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비트 PC의 황금기와 사라진 영재

punkbug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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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는 18년 전에 알게 된 지인을 아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그 분은 예전월간지 컴퓨터학습(마이컴) 출신의 기자였는데, 필자가 고등학생 때 컴퓨터학습의 PC CLUB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당시 그 분은 20대 중반의 매력적이고 활기찬 여기자였고 필자는 컴퓨터에 미쳐있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서로 중년의 모습으로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고, 언제나 필자의 마음에 담겨있는 안타까운 사실 하나를 밝혀보도록 하겠다.

1983년은 국내에서 PC가 처음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팔린 기점이 되는 중요한 해이며, 그 해에 중요한 컴퓨터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필자 또한 1983년에 수학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PC를 접하게 되었고 컴퓨터학습,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학생과컴퓨터 3가지 월간지를 창간호부터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보았었다.

FC-100으로 시작한 베이직 프로그래밍
필자는 금성의 FC-100으로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는데, 1983년 당시 국내에는 프로그래밍 자료가 전무하였기 때문에 학교를 마친 후 멀리 떨어진 세운상가에 있는 컴퓨터 서점에 가서 PIO와 같은 일본 잡지를 사다 보고는 하였다. 세운상가에서 안 좋은 물건을 팔며 호객행위를 하는 무서운 아저씨들을 피해, 서점으로 막 뛰어들어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방학 때는 종로에 있었던 컴퓨터 대리점에서 살다시피 하며 또래의 동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는 했는데, 그러던 1987년에 민컴이라는 회사에서 발간되던 월간 컴퓨터학습에서 사고(社告)를 통해 전국에서 '컴퓨터 좀 한다' 하는 중·고·대학생, 일반인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심사를 거쳐 20~30여명의 사람들로 'PC CLUB'이라는 아주 평이한 명칭의 모임이 결성했는데, 아마도 최초의 공식적인 PC 커뮤니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대학생과 일반인의 모임은 곧 흐지부지 되었고 2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PC CLUB은 MSX와 Apple II로 나뉘어져 활동을 하였는데, 필자만 유일하게 양쪽 모두에서 활동을 하였다. 지금도 갖고 있는 기술의 양다리 근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컴퓨터학습 PC CLUB 시절의 기억
1983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8비트 PC의 황금기는 MSX, AppleII+, SPC-1000의 트리오가 장악하였다. SPC-1000은 NEC의 PC를 모델로 하기는 했지만 토종 PC라고 할 수 있는데, MSX나 Apple II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사용자가 적은 편이었다. 당시 MSX 기종은 대우 IQ 1000·2000이 유명하였고, 삼보 트라이젬은 Apple II 호환 기종으로 유명하였다.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추억의 이름들이다.

PC CLUB 모임은 컴퓨터에 미친 2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마포에 있었던 컴퓨터학습 편집실에서 LOGIN, MSX 매가진, BYTE 등의 외국 컴퓨터 잡지를 맘껏 볼 수 있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잡지에 활발한 기고를 하였으며 'MSX I·II 파워업 테크닉', '애플IIe 테크노트'와 같은 서적을 공동 집필하기도 하였다. 다들 BIOS 레벨에서 어셈블리 언어로 PC를 맘껏 다루었으며 저속 모뎀을 통한 PC 통신도 누구보다도 먼저 접했고 정말 모든것에 있어서 얼리어댑터였지만, 그런우리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입시였다. 우리는 매일매일 컴퓨터에 미쳐서 살았는데, 정말로 모든 에너지를 프로그래밍에 쏟았고 그것은 바로 물리적으로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이 없음을 의미했다. 조숙한 멤버들은 학교 공부의 무의미함에 대해 역설하고는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조숙함은 어쩌면 낙오자가 되는 징후였다. 1980년대 당시 어린 시절 일찍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통조림 같은 인간을 생산하는 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들의 입장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진정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컴퓨터 또는 입시 공부? 그리고 깊은 상실감
클럽 멤버들은 늦어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필자를 포함한 몇몇 멤버들은 대외적인 수상 경력이 있고 잡지 기고 또는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기도 하였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는 그것이 어떤 플러스 요인도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포기하고 입시에 전념하든가, 또는 대학을 포기하든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해다. 당시는 학력고사를 보았고 전후기로 나누어 모집하던 시기로서, 전기 경쟁률이 5대 1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클럽 멤버들은 정말로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컴퓨터를 포기하고 입시에 전념한 멤버들은 거의 모두 서울대, 연고대 등의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컴퓨터를 단념하고 입시에 몰두한 이들의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필자는 그것이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컴퓨터를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에 소유했던 MSX II, Apple IIe, SPC-1000A 컴퓨터들이 수호천사가 되어 지금까지 필자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순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PC에 대한 배신을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어쨌든 컴퓨터 대신 입시 공부를 선택한 멤버들과 컴퓨터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웬일인지 그것은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면 배신당한 컴퓨터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대학 신입생이라는 것이 꽤나 방탕한 시기이고, 그리고 절묘하게도 1990년 전후의 시기는 8비트 PC와 16비트 PC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그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은 대학으로 사라졌고, 이후에는 컴퓨터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평범한 사용자로 남게 되었다.

낙오자가 된 영재들
그렇다면 사랑하는 컴퓨터를 한시도 포기할 수 없어, 차라리 대학을 포기한 멤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멤버들은 대부분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또래의 누구보다도 일찍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발견했다는 자부심, 학교 공부는 자아실현에 의미가 없으며, 대학에서도 배울 것이 없다는 확신 등이 어우러져, 남들이 볼 때는 어떻든 그저 세운상가에서 PC를 조립하며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할지언정 무의미한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또는 진학하고자 해도 이미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부실한 멤버들도 많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모든 것을 올인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포기한 멤버들의 인생은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한 후배도 있고, 탁월한 프로그래밍 실력을 인정받아 회사에 취업한 친구도 있고, 세운상가에서 매장을 운영한 이도 있지만 그들의 치기 어린 자신감은 이 사회에서는 애초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기분만으로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전제 조건을 요구하는데 그것에는 학력 및 경륜이 포함된다. 지금은 그래도 좀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더욱 심했다.

당시 필자 또한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프로그래밍에 미쳐 살면서 많은 대외 활동을 하였다. 고3때 밤을 새며 ISAM 기반의 데이터베이스 처리 프로그램을 작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3 1학기 때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사회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로 인해 뒤늦게 대학을 가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그 후 고학을 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후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여기에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필자의 컴퓨터에 대한 열망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오히려 필자를 꾸준히 한 길로 가게 만들어 주었다.

20여 년간의 PC 역사를 생각해 보면, 국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몹시 아쉽다. 미국이나 일본을 보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현재 유명 IT 회사의 CTO나 수석 개발자로 일하면서 또한 활발히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물론 그런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아는 수많은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필자보다 훨씬 뛰어났던 한 후배는 8비트 PC의 황금기에는 훌륭한 어셈블리 프로그래머였지만, 컴퓨터를 단념하고 서울대에진학하였고 이후 리포트를 쓰기 위해 16비트 PC의 사용자가 되었고 지금은 그저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다.

그것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입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포기하고 평범한 사용자로 전락한 영재들, 컴퓨터를 일순간도 포기할 수 없어 대학을 포기했지만 학력 및 나이 차별로 인해 낙오자가 되어 지금은 잠수해버린 영재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IT 산업의 위상 중 유독 소프트웨어 산업이 저급한 수준에 머무르는 이유에는 분명히 이러한 과거의 요인이 감추어져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꿈 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회는 언제쯤?
20여 년에 걸친 긴 얘기를 짧게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것이 제한적인 경험을 가진 한 개인의 사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얘기를 하며 공유했던, 필자가 갖고 있는이러한 안타까운 기억을 한번쯤은 공개적으로 실토해보고 싶었다. 그로부터 사회가 많이 변했고 지금은 대학 진학에 특기자 전형 등의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대학 진학 또는 취업 여부를 떠나, 자신의 적성을 일찍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정한 적성을 찾아서 발견해내고, 그 목표를 위해 한 단계씩 정진해나가는 젊은이로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올 것인가? 지금과 같은 사회적 풍토에서는 여전히 그것이 요원할 뿐이다. @

PS: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당시 PC CLUB 멤버들의 근황이 많이 궁금하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www.zdnet.co.kr/news/column/hsryu/0,39024724,39129860,00.htm

ZDNet 컬럼. 항상 읽기 귀찮아 걍 흘려보곤 했었는데..
참 흥미롭고..
생각하게 만드네요.

warpdory의 이미지

공감 가네요

중학교때까진 세운상가에 자주 갔었는데.... 그때만 해도 컴 좀 한다는 사람들은 롬라이터도 만들고 ... 그랬었는데, 쩝...

그때 알던 친구들 지금쯤은 뭣들 하고 있을까 ..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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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iolo의 이미지

ㅎㅎ
공감이 간다고 하면 노땅이 되버리거나...
추억을 먹고 사는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되어비리는 세상이죠.

그래도, 그때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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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le has left your eyes...

warpdory의 이미지

iolo wrote:
ㅎㅎ
공감이 간다고 하면 노땅이 되버리거나...
추억을 먹고 사는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되어비리는 세상이죠.

그래도, 그때가 좋았습니다.

그러게요 그때가 좋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코딩 몇줄 해보겠다고 제물포역에서 종로 3가까지 학교끝나자마자 가서 2,3 시간 컴가게 주인 눈치 보며 테스트해보고 머릿속에 그걸 기억해서 집에 와서 다시 공책에 기억을 되살려 적어놓고... 그렇게 몇년을 살았죠.
apple 2+, apple 2e, MSX, MSX, PC1000 ... 모두 기억에 남는 녀석들입니다. apple 2+ 는 지금도 집에 있죠. 가끔 켜봅니다. 10 메가 시게이트 하드가 고장난 것 외에는 아직 아무 문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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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놀아보자.

yuni의 이미지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저와 한2년 연배이신 것 같습니다.
당시에 애플II를 접할 수 있는 저의 동년배들은 대단히 선택 받은 집단 이었습니다. 도저히 접할 수 없는 별천지의 이야기 정도로 들렸습니다.

입시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는 그래도 서울공대와 의대를 놓고 진로 고민을 하던 분들은 많이 못 본것 같습니다. 다들 공대를 갔던것 같구요. 심지어 저의 학우 중에는 의대 한학기 다니다가 재수로 서울공대를 간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는 지방 사범대의 영어교육과나 수학교육과의 커트 라인이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겨울은 참으로 추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보다 신진대사가 안되어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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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가족은 많은데, 시절은 왜 이리 꿀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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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하는 일을 꼭 완수하자."

cjh의 이미지

저도 나름대로 초중고 시절에 8비트 PC에 상당기간 미쳐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고3때는 컴퓨터 끊고(정말?) 공부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죠. 대신 MSX매거진과 팬은 계속 사보고 ^^ 중간고사나 월말고사 끝나면 꼭 용산에 가곤 했죠. 물론 그전에는 세운상가였지만 그때는 용산도 나름대로... 그리고 물건 잘 사던 집이 용산에 있었고요.

읽다보니 그리운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학생과컴퓨터같은 잡지 기억하는 분은 얼마 되지 않을것 같은데 -- 저는 처음 써본 8비트 PC가 당시 메이저 기종이던 SPC-1000이나 MSX, Apple II가 아니라 FC-150이라는 상대적으로 마이너 기종이라서 이건 잡지 기고도 전무하고 문서라고 해 봐야 몇 안되는 금성의 매뉴얼 군만 갖고 씨름해야 하는(게다가 어셈블러와 모니터도 없는) 것이라서 나름대로는 별짓 다한다고 해 보았는데 나중에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와 정보가 풍부한 MSX2로 쉽게 옮겨가게 되더군요.

컴퓨터학습 -- 후대의 마이컴 -- 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현재의 합정역과 홍대입구 역 사이에 민컴 사옥이 있었습니다. 사실 전 한번도 들어가 본 적도 없고 그냥 차 타고 지나다니다 볼 뿐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비닐하우스처럼(?) 묘하게 생긴 건물이고(지금도 있는것 같은데 주인이 바뀐것 같더군요) 항상 보던 잡지사라고 생각하니 그냥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PC CLUB이니 이런것 모르고 게임공략 한번 써볼려고 원고지 한 20장(당시에는 왜 원고를 원고지에 쓰라고 하는지...) 보냈다가 아무 연락도 못받은게 전부였습니다만. :) 당시에는 16비트 PC는 너무나 먼 존재여서 당시 교육부가 교육용 PC라는걸 XT호환급으로 정해버렸을 때에는 원망스런 마음도 들더군요. 내가 가진 PC가 한순간에 사장되어 버리는 때였으니까요(반대로 XT호환기를 갖고 있던 분은 호기였을지도).

많지는 않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웨어 잡지의 최근호를 살펴보면 예전의 8비트 PC 시절에 이름 날리던 분이 지금은 교수라든가 벤처 CTO라든가 하는 예를 찾아볼 수 있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사실 컴퓨터라는 학문/직업이 지금처럼 인기 내지는 중요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던 때라서(IT 벤처라는 것도 없고 IBM, Sun같은 대기업과 약간의 중소기업 정도... 1990년 후반이 지나야 지금처럼 폭발적 세가 형성이 되죠) 1990년 중반만 해도 도대체 뭘 하고 먹고살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종류가 약간 다르겠죠.

p.s. 아무래도 우리나라 남자 학생의 경우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고3이고, 또 하나는 군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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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펙토 페트로눔

jachin의 이미지

저도 그 때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컴퓨터 학습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시기라...

그 때의 영재들이 좀 더 체계적이고 진보적인 학습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아니... 어느 분야든 그랬겠지만,

조금 더 열린 내용들을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것 같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컴퓨터에 대해 많은 내용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컴퓨터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더라면...

그 때가 아쉬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지금 모두 한 풀었을 정도로 이런저런 자료는 많이 얻게 되었죠... >_<)

mindcry의 이미지

컴퓨터 학습에서 PC CLUB 멤버모집하던 홍보기사가 기억나는군요.. 전 응모할 실력이 못되어 포기했습니다만..
컴퓨터학습하니 잡지전면부쯤에 꼬박꼬박 실리던 서드웨이브 광고도 생각나는군요.. 회원은 한달에 30장 카피가능이었던가요 8) Offline Crack그룹..뭐 그 때는 컴퓨터소프트웨어를 보호할 저작권법도 국내에 없었지만요..

응?

jccha의 이미지

저도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라 그런지 옛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컴퓨터를 끼고 살고만 싶은데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작용하는 면이 있겠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좀 다른 생각도 듭니다. 초중고시절 컴퓨터에 관심이 매우 많고 매우 재능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수학이나 과학, 작문 등을 더 중점적으로 교육받고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큰 일이라는것이 뭔지 사실 애매하고 그렇긴 하지만요.

그런데, 컴퓨터에 당장 관심이 집중되다 보면 이렇게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공부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기 쉬우니, 좀 동기를 부여해 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컴퓨터 하고 싶으면 수학은 왜 해야 하는지, 외국어는 왜 배워야 하는지 등등... 아마도 좋은 선생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네요. 어떻게 보면 그시절 뿐 아니라 아직도 갈길이 먼것도 같습니다.

shineyhj의 이미지

lonelyme 류한석님이시군요.
저도 저분이 쓰신 '파워업 테크닉' 책을 산 기억이 있는데, 당시 MSX 에 관련된 잡다한 내용들은 다 쓰여져 있더군요. 80년대 후반에 4800원이라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던지라 거기 나오는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소스 입력하며 '아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라고 느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납니다.

그때 그 책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집에 아직 예전 컴퓨터 학습 책들이 있는데, 당시에는 컴퓨터 + 각종 디지털 회로 + 공학일반 등등의 내용이 잡다하게 다루어졌었습니다. 뭔가 요즘 책들과는 다르게, 어떤 공대생의 로망같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저렇게 불타오르게 하는 책이 그리 많지 않더군요.

- 야간비행.

The Feynman algorithm :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real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_-;;;

genie0610의 이미지

저두 한석님 칼럼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위엣 글은 별로 공감가지 않는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8비트 시절의 영재라 칭하고,...
그때 학교 입시를 준비한 분들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의 글 내용이 맘에 와닿지 않네요...

zdnet에는 그런 내용을 꼬집는 댓글이 많이 달렸던데,... 흐흐~~
사뭇 kldp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분이 많이 계셔서 그런가?...

jinoos의 이미지

genie0610 wrote:
저두 한석님 칼럼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위엣 글은 별로 공감가지 않는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를 8비트 시절의 영재라 칭하고,...
그때 학교 입시를 준비한 분들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의 글 내용이 맘에 와닿지 않네요...

zdnet에는 그런 내용을 꼬집는 댓글이 많이 달렸던데,... 흐흐~~
사뭇 kldp는 분위기가 다르네요... 그 시대를 같이 살아온 분이 많이 계셔서 그런가?...

제가 보기엔 입시 준비한 분들에 대한 부정 이라기 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수 없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 나타나 있는것 처럼 보이는걸요.

사실 그시절 입시가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던것도 한몱을 한 부분도 있죠.

저는 MSX 는 친구들 것 구경만 하다 삼보 GemPower-Deluxe 가 첫 컴퓨터 였습니다. 아마도 16비트 둔재가 아닌가.. :wink:

목적을 찾아서... jiNoos

kokids의 이미지

좀 오래간만에 듣는군요. 88년, 90년도였던 것 같네요. 친구집에 있던 애플][는 저장장치라곤 아무 것도 없었죠. 그래도 동네에 컴퓨터 있는 집은 그 녀석 밖에 없어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아직도 생각나는 건 컴퓨터학습에 게재된 걸 실행해보기 위해 책 빼곡히 적혀있는 16진수 덤프를 CALL-151로 들어가서 몇 시간동안 계속 쳐넣고 실행해보고, 다시 오류가 나면 처음부터 하나씩 확인하면서 또 고치고 하던 기억이죠. 친구는 옆에서 16진수를 부르고 저는 입력하고. 지치면 전 부르고 친구는 입력하고.

그리고 제대로 실행이 되면 탄성과 함께 실행을 끝냅니다. 그리곤 컴퓨터를 끕니다. 저장할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던 그리고 여유가 없었던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상의 방법은 일단 동작하는 건 보고 끄자였거든요. ^^

그 당시엔 어쩜 그리 동네 정전도 잘되는지 입력하다가 정전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입력하는 수 밖엔 없었죠.

그러다가 MSX 계열 코드를 입력하려면 동네에 있는 MSX 학원을 갔습니다. 이 당시 애플 계열 컴퓨터를 보유한 학원과 MSX를 보유한 학원이 나눠져 있었거든요. 우리 동네엔. 특히 토요일 같은 때에는 그 학원 다니는 친구들과 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곤 했습니다. 그런 걸 틈타 마치 그 학원 다니는 친구랑 같이 온 것처럼 해서 책 들고 가서 코드 입력해 보고 그리고 나오고... 그러다가 들키면 '친구 먹을 거 사러갔는데요. 제가 가볼께요' 하며 도망쳐 나왔던 기억들. ^^

타면자건(唾面自乾)

warpdory의 이미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짓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동네에 apple 2 가진 사람이 저와 저쪽 철길 건너에 한친구가 더 있었죠. 거리는 대충 500 m 정도..

서로 게임을 테이프로 복사해주고 그랬었는데, 그게 귀찮아서 ... 엄청난 일을 벌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애플 2 뒤쪽에는 오디오 단자가 3개가 있죠. 하나는 스피커, 하나는 line in, 하나는 line out 보통 line in/out 이 카세트 테이프쪽하고 연결돼서 게임을 로드하고, 세이브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것을 이용해서 전선으로 연결시키면 될꺼라고 생각해서 500 미터쯤 되는 구간을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서 쭉 ... 연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 당연히 신호가 아무것도 안 잡혔죠.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노이즈/신호 감쇄 등을 생각했겠지만, 그때는 그게 왜 안될까.. 라며 무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다시 테이프로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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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tinywolf의 이미지

ㅎㅎ 악필씨는 재밌는 시도를 하셨네요 ^^

ㅡ_ㅡ;

cjh의 이미지

말도안되는 에피소드라면...

앞 글에서 FC-150을 썼다고 그랬는데, 당시 쓰던 모노크롬 모니터에 스피커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line in 단자도 없고... 프로그램 책 보면 사운드 내는 소스도 있는데 입력할 수가 없었죠.

근데 신기한 사실을 알아낸 건 컴퓨터 옆에서 라디오의 특정 수파수를 켜면 PC에서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모니터에 스피커를 납땜질해다 붙이기 전 까지는(신기하게도 스피커 자리는 있었음) 옆에 라디오 켜 놓고 소리 듣기도 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전자파 만땅... 이랄까요. 지금도 전자학적 지식이 없어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akpil wrote: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짓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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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펙토 페트로눔

권순선의 이미지

jccha wrote:
저도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라 그런지 옛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컴퓨터를 끼고 살고만 싶은데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작용하는 면이 있겠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좀 다른 생각도 듭니다. 초중고시절 컴퓨터에 관심이 매우 많고 매우 재능을 보여주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수학이나 과학, 작문 등을 더 중점적으로 교육받고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큰 일이라는것이 뭔지 사실 애매하고 그렇긴 하지만요.

그런데, 컴퓨터에 당장 관심이 집중되다 보면 이렇게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공부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기 쉬우니, 좀 동기를 부여해 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컴퓨터 하고 싶으면 수학은 왜 해야 하는지, 외국어는 왜 배워야 하는지 등등... 아마도 좋은 선생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네요. 어떻게 보면 그시절 뿐 아니라 아직도 갈길이 먼것도 같습니다.

아직도 간간히 이곳 KLDP BBS에 보면 중/고등학생들의 진학 고민 상담이 올라오곤 하는데 컴퓨터를 계속할지 진학 준비를 할지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은 진학 준비를 하라는 답변들이죠.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사회라면 굳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마 그런 사회는 적어도 1-200년 안에는 오지 않을 것이기에,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생들은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dreamstorm의 이미지

fc-150 기억이 날듯말듯 하네요
키보드가 고무재질로 되어있고 베이직돌리기 위해서 롬팩을 꽂아야 했던 그놈인가요?
저도 그놈으로 최초의 코딩을 시작했었는데.. 아.. 그리워라..

체스맨의 이미지

저도 이글이 썩 공감가는 글은 아니군요.
저 초중고때 나왔던 컴퓨터들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저도 비슷한 나이대가 아닐까하는데요...

'사라진 영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도태된 것일 수도 있지요. 진정 컴퓨터를 사랑한다면, 학교 수업과 병행할 수도 있었을테고, 입시를 위해 6개월~1년은 잠시 접어둘 수도 있었을 텐데요. 게다가 개인적으론 학교 수업이 컴퓨터 학습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데, '공부=입시'라는 편견으로 무분별하게 학교 수업이라는 데 거부반응을 가지는 건 아닌지요? 전 아직도 중,고등학교때 배운 수학이 프로그래밍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요.

대학 졸업장이라는 거 그저 서류에 불과하지만, 자기의 지적 수준을 보증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대학 졸업 안해도 대학 졸업한 수준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방식으로 입증하면 되는 것이구요.

'꿈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회'라는거... 뭐 사회적인 시스템의 뒷받침도 중요하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 정도라면 분명 이상적이진 않지만 꿈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회가 언제쯤 올 것인가라는 생각을 가질만큼 낙후되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과거의 향수 쯤으로 생각될 수 있는 글이지만, 몇몇 단어의 선택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글이군요.

Orion Project : http://orionids.org

우겨의 이미지

그 시절에 컴퓨터 접할수 있는 환경-주로 부모님의 재력에 기인한-을 가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의 푸념이군요.

95학번인 전, 대학입학과 동시에 제 컴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2004년에는 어지간한 집에는 컴이 다 있고, 나이드신 어른분들도 잘 활용하고 계십니다.
사회는 서서히, 조금씩, 개선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영재나 천재라는 것을 이유로 당당하게 사회가 자신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재밌네요.
자신이 사회의 잘못된 점을 보았으면, 그점을 개선해야하는 것이지,
미국과 일본같은 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한국을 비하하는 군요.

한국사회는 선진국으로 서서히 가고 있는 중인데데, 자신과 같은 영재에게는 선진국 수준의 대우를 바라고 있다니...
의무는 대충하고, 권리는 최대한 챙겨먹으려는 사람들의 부류처럼 보입니다.

뒤쪽의 3문단 정도의 어이없는 생각만 지운다면, 과거를 추억하는 글중의 하나가 되겠는데.

앙마의 이미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다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보자면... 컴퓨터를 처음 접해본 것이 초등학교때 apple IIe와 spc-1500이었는데... 실력도 없는것이 게임 프로그래밍을 해본답시고 여러 서적들을 들춰가며 공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학내 또는 관내 경시대회에서 두세번 입상한 전력이 있지요 :)
중학교서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컴퓨터를 접해볼 기회가 전무했던지라... (제가 사는 동네가 당시만 해도 시골이었던지라 컴퓨터가 있는곳이 거의 없었답니다. 게다가 그놈의 입시 때문에 컴퓨터 공부를 병행할 능력도 없었군요.)제가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접해본것은 대학 이후입니다. 학창 시절에 계속 컴퓨터를 접할수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실력이 월등한 그루가 될수도 있었겠다는 말도 안되는 환상에 젖곤 합니다. -_-

autography

인간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mycluster의 이미지

처음 컴퓨터를 접한게 84년에 SPC1000이었는데, 그 당시에 앞에 글올린 여러분들 처럼 잡지에 난 게임 손으로 일일이 쳐넣고, 이짓저짓 하면서도 '난 프로그램 짜는데는 별로인가보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고1 겨울에 누군가 Apple용 FDD를 SPC1000에 달 수 있도록 해서 팔았는데, 그걸 사러 서울까지 왔다가 그 장비를 만든 분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그때는 몰랐는데, 그 장비를 만든 사람들이 I공대 모 교수(항공전공이었을 것임)였는데 저보고 묻더군요.
'컴퓨터 좋아하냐? 그럼 컴퓨터로 대학가고 싶냐?'하고 묻길래 ' '글쎄요... 잘 모르겠읍니다'라고 했더니 한말씀 하시더군요.
'웬만하면 다른 전공하면서 컴퓨터는 취미로 하는 것이 나중에 좋지 않겠냐...'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결국 대학은 항공공학을 전공하였고, 지금까지 그에 관련된 일을 하지만, 결국 이 전공내에서도 컴퓨터를 잘 사용하는 쪽으로 일을 하다보니... 결국 IT+Computational Science에 관한 일을 하고 있지요.
지금도 느끼는 것은 저 당시 컴퓨터를 열심히 했다는 '영재'들이 지금 10대들이 열심히 홈페이지 만들고, 채팅하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것은 왜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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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위의 리눅스 윈도위의 윈도우 리눅스위의 익스플로러

iolo의 이미지

akpil wrote:

그러게요 그때가 좋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코딩 몇줄 해보겠다고 제물포역에서 종로 3가까지 학교끝나자마자 가서 2,3 시간 컴가게 주인 눈치 보며 테스트해보고 머릿속에 그걸 기억해서 집에 와서 다시 공책에 기억을 되살려 적어놓고... 그렇게 몇년을 살았죠.
apple 2+, apple 2e, MSX, MSX, PC1000 ... 모두 기억에 남는 녀석들입니다. apple 2+ 는 지금도 집에 있죠. 가끔 켜봅니다. 10 메가 시게이트 하드가 고장난 것 외에는 아직 아무 문제 없습니다.


ㅎㅎ
전 컴가게를 들락거리다가 터줏대감이 되어 그 가게를 점령하고 알바를 했었죠. 플로피 게임한장에 복사(물론 불법이죠)해주고 500원받는 일이었죠.
그무렵 **관리 프로그램을 베이직으로 짜주고 처음으로 목돈(?)을 벌었더랬지요.. 인생꼬이는 길인줄 몰랐더랬습니다...
근데, 사실 그때는 이미 8비트는 사양길로 접으들기 시작할때였습니다. 대우통신의 프로엘리트가 등장했던 시기니까요...

8비트의 전성기라면 그 보다 조금 전 그러니까... 83~86년 정도가 아니었나 싶네요...
86년 부터는 16비트로 조금 씩 넘어가다가 어느샌가 마소가 16비트 전문 잡지 선언을 해버렸죠.
그때 마지막으로 게재된 8비트 애플 기사가... 무슨 한글 입출력 프로그램이었죠. 9x11인가에 한글을 우겨넣은... 가공할만한(?) 프로그램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애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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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le has left your eyes...

warpdory의 이미지

우겨 wrote:
그 시절에 컴퓨터 접할수 있는 환경-주로 부모님의 재력에 기인한-을 가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의 푸념이군요.

95학번인 전, 대학입학과 동시에 제 컴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제가 apple II+ 를 처음 만지게 된 것이 초등학교 4학년 가을쯤이었는데, 대충 1982 년쯤이죠. 그때 컴을 샀던 것은 어려서부터 세뱃돈 받으면 안 쓰고 저금하고(동네 새마을 금고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문 돌리고, 그래서 번 돈으로 샀었습니다. 제기억으로는 당시에 신문 200 부든가 300 부 돌리면 한달에 3만원 조금 넘었든가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1 학년때부터 중 2 때까지 신문 돌렸으니깐 거의 맞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어려서부터 집에서 용돈이란 걸 받은 기억이 가뭄에 콩 나듯 하는군요. 고 3 때 용돈이 일주일에 2천원이었는데, 그 돈으로는 월-금요일 버스비 하고 나면 120 원인가 남아서 어떻게든 돈을 여기저기서 만들어서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도를 한번 보니깐 좀 먼 거리군요.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서 인천 동구 화수동인데, 대충 직선거리가 13.3 km 군요.
부모님의 재력에 의지한 행운일지도 모르지만, 저처럼 남들 과자 사먹고 떡볶이 사먹을 때 그돈 모으고, 그걸로 모자라서 신문돌리고 우유 배달해서 컴 사서 공부(?)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91학번인 제가 IBM PC 를 만지게 된 게 고 2 때 내신등급이 10 등급(10등급 중에서 10등급)으로 떨어지자 부모님께서 반에서 20 등 하면 컴 사준다 ... 해서 공부해서 전교에서 20등(제 생애 최고 기록입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 아래로 .. 아래로..) 해서 받았던 XT 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께서 사주신 컴이었고, 대학 1 학년때 1학기 내내 도서관/식당/학교 공사장 등등에서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돈으로 여름방학때 386(아마 386-33, 램 2 메가, 하드 80 메가로 기억합니다.)을 사면서부터는 거의 제가 벌어서 다 샀습니다. 남들 MT 간다, 뭐 간다 할 때, 한번인가 두번밖엔 못 갔었죠. 주말이면 일해야 했으니까요. 안 그러면 등록금이 안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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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mudori의 이미지

진부한 내용이네.. 비단 컴터만 였을까?
넘.넘 진부하다.

warpdory의 이미지

iolo wrote:
ㅎㅎ
전 컴가게를 들락거리다가 터줏대감이 되어 그 가게를 점령하고 알바를 했었죠. 플로피 게임한장에 복사(물론 불법이죠)해주고 500원받는 일이었죠.
그무렵 **관리 프로그램을 베이직으로 짜주고 처음으로 목돈(?)을 벌었더랬지요.. 인생꼬이는 길인줄 몰랐더랬습니다...
근데, 사실 그때는 이미 8비트는 사양길로 접으들기 시작할때였습니다. 대우통신의 프로엘리트가 등장했던 시기니까요...

8비트의 전성기라면 그 보다 조금 전 그러니까... 83~86년 정도가 아니었나 싶네요...
86년 부터는 16비트로 조금 씩 넘어가다가 어느샌가 마소가 16비트 전문 잡지 선언을 해버렸죠.
그때 마지막으로 게재된 8비트 애플 기사가... 무슨 한글 입출력 프로그램이었죠. 9x11인가에 한글을 우겨넣은... 가공할만한(?) 프로그램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애플 안녕....

그때 저도 비슷한 걸 많이 했었죠. 당구장 관리 프로그램, 까페 관리 프로그램, 식당 관리 .. 등등 ... 그덕분에 당구는 공짜로 많이 쳤었죠. 프로그램 테스트 한다는 명분으로 ... 대학 1,2 학년때까진 프로그래밍으로 그럭저럭 돈도 벌었었는데(IBM PC 쪽으로 넘어오면서 클리퍼라는 db 프로그래밍 언어로 2,3 년 먹고 살았죠. 엉뚱하게 이게 1999 년에 Y2K 문제 어쩌구 하면서 프로그램 고쳐달라 .. 이런 전화가 적지 않게 왔었지만, 배쨌죠.) 결국은 .. 지금은 프로그래밍과 담쌓고 반도체쪽 일을 하고 있죠.
대학 들어와서 가본 당구장이 제가 짰던 프로그램으로 관리하는 거 보니 왜 그리 반갑던지...
그 애플 마지막 기사 ... 기억납니다. 그 후로 정말 애플 관련 기사는 ... 매킨토시 외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죠.

쩝... 가끔은 이렇게 예전 생각을 해보는 것도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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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김성진의 이미지

저는 애플2를 83년도 친구집에서 (6학년때) 보고, rescue raiders 라는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고2가 되어서야 애플2를 살수 있게 되었죠..뒤늦은 감이 있지만요.(88년..)

애플은 지금도 가끔 애뮬레이터를 가지고 놀곤 합니다.

제 기억으로 애플에서 만들어진 국내 프로그램 중에서

유홍열(? 정확한지..) 씨가 만드신 한글 출력프로그램이 기억이 남는군요.
(도깨비 같은 종류의...)

그 당시 저는 이분이 제게 GURU로 느껴졌습니다.

혹시 아시는분 계시나요?

고도의 추상화, 극도의 구체화, 에디슨을 그리워하다.

acooda의 이미지

학생과학.. 부록때문에 꾸준히 사 보았죠
컴퓨터랜드였죠 아마..?
책 맨 뒤에 베이직 소스 보고, 그거 따라 치니라 매일 밤새고
초등학교 시절 보넨게 생각 나네요 :D

이땐 컴퓨터 언어가 베이직만 있는줄 알았답니다 -_-

노트북 잃어버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