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의 가슴에 두 번 흉탄을 박다.
가끔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한 자가 정의가 된다는 말을 되뇌게 된다. 특히 우리 해방 전후사를 들여다보면 승리한자가 정의가 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까? 만일 역사가 분할되고 그 흐름이 없다면 그 말은 맞는 말일 수 있다. 승리한 자가 정의이다라는 말이.
김구 선생이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그는 패배자였다. 중국의 황량한 벌판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조국 광복 투쟁을 벌인 그는 미국에서 기껏 독립 청원운동을 벌이던 이승만에게 패배했다. 패배? 그렇다. 그것은 명확히 패배였다. 미군정이 이승만 영웅 만들기를 하는 동안 김구는 재야 인사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리고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 져야 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친일파의 나라로 돌아갔다.왜 친일파의 나라가 되었을까? 김구 선생이 어디가 어때서. 이것은 미국의 당시 지배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민족주의고 뭐 고를 떠나서 미국은 자신들에게 충성할 수 있는 실무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갖고 싶어했다. 이들이 찾은 것은 일본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공무원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한국에서는 소위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 집단이었다. 당시 고등 교육이라고 해봐야 별것 아니다. 고등학교 나오면 고등 교육 받은 거다. 거기에 일본 유학파들과 미국 유학파들, 특히 기독교 계열 유학파들. 이들은 일제 후반기 일제에 대한 협력을 통해서 자신들의 교화와 학교를 지켜 냈다. 지금도 이화여대의 정신 나간 할머니들은 그렇게 말한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 일본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김활란 박사를 비난하면 안된다고. 학교가 조국과 민족보다 중요했다는 말이다. 왜 그리 닮았는가. 영어를 이해하는 자, 행정 경험이 있는 자.
그러다보니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3대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 한다고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아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즉, 해방된 조국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철저히 사회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회 하층민인 그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학벌 사회 강화기에 다시 한번 자신의 아이들이 버림받는 것을 목격한다.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던 시절. 그래서 돈이 없어 상고를 가고, 돈이 없어 사범학교 가던 시절 말이다. 지금의 50대 60대 들이 바로 그 피해자들이다. 어쩌면 평준화의 시대는 그 막힌 길을 한 자락 열어 주었다.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다니게 되었고, 그래도 사회 하층민에서 한 단계 올라 설 수는 있게 되었다.
이회창을 생각해 보자. 검찰 서기인가를 하면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한다. 전쟁통에 수돗물로 배를 채우고 계란도 팔아 보았다고 한다. 집에 닭은 있었나 보구먼. 경기고와 서울대를 거쳐서 양지에서 양지로 옮겨 다닐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이회창 개인으로 보면 자신의 부친을 욕하는 것이 듣기 싫을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부친을 욕하면 싫어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역사를 없애지는 못한다.
일제시대 하급 관료들은 기어이 고위직까지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군, 경찰 모두 마찬가지 였다. 그들은 1970년대 후반까지 현직에서 권세를 누렸다. 흔히 친일파였던 대통령 하면 박정희만 생각한다. 대구사범인가를 나와서 관동군 장교를 지낸 박정희. 하나 더 있다. 최규하라고. 일제가 만주에 세운 괴뢰정권 만주국의 관리로 일하던 자다. 윤길중이라고 들어 봤는가? 신현확이라고 들어 봤는가? 이자들 역시 일본 중앙 정부 관리하던 자들이다.
대학 강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 교수직은 그래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차지했다. 누가 일제하에서 대학을 나왔을까? 일제에 협력한 지주 계급들, 상공업 계급들의 자제들이다. 물론 일본 유학생들 가운데는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의 학계를 장악했다. 한국사의 식민사관의 뿌리를 내린 이병도의 제자들은 사학계를 장악하고 스승의 성을 불독처럼 지금도 지키고 있다. 왜 친일 문제를 재야 사학자인 임종국 선생이 파야 했을까? 왜 그는 교수가 아니었을까? 소위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사관을 지킨 것이 바로 강당 사학계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를 공부한 학자가 얼마나 많은데 요즘 이야기되는 친일 인명 사전 편찬에 이름 건 교수들은 원래 지조 있는 어르신들과 젊은 학자들뿐인가.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다. 한국 학계 역시 마피아였고, 마피아 왕보스는 친일의 전력을 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학계는 침묵한 그런 형국이었다.
친일 민족 반역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들고 나오는 말이 국민 분열이다. 분열 무슨 분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주변이 분열된다는 말이다. 왜? 감추고 싶은 감춰야 하는 역사가 있기에. 차떼기당이 왜 검찰 수사를 갖고 편파네 뭐네 하면서 난리를 피우는가? 감추고 싶은 차떼기의 전력이 있기에. 왜 재벌들은 경제에 미칠 영향 운운하면서 검찰 수사에 대해 반발했는가? 감춰야할 비밀 장부들이 있었기에.
친일 문제라고 다를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누군가가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그것이 드러날 경우 한국 사회의 척수를 갉아먹은 그네들의 죄상이 드러나고 그들이 아비처럼 섬기던 보스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분열을 우려한다. 그들에게 이 나라의 주인은 국회가 삭감한 예산을 며칠만에 만원 이만원 모아 채워 버린 국민이 아니라 기득권을 움켜쥐고 무덤 속에서까지도 호령하고 싶어하는 그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보스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역시 조국과 민족이라는 말보다는 우리 학맥의 정통성이 중요하다. 조국은 망할 수 있어도 우리 학맥은 망하면 안된다. 바오밥나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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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멋진글들이 많네요 차례대로 전부 읽는 중입니다 :) 좋은 정
아주멋진글들이 많네요 차례대로 전부 읽는 중입니다 :)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