
아직은 몇천만 인구가 먹고 살기도 바쁘니..
인구가 좀 있어야.. 먹여 살리는 사람들도 있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겠지요..
작년 일본 여행 다녀와서는... 인구가 부족해.. 라는 생각이 끊임 없이 들고 있다는...
인구가 있다면 좀 색다른 생각이 있을 때.. 따라주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요샌 자주 들곤 하죠..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는것 같단 뭐.. 이말입니다..
유럽 같이 조그만 나라들이 모여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도 못되니.. 쩝..
ㅡ_ㅡ;
[quote="tinywolf"]유럽 같이 조그만 나라들이 모여서 힘
우리도 유럽연합 가입시켜 달라 그러죠 뭐
지금은 어렵지만 착실히 준비만 잘 하면 앞으로 가능할수도 있습니다.
육로로 연결이 가능하니까요.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2부> 지금 시작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2부>
2004년 2월 15일, 오늘 저녁 11시 30분
지금 시작 했습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우리나라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지만 프랑스에서는 거의 그랑제꼴
우리나라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지만 프랑스에서는 거의 그랑제꼴의 싹쓸이죠. 국회의원들이나 고급관료들도 대부분 그랑제꼴(인문계 또는 이공계) 출신들이라고 힙니다.
그리고 오늘 TV에서는 소개를 안했는데 초등학교 2학년때 모든학생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해서 뛰어난 학생들만 뽑습니다. 그리고 그랑제꼴을 겨냥한 엘리트교육을 그때부터 시작하는거죠. 초등학교 2학년때 거의 미래의 신분이(엘리트냐 아니냐)결정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때 뽑히는 것은 노력한다고 돼고 안돼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에서 학력의 세습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랑제꼴 이외의 모든 대학들은 완전히 평준화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프랑스의 국경일때 있는 군 퍼레이드에서 이공대생들이 행진의 선두에 서는 것은 부러웠습니다. 이거 우리도 하면 좋겠습니다. 이런거 하나 하나에서 사회의 인식을 바꿀수 있겠지요.
위의 프랑스와 달리 미국에서는 다양한 대학의 출신들이 여러방면에서 활약을 합니다. 최고급의 여러 대학들이 경쟁을 하는 형태지요. 물론 인구와 재력이 뒷받침되는 대규모의 자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리고 기부금 입학이 활성화 되어 있어서 학력의 세습은 어느정도 용이한 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탬은 미국과 프랑스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는것 같습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quote]현재 우리나라의 시스탬은 미국과 프랑스의 중간 형태를 띠고
좋은것 두개를 합친다고 더 좋은게 나오는게 아닌거죠... 단점만 상승작용을 거친다고 볼 수 있읍니다.
프랑스는 똑똑한 선수들이 이공계-항공우주대학 좋더군요. 한국은 나와도 갈데가 한 군데 밖에 없는 전공이지만-에 가는게 맞죠. 의사나 이공계나 일의 강도도 비슷하고, 들어가는 노력도 비슷하고 버는 돈도 비슷하니 하고 싶은 것을 하겠지요.
한국은 아니죠.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제가 대학들어올때 학력고사를 봤는데, S공대의 좋은 과가 대부분 310~320점, S의대가 315점 정도에서 좋은과가 결정되었죠. 치대는 310점 정도...
공대생 - 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5~6년 정도 해서 마치면 서울대 박사가 되지요. 나이는 32세 정도
의대생 -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 군의관 제외하고 대충 32세 정도
약간의 불규칙적인 삶을 편히 살수 있다는 것이 공대생의 장점으로 보이지만, 어차피 노력은 대충 비슷하게 하겠지요.
이 시점에는 연봉이 비슷합니다. 병원에 월급장이로 취직을 하면 공대생 4000만원 정도, 의사 4000~5000만원 정도....
그런데 월급에 있어서는 공대생은 호봉제로 올라가는 직장으로 가고, 의사는 대부분 월급장이들은 대학병원에 남아서 '특진'을 하게 되는 스텝이 되죠...
그럼 자영업으로 돌아본다면 공대생은 벤처회사 차려서 100의 98은 망하고... 의사는 100의 98은 성공하지요. 여기서 한 3~4배 정도의 평균 연봉 차이...
이런 상황이라면, 똑같은 점수표를 들고 누가 공대를 갈까요? ^^
직업군간에 들어가는 노력과 일의 강도에 비해서 너무나 급여평균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 상당한 문제점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프랑스나 영국의 이공계 연구소들은 박사학위가 없더라도 오랜 현장실무경험이 있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고 살 수 있는 반면에...-실제 아까 방송된 프랑스 항공우주분야에 박사 아닌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프랑스는 원래 박사란거가 없으니- 한국은 아무리 능력있어도 석사는 석사고, 박사는 박사인것이죠. 이게 연구소 현실입니다.
그리고, 대학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절정 울트라 능력을 갖고 세계적인 논문을 수십편을 낸 박사나, 그냥 학위만 받은 박사나 어차피 연구소 취직하면 똑같이 선임 1호봉으로 시작합니다.
결국 다 하향평준화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이네요. 그리고, 저도 그게 세상사는데 편하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읍니다. ^^ 일 두배하고 결과 2배 냈다고 월급장이 월급 2배 받는거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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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위의 리눅스 윈도위의 윈도우 리눅스위의 익스플로러
High Risk, High Return
경제논리로 따지면 High Risk, High Return. 좋아요.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이 성공할 경우 대박을 터트리는 법이죠. 물론 망하면 쪽박을 차겠지만...
하지만 지금 이공계에서 과연 고위험에 따른 고배당이 있었는지 MyCluster님께 되묻고 싶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 따서, 혹은 회사 차려서, 혹은 연구원 들어가서 또 열심히 연구하고 그래서 돌아오는 것은? 사오정 아닙니까?
더욱 더 철저한 경제논리로 가자, 이거 좋습니다. 천지인 개발해서 900억의 부가가치를 올리고 상여금 몇십만원 받을 수는 없겠지요. 법원이 업무상 특허는 개인에게 권한이 없다는 판결도 경제논리에 맞는지 묻고 싶습니다.
시장논리, 경제논리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왜 각국 정부가 시장을 조절하고 통화를 조절하는 지 생각해 보세요.
[quote]경제논리로 따지면 High Risk, High Return.
이 내용을 보니, 고위험에 따른 고배당은 절대로 안된다고 보이는군요. 하지만, 고위험에 저배당을 고착화 시킬수도 있지요.
각국정부는 시장을 조절하고 통화를 조절하기에 앞서서 시장에게만 전적으로 맡맡겨본적도 있고, 이를 통해 문제를 보고 조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한국은 한번도 시장과 경제논리에 맡겨본 적도 없으면서 조절만 하고 있지요.
결국, 이공계는 앞으로 가면 갈수록 요구하는 지식과 노동강도는 늘어나고, 소위말하는 보상은 점점 줄어드는 그런 구조가 될것은 불을 보듯 뻔하겠지요. 사오정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이 이공계인 회사에서도 자신들의 월급을 줄여서 모든 사람들이 60세까지 나눠갖는 모드가 되던지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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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3부, 4부 >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3부, 4부 >
2004년 2월 22일, 오늘 저녁 11시 30분에 지난 2부의 프랑스편에 이어서
3부 핀란드편과 4부도 방송합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Re: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3부, 4부 >
왠지 헬싱키 대학과 리눅스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나온다고 하더라도 아마 금방 지나가긴 하겠지만....꼭 봐야겠습니다. :-)
위기는 결국 내부의 문제입니다. 내부적 문제가 없는 곳에 위기가 올 수는
위기는 결국 내부의 문제입니다. 내부적 문제가 없는 곳에 위기가 올 수는 없습니다. 이공계의 인력 교육에서부터 이공계의 활용까지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이공계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느냐? 학생이 어렵고 지저분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기존보다 수업강도가 떨어지지 않았냐 등등. 이공계에 지원하는 인력의 질이 진짜로 떨어졌다면 졸업생 수 역시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실제로는 아니지요. 학교에서 들어오는 인력의 질을 이른바 질이 높았던 시절의 졸업생 수준만큼 올려놓고 있던지, 아니면 평가 수준을 낮추었던가 중 하나겠지요. 이도 저도 아니면 애당초 졸업생 수준에 대한 어떠한 기대값도 없이고, 그냥 4년 다니면 졸업장 준다는 식이던가요.
인력활용에서도 사회와 기업에 과감한 개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공계 인력에 대한 호봉제의 완전 폐기와 같은 그런 요구를 말입니다. 외국과 같이 백발에 자기일하는 엔지니어가 부럽다면, 장기간 해당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일하면서 연봉은 평사원급에서 만족할 수 있다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 연봉을 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1년전에도 똑같은 분량의 일을 똑같은 시간에 하고, 10년전에도 똑같은 분량의 일을 똑같은 시간에 했다면 연봉 역시 1년전과 10년전이 동일해야 합니다. 나이 50세에 30세의 관리자에게 지시를 받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않된다고 과감히 사회와 기업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또한 이공계도 중요한 사회적 기술적 문제에 과감하게 이야기하거나 글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CDMA 개발당시 모든 사람들이 CDMA를 지지했었습니까? 지금 우리는 CDMA 결정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누가 CDMA결정을 주장했고, 누가 반대했는지를. 성공했으니 CDMA 선정이 최선의 길이었다는 자화자찬만 남아있습니다. 실제 관련된 분의 글을 보면 선정 당시 별별 주장이 다 나왔습니다. CDMA, GSM, TDMA까지. 현재 사회적 이슈가 되는 디지탈 방송에 대한 이공계의 입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미국식, 유럽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정책 결정에서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정책결정자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되물을 경우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이공계의 사회적 대우가 낮아지고, 중요 정책결정과정에서 이공계의 말빨이 사라지는 것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지라고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quote="fatman"]. 현재 사회적 이슈가 되는 디지탈 방송에
정책 결정자가 그걸 이해 못하면 그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것이겠지요. 그래서 이공계출신 관료가 절실한것이 아닐까요? 순수한 엔지니어는 오직 기술적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가치가 맞물려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할수 없습니다.
No Pain, No Gain.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3부, 4부 >
[MBC 스페셜]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3부, 4부 >
2004년 2월 22일, 11시 30분
지금 시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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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못보신 분들은 www.imbc.com 에서
유료이기는 하지만 다운로드해서 보실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2부> 프랑스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핀란드편..끝나고 이제 "대한민국 이공계 살리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네요.
핀란드편..끝나고 이제 "대한민국 이공계 살리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네요.
핀란드편에서 리눅스 얘기는 안나온것 같은데...(보다가 중간중간에 좀 딴짓을 하느라..) 맞죠?
맞습니다. 리누스 얘기는 없었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핀란드는 하드웨
맞습니다. 리누스 얘기는 없었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핀란드는 하드웨어쪽이 강한거 같은 느낌을..
핀란드는 산 + 학 협력이 잘 되어 있는거 같네요.
screen + vim + ctags 좋아요~
MBC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4부 봤습니다.3부만 보구 말걸 하는
MBC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4부 봤습니다.
3부만 보구 말걸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4부 보고난 소감이라면 절망적이라는 생각 밖에는 안드는군요
그래도 어느정도 이공계 정책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분들이
나오신것 같은데 전혀 핵심 요지를 파악못하시는것이 결국
정부의 정책을 믿을수 없으며 자신의 밥그릇은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지켜야 할거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이민이라도 가야하지 싶습니다.
High Risk & High Return ~
저는 그 동안 MBC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프로그램은 못보다가4부만
저는 그 동안 MBC 이공계 위기는 기회다 프로그램은 못보다가
4부만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 나서 할말이 없습니다.
정말.
어째 쓰레드가 잠잠한 걸 보니, 4부는 보신 분들이 별로 없나 보군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잠시 나와있어서 방송은 못봤습니다만... mbc 게시판이나 scieng
잠시 나와있어서 방송은 못봤습니다만... mbc 게시판이나 scieng 보니까 의견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 정도로 코미디가 된건지 --;; vod 가 500원 하던데 50원도 아깝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그 프로그램은 1편 일부만 잠깐 봤는데 그냥 대놓고 이민가라고 하는것 처럼 느껴졌다는...
구한말에도 이렇게 나라가 망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1편 부터 3편까지는 잘 만든 다큐였고 참고할것도 많아보였습니다.
1편 부터 3편까지는 잘 만든 다큐였고 참고할것도 많아보였습니다.
근데 4편은 조금 많이 부실해보였습니다.
1, 2, 3편을 참고해서 5편을 새로 제작하면 좋을것같네요.
개인적으로 프랑스에 대한 2편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프랑스는 소수 최정예화 그리고 핀란드는 다수 고급인력화가
특징이죠.
우리나라는 자원을 집약하지 않으면 규모를 따라 갈수가 없기 때문에
미국식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프랑스식 바탕에 핀란드식을 가미한 제도가
좋을것 같습니다.
- 험한 세계에서 자주국방 없는 경제력은 경비없는 은행이다. -
얼마전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줄기세포 복제로 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
얼마전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줄기세포 복제로 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죠. 현재 그로인해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것 같습니다.
황우석 교수 개인적으로 각국에서 엄청난 양의 격려 이메일을 받고 있으며 각국의 관련 연구소에서 스카웃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생명공학의 학문적 수준에 대해 세계각국이 다시 평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좀 오버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몇일전에는 황우석교수 노벨상 수상을 위한 후원회를 과기부 차원에서 만들기로 공식 발표를 했고요.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놓고 보면 역시 제가 예전부터 간직해오던 생각들을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적용할 수 밖에 없다는것을 매우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바로 소수의 슈퍼스타에 의한 시스템의 개선효과 라는것이죠. 이공계 인력을 올바르게 길러내고 유지하는것이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안된다면 그 짐이 어쩔 수 없이 이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개개인에게 넘어갈 수 밖에 없고, 때문에 이러한때는 이공계분야에 존재하는 매우 뛰어난 소수의 슈퍼스타에 시스템을 개선시키는 역할을 부여할 수 밖에 없을것이란 거죠.
이는 중국에서의 이공계 우대정책은 양첸닝이라는 노벨상 수상자의 강력한 배후 세력으로서의 실력행사가 크게 작용한 결과로 나타났다는것과(물론 그것만이 절대적인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미국에서의 왓슨(크릭과 함께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받았던 그 사람)이 일찌감치 과학기술 정책입안자로서 크게 활약한 결과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었다는것에서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현재의 위정자들에겐 (이공계 발전에 대해) 더 기대할것이 없고, 그저 우리들 스스로 역량을 키워서 이 분야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기도 합니다.
시스템이 먼저냐 개인의 능력이 먼저냐 하는 논란이 있을수가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시점은 시스템으로부터 무엇을 바라기는 어려운 때임이
분명하고 이 때문에 일단은 개인의 능력부터 크게 키워나가는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경제나 정치나 가장 적은 간섭이 가장 발전할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몇백년
경제나 정치나 가장 적은 간섭이 가장 발전할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몇백년전에 나온 예기.. 정치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나 정치중 간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막말로 청년실업자를 하루 일당 1만원씩만 주고 국회로 보내면 설마 나라가 거꾸로 갈리 있겠습니까?
국회위원들 뻘짓하는 꼴을 안봐서 좋고.. 쳥년실업해결해서 좋고~ 참신한 아이디어 나와서 좋고~ 킥킥~
바보를 알아라
[b]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