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일본만화 "혐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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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uliweb.dreamwiz.com/ruliboard/read.htm?main=hb&table=hb_news&num=1225&page=&left=

한국과 일본은 도저히 친해질수 없는 걸까요??
일본 몇몇의 우익들로 인해..점점 더 악화되 가는 한일관계~~
허나..대한민국 정부도 필요이상으로 반일감정을 국민들에게
세뇌시켜 놓은거 같습니다!

khris의 이미지

이젠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헷갈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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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의 이미지

어제 오늘일도 아니고...
양쪽 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대국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대한민국이 수세적인 입장이고 제가 대한민국 국민인지라 대한민국에게 동정표가 가는것은 어쩔 수 없군요. 뭐하면 혐일류(嫌日流)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발간하는것도 괜찮겠군요.

autography

인간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khris의 이미지

F5누르기따위는 찌질한짓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세뇌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분명한것은 저 만화 작가는 8시에 불려나와서 좀 맞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본조비 최고 한국딴따라 병신 일음 병신 정통ㅤㄹㅘㄱ만 최고" 하는 자칭 ㅤㄹㅘㄱ매니아들을 보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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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eho의 이미지

앙마 wrote:
어제 오늘일도 아니고...
양쪽 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대국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대한민국이 수세적인 입장이고 제가 대한민국 국민인지라 대한민국에게 동정표가 가는것은 어쩔 수 없군요. 뭐하면 혐일류(嫌日流)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발간하는것도 괜찮겠군요.

혐일제(嫌日帝)! :evil:

kane의 이미지

역사 사건은 별로 틀린 부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는 양측 모두 독도 근해에서 어업활동을 했겠죠.

맥아더 라인이나 이승만 라인은 일본의 동의없이 그어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당시 일본은 동의하거나 하지 않을 만한 입장이 아니었죠. 패전국이었으니.
지금 시점에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가 승전국 지위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죠. 당시 강화 조약식에 우리나라도 승전국 지위로 참석시킬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취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데는 미국 잘못이 크죠. 맥아더 라인인지 이승만 라인인지로 독도를 한국 영토 내지 관할권으로 편입 시켜놓고, 정작 독도에 폭격 연습을 할 때는 일본 정부에만 통보하고 한국 정부에는 통보하지 않았죠. 결국 한국 어민들이 독도 폭격으로 사망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죠.

나포와 독도 우표 발행은 일본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죠.
남말 할 처지가 아닐텐데...

jachin의 이미지

흠. 만화라. 서로의 나라 국민에게 '자신들이 억울하다'는 감정을 심어줘서 나중에 서로 싸우게 하려는 걸까요?

친구가 해준 '극우사상은 그와 대립되는 극우사상을 낳는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_-;

spwhid의 이미지

일본이 침략을 위한 명분 쌓기에 열심이고 일본 지식인이 동의하고
있는 현상정도 일까요?

독도도 우리 나라가 군사 강국이 아니라면 몇십년전에 강탈 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cppig1995의 이미지

myueho wrote:
혐일제(嫌日帝)! :evil:

혐극우(嫌劇右)! :evil:

Real programmers /* don't */ comment their code.
If it was hard to write, it should be /* hard to */ read.

angpoo의 이미지

cppig1995 wrote:
myueho wrote:
혐일제(嫌日帝)! :evil:

혐극우(嫌劇右)! :evil:


혐극(嫌極)!
khris의 이미지

angpoo wrote:
cppig1995 wrote:
myueho wrote:
혐일제(嫌日帝)! :evil:

혐극우(嫌劇右)! :evil:


혐극(嫌極)!

혐혐(嫌嫌)! :tw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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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zzlet의 이미지

우리나라가 일본만큼 인구가 많고 사회가 복잡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만화 그릴 사람이 없겠습니까.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선동적인 만화가 있었죠. 북한을 겨냥한 것이 많기는 했지만..

발발다빠따반반나다발딸발발다빠따따맣발발다뿌
멓터벅더떠벋떠벌더벌벌떠벌떠더법벍떠더벌벌떠

가대기의 이미지

앙마 wrote:
어제 오늘일도 아니고...
양쪽 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대국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대한민국이 수세적인 입장이고 제가 대한민국 국민인지라 대한민국에게 동정표가 가는것은 어쩔 수 없군요. 뭐하면 혐일류(嫌日流)라는 제목의 만화책을 발간하는것도 괜찮겠군요.

뭐 그렇것도 있는것 같습니다.

영산강 토착 세력 과 일본 후에 백제와 일본의 호족 세력과의 관계
무슨 천왕 무덤과 똑같은 양식이 전남쪽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고하던데요. 뭐 일본이나 임나 일본부설을 이미 기정사실로하고 있고
우리도 우리 나름데로의 대응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겠지만

-.,- 한국의 모래알갈은사람들이야 위기가 닥치면 뭉치겠지만 일본은 평상시에 그냥 불만도 가지고 살지만 국가나 권위에 쉽게 굴복하고 따르는 경향도 있는것도 같고. 휴..

뭐 살아보면 알겠지요. 요사이 일본하는 분위기를보면 조만간 다시 한번 건너올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분위기 조성해서 재무장하고 요즘 일본에 대지진 일어날거라는 유비통신에 난리가 아니라던데.. 에고.. 예전에 돈을 엄청벌어서 세계 각국에 안사놓은 땅이 없다지만 유사시에는 가장 가까운곳으로 밀려오지 않을가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잠시 해봤습니다. 쩝.

가대기의 이미지

글을 그냥 써넣고 아쉬움이 있었는데 가려고 하니 갑자기 떠오는것이 있네요.작년쯤에 모 방송에서 친일파는 살아있다라는 방송을 어쩌다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모퉁이에는 이제 시간이 지나고 기억할만한 사람도 없어 독립운동가들 틈에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았던 현실에 안주하셨던분들이 묘비를 다시 손본다는 명목으로
조직적으로 새역사 만들기를 한는부류도 있다는 내용이였던 것 같은데요. 한세대만 지나도 아마 그것이 역사가 될것이라는 모 독립지사가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실 일본 보다는 우리 내부에 모순이 혼재 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협한이든 협일이든 저는 잘모르겠고 그것보다는 우리 모습부터가 이상합니다..

소시적에 동네 어르신들 말씀듣자면 독립운동 한사랑중에는 절손된사람도 많으나 일제시대 서기 했던사람들 해방후 면장하고 훈도하던사람들 교장하고 그 어르신 그때 공부를좀해서 머리하나로 일본 동경대까지 가서 공부하셨던분인데 사상전향을 못하고 그냥 비주류로 동네 촌에서 마지막 삼년을 막걸리로 살다가셨던 분인데

그시절 친구들중에 시쳇말로 불온 서적을 읽고 젊음을 불사르고 혹은 독립운동에 가담할때 를때 자신은 겁쟁이라 이러 지도저리지도 못하고 표류하며 사셨다던 취기 어린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 기미 가요인가요 정말 잘부르셨지요. 선생이 칼차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무섭던지 자신은 죽자 살자 매달려 보름이 못되어 일상 생활 언어는 구사할줄알았다던..

칼찬 선생이 다음날 부터 조선말쓰면 때리고 뺨때리기 빠가 빠가 아이들도 빨리 일본어 못하면 지금 말하면 따취급했다며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이 뭘얼마나 알겠느냐며 지금같이 개벽 천지도 아니고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시나봅니다. 다른것은 몰라도 그런것은 정말 잘못된거라 생각한다고 하시더군요. 일어 영어 불어에 능통하셨는데 동네에서는 미친 영감이라고 했죠. 옛날 토박이 였다는데 그시절 얼마 살지도 않던 동네 살던사람들은 대부분 만주쪽으로 가게되고 일본인이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이주시켜 간척시키고 아마 해방이후 로조금 불고 사변이후 엄청나게 사람들어 온것 같다며..

지금 생각해보니 동네에서는 증조부 제사 모시는집도 거의 없었던것 같습니다.

제살던 윗집의 빨갱이 영감과 더불어 동네 2대 기인정도.

빨갱이 영감은 그래도 사람 죽이는 것과는 관계가 멀었던지 일제말에
사회주의서적에 심취했던 청년이라 그분 아버지가 동양척식 주식회사의 마름역으로 동네 사할 그리고 한양의 이가와 김가 부자들 땅을 관리를했죠. 그땅들이 동네 칠할.. 일부 중농 나머지 소작 극빈농..
외아들에 돈빼돌려서 독립자금이랍시고 지인들 돌렸나본데 사회주의 계열이였나 봅니다. 그리고 해방후 산속의 대밭에 토굴파고 숨어살다
사변 맞아서 지금의 면장정도의 동네 관리가 되었죠. 아버진 그분 싫어하셨습니다. 어릴적에 사상검증이며 기타 이유로 죽창으로 사람들 보내는데 아이들까지 나와서 봤어야했답니다. 뭐 어른들말로는 사변때만 그런것은 아니고 해방 이후 하여간 혼란스러웠다더군요.
하여간 아버지는 절대 그런짓은 좌우를 떠나 어른이 해야할짓이아니라고 몰라 부치셨죠. 그래도 동네에서는 아버지가 좀 말벗해드렸던것같습니다. 이십년 넘게 감옥소 생활했고 나와서도 장마철에 백구ㅤㅊㅏㅊ으로 나갔다 인가 대밭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경찰인지 어디소속인지 알수 없는사람보고 그분이 경찰이라고해서 아버지 잡아가지 마라고 울먹 거리다 사탕하나 받아먹은적도 있고.. 쩝. 말하면 아버지잡아간다고해서 한동안 말안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적엔가 무슨 이야기하다 그런 말하니 아마 정부에서 감시하로 나온것 같다더군요.

고등학교 다닐때는 대가리좀 컷다고 빨갱이 영감님과 설전을 벌이기도했죠. 그런 평등한 세상이라 북한이지금 처럼 못먹고 사느냐고
팔십평생 넘개사시면서 별의 별일을 다겪었지만 당신 청년시절이 가장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잘먹고 살살아서도아니고 뭔가 몰두할수있던 열정이 있었고 빛이 보였다던 당신 시절에는 민주주의가 어디있었냐고 하더군요. 전부 힘없는나라들은 식민나라되서 살던나라였고
사회주의는 빛이였다고.. 단지 지금 생각하니 사람속에서는 이룰수 없었다는것을 몰랐던것 같다고. 그래도후회하지 않는답니다.

아시안 게임전후로 아마 무슨 특별사면되어서 선거권 생겨서 투표하시로가는데 얼마나좋아하시던지 백구두에 백양복에 쫙빼입고 투표하러간다며 어리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본처에서 셋있고
감옥에서나와서 옆동네에서 버림받는 아주머니 데리고 사셨는데
그 분에게서도 딸이둘이 있었습니다. 아들들은 ㅤㅊㅏㅊ아와 본적도 없고
들리는 소문에의하면 공부도 잘해 수재소리를 들었는데 아버지덕에
그냥 막노동판을 떠돌아 다닌다는말도 있고 자살했다는말도 있고..
그덕에 동네 불량한 사오십대 새파란 종자들이 빨갱이 영감은 힘도좋아하고 놀리던 기억이납니다. 저야 과거를격지 모했고 본적도 없지만
정말 보기 안좋았죠. 그것때문에 싸움도 많이났고.

그사람이 동네 방앗간 하던사람인데 이북사람인데 자기 큰어머니가 되는분이 어떻게 그분만 데리고 피난통에 왔답니다. 워낙 큰키에 선천적으로 장사고 수완도 좋아서 머슴하다 방앗간 차려서 일가를 이루었는데 자기 큰어머니 모시지 않았습니다. 언제적엔가 그 상놈이 호적에 있어 영세민지원조차 해당 사항이없어 동네에서 서명까지 받았습니다. 뭐 훗날 빨갱이 영감님이 술한잔 하시고 그래도 과거 근성이 나오서 동지가 어떻고 말투가 좀 그랬습니다. 요것을 빌미로 서장에게 찔렀는데요. 다시 투표권이..... 낫들고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맨발로 달려가던 영감님 생각납니다. 아랫집사는 죄로 아버지가 않고 제가 다리에 매달렸죠. 고등학교를도회지로 나갔는데 어느날 집에갔다가 그양반하고 텃밭에 쓰레기 버려다 어머님께 걸렸는데 그것이 싸움으로 커지고 빨갱이 종자라 빨갱이 사람잡는듯한다며 동네사람들한테 억울하다고 빨갱이 빨갱이 거리기에 제가 질풍 노도의 시기였는지 내오늘 당신한테 빨갱이 근성 보여준다며 도끼들고 달려들다.

동네에서 매장당했습니다. 쩝.. 뭐 그사건 이후로 동네가면 인사도 안받고 같은길로 오다 슬그러니 논길로 피하시는분도 있고 동네 안내려가는 계기가 되것 같습니다. 담배 배우고 술먹고 집에는 막차타고 가서 돈만 내놓으라고하고 그길로 다시 도시에 왔던 개 망나니 생활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그런 자식을 만약 둔다면 감당할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까지 하면 저희집 할아버지를 빼놓을수는 없는데 전형적인 촌부로 예전에 이야기들은적이 있는데 면에 보리쌀 사오다 재에 걸려서
넌 좌익이냐 우익이냐 좌익이라고해서 죽도록 맞고 다시 다른재에서 걸려서 우익이라고 해서 맞고 나중에 난 좌도 우도 아니요 했다 회색분자라고 맞았다는 말씀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사변때는 어찌좀 먹고 살려고 면서기하던사람에게 지금말로 로비좀했는데 그것이 미움을사셨는데 사변전 어느날 부역갔다오다 소변을 보시는데 오늘 누집놈 잡아 죽이자 하니 그길로 집으로 안가고 식구들 버리고 줄행랑 놓으셨다는 후로 사변나고 삼년있다 걸인 행색으로 돌아오셨다고하더군요. 그리고 동네에는 사변전 몇주부터 이미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왔었다더군요. 곧혁명이 일어난다는 밤마다 조용히 사람모아 선동하고 다니다 동네 뉘집 자녀가 순사하던사람이 있었는데 그날로 조용히 동네빠져 군으로 달음쳐 군경에게 잡혀 모조리 즉결처분 되었다하더군요.
사변후로는 그 때문에 그 경찰 집안 일가 친척까지 모조리 죽창으로
멸절되고. 쩝.

뭐하여간 어르신들 말들은바로는 그렀습니다.

저야 국민 학교에서 공책 필기구 욕심에 반공 웅변이니 글짓기니 포스터니 그런것들 많았는데 그런말듣고는 표어하나 내본적이없습니다. 어른듬 품에 안겨 잠들었다 이야기하시는 것들게되면
전쟁은 정말 잔인하더군요. 그때문에 머루며 다래며 산짐승 잡는다고 헤메고 다녔는데 무서워서 못가는데도 많아졌습니다. 전쟁때 국방군 인민군이 공처했다는 장소들이 하필이면 인가 주변 야산이더군요.
알고나니 도저히 해지고는 나다닐수 없었던것같습니다..

어릴때는 밤새 서울로 줄행랑 치는 가구들도 많았고 해마다 소작 문제로 음독 하는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제 부친이 그시절에 고등학교를나온죄로 이장하고 있었는데
제가 동네 호구조사해놓은것 기표하고 기타 여러가지 아버지하는일을 잠시 돕다보니 어른들 이야기하시는것 기타등등 귀동냥 기회가많았죠..


그래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동네 전기세가 똑같이 몇천원.. 이장이 돈받으로다니고 무슨 급전보는 전부 저희 집으로 왔었으니까요.
아버지 없으면 신나서 무슨 장난감이라도 된양 방송해대고 했었죠.
평소에는 해보고 싶은데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동내어른들이 은근히 선동하기도해서. -.,-

지금은 한 삼십여호 남았는데 짐승도 별로 키우지 않아서 동네가 조용합니다. 그래도 작은 분란은 얼마든지 있더군요. 그리고 자녀들을 도회지로 보내고 받는 용돈이 충만하셨는지 옛날처럼 싸워도 금방 화해도 안하고 사소한것으로 싸우고 몇년째 서로 인사도 안하는 집도 어머니 말씀들으니 있다고하고. 문명 발전하고 보통 인간사하고 어떻게보면 또 기대에 못미치는것같기도하고 .


협한 협일 친북 친미 친일이 한국인이 일본인이 문제겠습니까. 반성할지모르는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지.
말을 해놓고도 이상하군요.

그 막걸리영감님은 예전에 저보고 해방후 몇년 지났다고 배웠냐.. 그러나 당신은 지금도 자신은 식민치하라고 생각하신다던.. 쩝. 저보고 일본놈보다 조선놈을 조심하라고 하시더군요. -.,-
빨갱이 영감님이 그분한테 나이를똥고로처먹었냐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없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너희 사는 세상은 우리 같은 세상 안살고 니 자식한테도 그런 세상 물려줘라라고 하셨는데.. 나이서른이 넘어서 이제 얼핏 의미를 짐작할것도 같습니다...

써놓고 보니 독백입니다. 작년에 하려는 일이있어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여건이 좋지않아서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내일부터 다른 할거리를 ㅤㅊㅏㅊ아 나서야겠습니다.

한때는 어른들의 들었던 이야기로 소설을 써볼 생각도 했었는데 글을 쓴다는것이 저같이 산만하고 집중하지못한 덜렁거림으로는 쉽게 할수있는것이 아니 더군요. 예전에 그런 생각들 어른들 이야기 날짜등을 일기장에 모두 적어놓고 한때 군입대전 맘주던 사람에게 정표로 주었는데... 결국에는 일기장도 못받았습니다....

항상 똘이장군류 어릴적 학교에서 틀어주던 반공영화
선동하고 박수치고 어느날엔가 내가 증오했던 빨갱이나라의 또래 친구들도 이모습을하고 있겠고나 하는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때 육학년 담임선생님께 이야기를했던것 같던데 장선생님은 다른 선생님과 다른 류의 말씀을 해주셨던것 같은데 대학가면 네가 보고 싶은것을 더많이 찾아 배울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던것 같은데. 너무 권위를 세우시는분도 아니였고 참 인성으로 학생을 대했던 분인것 같습니다

항상 인생에 있어서 부정적인것만 증폭은해왔는데 다시생각하니 좋은 추억들도 많고 좋은 선생님들도 많았는데 .

살면서 왜 부정적 인것을 더ㅤㅊㅏㅊ아 야만했는지. 시대유감이라 과거 독재시절을 사는것이아니지만 공감도 적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오히려 독설로 주변을 강대했는데요. 방법이 틀렸던것 고 제가 진정 바라는것도 명확하지 않았고.. 휴.. 그렇다고 운동을 한것도 아니고..

근데 오늘 다시 머리속 어딘가에 처박혀있던 기억을 끄집내고 나니
시원하군요. 버려졌던 기억 무자기로 쏟아놓으니 뇌 용량이 확보된것같습니다.

수다를 넘 떨어서 피곤도하고요. 요사이 조금 외로웠나봅니다.

모두들 나날이 행복하시길. :oo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