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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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직장을 다닙니다.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쌓인 일이 있기도 했고, 이례적으로 제 동료가 게으르거나 멍청하거나 둘 다에다 무례한 인간인데, 얘가 도저히 남은 일을 해결할 것 같지 않아서 소위 2 week notice를 주고 좀 달렸습니다. 그랬더니 매니저가 고맙다고, 너 work ethic이 좋다고, 보통은 그렇게 안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하루 10시간 일 한 것도 아닙니다. 대충 8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일을 했고, 당연히 전에는 8시간 집중해서 일을 하질 않았기 때문에 밀렸던 일 몇 가지를 해결하거나 거의 해결했습니다.

회사에 신세 진 게 참 많습니다. 학생 때 오퍼를 받았는데, 졸업이 늦춰져서 입사도 약 10개월 정도 늦춰졌습니다. 10개월 기다려주는 경우가 흔하진 않은데 기다려 주더군요. 사실 입사할 때도 제 신분상 한국에 2년 갔다 와야 취업 비자와 영주권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도 미국 기업에 갈지 한국 기업에 갈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었습니다.

결국에는 한국을 보내주더군요. 이런 경우에는 보통 지사로 보내주는데, 그러면 월급이 절반으로 깎이니까 주재원으로 보내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연간 2천만원을 세금 문제로 추가로 부담했었습니다.

제가 영주권이 있었거나 시민권자였다면, 아마 이직을 2년쯤 먼저 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이직을 해야 월급이 오르거든요. 저의 경우에 초봉이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하나도 안 오르다시피 했고, 이직을 하면서 두 배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만약 회사가 그렇게 배려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연봉을 보전해서 한국으로 보내주지 않았다면, 저는 미국 내에서 이직할 수 있는 신분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 회사/문화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생색을 내고 배신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회사는 그렇지 않더군요.

이직하겠다고 하니, "very very sorry to hear that"이라면서, "내일이 비록 휴일이지만 나는 시간이 된다, 얘기를 좀 해볼 수 있겠느냐? 뭐 때문에 떠나는지 얘기를 해줄 수 있느냐? 시간을 좀 주면 우리가 최대한 맞춰보겠다"고만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아내가 여태 가정주부였는데 다시 일을 하고 싶어한다, 다만 아내의 전공이 미국서 h1b를 해주는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아마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시 다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간 누가 아이를 더 오래 봐야 하는데, 아내가 아이 볼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보육비가 늘어나는데 내 월급 갖고 감당이 안 된다, 새 고용주가 연봉 두 배를 제시했고 이거 말고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영주권도 몇 달째 얘기하는데 안 되는 걸 보니 upper management에서 pending된 것 같은데, 내 가치를 그 정도로 본다면 아마 새 고용주의 연봉을 맞춰주기 힘들 것 같아서 그냥 오퍼 레터에 사인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승진은 원래 시켜줄 거였는데 너 신분 문제로 늦어진 거다, 영주권은 지금 내가 강하게 푸쉬하면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연봉 두 배는 솔직히 맞춰주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여태 너무 고마웠고, 같이 일한 사람들 X, Y, Z 등등 모두 다 너무 대단했고--딱 한 사람의 예외가 있는데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매니지먼트도 너무 마음에 들었으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만 지금은 가족들이 돈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서 나도 이기적으로 굴 수는 없어서 이직을 해야겠다고 하고 대화가 잘 끝났습니다.

이직할 회사가 연봉은 두 배를 더 주지만 사실 직급은 하나를 깎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연봉 많이 주는 다른 회사들--예컨대 트레이딩 펌들--이랑 인터뷰를 보고 오퍼를 받아서 흥정을 할 걸,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그래서 아마 새 회사에서도 한 2, 3년쯤 다니면서 보다가 이직 시도를 해서 오퍼를 받고 그걸 기반으로 대우를 조정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레퍼런스가 있으면 좋은데, 제 생각에는 저의 두 매니저가 좋은 레퍼런스를 해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서 회사 생활을 별로 해보지 않아서 이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늘 의아한 게, 삼성, LG서 L1으로 미국 오시는 분들이 미국 회사로 이직하셨다는 얘기, 영주권을 땄다는 얘기를 자주 못 듣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못 듣는다"고 표현했지만 들어본 적이 없어요.

L1은 회사만 놓아준다면 h1b 받고 이직하기 좋은 신분입니다. 학생 -> h1b로 가는 경우는 쿼터가 있어서 소위 뺑뺑이를 돌려 당첨이 되어야 하지만, L1, 주재원 비자 신분에서 h1b로 가는 건 추첨을 안 해도 되거든요. 그리고 영주권도 심지어 h1b보다 L1이 더 쉽게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느낌은 대기업도 자신들이 지키고 싶은 인재들을, 실리콘 밸리 기업들(예컨대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같은 최상의 기업들을 포함해서)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주지 않고서 이상한 방법으로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적으로 잘못된 느낌일 수도 있구요.

그런데 미국, 제 직장에서 이 온갖 스토리 뒤에도 저를 이렇게 순순히 보내주면서, "그래, 거기 가서 어떤 일을 할 거냐?" "아, 그래? 그거 되게 괜찮아 보인다. 앞으로 하는 일 다 잘되길 바란다."고 축복해 주거나, 기껏 1주일 남짓 제 앞으로 assign되어 있던 일들을 하루 8시간씩 집중해서 일을 했다고 "너는 work ethic이 이례적으로 좋은 것 같다"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는 일을 경험하니, 미국 이직이 꼭 돈 문제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랄까, 제가 한국서 석사하는 동안 교수한테 인간으로 대접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박사 지도교수와 지금 회사에서는 인간 대접은 넘치게 받은 것 같습니다.

세벌의 이미지

제목을 보고는 이직 할까요? 말까요? 하는 글인 줄 알았는데 내용은 그게 아니었군요.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시고 유익한 정보 공유 바래요...

Stephen Kyoungwon Kim@Google의 이미지

감사합니다.

나빌레라의 이미지

본문에 틀린 내용이 있습니다.

L1 -> H1으로 바꿀때도 모든 절차 다 거쳐야 합니다. (추첨 포함) 실제로 L1에서 H1 추첨 두 번 떨어지고 세 번만에 H1 변경한 주변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L1이나 H1이나 영주권 프로세스도 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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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나빌레라의 이미지

아, 그리고 한국 회사에서 미국에 주재원으로 L1 비자 받고 오시는 분들이 왜 미국 회사로 이직을 못하냐면...

L1 비자 자체가 이직이 안되는 비자이기 때문입니다. (H1은 이직 가능)

그런데 영주권이라는 것이 스폰서가 있어야 신청이 가능합니다. 스폰서 없이 신청하려면 NIW라고 해서 박사학위에 좋은 논문에 교수등의 추천서등으로 접수하거나 어느정도 이상 경력에 특허등 특출난 능력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변호사비용이 발생하지요. 그래서 주변분중에 주재원으로 와서 회사 몰래 변호사 선임해서 영주권 받아 이직해서 정착한 사례도 있습니다.

주재원 근무 중에 다른 회사 인터뷰 -> 인터뷰 합격 -> 해당 회사에서 H1B 스폰 -> H1B로 이직 (L1으로 와 있던 회사는 퇴사) -> 영주권 코스로 자리잡은 사람도 있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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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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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에서 h1b로 넘어갈 때도 h1b cap 적용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L1이 이직이 안 되는 비자인 건 당연히 알고 있고요.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이직 경로는 인터뷰 합격 후, h1b 스폰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h1b 캡이 없다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왜 l1으로 오는데 h1b를 받아 이직을 못 하는지 의아했던 것이었습니다.

NIW는 특히나 전산 전공은 상대적으로 좋은 논문, 특허 등이 없어도 가능합니다만--저도 고려했기 때문에 복수의 변호사를 알아봤고 저 역시 가능은 한데 EB가 빠를 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용주가 비용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아니면 일단 2천만원 가까이 비용이 들고 시간 역시 말씀하신 대로 겨우 NIW가 나올 정도의 실적이라면 EB에 비해 이점이 없죠. NIW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직을 하는 것도 당연히 시간상 부담이고요.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회사에서는 영국 같은 데서 L1으로 와서 영주권 전환하거나 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를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바탕으로 이해해 보면, 한국 회사들은 주재원의 영주권 스폰서를 안해주는 편인 모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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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쓰셨듯이 한국회사는 아직 보상(돈)으로 사람을 붙잡는다는 개념이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한국회사 입장에서 중국이나 동남아도 아니고 미국으로 주재원을 보낼 정도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키우려고' 점찍은 인재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영주권 스폰을 해주면 이사람들중 90%는 회사를 옮겨버리죠. 한국회사 입장에서는 손해입니다. 그럴바에는 영주권을 못받게 방해하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이득입니다.

그래서 L1비자가 5년이 가능함에도 주재원을 2년 정도로만 보낸다던가, 영주권 진행한다는 첩보(?)를 접수하면 바로 한국으로 다시 송환한다던가하는 꼼수를 쓰지요. 거의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사례는 한국에서 미국회사에 직접 인터뷰 봐서 합격한 후에 미국회사에서 H1을 접수했는데 로터리에 떨어지든, 그냥 리젝이든 H1을 못받은 경우에 합격자를 영국이나 캐나다 등 상대적으로 외국인을 잘 받아주는 국가의 지사로 보내서 1년 일하게 한 다음 H1보다 받기 쉬운 L1을 받아서 미국으로 오게 한다음 H1으로 바꾸는 경우입니다.

저도 조금 다르지만, 저는 한국지사로 입사해서, 미국 본사에서 제가 본사로 트랜스퍼하길 원하여 L1으로 미국에 들어왔다가 본사 HR과 얘기해서 H1으로 바꾼 케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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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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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위 사례는 그냥 영국 사람과 독일 사람인데 주재원으로 왔다가 영주권을 받고 아직도 본사에서 일하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한국 이외의 다른 선진국 출신들이 미국 기반의 기업으로 L1 갖고 들어오면 보통 회사가 그 직원의 영주권에 관해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 같은데,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빌레라 님의 회사는 미국이 본사여서 혹은 미국 회사여서 아마 사정이 더 나았을 것 같구요.

Stephen Kyoungwon Kim@Google의 이미지

나빌레라님의 댓글에 답하면서 약간 방어적으로 썼는데, 저의 경우 한국에서 있으면서도 매주 리크루터 연락을 받는 편이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어봤습니다. 복수의 회사가 "이미 와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완곡하게 얘기했습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인터뷰 기회 자체는 L1이 더 많이 주어질 겁니다. 저의 경우에도 L1이었다면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어려웠던 회사가 몇 군데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