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이직 열풍, 남은자는 한숨...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지난해말 한 그룹의 사장단회의에서 일부 계열사 사장들이 회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직원들이 줄줄이 퇴직하고 있는데 왜 뒷짐만 지고 있느냐. 이른 시일 안에 대책을 보고하라\" 는 질책이었다.
이에 따라 직원 1백여명 가운데 20여명이 무더기 사직한 한 계열사는 연구비 인상과 인센티브제 도입 등의 긴급대책을 세웠다. 이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는 자사 직원들이 많이 몰려간 외국계 컨설팅회사인 P사와 거래를 끊으라는 내용의 공문을 계열사에 보냈다.
최근 들어 직원들의 \'사표 러시\' 로 대기업에 비상이 걸려 파격적인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등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A그룹 구조조정본부의 朴모(35) 과장은 \"대규모 사표사태로 당장 근무 여건이 힘들어진 것도 문제지만 회사 전체 분위기가 침체되는 게 더 걱정\" 이라면서 \"극단의 사기 진작책을 검토하고 있다\" 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유능한 사원들이 벤처기업으로 빠져나가자 인터넷사업 분야의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총 6천5백만원의 상금을 걸고 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키로 했다.
벤처기업들이 대기업의 유능한 기술인력을 스카우트하면서 시작된 대기업 사표 열풍은 기술파트뿐 아니라 일반 관리직까지 이어져 대기업에는 전에 없던 인력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S기업 계열의 유통회사 역시 지난해 하반기에만 입사 3년차 동기생 60명 가운데 70% 이상인 40여명이 벤처기업이나 외국계 회사 등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같은 인력 유출로 회사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이직 대열에 끼지못한 직원들이다. 이들은 \'남은 자의 슬픔\' 을 톡톡히 느끼고 있다고 한다.
O사의 전자부문에서 근무하는 崔모(30) 씨는 회사 일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동료 직원들이 갑자기 빠져나가 업무량이 두배로 늘었지만 일한 만큼 더 봉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장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던 동료 직원들이 여기저기 스카우트돼 떠나다 보니 내 자신이 무능력자처럼 여겨져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며 답답해 했다.
이 회사의 金모(30) 대리는 \"동료 중에는 퇴직 분위기에 휩쓸려 이직이 안되면 무작정 회사를 그만 두고 유학을 떠나거나 장사라도 하겠다는 직원들조차 나오고 있다\" 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정신과 이동수(李東洙.49) 교수는 \"스카우트가 안되면 흐름에 뒤처지는 것으로 생각해 고민을 호소하는 샐러리맨들이 적지 않다\" 며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와 적성 등을 생각해 보면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조언했다.
[ 2000.01.14 ]
글 : 전진배 기자
a
a
ㅁ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