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 인생

권순선의 이미지

지난주말의 CodeFest 이후로 만사가 귀찮아져서 CodeFest 후기도 제대로 못 쓰고 매일매일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해서 오랜만에 dvd를 하나 봤습니다.

제목은 '아홉살 인생'. 원래는 이것과 '클래식'도 같이 빌려왔었는데 '클래식'은 도저히 느끼해서 못봐주겠더군요. 손예진이 예뻐서 상당히 좋아했었는데 영화 내용이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너무 어색해 보여서 10여분 정도 보다가 말았습니다.

꼬마 아이들이 출연한 '아홉살 인생'이 '클래식'보다는 훨씬 낫더군요. 혹시 안 보신 분은 나중에 시간나시면 한번 보세요. 추천하고 싶습니다.

logout의 이미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직 하는 곳 있으면 꼭 보세요. XXbox 같은 곳에서 캠코더 촬영파일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화질이 나쁘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에서는 일본인들을 주로 향한 메세지를 날리더니만 이제는 서양인들과 일반인들 위주로 메세지를 큰 걸 하나 또 날리는군요. 시간나면 감상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icanfly의 이미지

logout wrote: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직 하는 곳 있으면 꼭 보세요. XXbox 같은 곳에서 캠코더 촬영파일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화질이 나쁘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에서는 일본인들을 주로 향한 메세지를 날리더니만 이제는 서양인들과 일반인들 위주로 메세지를 큰 걸 하나 또 날리는군요. 시간나면 감상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그..그렇습니까? :shock:

영화를 다 보고도 무슨 메세지를 날리는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군요.

센과 치히로부터 들어갈때 기대를 안고 들어가면..나올때는 황당해 하면서 나오게 되더군요.

라퓨타나 키키 정도면 좋은데...너무 난해하고 어려워 지는거 같더군요.

죠커의 이미지

하울은 개인적으로 별로였습니다.

원래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맡게 될 작품이 아니었죠. 후진 양성을 위해서 발굴만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스폰서가 죽으면서 자식이 맡게 되면서 프로젝트가 완전히 망했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흥행에 성공했던 고양이의 보은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흥행에 떨어졌다!! 고 판단했고 그 원인을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작품을 맞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후진 양성을 하려던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자리에 다시 앉혀 버리죠.

생각이 없던 프로젝트를 중간부터 맡게 되었고 스튜디오의 앞날도 어둡게 되었습니다. 다만 중간에 맡아도 높은 퀄리티로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을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번에 증명했다는 것이 수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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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 wrote:

생각이 없던 프로젝트를 중간부터 맡게 되었고 스튜디오의 앞날도 어둡게 되었습니다. 다만 중간에 맡아도 높은 퀄리티로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을 마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번에 증명했다는 것이 수확일까요.

어쩐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서 중간중간에 스토리가 좀 튀면서 매끄럽지 않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게 중간에 감독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군요. 어쨌거나 주제의식은 명확하고 깔끔하게 잘 들어가 있습니다.

이왕 스토리가 옆길로 빠지는 김에 예전에 제가 써놓았던 센과 치히로 감상문을 올려봅니다. 재미로 읽어보시길.

Quote:

후배에게 보냈던 이메일입니다... 그래도 이 만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터라 그대로 여기 게시판에 올립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은 한번쯤 극장에 가셔서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On Mon, Jul 29, 2002 at 09:22:57AM +0900, XXXXXX wrote:
> 큭큭...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제가 찾아서 올린거랍니다....
> 화질...음향 다 빵빵한 쏘스랍니다...dvdrip_SBC_AC3_5.1ch ^^;;
> 전 아무생각없이 봐서 그런지 그냥 그렇던데...ㅋㅋ
> 하쿠가 좀 묘한 놈이었던 것 같고....
> 유바바과 언니사이의 관계도 좀 그렇고....
> 볼때는 그냥 잼있게 봤는데 보고나니 좀 아리송한게 많더군요....

흠. 이 아자씨 아무래도 해설이 좀 필요하구만.

하쿠는 묘한 놈이 아니고... 일본의 '정신' 혹은 '혼' 정도로 보면 돼.
일본의 쌩쌩한 젊은이들이지. 꿈이 있고 (하쿠는 마법을 배우러
유바바 아래에 들어가거든.)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바보같을 정도로.

재밌는것은... 유바바의 목욕탕은 완전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야. 그리고 여기에서 단 하나의 자본가, 혹은 CEO는
유바바고. 여기서 유심히 보아야 하는 것이 유바바 목욕탕의 종업원들은
모두 일본식의 생활을 하는데 유독 유바바는 철저히 서양식이야. 생긴
모습부터 서양식을 상징하지. 매부리코에 파랗게 칠한 눈, 그리고
레이스 많은 드레스에 사무실 장식까지 철저한 서양식이야. 자본주의라는게
서양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대놓고 암시하는 것이지. 영화에서
'마법'이라고 불리는 것이 자본주의야. 쉽게 생각해서, 돈은 거의
마법과 비슷하거든. 웬만한 건 돈으로 할 수 있고 또 돈이 없이는
큰일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하쿠는 여기에 '마법', 즉 자본주의 시스템을 배우러 들어간거야.
열심히 배워서 마법으로 좋은 물건을 만들고 싶었겠지. 그런데 하쿠가
자본주의 시스템, 유바바의 직장에 취업하고 나서는 결국 유바바의 '심복'
역할 밖에 못하게 돼. 그러니까... 하쿠는 '마법'을 배우러 들어갔는데
하쿠는 이미 계약을 하는 순간부터 유바바가 지정한 '심복'의 역할을
맡게 된 거야. 하쿠는 그걸 모르고 있었고. 그리고 그런게 자본주의의
시스템이고.

여기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암시하는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가마 지피는 노인이야. 이 사람은 유바바와는 달리 유바바 목욕탕의
가장 아랫쪽에 위치한 사람인데 이 사람 생긴게 묘하지. 팔이 6개에
항상 정신없이 움직이지. 그런데 막상 이 사람은 유바바가 목욕탕을
운영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 이 사람이 보일러를 안때어주면
목욕탕이 안돌아가. 그런데도 재밌는 것은, 이 사람은 목욕탕 밑바닥에서
그 역할에 상응하는 댓가를 못 받고 있는거야. 철저히 다른 곳과 분리되어서.
말 그대로 노동자 신세가 이렇게 불쌍타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

사실 이 가마 지피는 노인은 단순히 무식한(?) 노동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일단 일부터 잘하고 인정도 있고 또 여러가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해박한 지식인 축에 들어가지. 그런데 유바바 목욕탕의 맨 아랫쪽 하부구조에
들어가니까 불 지피는 일 밖에 못하는 거야. 그렇게 늙었을테고. 인생
갑갑하지?

유바바 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큰 해악은 역시 인간성
말살인데... 기본적으로 여기서는 유바바가 계약이 끌나면 노동자의 '이름'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어. 그리고 유바바라는 마녀는 '일하지 않는
자는 여기 살 수 없다'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 그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하쿠는 어떻게든 치히로에게 일자리를 구하라고 했던거고. 유바바의 대사중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오지. '일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주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여기서 자본주의의 문제가 하나 나오는 거야. 일을 찾아 헤메도
일자리를 못잡은 사람은 그럼 굶어 죽어야 하는 건가? 유바바의 원칙대로라면
치히로가 일을 찾아 헤메도 일을 못구하면 그러면 치히로는 돼지가 되어 다른
사람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거야. 먹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다른 사람의
'유희'라는 소비를 위해 쓰여지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이렇게 인간성이 말살되는 과정에서... 일본 전통도 혼란을
겪고 말살당했다는 것을 잘 봐야 해. 특히 하쿠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서양의 마법을 배우러 간 사람인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기 이름도 까먹고 유바바의 심복 노릇만 하게 된 것이지. 끔찍하지 않니?

그런데 하쿠의 신세가 의외로 나같은 사람들도 공감이 가는게...
내가 여기 유학까지 와서 배우는 것이 뭐 하쿠가 마법배우러
유바바 목욕탕 간 것이랑 큰 차이가 없거든. 그리고 한국에서
신나게 공부하고 돈벌고 이런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솔직히
일에 '바빠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거의
안하는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이라.

유바바와 유바바의 언니 사이의 관계는 ... 이 둘이 쌍동이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유바바 목욕탕 사람들이 유바바의 언니를
'무서운 마녀'로 알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 그런데
막상 치히로가 유바바의 언니 집에 갔더니... 그 집은 오래된
서양식 cottage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손으로 뜨개질을 하고
물레로 실을 뜨고. 이건 서양인들도 이제는 잃어버린 서양의
과거의 자신을 상징해. 그러니까 유바바와 유바바의 언니는
쌍동이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완전히 다르게 되는 것이지.

그리고 센.. 치히로가 여기 와서 자기 자신을 깨닫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야. 즉,
동양의 새로운 세대,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에서 큰 어린아이가
서양의 과거와는 '공감'할 것이 많다는 얘기이지. 즉, 서양은
동양을 깔아 뭉갰지만, 동양은, 특히 일본은 그것을 용서할수
있다는 얘기야. 어찌보면 군국주의로 돌려도 무리가 없는
발상인데... 여하간 유바바 언니도 자본주의의 심복 하쿠를
결국 용서해 주잖아. 한마디로 서양과 동양의 화해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거야. 여기서 치히로가 센의 이름을 버리고 유바바
언니에게 내 진짜 이름은 치히로라고 얘기해 주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 되는 것이지.

결국 이 영화의 메세지는 하쿠가 전해주게 되는데... 치히로가
하쿠의 원래 이름을 기억해 내게되고 하쿠는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에 눈을 뜨게 되지. 유바바의 언니도 치히로에게
'네 이름을 잊지 마라'고 얘기해주잖아. 결국 여기의 주제는
잃어버린 자신을 깨닫는 거야. 그리고 그 배경에는 서구식
자본주의가 있고. 서구식 자본주의에 영혼마저 빼앗긴 일본인들...
그들을 각성시키고 싶은 것이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메세지가
아닐까.

비록 유바바의 언니로 서구에 대해 좋은 점수를 주었지만 이 만화의
세계관은 서양사람들을 완전히 까고 있어. 이게 위험한게... '저놈들이
우리들보다 잘난게 없다'라는 생각은 자부심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너, 나의 차별로 이어져 우파 민족주의로 발전하거든.
어쨌든 영화에서 새세대를 상징하는 치히로가 유바바 언니를 껴안았으니
희망 쪽에 베팅을 걸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약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야. 과연 일본의 전통이 유바바를 제외한 유바바
목욕탕의 집단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를 아끼고 도와주는
것 밖에 없는 것은 아니거든.

여하간 동양 3국이 서양의 침탈 과정에서 당한 정신적인 충격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내 생각에는 한국인들이야 워낙에 개같은
일을 많이 겪었으니.... 일본애들한테 당하고 전쟁났고 그랬으니
돌연변이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애들과
일본애들도 마찬가지네. 이번에 월드컵에 보면 중국애들은
'우월한 자기네들을 까부순 훨씬 더 우월한' 유럽애들이 미개인
한국들한테 개박살나는 것을 보면서 유럽편에 섰어. 위대한 중국인들이
미개한 한국인들보다 월드컵에서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어?

그래도 내생각에는 일본애들은 동아시아에서 스스로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해낸 애들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일본마저도 정체성에 이정도 혼란을 겪고
있다면 이건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 어쨌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만한 메세지라도 전해 주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우연찮게도, 내 경우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유학까지
오게 된 셈인데... 나 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중국과
일본에도 많다는 것이 묘한 느낌을 주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
보듯이 한국의 신세대들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와 붉은색을
빌어 그들의 정체성을 이미 확립했고. 어째 돌아가는 상황이
괜찮은 것 같다. 만약에 중국, 일본, 한국까지 스스로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상황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이때는 서양애들이
더이상 꼭대기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만화에서
치히로와 모든 사람들이 화해를 하고 잘 지내는데 끝까지
유바바는 화해를 하지 않는 점을 유의깊게 봐야돼. 한마디로
감독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를 언젠가는 몰아내야 할 쓰레기로
보고 있는 셈이야. 그러나 아직도 유바바의 말 한마디면
수백명의 유바바 노동자들이 담 아래로 쏙 움츠려드는 상황이
현실의 딜레마이지. 솔직히, 월 스트리트의 자본가 하나가
마음만 먹으면 한 나라 정도의 재정은 물먹이는게 어렵지
않잖아.

어쨌든 이런저런 면에서 이번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엄청난 영화라고 볼 수 있어. 오직 일본인만이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지. 그러나 대부분의 동아시아인들은 이 영화에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고 --- 같은 치욕의 역사를 공유했기 때문에. 그리고
서양애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 --- 유바바의 언니는 이제
서양애들도 까먹어 버리고 모르는 그네들의 전통이야. --- 에서
이 영화가 명작의 대열에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지.

여하간 뭐 그렇다. 심심할때 한번 더 보면서 한번 잘 살펴봐.
내가 적은 얘기말고도 볼거리가 많지. 하필이면 치히로의 부모들이
욕심을 부리다가 돼지라는 동물이 되는 이유라든가 중간의 그 뭐시냐....
무식하게 먹어치우는 그 가오나시인가 하는 귀신의 바뀌어가는 모습
같은 것 말이지.

이쯤 적을께. 말이 많아졌네. 그럼.

>
> 그럼 종종 들러서 즐감하시길....빠이..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죠커의 이미지

하울 원작은 정말 명작이라고 하던데... 읽어봐야 겠습니다.

어쨌거나 하울 시원하게 재밌게 봤습니다. :-)

Prentice의 이미지

하울 원작 원서를 삼성동 반디스 앤 루니스에서 팔고 있길래 뒤 표지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는데 싱긋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10대 초반이였다면 당장 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