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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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혹은 태아 때부터) 모든 감각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받아들인 감각을 처리하는 중추 신경 계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단지 모든 말초 감각 신경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단, 모든 수의 운동 신경은 정상이며, 호흡/순환/소화/배설/내분비 조절에 필요한 정보는 수용할 수 있어서 생명은 유지됩니다. 즉,

  •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 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귀의 문제가 아니라 청신경 문제입니다.
  • 피부의 촉(냉/온/압/통)각이 전혀 없으며, 내장에도 일체의 촉각이 없습니다. (내장에는 원래 통각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만일 있다면 이 사람에게만큼은 없는 것으로 가정합니다.)
  • 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구개 반사 등은 있지만 삼켜야하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므로 어차피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항상 정맥주사로 영양소를 투여받으며 살아있습니다.)
  •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자, 만일 이 사람이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감각을 회복하지는 못한 채로) 십 수 년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 세월동안:
  • 혼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사람은 교육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일체의 외부 자극을 수용할 수 없어서 아예 '외부'라든가 '타인'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알 수 없는 상태인데, '생각'이라고 하면 너무 고차원적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뭏든, 무엇을 느끼고 살았을까요? '나'라는 개념은 있었을까요?
  • 무슨 행동을 했을까요? 운동 신경이 정상이니, 비록 외부 자극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뭔가 움직이고 소리내고 했을텐데, 제 3자가 이 사람을 관찰해보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였을까요?
  • 인생이 苦였을까요 樂이었을까요? 一切皆苦라는 불가의 진리가 이 사람에게도 해당됐을까요? 정서의 본체는 사랑이나 증오였을까요, 아니면 모든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처의 경지였을까요?
  • 혹시, 우리가 풀지 못한 문제들(P = NP ? 등등)이 풀리지 않았을까요?
너무 엽기적인 궁금증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궁금해하고 마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죠. 실험해볼 생각은 없으니까요. :)[/][/]
김정태의 이미지

제 생각엔 얼마 못 살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정하신 대로 억지로 살려놓았다고 본다면, 식물인간 그 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생각을 포함해서). 아무런 Input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니깐요.

novice의 이미지

차리서 wrote:
[*]혹시, 우리가 풀지 못한 문제들(P = NP ? 등등)이 풀리지 않았을까요?

저도 우리와 전혀 다른 문명이 전혀 왕래없이 발달 했다면 새로운 과학이나

수학적 사고가 발생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차리서님이 생각하는 상황에서라면 전혀 어떠한 발전(발달)이 있을거라 생각

되지는 않네요.

작용이 있어야 그에 대한 다른 반작용도 있겠죠?

제 생각에는 아마도 태아의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이 아니죠. 그냥 다세포, 아니면 유전자 그릇.

I don't belong here..

pyrasis의 이미지

언어를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각을 못할 것 같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영어로 생각하고..우리는 생각할때 한국어로 생각하죠..

magellan의 이미지

pyrasis wrote:
언어를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각을 못할 것 같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영어로 생각하고..우리는 생각할때 한국어로 생각하죠..

언어로 생각하는거 말고, 그냥 느낌으로 생각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제가 생각한거 말로 표현 못할 때가 많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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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ng

진로나라의 이미지

Quote:
혼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사람은 교육을 받는 것은 고사하
고 일체의 외부 자극을 수용할 수 없어서 아예 '외부'라든가 '타인'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알 수 없는 상태인데, '생각'이라고 하면 너무 고차원적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뭏든, 무엇을 느끼고 살았을까요? '나'라는 개념은 있었을까요?

어떠한 input도 없으니 "자아", "나 자신" 이라는 개념도 없고 "생각" 이라는것도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Quote:
무슨 행동을 했을까요? 운동 신경이 정상이니, 비록 외부 자극은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뭔가 움직이고 소리내고 했을텐데, 제 3자가 이 사람을 관찰해보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였을까요?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본능"대로 행동할것 같지만. 이 본능도 input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을것 같은대요.

Quote:
인생이 苦였을까요 樂이었을까요? 一切皆苦라는 불가의 진리가 이 사람에게도 해당됐을까요? 정서의 본체는 사랑이나 증오였을까요, 아니면 모든 희노애락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처의 경지였을까요?

苦나 樂이 무엇인지에 대한 input도, 사랑이나 증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input역시 없으니 자유롭다고 할수있겠지만.. 사실은 그런 개념조차 가지지못하는 생명채라고 부르기도 뭣한 개체라 생각됩니다.

Quote:
혹시, 우리가 풀지 못한 문제들(P = NP ? 등등)이 풀리지 않았을까요?

input없이 어떤문제를 풀수있을꺼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http://www.brainew.com <= 여기는 인공생명을 연구하시는분의 홈페이지인대요.
종교적, 철학적인 측면의 인간관이 아닌 아주 색다른 시각의 인간관을 보여줍니다. 참 삭막하고.. 믿기어렵지만 충분한수긍이가는 이론이나 주장입니다.

박영선의 이미지

동물처럼되지않을까요?

오로지 본능만이 살아있는...

^^;;

hey의 이미지

차리서 wrote:
너무 엽기적인 궁금증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궁금해하고 마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죠. 실험해볼 생각은 없으니까요. :)

음, 같지는 않지만 그런 비슷한 것을 실험해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아이가 아무런 문명과도 접촉하지 않고 자라면 신의 언어를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답니다. 기록도 있고, 그런 주장을 담은 책도 꽤 근래까지 있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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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the F/OSS be with you..


Prentice의 이미지

언어학에서는 Critical Period Hypothesis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의 언어습득시기에 관한 가설인데, 특정 기간 안에서만 언어 습득이 쉽게 일어나고, 그 기간을 넘겨 버리면 언어 습득이 굉장히 어려워진다는 가설입니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사춘기를 전후해서 언어 습득의 마지노선(?)이 존재한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통념입니다.

제 생각은.. 십수년이 넘게 말을 못하고 못듣는다면 말을 배울 수 없을 테고, 말을 못 하면 의사소통이나 고등사고를 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요? 사고 자체는 할 수 있더라도 아주 복잡한 생각은 못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morris의 이미지

Quote:
같지는 않지만 그런 비슷한 것을 실험해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인간의 아이가 아무런 문명과도 접촉하지 않고 자라면 신의 언어를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답니다. 기록도 있고, 그런 주장을 담은 책도 꽤 근래까지 있었대요.

어느책에서 본건데 로마시대에 황제가 그런 실험을 했다더군요

그러고보니 로마인이야기에서 본건가 기억은 잘 안나는데

고아인 애기들 몇명 데려다놓고 우유주고 물주고 보통 아이들과 같게했는데

유모들이 애기들 앞에서 말은 못하게 했답니다

그렇게 하면 그때는 성스러운(???) 표현이 잘 기억안나는데 아무튼

그리스어를 할줄 알았는데

애기들이 몇개월 못가서 다 죽어버렸답니다.

아마도 그 사람도 동물처럼 살거나

죽어버릴거 같은데요

인도의 늑대 소녀인가? 소년인가도 20살도 안되서 죽지 않았나요?

cjh의 이미지

베르베르의 "나무"에 관련된 편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짐작이 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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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펙토 페트로눔

logout의 이미지

색즉시공 공즉시색... 냠냠냠. :)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이한길의 이미지

magellan wrote:
pyrasis wrote:
언어를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각을 못할 것 같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은 영어로 생각하고..우리는 생각할때 한국어로 생각하죠..

언어로 생각하는거 말고, 그냥 느낌으로 생각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제가 생각한거 말로 표현 못할 때가 많이 있거든요.

아닙니다. 생각한거 말로 표현을 못한다 하더라도 언어는 생각의 도구입니다.
언어가 없다면 사람의 상상력은 그만큼 제한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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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알게 된 것을 알려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http://hangulee.springnote.com
http://hangulee.egloos.com

impactbar의 이미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죽을 것 같습니다.

글을 자세히 보니 의학의 힘이 있군요. ^^;

통감은 자아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느낌입니다. 모든 동식물이 가지고 있죠.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외부와 내부를 기분하는 기준을 통감에서 가지고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각도 다른 형태의 통감이죠.

다만 타인과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고통에서 해방되어 좀더 사유의 시간을 가지며 스트븐 호킹박사 처럼

어떤 분야에서 평범한 인간의 사고를 좀더 극한까지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nohmad의 이미지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모두 언어라는 구조의 side effect입니다. 만일 언어가 없는 의식이 있다해도(현대의학의 도움으로), 그것은 인간의 의식은 아닐 겁니다.

인간복제를 위한 최소한의 실험적 요건들이 모두 갖춰지게 되면, 이런 실험을 기획할 사람이 반드시 생기리라 봅니다. 머지 않아 궁금증이 풀리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 궁금해하지도 말자, 주의입니다. :|

NeoTuring의 이미지

nohmad wrote: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모두 언어라는 구조의 side effect입니다. 만일 언어가 없는 의식이 있다해도(현대의학의 도움으로), 그것은 인간의 의식은 아닐 겁니다.

인간복제를 위한 최소한의 실험적 요건들이 모두 갖춰지게 되면, 이런 실험을 기획할 사람이 반드시 생기리라 봅니다. 머지 않아 궁금증이 풀리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거 궁금해하지도 말자, 주의입니다. :|

과연 그럴까요? 언어가 의식을 규정할수도 있지만, 거꾸로 의식이 언어를 규정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은데요?

NeoTuring의 이미지

놀랍군요. 저도 예전에 이와 똑같은 생각을 한적이 있었거든요. 이 논의에 있어 기본으로 삼을만한 좋은 이론적 토대가 있습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고 그야말로 깨끗한 도화지의 상태에 있다는 '빈 서판'이론(모든 인간적인 특질은 후천적으로 학습된것이다)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그와 반대되는것으로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인간이게 만드는 특성을 타고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이기심이나 증오, 투쟁(별로 좋은 속성들은 아니죠)과
같은것을 하게 될 수 밖에 없는존재 라는것을 주장하는 '인간본성'(동물본성이 더 적합하겠지만)에 대한 이론이 있습니다.

이 두 관점은 어떤것이 옳다내지는 그르다라고 칼로 무자르듯이 베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것이 최근까지의 심리학적, 사회학적 판단이었고 그 때문에 어떤
관점이 더 우세할것이냐 하는것도 전문 학자들사이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될만큼 확실한 결론이 나 있지 않은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 주관적인 소견을 밝혀보자면... 우선 '생각'이라는것에 대해 과연 어느정도의 수준까지를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생각'이라는것은 그 자체가 매우 고차원적인 두뇌의 활동이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는 범위를 두뇌의 대뇌피질 영역으로 한정시켜도 별 상관이
없을것 같다는 판단이 서고, 그렇게 사고의 영역을 한정시킨다면 사고라는것은 '빈 서판'이론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 밖에 없는것 아닐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중뇌 및 소뇌등의 경우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능력이나 생명유지에 필요한 통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부분이 작동을 멈출때는 아예 생명자체가
위협받게 되어 선천적으로 이 부분을 선대로부터 받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는것인 반면, 대뇌피질의 경우는 선천적으로 그 내부에 생명유지에 필요한 어떤 SW를
필수적으로 내장해야 할것을 요구받지 않는것으로 보여지고 이러한 사실을 숙지한다면 진화차원에서 유전적으로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자 할때 대뇌에 쓸데없는
쓰레기값이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좀 강하게 말하면 인간의 두뇌에 있어 대뇌피질은 '빈 서판'이론에 의존하고, 그 외의 부분은 '인간본성'이론에 의존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제시된것처럼 어떤 사람이 태어날때부터 오감이 제거된 그런 상태로 오랜세월을 살았더라도 그 세월동안 어떠한 사고과정도 하게
되지 않을것 같다고 보여지네요. '빈 서판'은 후천적인 기록을 필요로 합니다. 비어있기 떄문에 외부로부터 어떠한 input이 들어와야 '어느정도 기록된 서판'이
될 수 있는것이죠.하지만, 제시된 조건에서는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input도 차단당하고 있습니다.
즉, 빈 서판이 계속 빈 서판인 상태로 유지되는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라면 생각자체를 하게 되지 않을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행동적인 측면을 예측하는것도 꽤 어려운일인것 같은데 아마 주로 갓난아이처럼 웅크리고 있거나 손이나 발을 가끔 움직이는 정도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도 '본능적'인 움직임..'인간본성'이론에 의존하는 두뇌의 영역이 활성화된 결과 이상이 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적어도 행동주의적인 입장에서는 '빈 서판'이론은 거의 절대적인 전제가 됩니다)

정서라는것도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고, 그 영역을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어떻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것 같습니다만
이 경우도 매우 초보적인 정서성향은 나타낼 수 있되 그 외의 인간적인 복잡한 정서는 나타나지 않을것 같다고 생각되는군요.

P = NP 문제를 증명하는것은 당연히 그 사람이 매우 고차적인(정말 고차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때나 가능한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해당사항이 없겠군요.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