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이없는 면접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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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면접을 봤습니다만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라고 말하고 왔습니다.
이제까지의 경력이 꽤 짧은 편이라 제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르겠지만, 경력에 포함되지 않은 아르바이트 경험까지 비추어 봤을 때 정말 어이없더군요.

일명 Start Up이라 불리는 벤처들이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제가 기대를 잘 못 한건지 좀 알고 싶습니다.

1.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일단 제가 있는 곳은 일본이고 면접은 일본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면접관 중 3명은 외국인이었고 1명만이 일본인이었습니다.
처음 면접은 중국인 2명이었고, 제가 이전 회사에서 경험한 1+N 문제에 대한 해결(아시다시피 해결 방법은 꽤 단순할 수 있습니다)과 Ruby를 프로젝트에 도입할 때 생각해야할 코딩규약과 설계 방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본어'를 못알아듣는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심지어 1+N이 왜 DB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더군요. 내용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습니다만 돌아오는 대답은 1+N이 일어나는게 왜 나쁜지 모르겠다... 라는... 아시다시피 대량의 쿼리가 발생했을 때 해킹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기에 제 입장에선 정말 이해가 안가더군요. 그리고 Ruby의 경우 다른 메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언어와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만, 같은 클래스나 모듈이라도 서로 다른 파일 내에서 선언이 가능합니다. 업무시 이에 대한 규칙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프로젝트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을 하니 갑자기 '다른 객체지향 언어에서도 여러 디자인 패턴이 있다'라고 하더니 디자인 패턴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Ruby를 일부 차용하는 프로젝트에 당신이 말한 디자인 패턴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와 디자인 패턴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는 부분이 Ruby에 존재하고 있다. 대처법을 설명해달라'라는 요구에 '프로젝트 내용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 모른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2. 태도의 문제
솔직히 정말 기분 나쁠 정도의 태도였습니다. 제 이력서에는 오픈소스의 '오'자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다만 '오픈 솔라리스'를 개인적으로 쓰고 있다 정도가 있었죠. 하지만 앞의 중국인 2명에 이어 들어온 프랑스인 한 명(그는 일본어를 아예 못합니다)이 다짜고짜 오픈 소스로 공개한 '소스'가 있냐고 묻더군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영어를 못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무슨 오픈 소스를 집에서만 하냐? 가내수공업이냐?'라는 식의 좀 비하하는 발언을 하더군요. 정말 기분이 더러웠습니다. 회사 업무상 오픈 소스 툴을 도입하기 위해 동료를 설득하고 기간을 두고 테스트해보는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만, '소스를 공개하는 것만이 오픈소스다'라고 이야기하는게 참 기분 나빴습니다.

3. 슈퍼맨
다 적기 힘들어 생략합니다만 면접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자면 슈퍼맨을 요구하는듯 했습니다. 급여조건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물론 제 능력도 부족하지만) 조건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꾹 참다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총 책임자에게 점잖게 '여기서 그만하자'라고 이야기하고 돌아왔습니다. 책임자는 '좀 이해해달라. 자기들도 잘 모르면서 저런다. 나도 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어렵다'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아마도 이 전에도 같은 식의 문제가 있었던 걸로 보였습니다.

Start Up에 대해 지금껏 나쁜 인상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Start Up은 아예 거들떠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을 소개해준 곳에서 피드백을 요구하길래 '애들 일본어 공부나 더 시키세요'라고 전해달라 해줬습니다.

당분간은 그냥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발자를 개소 보듯 부려먹으려고 하는 건 고용자만은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같은 개발자가 적이라는 생각, 처음 해봤습니다.

Start Up은 정말 다 이런 식인가요. 이해가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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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스타트업 아주 좋아합니다 :-)

왜냐하면, 아직 체계도 없고 문화도 없고, 일단 장악(?)하고 나면 능력인정 받고 일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처음에 그러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마치 어느 영화의 "I love the smell of napalm in the morning..." 처럼 저는 그 하루하루 긴박한 분위기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저였더라면 잘 모르는 면접관들은 그대로 밟아(?)버려서 저를 꼭 채용해야 겠다는 생각을 심어주거나 아니면 그쪽에서 먼저 '너 잘났고 우린 너 필요없어' 할때까지 한번 가봤을 겁니다. 제대로 된 스타트업 고르기는 참 어렵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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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열심히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을 못 알아' 들어요... :)
대체 무슨 생각하고 외국 나와있는지 당췌 이해가 안갈 정도였습니다. 특히나 프랑스인은 최강이었습니다. 일본어 한 마디도 못하는 애가 왜 들어왔는지...

저도 높은 경지의 일본어를 구사하지는 못합니다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할 정도였고, 총 책임자마저 인정하는 수준이니 소스에 달린 코멘트가 '개판'이라는 것과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지 못한 업무 분위기는 안봐도 알 것 같더라구요.

johan님의 말을 들으니 start up도 꽤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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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to myself...what a emerging world.

johan의 이미지

스타트업에는 무수한 문제들이 항상 있습니다 - 예를들면 이미 나온 '언어' 혹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스타트업이 왜 재미있냐 하면 그런 여러 문제들 중 항상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 한두개만 계속 아슬아슬하게 해결해 나가면 인정받을 수 있거든요. 언제든 단 한번의 실수로도 스타트업은 깨지고 모두 뿔뿔히 흩어질 수 있습니다. 항상 발생하는 생존과 관계된 문제들을 자주 해결해 내면 다른 모든 결점은 용서가 되는 곳이고 내가 없으면 망할 수도 있는 곳입니다.

대기업이나 이미 자리가 잡힌 곳에서는 생존에 대한 문제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 하더라도 내가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결점은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인사고가에도 반영이 됩니다. 이런 곳에서는 대개의 경우 할일이 없어서 항상 오늘은 뭘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일 없이 하루하루 허송세월하며 지나갈 수도 있고(갑의 경우), 죽어라 일해도 보람도 없고 주인의식도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을의 경우).

하지만 안정된 수입을 생각하면 절대 가서는 안될 곳이 스타트업입니다. 언제든 망할 수 있고, 자금줄이 묶이면 월급도 떨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잘되면 큰 보상이 따를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될 확률은 크지 않죠.

너무 스타트업에 대해 환상을 가져서는 안되지만 편견을 갖을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판단과 선택은 스스로 잘 하세요.

lateau의 이미지

말씀 감사합니다.
경험하신 내용이 구체적이고 합당한 내용이었기에 Start Up에 대한 기분 나쁜 감정은 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Start Up은 Pass...할 생각입니다. 정말 일의 내용이 좋거나 개발자들의 태도가 정말 괜찮다면(미래지향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볼지도 모르겠네요.

말씀하신대로 Start Up은 치열할 수 밖에 없겠지만, 저 회사의 경우 개발에 투입된 인력들이 사용 중인 언어의 Bug list를 확인하지도 않고, rails rdoc의 첫 머리부분에 나오는 내용(특히 문제점 관련과 해결책), rails security 항목 등을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마치 많은 플러그인과 라이브러리를 불러다 쓰면 그게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유일한 방법인양 비아냥 거리는게 불합리적이라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물론 버릇없는 태도도 기분 나빴구요. mysql과 rails를 무슨 신인양 떠받드는 태도도 좀 그랬군요...

하여간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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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3zp3의 이미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게 면접하러 가서 면접관에게 나는 인재다, 나는 문제없는 사람이다 이런 걸 어필하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오히려 면접관이 문제가 있는 경우가 은근히 많더라구요. 면접관이라는 역할상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판단하는 면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좀 심하게 판단해버린다던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lateau의 이미지

결과도 결과이지만 돈, 시간, 체력이 너무 아깝더군요.
하여간 1시간 30분이나 끈 면접이었기에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많았지만 이젠 키보드 두드리는 것도 지칩니다.
앞으로 힘들 때마다 하나 하나 떠올리면서 빙긋 웃을만한 이야기거린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인가요.

나중에 들은 또 다른 면접자들의 피드백에 의하면 '매킨토시 빠돌이 집합소'라는 저보다 더 심한 욕을 해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수로 보낸 피드백 같은데 영 기분이 별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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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da99의 이미지

어이쿠 이 힘든때에 전직준비하시니 힘드시겠네요. 원래 이동네에가 원래 그럽니다. (^^;)
조그만 밴쳐기업으로 가시면, 주택융자금/카드/비자같은거 에서 조금 불리할 수 있는데...
이왕 오신거 열심히 해보세요. 요즘, 어딜가든 다 힘들어서리.... 남아 있는건 정말
욕나오는곳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있는곳에서 열심히 참고있죠. 허허허)

If A is success in life, then A equals x plus y plus z. Work is x; y is play; and z is keeping your mouth shut.
- Albert Einste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