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세계는 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놀라운 한국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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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로운 프로군요.

세계 각국(영국, 미국, 이스라엘, 러시아, 인도, 레바논, 나이지리아, 멕시코 등 대략 10여개 국)의 국민에게 신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결과를 곁들여 패널들과 함께 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TV프로그램입니다.

놀랍게도 몇 차례의 질문에 연속으로 한국이 신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항상 신을 믿는가", "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또,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신에 대해 부정적이 되는가(정확인 질문이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함)"라는 질문에 한국이 가장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한국이 가장 부정적으로 대답한 질문이 더 있습니다.

인터뷰에 나온 한국인 교수 역시 "한국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농담을 말하면서 결과에 놀랍다고 하는군요.

참여국중 한국이 인도에 이어 타종교에 관대한 편으로 나옵니다.

다음은 KBS의 보도자료입니다.

http://cyberpr.kbs.co.kr/kbs_sosik/cast/cast_show_new.html?cd=1087&table=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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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수의 영국사람들이 신보다 데이비드 베컴이 더 영항력있다고 응답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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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W.Park의 이미지

실질적인 조사를 통해 수치화했다는 것말고는 그다지 흥미로울게 없는것같은데요.
불교 신자 및 불교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선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당연할 것같습니다.

또한 도올 김용옥의 견해에 따라 몇마디 첨언하자면,
불교는 무신론이므로 당연히 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내재된 의미는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일종의 가정을 긍정한 후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해석했더군요.
무신론에서는 나올 수도 없는 질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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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1973 法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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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범신론에 가깝지 않나요?

서양에서 생각하는 신과 동양에서 생각하는 신이 다를텐데...

질문 자체는 절대 전능한 신에 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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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가 말한 우리를 파괴시키는 7가지 요소

첫째, 노동 없는 부(富)/둘째, 양심 없는 쾌락
셋째, 인격 없는 지! 식/넷째, 윤리 없는 비지니스

이익추구를 위해서라면..

다섯째, 인성(人性)없는 과학
여섯째, 희생 없는 종교/일곱째, 신념 없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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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Park wrote:
또한 도올 김용옥의 견해에 따라 몇마디 첨언하자면,
불교는 무신론이므로 당연히 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내재된 의미는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일종의 가정을 긍정한 후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해석했더군요.
무신론에서는 나올 수도 없는 질문이지요.

불교는 결코 무신론의 범주에서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불교 경전중에 상당부분은 신의 이름으로 꽉차있는 경전들이 있기도 하죠.
그러나 구도의 과정중 신의 "형상화"는 부처 자신이 금한 바입니다.
"만약 나를 색으로 보거나 소리로 듣거나하면
그런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개인적으로 도올의 쇼맨쉽과 몇가지 학술주장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었는데.. "불교가 무신론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실망이군요..

머나먼 땅으로 우리 동무가 이제 떠나간다네.
고향의 바람이 불어와 동무 뒤를 따르고
사랑스러운 도시가 푸른 이내 속에서 사라지네.
정든 집, 푸른 동산, 부드러운 눈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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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무신론으로 보시는 것은 당연히 절대적인 단 하나의 초월자를 신으로 규정한 일신론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정의도 역시 그렇다는 해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서양의 종교인 리리젼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리리젼이 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종교는 종이라는 아주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아마 기독교에서의 사랑 일 껍니다.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잣대로 서로를 이야기 하면서 이건 종교니 저건 아니고 이건 진리고 저건 아니고, 이런 이야기는 다분히 소모적일 뿐입니다.

가끔 모 종교에서 그건 종교가 아니라고 말할때면 좀 거시기 합니다. 그건 리리젼이지 종교가 아니라고 대신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와 유교가 종교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씀 하시는 분들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불교는 실천 철학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종교라 보기에는 철학에 가깝고, 철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철학이다.' 라는 말이 떠 오릅니다. 불교는 분명히 리리젼은 아닙니다만, 종교인 것에는 의문을 달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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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가족은 많은데, 시절은 왜 이리 꿀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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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하는 일을 꼭 완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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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na wrote:
M.W.Park wrote:
또한 도올 김용옥의 견해에 따라 몇마디 첨언하자면,
불교는 무신론이므로 당연히 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내재된 의미는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일종의 가정을 긍정한 후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해석했더군요.
무신론에서는 나올 수도 없는 질문이지요.

불교는 결코 무신론의 범주에서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불교 경전중에 상당부분은 신의 이름으로 꽉차있는 경전들이 있기도 하죠.
그러나 구도의 과정중 신의 "형상화"는 부처 자신이 금한 바입니다.
"만약 나를 색으로 보거나 소리로 듣거나하면
그런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개인적으로 도올의 쇼맨쉽과 몇가지 학술주장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었는데.. "불교가 무신론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실망이군요..

도올의 태도(다소 거만하며 오버하는 것 및 자화자찬의 어조 등의 반감을 살 수 있는)와 그의 학자로서의 견해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올의 해석은 불교의 원형에 접근하고자함이었고, 싯달타의 깨달음에 관한 고찰이었습니다.
제가 접한 도올의 불교에 관한 저술은 "금강경 강해"와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정도라서 다소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이야기 한 것은 말 그대로 무신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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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1973 法頂

앙마의 이미지

Quote:
또한 도올 김용옥의 견해에 따라 몇마디 첨언하자면,
불교는 무신론이므로 당연히 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내재된 의미는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일종의 가정을 긍정한 후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해석했더군요.
무신론에서는 나올 수도 없는 질문이지요.

불교의 교리는 무신론의 교리가 아닙니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한 힌두교 신들이 있는데 이들이 불법을 수호하는 불교의 신이 됩니다.그리고 우리나라에 경우에 한합니다만, 우리나라 민간 신앙의 신들이 불교신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산신이 바로 그 적당한 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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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warpdory의 이미지

불교에서 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는 꽤 다르죠. 기독교 같은 유일신 신앙의 종교에서는 신은 당연히 전지전능하게 표현됩니다. 하지만, 불교나 힌두교 등의 일종의 다신교들은 전지전능하지는 않죠. 일종의 하나의 직능 내지는 어떤 특성을 보이는 신으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서양의 주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는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불교에 신은 없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책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 보면 기독교/이슬람교/유태교 등은 유일신 사상이므로 상위 개념의 종교이고, 불교/힌두교/등등 의 종교는 다신론 사상이므로 하위 개념의 종교다.. 뭐 이런 것도 나오죠.

한국에서 종교가 부정적이게 비쳐지는 것은 왜곡되고 힘들었던 현대사가 큰 역할을 하고, 거기에다가 요즘 종교단체들이 하는 헛짓거리들이 한 몫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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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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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교는 초창기불교(신이 없는 자신의 득도)에 지방마다 퍼져가면서 초착신들이 수호신등으로 포함된 형태가 아니었던가요?
자신이 부처가 될수 있다는 것은 자신과 신이 동일시되는 것이고 이것은 나아가 신이 없다라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maddie의 이미지

초기불교가 무신론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거는 불교학자들도 모두 동의하는 바이구요. 불경에 나오는 여러 힌두의 신은 대부분 부처가 설법을 위해 비유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불교에 나오는 여러 다른 부처(신)들은 각각의 의미가 존재하는 어떠한 추상적인 철학관념을 형상으로 구체화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기독교식의 믿는 신은 아니지요.

무신론적인 관점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현세적인 한국인의 전통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불교나 유교를 운운하기 전에, 신을 믿더라도 현세의 복을 구하는 경향이 많은 한국인들의 특성은 훨씬 이전부터 팽배했다고 생각되거든요. 설화나 전설 등에서 왕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먼가 현실적인 걸 들고 오는 경우도 있지요. 대표적인 것이 단군설화인데 환웅이 내려올 때 풍사, 운사, 우사를 데리고 오지요. 농경에 필요한 축복을 내리는 신들이지요. 머 그런식이라는 겁니다. 한국의 불교도 원래의 철학적인 모습을 벗어나 현세구복적으로 변질되었고 기독교도 마찬가지이죠. 현세구복적이라 함은 서양인이 보는 어떠한 절대적인 신의 존재보다는 신보다는 사람, 현세가 중심이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과학의 발달로 신의 존재가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한국에서 기독교가 무속이나 기타 전통 종교를 구식 내지는 미신이라고 몰며, 비과학적이다고 몰아붙여 없애버린 것도 그런 이유가 될 수 있겠네요. (근데 생각해보면 진짜 웃기죠. 기독교는 진짜 비상식과 비과학의 절정인데.. 차라리 무속이 더 과학적이다는 생각이.)

힘없는자의 슬픔

logout의 이미지

불교가 무신론적 성격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찌 보면 유형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점을 믿는다는 부분에서는 종교의 성격이 진하지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본적도 없고 들은적도 없고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흡사합니다. 어쨌거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불교쪽의 분위기는 타 종교에 비해 많이 독특한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나 타 종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기복 신앙에 대해서도 사실 불교쪽의 관점에서 보면 탐탁치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기복신앙이라는 것도 제대로 된 자비나... 혹은 사랑으로 가는 출발점의 하나이기에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성자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싶다고 기도하는 아이나 그 마음의 본질은 같은 셈이죠.

그나저나 저는 불교 신자도 아닌데 왜 이런 얘기를 적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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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남을 위해 기도 하는 것과 자신이 가지고 싶어 기도 하는 거랑 그 본질이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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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희생 없는 종교/일곱째, 신념 없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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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초기에도 경전 곳곳에 힌두교 신들이 등장합니다. 불교 최초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숫타니파타에서 야크샤(야차)가 등장하는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과 불교의 신이 개념이나 역할이 다른것은 맞지만... 이것만으로 "불교에는 신이 없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죠. 불교의 신은 기복의 대상이 아니라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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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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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KLDP에서 불교 이야기가 나오다니...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네요...

뭐... 기독교를 포함한 타 종교의 이야기가 나온 적은 많았지만, 불교 이야기가 나온 적은 거의 없어서 불교 신자로서 상당히 재미있네요...

그럼 제가 여러 분들께 듣고 경전을 조금 본 바에 대해서 조금이나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보통 불교를 무신론, 범신론과 같은 범주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실상, 불교는 무신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을 섬기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교는 신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지요...

불교의 기본 교리는 다들 아시다시피, '깨침'입니다... 거기서 중요한 점은 그 깨침을 이루기 위한 방편은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불교에서도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은 종파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런 무제한적인 방편에 의한 것이고, 다른 종교라고 해서 그 범주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독교를 독실히 믿고 실천해도 '깨침'에 이를수 있는 것이고 이슬람, 힌두교 어떤 종교를 믿는다고 하여도 '깨침'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방편론으로 인하여 불교는 실질적으로 가장 큰 범주를 이룰 수 있다고 하죠...

물론, 이런 것이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되기 쉽상이지만, 기본 개념은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교는 당시 인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힌두교와도 쉽게 융화가 되었던 것이고 우리나라의 토착신앙과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신'이라는 것의 존재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의미도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최상의 존재로 보는 '깨침에 이른 자' 이른바

'부처'도 다른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신의 개념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전지전능함을 예찬하지도 않고 부처에 전적으로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위의 분들께서 이야기 하신 바와 같이 '신'의 정의가 서양에서의 신과 같이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전지전능의 힘을 가진 무엇' 이라고 볼 때는

불교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존재는 없다고 봐아죠...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불교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쉽게 봐서도 안되고 서양기준의 종교관은 일단 버리고 시작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 친구 한 명처럼 '불교에서는 기도의 대상이 없냐? 그럼 고마움도 모르는 종교네...' 이따위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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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Exist wrote:
글쎄요. 남을 위해 기도 하는 것과 자신이 가지고 싶어 기도 하는 거랑 그 본질이 같나요?

뒤집어 생각을 해 보세요. 자신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위하는 방법도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위할 줄 모른다면 그것도 말이 안되죠. 따라서 두 케이스 모두 본질은 같은 겁니다. 그런 이유로 기복 신앙 자체를 "하지 마라"고 억누를 수가 없는 것이죠.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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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신을 위하는게 남을 위하는것 이라는 말도 성립 되겠군요.

자신을 희생해야만 남을 위하는게 세상엔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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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희생 없는 종교/일곱째, 신념 없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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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wrote:

인터뷰에 나온 한국인 교수 역시 "한국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농담을 말하면서 결과에 놀랍다고 하는군요.

그 교수가 정반대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불교신자나 기독교 신자가 없습니다.
제대로 된 스님이나 목사 역시 드물죠.

모두들 불교를 믿네 예수님을 믿네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기복신앙"을 믿고 있을 뿐입니다.

전국의 모든 절과 교회에서는 매일매일
우리 남편 사업 잘되게 해 주옵시고
우리 아들 대학 붙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성대한 굿판이 벌어지곤 하지요.

개념없는 초딩들은 좋은 말로 할때 DC나 웃대가서 놀아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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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Exist wrote:
그럼 자신을 위하는게 남을 위하는것 이라는 말도 성립 되겠군요.

자신을 희생해야만 남을 위하는게 세상엔 더 많습니다.

그렇죠. 자신을 위하는게 결국 남을 위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되어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을 위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구요. 여기부터는 실제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경우 사도(?)로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만. :)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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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ut wrote:
IsExist wrote:
글쎄요. 남을 위해 기도 하는 것과 자신이 가지고 싶어 기도 하는 거랑 그 본질이 같나요?

뒤집어 생각을 해 보세요. 자신을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위하는 방법도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위할 줄 모른다면 그것도 말이 안되죠. 따라서 두 케이스 모두 본질은 같은 겁니다. 그런 이유로 기복 신앙 자체를 "하지 마라"고 억누를 수가 없는 것이죠.

타인에 대한 자기애의 확장된 형태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자신의 자신에대한 사랑을 자각한다면, 타인의 자기애도 존중할 줄 알며, 나아가 타인을 위할 줄 아는 미덕을 갖출 수 있게 되겠죠.

IsExist wrote:
그럼 자신을 위하는게 남을 위하는것 이라는 말도 성립 되겠군요.

자신을 희생해야만 남을 위하는게 세상엔 더 많습니다.

경제 논리(zero sum 이론같은...)에서는 IsExit 님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신앙 또는 종교의 관점에서는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나를 위하는 것이 곧 남을 위하는 것이다라는 표현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남을 위한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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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시험에 붙게 해 달라는 바램은 다른 누군가를 시험에 떨어뜨려 달라는
간접 바램이 담겨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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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인격 없는 지! 식/넷째, 윤리 없는 비지니스

이익추구를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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