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박문을 죽여서 오히려 합병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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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firmly against Korea falling into the hand of China and Russia, which would cause a grave threat to Japan's national security. However, he was actually against the annexation, instead advocating that Korea remain a protectorate. When the cabinet eventually voted to annex Korea, he insisted and obtained a delay, hoping that the decision of annexation could be reversed in the future.[8] His political nemesis, the politically influential Imperial Japanese Army, led by Yamagata Aritomo, whose main faction was advocating annexation forced Itō to resign on June 14, 1909. His assassination is believed to have accelerated the path to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9] http://en.wikipedia.org/wiki/It%C5%8D_Hirobumi

이토는 한국과 일본을 러시아나 중국에서 보호하고자 을사조약을 했고 (일본이 보호를 안하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조선을 먹어서 일본에 위협을 줄 수가 있으니까) 합병은 반대했다던데 이거 맞나요?

brianjungu의 이미지

이토는 당시(1910년) 일본국력이, 열강의 압력을 이겨내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압력을 증폭시킬
조선합병을 할만한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합병을 하지 않아도 실효지배가 가능한데, 뭐하러 명분상으로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킬 합병을 진행해야 하느냐는 게 이토의 기본적 관점이었구요 ( 어찌보면 실용주의자죠 ).
실질적으로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이토를 암살하면서, 합병이 급속도로 진행된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hiseob의 이미지

저건 너무 친일적인 관점이네요.
일단 일본은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를 그대로 따라가는 공격성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고종이 러시아, 청, 미국등을 끌어들일려고 했던건 일본의 침략을 그나마 막기 위한 전략이었는데 저 말 대로면 러시아나 청등이 침략해서 일본을 끌어들였단 말이 됩니다.
아주 허황된 소리죠...
실제로 보호하려고 했다고 했다면 을사늑약 당시에 일본군이 그렇게 떼로 나타나서 포위를 했겠습니까?

JuEUS-U의 이미지

서류 한장 차이, 단어 하나 차이,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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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 이후 였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을사조약을 보호해주려고 맺었다는거부터 편향된 시각의 해석입니다.

을사조약은 예를 들면 원,청 같은 나라가 우리나라에게 와서 한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라는 국체는 유지되었지만 그들의 속국과 같은 상태가 되었죠.
외교권을 박탈해 가고 저들 관청을 만들어 내정간섭 그 이상을 한거라
왕은 있으나 충땡왕이라고 기록해야 했던 원나라 때나 그 이상의 정도 아니었겠습니까?

ohhara의 이미지

여러가지 해석은 가능합니다만 일본측면의 해석을 적당히 섞어서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은 당시에 러시아가 계속해서 남하해 오는 것을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중간에 완충세력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이 서둘러서 근대화를 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군부세력들은 조선같은 힘없는 나라는 얼른 병합해버리자고 주장을 했었고 이또히로부미는 그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조선인은 자존심이 강해서 급진적으로 조선을 병합해 버리면 심한 반발을 유발할 것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일본 군부세력은 이토히로부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었으며, 결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의사에게 저격당했습니다. (음모론으로는 저격당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경호를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결국 이토히로부미가 제거된 후 일본정부는 군부에게 휘둘리게 되고 미친듯이 전세계를 상대로 무모한 전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토히로부미의 제거직후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게 됩니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토히로부미는 친조선파인데 안중근은 왜 자기편인 그를 저격해서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게 하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고로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19세기 중후반에 걸쳐서 일본에 점령당하고 자신의 언어, 문화, 국가를 빼았겼으며 일본화가 진행되어 결국 현재는 거의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아직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힘이 약합니다.)

여기부터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생각이니 추측이 많습니다.)

안중근이 만약에 그때 당시에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지 않았다면 홋카이도와 오키나와처럼 조선도 국제사회에서 일본으로 인정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서서히 일본에 의해 점령되고 언어, 문화, 국가를 빼았겼을 것입니다. 즉, 전쟁이 끝나고도 조선은 독립하지 못하고 그냥 일본의 일부로 남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에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해서 군부가 무모한 전쟁을 벌여준 덕분에, 연합군에 패전하여,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 일본이 침략전쟁으로 점령한 영토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서, 조선도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가 있었습니다.
잘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조선을 침략하기 전에 일본이 침략해서 점령한 다른 영토들은 현재 일본영토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등등)

Taeho Oh ( ohhara@postech.edu ) http://ohhara.sarang.net
Postech ( Poha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 http://www.postech.edu
Alticast Corp. http://www.alticast.com

iris의 이미지

한민족(또는 한반도)의 해방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일본인 3인방으로 이 인물들을 꼽는게 괜한건 아닐겁니다.

- 무다구치 렌야(버마 전선 사령관. 무능과 부패의 극치를 보여 버마 전선 및 이후 남방작전 자체를 말아먹게 만든 인물.)
- 츠지 마사노부(작전의 신으로 불리지만 여러 무능한 작전으로 태평양 및 남방전선을 말아 잡수신 인물.)
- 도조 히데키(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일본군내 대표 주전론자.)

우리 민족에게는 참으로 고난이자 슬픔의 시기였지만, 일본의 막가파식 주전론과 무능한 군 지휘관들이 없었다면 독립을 쉽게 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일본이 미국과 적절히 타협을 하는 데 성공했다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점령지였던 한반도의 일본화가 빠르게 이뤄졌을 것이며, 독립 운동 역시 단순한 테러로 가치를 깎여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일본이 막 나갔기에, 그리고 망했기에 우리의 독립운동도 주목받고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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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썩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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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언더그라운드 웹진 18禁.net - www.18gol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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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이누만 살던 곳인가요? 지금은 거의 일본인이 살고 아이누족은 별로 없죠?

근데 왜 대만도 독립하게 됐죠? 대만에서는 한국같은 그런 반발이 없었지 않았나요?
오키나와도 일본에 특별한 반발은 없었던걸로 압니다. 언어도 조금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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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독립은 일본-대만만이 아니라 중국-대만도 보셔야죠.

반발이 일어나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딱히 반발을 일으킬 건덕지가 없거나
2. 반발할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혹은 그런 반발하는 모습이 미처 외부에 잘 호소되지도 못할 정도로 참혹하게 짓눌리거나.

오키나와 출신 연예인이 기미가요 부르면 지금도 미친듯이 까일 정도인데 반발이 없었다고 하시니 참 할 말이 없습니다. 아이누인들은 자식에게 일부러 출신을 안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걸 반발이 없다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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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출신 연예인이 기미가요 부르면 지금도 미친듯이 까일 정도인데'

아 그랬었군요. 그럼 각트같은 사람도 까인적이 있나요 그 사람 오키나와어 하는지 모르겟네요 한국말은 잘 하던거 같던데. 혹시 가끔가다 보면 귀신같이 창백한 일본인들이 있던데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이 아이누 피를 이어받았나 보군요! 여기보면 아이누계같은 사람이 보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ahvb2WTYUw0&t=3m52s 이건 홋카이도 출신 가수 유키http://www.youtube.com/watch?v=1qDo7DWCBWc

그리고 오키나와어가 일본어랑 비슷하긴 한가요? 억지를 부리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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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제와 제국주의 헌법을 만든 장본인이 이토입니다.
천황제와 제국주의 특성도 모르고 말 장난하는거죠.
제국주의는 상대방 국가를 장악하면서 경제성장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토가 살았다면, 그는 아주 교묘하기 때문에
확실한건 태평양 전쟁까지는 안갔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완전히 일본땅입니다.

교묘한 이토가 죽음으로써
일본은 이성을 상실하게 되죠.
결과는 핵폭탄 ㅋㅋㅋ

아주 잘죽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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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oprise.com/mobile/view.php?table=seoprise_13&uid=25920

초대 조선통감이었든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삔역에서 자기를 저격한 범인이 젊은 청년..조선인 안중근이라는 말을 듣고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죽었다.

그가 보기에 안중근은 틀림없이.....바보같은 놈이었다.당시 일본국내의 정세는 조선을 병합하여 모든 것을 일본에 예속시키 위하여 총독을 두자는 총독파와 통감정도나 두어 조선의 국가적 모양은 갖추어 주자는 통감파의 두파가 극심하게 대립한 것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토는 이 통감파의 대표로서...극렬한 총독파로 부터 ..그 나름대로 조선의 최후의 자존은 지켜주고자 하고 있었는데..그러한 그를 죽인다는 것은 곧바로 조선의 최후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이토의 죽음이후 곧바로 총독부가 설치되어 데라우치 총독이 부임하게 되었으며...조선은 그에 의하여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로서 보면..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란 것이 얼마나 문제 투성이인가를 알수가 있다.안중근과 이토의 예가 그것인 것이다.그럼에도 우리는 안중근을 무조건적인 의사로만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와 민족을 위한 그의 정신이 소중한 것이 아닌 것은 아니나...그 이전에 진정한 지혜가 더 중요한 것이다.거사를 하기전에 좀더 치밀한 국제정세의 파악을 하지 못한 그의 그 자세가 못내 아쉬운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이...오늘 섶의 상황이다.극력 유빠들의 그 자세가 문제인 것이다.단순히 정치가 유시민에 대한 애정이 지나친 나머지 복잡한 국내정세에 대한 전반적 통찰이 결여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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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차단 좀 해줘요. 쓸데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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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글을 요약하면,,,

헤이그 밀사 파견으로 인해, 일본정부는 뒷통수를 맞았다.

국제여론에 좌지우지되면 시끄러우니 이 참에 조선을 합병합시다! 라는 일본내 여론을 반영, 일본내의 요인들이

조선을 전격 방문, 총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식민지를 서두릅시다!!라고 부채질을 하니,,이토히로부미 조선총감이

하시는 말씀,,

,,조선을 식민지화 하지 않을것이오!! 일본으로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고, 조선국민들도 그리 호락호락치 않을것이오. 일본의 보호하에 근대화를 이루고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하무니다!!,,,

라고 했단다,,아니 그 원흉중에 원흉! 이등박문으로 잘 알려진 그 쪽발이 원숭이 두목이 실은 한국을 식민지화 할 생각은 없었고, 근대화를 도우려 했다고? 이런 자다가 지붕 뚫고 하늘로 날아갈 소리를 하다니,,

어찌됐든 이런 바른생활맨이 엘지의 봉중근보다 더 정확한 제구력으로 총을 쏜 국민영웅 안중근의사에게 피살을 당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히토히로부미가 총에 맞고 쓰러지며, 안중근의사를 보면서,한 말이 있는데,,

,,이런 바보 같은 놈,ㅉㅉ

,,,라고 했단다. 수많은 식민지 강경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좀 더 시간을 끌면서, 한국의 자립을 지켜 봐 온 나 이토히로부미에게 총을 쏘다니, 이런 바보 같은 놈ㅉㅉ,,라는 의미겠지..

어찌됐든 이토히로부미 사후 식민지화는 가속화되어, 결국 조선은 일본의 하나의 지방으로 편입되게 된다.............

윗글을 읽으면서,

,,아니!? 자립하게 도와주겠다며 왜 총감부를 만들었남? 그냥 냅두면 될 일 아닌가?,,

라고 의문을 품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당시 일본의 입장을 설명해두자면,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상당히 두려워했단다. 조선이 러시아 손에 들어가면, 일본도 안전치 못할 것이라고 판단,

조선을 지키는 일이 일본을 지키는 일이라 여겨, 청과러시아를 꺾고 조선에서의 기득권을 쟁취했다는 것이다.

조선이 근대화가 되면,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있지만, 봉건사회였던 당시의 조선이 혼자 힘으로 자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도우러 왔다는 것이다. 하긴, 당시의 정세로 누구한테 먹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이 되었든,러시아가 되었든,,,(이것들 조반으로 올라갔다면 아마 지금쯤 빨갱이국가 되어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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