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U 20주년에 대한 RMS의 회고(?)

권순선의 이미지

리차드 스톨만이 GNU 설립 20주년을 회고하면서 쓴 글입니다.

The Free Software Community After 20 Years: With great but incomplete success, what now?

It was twenty years ago today that I quit my job at MIT to begin developing a free software operating system, GNU. While we have never released a complete GNU system suitable for production use, a variant of the GNU system is now used by tens of millions of people who mostly are not aware it is such. Free software does not mean "gratis"; it means that users are free to run the program, study the source code, change it, and redistribute it either with or without changes, either gratis or for a fee.

My hope was that a free operating system would open a path to escape forever from the system of subjugation which is proprietary software. I had experienced the ugliness of the way of life that non-free software imposes on its users, and I was determined to escape and give others a way to escape.

Non-free software carries with it an antisocial system that prohibits cooperation and community. You are typically unable to see the source code; you cannot tell what nasty tricks, or what foolish bugs, it might contain. If you don't like it, you are helpless to change it. Worst of all, you are forbidden to share it with anyone else. To prohibit sharing software is to cut the bonds of society.

Today we have a large community of users who run GNU, Linux and other free software. Thousands of people would like to extend this, and have adopted the goal of convincing more computer users to "use free software". But what does it mean to "use free software"? Does that mean escaping from proprietary software, or merely installing free programs alongside it? Are we aiming to lead people to freedom, or just introduce them to our work? In other words, are we working for freedom, or have we replaced that goal with the shallow goal of popularity?

It's easy to get in the habit of overlooking this distinction, because in many common situations it makes no difference. When you're trying to convince a person to try a free program, or to install the GNU/Linux operating system, either goal would lead to the same practical conduct. However, in other situations the two goals inspire very different actions.

For instance, what should we say when the non-free Invidious video driver, the non-free Prophecy database, or the non-free Indonesia language interpreter and libraries, is released in a version that runs on GNU/Linux? Should we thank the developers for this "support" for our system, or should we regard this non-free program like any other--as an attractive nuisance, a temptation to accept bondage, a problem to be solved?

If you take as your goal the increased popularity of certain free software, if you seek to convince more people to use some free programs some of the time, you might think those non-free program are helpful contributions to that goal. It is hard to dispute the claim that their availability helps make GNU/Linux more popular. If the widespread use of GNU or Linux is the ultimate goal of our community, we should logically applaud all applications that run on it, whether free or not.

But if our goal is freedom, that changes everything. Users cannot be free while using a non-free program. To free the citizens of cyberspace, we have to replace those non-free programs, not accept them. They are not contributions to our community, they are temptations to settle for continuing non-freedom.

There are two common motivations to develop a free program. One is that there is no program to do the job. Unfortunately, accepting the use of a non-free program eliminates that motivation. The other is the will to be free, which motivates people to write free replacements for non-free programs. In cases like these, that motive is the only one that can do the job. Simply by using a new and unfinished free replacement, before it technically compares with the non-free model, you can help encourage the free developers to persevere until it becomes superior.

Those non-free programs are not trivial. Developing free replacements for them will be a big job; it may take years. The work may need the help of future hackers, young people today, people yet to be inspired to join the work on free software. What can we do today to help convince other people, in the future, to maintain the necessary determination and persistance to finish this work?

The most effective way to strengthen our community for the future is to spread understanding of the value of freedom--to teach more people to recognize the moral unacceptability of non-free software. People who value freedom are, in the long term, its best and essential defense.

Copyright 2004 Richard Stallman
Verbatim copying and distribution of this entire article are
permitted world wide without royalty provided this notice is preserved.

youlsa의 이미지

역시 스톨만 아저씨 특유의 똥고집이 느껴지네요. 보통 리눅스 등으로 포팅되는 비자유(non-free) 소프트웨어들이 자유 소프트웨어(혹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들의 사용을 더 활성화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스톨만 선생은 그것까지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네요. 역시 고집을 부리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

어쨌든 역사적인 GNU프로젝트의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스톨만이 없었더라면 아마 세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겁니다.

=-=-=-=-=-=-=-=-=
http://youlsa.com

권순선의 이미지

흠...다 읽어 보았는데 GNU 20주년에 대한 회고록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RMS가 해 왔던 이야기들에 대한 요약본(?) 정도로 보는 게 더 적당할 것 같네요.

역시 RMS는 non-gpl / binary only module에 대해서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freedom을 강조하는 것도 언제나처럼 여전하네요. 이 글에서는 "open source"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the shallow goal of popularity" 등이 아마도 그를 빗대서 한 말 같고요.

ihavnoid의 이미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RMS님은 '왜 어떤 사람들은 소프트웨어에 있어서 자유라는 것을 필요로하지 않는 것인가' 에 대하여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습니다-_-

Consider the ravens: for they neither sow nor reap; which neither have storehouse nor barn; and God feedeth them: how much more are ye better than the fowls?
Luke 12:24

fibonacci의 이미지

RMS 아저씨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GNU에 저런 고집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용소프트웨어가 특유의 "편리함"으로 사람을 녹여서, 사용자들이 "약간 조잡한" 자유소프트웨어를 외면한다면, LINUX는 커널과 기본프로그램만 GPL이고 나머지는 다 사야되는 -_-; 반신불수가 되겠죠.

RMS아저씨가 자유소프트웨어를 그렇게 외치는것도 이런 이유라 봅니다.
상용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GNU/LINUX를 지키려는 의도라 보여지는군요.

No Pain, No Gain.

nohmad의 이미지

RMS 같은 사람이 한사람 정도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십자가를 매고 죄를 대속받고, 다른 중생은 원죄를 물려받는 기독교적 세계관 같아서)
인간 RMS를 알고나면 RMS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최후까지 남아 자유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사람에게
다른 사정도 고려해보라고 얘기하는 것은 우스워보입니다.
이미 죽을 힘 다해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도 고기 좀 먹고 살자, 고 얘기하는 기분이랄까요?

몇년 전 와이어드에서 읽은 기사에 의하면
스톨만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노트북도 MIT에서 임대한 것이고,
아파트도 얹혀 사는 것이라더군요.
재산이라곤 달랑 세계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옷가방 뿐이라나...

구글검색으로 찾은 와이어드 기사: http://www.wired.com/news/print/0,1294,18291,00.html

Viz의 이미지

nohmad wrote:

몇년 전 와이어드에서 읽은 기사에 의하면
스톨만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노트북도 MIT에서 임대한 것이고,
아파트도 얹혀 사는 것이라더군요.
재산이라곤 달랑 세계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옷가방 뿐이라나...

구글검색으로 찾은 와이어드 기사: http://www.wired.com/news/print/0,1294,18291,00.html

그런가요? :oops:

제가 전에 들은 바로는 스톨만씨가 어딘가에서 Z3를 받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
Z3는 BMW 의 스포츠 카입니다.

제가 들었던 루머느 좀 스톨만씨를 놀리는 내용이여서 생략.. -0-

ps. 검색해 보니 약간은 *비싼* 스포츠카를 가지고 있는건 사실인듯~

My Passion for the Vision!

권순선의 이미지

Viz wrote:
nohmad wrote:

몇년 전 와이어드에서 읽은 기사에 의하면
스톨만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노트북도 MIT에서 임대한 것이고,
아파트도 얹혀 사는 것이라더군요.
재산이라곤 달랑 세계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옷가방 뿐이라나...

구글검색으로 찾은 와이어드 기사: http://www.wired.com/news/print/0,1294,18291,00.html

그런가요? :oops:

제가 전에 들은 바로는 스톨만씨가 어딘가에서 Z3를 받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
Z3는 BMW 의 스포츠 카입니다.

제가 들었던 루머느 좀 스톨만씨를 놀리는 내용이여서 생략.. -0-

ps. 검색해 보니 약간은 *비싼* 스포츠카를 가지고 있는건 사실인듯~


Z3에 관한 이야기는 Linus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지요? Linus의 자서전(just for fun)에 보면 90년대 말/2000년대 초 리눅스 업체들이 Linus에게 나누어준 주식들이 상장 이후 상한가를 칠 때 이를 처분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rms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정확한 url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logout의 이미지

RMS 같은 사람은 한사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

RMS가 지나친 이상향을 꿈꾸고, 한번씩 이상한 똥고집을 부려서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의 얘기 중에서 "소프트웨어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세상"이라는 말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조금 넓게 생각하면 경제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출발점이 되거든요.

다른건 몰라도, 소프트웨어는 정말 나누어 주기 편리한 물건입니다. 예를들어, 갑자기 밖에 나가 있는데 비가 온다고 칩시다. 이럴때 우산이 없어서 비맞고 그냥 가는 사람들 보면 보기 좀 그렇죠. 그렇다고 내 우산을 그 사람에게 나누어 줘버리면 나는 또 비를 맞아야 합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남한테 우산 안주는게 맞습니다. 모... 도가 통한 사람은 그럴때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만. :)

그런데 이게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 보세요. 디지털 우산이면 그냥 하나 카피해서 옆사람에게 주면 그만입니다.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내 우산을 복사해서 준다고 해도 나한테 손해 갈 일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나 좋고 남 좋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적선도 하는 셈이구요.

이런 까닭에, RMS의 "소프트웨어 나누어주기" 얘기는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인류 역사상, 소프트웨어만큼 이렇게 옆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좋은 물건은 없었습니다. 항상 물건의 소유를 놓고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게 사람 팔자였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디지털 데이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겁니다.

그런데 상용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이 가능성이 다시 범죄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소프트웨어를 나누어 주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비용을 회수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한 카피당 얼마씩을 받겠다는 관행이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행위를 제한하지 않고서도 개발자에 대한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우선 찾아보는 것이 정도인데 상용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그 길이 막히게 된 셈이지요.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행위와 개발자에 대한 보상은 원론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널리 퍼져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것이 더욱 개발자나 사용자, 사회 전체로 봐서도 바람직한 일이지요.

게다가 RMS는 소프트웨어의 공급쪽에서도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즉, 지식은 다른 지식을 기반으로 자라난다는 것이지요. 소프트웨어개발에 필요한 지식은 따라서 공개가 되어야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한 앞에서 얘기했던 "나누어주기"라는 메커니즘이 똑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또한 시사점이 큽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관점으로는 재화나 용역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히 해 주어야 개인의 이윤동기에 기반해서 더 나은 재화의 생산이 가능해지고, 가격으로 재화의 가치를 정확히 지정해 주어야 가격을 매개로한 재화의 교환이 촉진되면서 개개인간의 협업과 분업이 쉬워진다고 하는데 디지털 소프트웨어가 나타나면서 이 틀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지요. 아직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RMS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혹은 그의 말마따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추구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제대로 주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소프트웨어의 특이한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과 GPL이라는 라이센스로 살려나가는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 RMS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RMS가 오픈 소스, 특히 소스 코드 공개 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는 BSD 라이센스쪽의 의견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다만, 현재의 오픈소스는 지금도 계속적으로 기반을 넓혀나가고 있으며 사람의 이윤동기까지도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잘 편입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RMS가 소프트웨어라는 물건에서 중요한 몇가지를 정확하게 집어낸 것을 사실입니다. RMS가 행동대원(?)으로서는 좀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이상에 대해 한번쯤은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오픈소스는 제대로 일반화 될 경우 전체 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도 있는 근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closeyes의 이미지

부제:노력했음에도 아직도 갈길이 먼 목표
글쓴이:리차드 스톨만

자유 소트프웨어 운영 시스템(GNU) 개발을 시작하기위해서 제가 다니던 직장 MIT를 그만둔 것이 20년 전이었습니다.현재는 우리 공동체가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걸친 완전한 GNU 시스템을 배포하지 못하였음에도,몇천만명의 사용자가 여러가지의 GNU 시스템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자유 소프트웨어가 꼭 "무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자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사용자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소스코드를 연구하고,소스코드를 개조하고,변경여부에 관계없이 다시 소스를 배포하는 데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 운영 체계가 소프트웨어의 소유권이 따로 있는 독점적인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를 바랬습니다.저는 자유롭지 못한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형태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경험했고,그로부터 벗어나서 탈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소프트웨어는 협동심과 공동체를 존속하는데 어렵게하는 반사회적인 체계입니다.당신은 소스코드를 볼 수 없고,자유롭지 못한 소프트웨어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사용자를 농락하는 속임수나 하찮은 버그가 무엇인지 알릴 수 없습니다.당신이 싫어하더라도,당신은 바꿀 여지가 없습니다.그중에서도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당신이 다른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공유를 막는 것은 사회의 유대감을 끊는 행위입니다.

현재 우리는 리눅스와 다른 자유소프트웨어와 같은 GNU로 통하는 유저들을 가진 거대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수천명의 사람들은 이 공동체를 넓히고 더 많은 컴퓨터 사용자들을 "자유 소프트웨어 사용"으로 표방되는 일리있는 목표를 포함시키고자 합니다.하지만 "자유 소프트웨어 사용"이라는 문구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입니까?소유권을 가진 소프트웨어나 소유권을 옆에 끼고 인스톨만 되는 무료 프로그램으로 부터 탈피하자는 것이 아닙니까?우리는 사람들을 자유로 이끌는 것을 최종목표로 하는 것입니까,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까?다르게 말하자면,우리는 자유를 위해 작업하고 있는 것입니까?아니면 대중성이라는 좁은 목표로 바꾸고자 하는 것입니까?

이 차이점은 많은 일상적인 상황에서와 다를바가 없기 때문에 대충 훒어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자유 프로그램을 시험하거나 GNU/Linux 운영 시스템을 인스톨하라고 설득하고 있을 때나 둘다 동일한 실제행위로 이끌 것입니다.그러나 다른 상황에서는 앞서 말한 두개의 목표는 전혀 다른 행위를 유발시킵니다.

예를 들면,자유롭지 못한 섞연찮은 비디오 드라이버,예측 데이터베이스,혹은 인도언어 인터프리터와 라이브러리가 GNU/Linux 상에서 사용되는 버전이 배포되었을 때 우리는 머라고 말해야 되는 것일까요?개발자에게 우리 시스템을 "지원"해줘서 고맙다고 할까요,아니면 이런 경우를 유혹적 방해물,속박을 수용하는 유혹,해결되야될 문제와 같이 취급해야 될까요?

당신의 목표가 자유 소프트웨어의 대중성을 증대시키는 것이라면,당신이 더 많은 사람이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납득시키는 것을 노력하고자 한다면,당신은 위에서 말한 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이 그런 목표에 일조를 할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런 프로그램들의 역활이 GNU/Linux 를 더욱 인기있게 만든다는 주장에대해 논의하는 것은 애매모호합니다.GNU나 Linux를 널리 사용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마지막 목표였다면,당연히 우리는 자유 소프트웨어인지에 관계없이 GNU/Linux상에서 돌아가는 모든 응용프로그램에 박수를 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가 자유라면,전혀 다릅니다.사용자는 자유롭지 못한 소프트웨어를 사용게 됨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됩니다.사이버공간상의 시민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을 대체시켜야 합니다.자유롭지 못한 소프트웨어들은 우리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그것들은 자유롭지 못한 것에 안주하도록 하는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두개의 일반적인 동기가 있습니다.하나는 돈을 벌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입니다.불행히도,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의 사용을 수용하는 것은 그러한 동기를 떨어뜨립니다.다른 것은 사람들이 자유롭지 목한 프로그램을 대체하는 자유프로그램을 쓰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주는 자유로와 지고자 하는 의지입니다.이와 같이,자유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동기는 돈버는 것 밖에 없습니다.새롭고 완료되지 않은 대체하는 자유 소프트 웨어를 사용하면서,기술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 모델과 비교하기 이전에 , 당신은 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보다 뛰어나게 개발될 때까지 견디어 내도록 자유 개발자에게 격려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자유롭지 못한 프로그램들을 대체하는 자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큰 작업입니다.이 작업은 미래의 해커,현재의 젋은 분들,자유 소프트웨어 기반의 작업에 합류하는 것에 망설이고 있는 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다른 분들을 납득시키고,훗날에 우리가 이 작업을 마칠수 있도록 하는 결심과 고집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래에도 우리 공동체를 굳건하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유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알리는 것입니다--자유롭지 못한 소프트웨어가 도의적으로 용납되서는 안된다는 것을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으며 없어서는 안될 방어구인 것입니다.

bh의 이미지

스톨만 아찌,, 참 대단하고,, 머찌네요.. -_-;;

--
이 아이디는 이제 쓰이지 않습니다.

방준영의 이미지

closeyes wrote:
현재는 우리 공동체가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걸친 완전한 GNU 시스템을 배포하지 못하였음에도,10만명의 사용자가 여러가지의 GNU 시스템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0만명 -> 몇천만명 (tens of millions이므로)
chunsj의 이미지

무료가 아니라 자유 아닌가요? 우리말로 번역을 할 때는 혼돈이 없을 줄
알았는데... 혼돈이 생기는 군요.

closeyes wrote:
부제:노력했음에도 아직도 갈길이 먼 목표
글쓴이:리차드 스톨만

여기저기 무료....
.

Viz의 이미지

권순선 wrote:
Viz wrote:
nohmad wrote:

몇년 전 와이어드에서 읽은 기사에 의하면
스톨만은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노트북도 MIT에서 임대한 것이고,
아파트도 얹혀 사는 것이라더군요.
재산이라곤 달랑 세계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옷가방 뿐이라나...

구글검색으로 찾은 와이어드 기사: http://www.wired.com/news/print/0,1294,18291,00.html

그런가요? :oops:

제가 전에 들은 바로는 스톨만씨가 어딘가에서 Z3를 받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
Z3는 BMW 의 스포츠 카입니다.

제가 들었던 루머느 좀 스톨만씨를 놀리는 내용이여서 생략.. -0-

ps. 검색해 보니 약간은 *비싼* 스포츠카를 가지고 있는건 사실인듯~


Z3에 관한 이야기는 Linus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지요? Linus의 자서전(just for fun)에 보면 90년대 말/2000년대 초 리눅스 업체들이 Linus에게 나누어준 주식들이 상장 이후 상한가를 칠 때 이를 처분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rms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정확한 url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오, 저의 실수네요.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권순선님의 말이 정확하군요. Z3를 가지고 있는 것은 linus 씨군요.

이거 실수라지만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스톨만씨의 명예에 먹칠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듯해서 부끄럽네요.:oops:
저런식의 글은 왠만하면 적지 말아야하고 적더라고 충분히 검토해봐야 하는데 좀 경솔했었습니다.

그럼.

My Passion for the Vision!

andysheep의 이미지

공감합니다.

시장의 논리는 이제는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에너지 시장입니다. 석유 에너지 시장, 전세계의 경제가 몇몇 석유회사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석유'라는 유한하고 공해유발 물질을 생산하는 원료.

걱정입니다. 어떤 식으로 에너지 위기에서 인류가 벗어날 수 있을지.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시스템에서 살고 있죠.

어떻게 100원의 유한한 돈으로 1000원, 10,000원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지 <- 은행의 수익 발생하는 기본 원리죠. 금융권의 가상의 돈을 만들어 경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참 기가 찰 뿐입니다. :evil:

미래의 경제 시스템은 '자유', '공유'를 기반으로 해야 된다고 봅니다.

자유를 잃어버릴 때 인간은 시스템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죠.
요새도 Rage Against Machine의 "Fuck the world! Fuck the norm"이라는 내용이 있는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을 듣고 있죠. 표지 앨범이 결가부좌한 스님의 온몸에 불이 붙어있는 흑백 사진인데..

logout wrote:
RMS 같은 사람은 한사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

RMS가 지나친 이상향을 꿈꾸고, 한번씩 이상한 똥고집을 부려서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의 얘기 중에서 "소프트웨어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세상"이라는 말은 새겨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조금 넓게 생각하면 경제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도 있는 출발점이 되거든요.

다른건 몰라도, 소프트웨어는 정말 나누어 주기 편리한 물건입니다. 예를들어, 갑자기 밖에 나가 있는데 비가 온다고 칩시다. 이럴때 우산이 없어서 비맞고 그냥 가는 사람들 보면 보기 좀 그렇죠. 그렇다고 내 우산을 그 사람에게 나누어 줘버리면 나는 또 비를 맞아야 합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남한테 우산 안주는게 맞습니다. 모... 도가 통한 사람은 그럴때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만. :)

그런데 이게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 보세요. 디지털 우산이면 그냥 하나 카피해서 옆사람에게 주면 그만입니다.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내 우산을 복사해서 준다고 해도 나한테 손해 갈 일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나 좋고 남 좋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적선도 하는 셈이구요.

이런 까닭에, RMS의 "소프트웨어 나누어주기" 얘기는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인류 역사상, 소프트웨어만큼 이렇게 옆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좋은 물건은 없었습니다. 항상 물건의

소유를 놓고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게 사람 팔자였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디지털 데이터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된 겁니다.

그런데 상용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이 가능성이 다시 범죄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소프트웨어를 나누어 주는 것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비용을 회수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한 카피당 얼마씩을 받겠다는 관행이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연결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행위를 제한하지 않고서도 개발자에 대한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우선 찾아보는 것이 정도인데 상용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그 길이 막히게 된 셈이지요.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행위와 개발자에 대한 보상은 원론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널리 퍼져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것이 더욱 개발자나 사용자, 사회 전체로 봐서도 바람직한 일이지요.

게다가 RMS는 소프트웨어의 공급쪽에서도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즉, 지식은 다른 지식을 기반으로 자라난다는 것이지요. 소프트웨어개발에 필요한 지식은 따라서 공개가 되어야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한 앞에서 얘기했던 "나누어주기"라는 메커니즘이 똑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또한 시사점이 큽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관점으로는 재화나 용역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히 해 주어야 개인의 이윤동기에 기반해서 더 나은 재화의 생산이 가능해지고, 가격으로 재화의 가치를 정확히 지정해 주어야 가격을 매개로한 재화의 교환이 촉진되면서 개개인간의 협업과 분업이 쉬워진다고 하는데 디지털 소프트웨어가 나타나면서 이 틀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지요. 아직은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RMS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혹은 그의 말마따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추구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제대로 주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소프트웨어의 특이한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과 GPL이라는 라이센스로 살려나가는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 RMS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RMS가 오픈 소스, 특히 소스 코드 공개 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는 BSD 라이센스쪽의 의견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다만, 현재의 오픈소스는 지금도 계속적으로 기반을 넓혀나가고 있으며 사람의 이윤동기까지도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잘 편입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RMS가 소프트웨어라는 물건에서 중요한 몇가지를 정확하게 집어낸 것을 사실입니다. RMS가 행동대원(?)으로서는 좀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이상에 대해 한번쯤은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오픈소스는 제대로 일반화 될 경우 전체 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도 있는 근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Devuan 1.0 (Debian without systemd)
amd64 station: AMD FX(tm)-6100 Six-Core Processor, 8 GB memory, 1 TB HDD
amd64 laptop: HP Touchsmart

글쇠판: 세벌 최종식, 콜맥 (Colemak)

penguinpow의 이미지

그래서 무선 랜카드를 사놓고 1년 동안 처박아 왔었습니다.

리눅스 드라이버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요즘 나오는 802.11g는 아예 리눅스 지원이 전무하더군요.

소프트웨어만 가지고 싸운다면냐 가능성이 있지만

하드웨어 드라이버까지 이지경이면

리눅스가 저변을 넓히기가 너무 힘들죠

결국 무선 랜이 달린 컴퓨터에 윈도우 XP를 돈내고 사서 깔아 씁니다.

리눅스만 쓴지 2년후의 일입니다.

( 제가 리눅스와 GNU를 사랑하는 만큼 M$의 법칙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차마 불법으로 복사는 못했습니다. )

리눅스를 돌리고 싶어도 못돌리고

그나마 바이너리 드라이버도 안나온다면

걍 드라이버만 릴리스 해줘도 감지덕지 하는 상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RMS나 내 자신이 가끔씩은 처량해 보이더군요.

얼마전에 linuxant 라는 회사가 윈도용 무선랜 드라이버를

리눅스에 쓸수있게 한다고 해서

깔아 봤습니다.

맨드래이크에다 깔았죠

잘 돌더군요

근데 돈을 내야 합니다.

후후 갈길이 멀다는 RMS의 말 100% 동감 합니다.

logout의 이미지

andysheep wrote: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시스템에서 살고 있죠.

어떻게 100원의 유한한 돈으로 1000원, 10,000원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지 <- 은행의 수익 발생하는 기본 원리죠. 금융권의 가상의 돈을 만들어 경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참 기가 찰 뿐입니다. :evil:

여담입니다만 유한한 자원을 그래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는 아직까지 시장 메커니즘만큼 효율적인 방식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한한 자원은 시장에 맡기는 편이 그래도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가능합니다. 독점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금융은 한편으로 보면 돈놓고 돈먹는 투전판으로 보이지만 실제 원론적인 금융의 역할은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투전판 금융도 있지만 금융의 이러한 본질적인 기능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RMS의 나누어주기 아이디어가 소프트웨어에 유효한 이유는 소프트웨어는 유한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자원이니 널리 퍼뜨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유한한 자원의 활용과 무한한 자원의 활용은 완전히 다른 틀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 conduct to live,
I live to compose."
--- Gustav Mahler

andysheep의 이미지

logout wrote:
andysheep wrote: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시스템에서 살고 있죠.

어떻게 100원의 유한한 돈으로 1000원, 10,000원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지 <- 은행의 수익 발생하는 기본 원리죠. 금융권의 가상의 돈을 만들어 경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참 기가 찰 뿐입니다. :evil:

여담입니다만 유한한 자원을 그래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는 아직까지 시장 메커니즘만큼 효율적인 방식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한한 자원은 시장에 맡기는 편이 그래도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가능합니다. 독점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금융은 한편으로 보면 돈놓고 돈먹는 투전판으로 보이지만 실제 원론적인 금융의 역할은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투전판 금융도 있지만 금융의 이러한 본질적인 기능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RMS의 나누어주기 아이디어가 소프트웨어에 유효한 이유는 소프트웨어는 유한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자원이니 널리 퍼뜨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유한한 자원의 활용과 무한한 자원의 활용은 완전히 다른 틀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매커니즘이 효율적이라고요?

현재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우습습니다. "먹는 물" 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다른 선진국들 점점 수돗물을 식수로 먹지 않습니다. '오염'이라는 것으로 오염 물질을 제거한 가공된 물을 따로 사먹습니다. 근대화 이전에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자연의 물을 인간들이 식용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에서 어렷을 때는 산에서 옹달샘, 시냇 물 퍼먹었습니다. 동네의 우물은 말할 것도 없구요.

농약 사용하기 시작하고, 산성비에 섞인 공해물질, 대기오염. 어느 순간 우물을 겨울에도 끓여 먹어야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잘사는 집에서는 정수기로 물 먹기 시작했고, 병으로 파는 물 등장.

생수 한병이 코카콜라 보다 훨씬 비쌉니다. 새로운 음료수 시장이 생긴 겁니다. 인간이면 매일 먹어야 하는 필수품인 물을 상품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오염을 줄여서 수돗물을 마시자는 시민 단체의 운동을 물관련 기업에서는 조직적으로 방해를 놓습니다.

석유 에너지 업체가 엄청난 자금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엔진이나 대체 에너지 관련 연구 활동 자체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 아세요? 선진국이라는 미국입니다. 연비 효율이 10%만 높은 엔진들이 - 많이 발명 되었습니다 - 제작되어 대중화가 되면 석유 업체는 10%의 이익 감소니까 반대하죠. 석유 대신 대체 연료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출현은 곧 석유 에너지 업체의 몰락입니다. 석유 에너지 업체의 유지와 이익을 위해 수억 아니 지구 전체가 희생을 당하고 있는 셈이죠. 합쳐봐야 10만명 될까요? 석유 에너지 업체들.

금융권은 돈 놓고 돈먹기 하는 투전판의 연장입니다. 그뿐입니다.

국가 개입이 없는 시장경제? 브라질의 상파울로 가보면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은 땅굴에서 짐승 비슷한 삶을 살고, 부자들은 초호화 생할을 한답니다.
미국의 뉴욕의 할렘가와 맨하탄.
서울의 천막촌과 강남.

Devuan 1.0 (Debian without systemd)
amd64 station: AMD FX(tm)-6100 Six-Core Processor, 8 GB memory, 1 TB HDD
amd64 laptop: HP Touchsmart

글쇠판: 세벌 최종식, 콜맥 (Colemak)

raymundo의 이미지

andysheep wrote:

현재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우습습니다. "먹는 물" 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다른 선진국들 점점 수돗물을 식수로 먹지 않습니다. '오염'이라는 것으로 오염 물질을 제거한 가공된 물을 따로 사먹습니다. 근대화 이전에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자연의 물을 인간들이 식용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에서 어렷을 때는 산에서 옹달샘, 시냇 물 퍼먹었습니다. 동네의 우물은 말할 것도 없구요.

좀 벗어난 얘기겠습니다만...

'엔트로피' (저자 이름이... 제레미 레프킨이던가요?) 에서 하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예전에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도끼 한 자루 들고 뒷산에 오르면 되었지만, 산을 파고 사막을 파고, 이제는 - 그렇잖아도 방폐장 때문에 말도 많은 - 원자끼리 충돌을 시켜야 하는 세상이 되었지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휴대폰과 인터넷...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만" 생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시대의 흐름에 많은 덕 - 질병 퇴치, 수명 연장, 보다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 - 을 보고는 있습니다만, 그를 위한 전지구적 비용은 끊임없이 늘어가겠죠.

좋은 하루 되세요!

zltek의 이미지

zdnet korea 에 번역문이 올라왔네요.

http://www.zdnet.co.kr/hotissue/devcolumn/article.jsp?id=66384&forum=1

RMS wrote:
지난 5일은 필자가 자유 소프트웨어 운영 체제인 GNU를 개발하기 위해 MIT를 그만둔 지 꼭 20년 된 날이었다. 우리는 한번도 상업적으로 GNU 시스템을 판매한 적이 없지만 현재 수천만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채 다양한 GNU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무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혹은 유료로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소스 코드를 연구해 수정하며 그리고 이를 수정한 상태 혹은 원본 그대로 재배포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 바램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영체제가 독점 소프트웨어가 주도하는 시스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독점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추한 방식을 경험하고, 나 스스로 이들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방법을 알려주기로 결심했었다.

독점 소프트웨어는 협력과 공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반사회적인 시스템을 형성한다. 사용자는 일반적으로 소스 코드를 볼 수 없으며 시스템에 어떤 간악한 술책이나 터무니없는 버그가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사용자는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를 수정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사용자가 시스템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소프트웨어 공유를 막는 것은 사회의 결속을 깨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재 우리는 GNU, 리눅스 그리고 다른 자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많은 사용자들의 커뮤니티를 구성했다. 커뮤니티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은 커뮤니티를 더 확장해 많은 사용자들에게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설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점 소프트웨어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단지 독점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치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을 소개하는 것인가?

즉 다시 말해 우리가 자유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중성이라는 얕은 목표를 위해 뛰고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 그 차이를 간과하고 지나치기 쉽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는 실상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자유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혹은 GNU/리눅스 운영체제를 설치하도록 설득하려 한다면, 이 때의 목표는 두 가지 질문 가운데 어떤 것이든 실질적인 행동은 같다.

그러나 두 목표가 전혀 다른 행동으로 나타나는 상황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GNU/리눅스에서 실행할 수 있는 독점 비디오 드라이버, 독점 예측 데이터베이스 혹은 독점 인도네시아 통역 프로그램이나 사전이 출시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는 자유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이러한 ‘지원’을 해 준 개발자에게 고마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독점 프로그램에 종속시키기 위한 매혹적인 유혹 정도로 생각해야 하는가?

만약 당신의 목표가 얼마동안 특정 자유 프로그램을 설치해 사용하도록 설득하고 자유 소프트웨어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이러한 독점 프로그램이 대중성을 달성하는데 요긴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독점 프로그램의 유용성이 GNU/리눅스를 더 대중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 진위를 논쟁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며, 만약 GNU나 리눅스의 광범위한 사용이 우리 커뮤니티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무료든 유료든 이 운영체제에서 구동되는 모든 애플리케이션을 성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가 자유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점 프로그램을 사용하는한 사용자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사이버 공간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독점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대신 이를 대체해야 한다. 독점 프로그램들은 우리 커뮤니티에 공헌하는 바가 없으며 독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유혹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자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작업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독점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이러한 동기는 없어진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독점 프로그램 대신 자유 소프트웨어를 쓰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자유 의지다. 이 경우 자유 의지는 자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당신은 독점 소프트웨어와 기술적으로 비교하지 않고 단지 이 새롭고 미완성된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유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더 훌륭한 프로그램을 완성할 때까지 이를 격려하고 성원할 수 있다.

독점 소프트웨어는 어수룩하지 않다. 이러한 독점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는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은 매우 큰 작업이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는 미래 해커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아직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바로 지금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래를 위해 우리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유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리고 독점 소프트웨어를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일이다.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에 꼭 필요한 사람이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

Copyright 2004 Richard Stallman
(이처럼 명시된 기사는 세계적으로 저작권 사용료 없이 전문 복사나 배포가 가능하다.)

"no error was found with his codes"

McKabi의 이미지

logout wrote:
andysheep wrote: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시스템에서 살고 있죠.

어떻게 100원의 유한한 돈으로 1000원, 10,000원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지 <- 은행의 수익 발생하는 기본 원리죠. 금융권의 가상의 돈을 만들어 경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참 기가 찰 뿐입니다. :evil:

여담입니다만 유한한 자원을 그래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는 아직까지 시장 메커니즘만큼 효율적인 방식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한한 자원은 시장에 맡기는 편이 그래도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가능합니다. 독점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대규모 정전 사태는 전기 사업을 서둘러 민영화했기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ㄲ ㅏ ㅂ ㅣ / M c K a b i / 7 7 r b i / T o D y

NeoTuring의 이미지

andysheep wrote:
logout wrote:
andysheep wrote: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잘못된 시스템에서 살고 있죠.

어떻게 100원의 유한한 돈으로 1000원, 10,000원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지 <- 은행의 수익 발생하는 기본 원리죠. 금융권의 가상의 돈을 만들어 경제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참 기가 찰 뿐입니다. :evil:

여담입니다만 유한한 자원을 그래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는 아직까지 시장 메커니즘만큼 효율적인 방식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한한 자원은 시장에 맡기는 편이 그래도 효율적인 자원 활용이 가능합니다. 독점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금융은 한편으로 보면 돈놓고 돈먹는 투전판으로 보이지만 실제 원론적인 금융의 역할은 적재적소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투전판 금융도 있지만 금융의 이러한 본질적인 기능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RMS의 나누어주기 아이디어가 소프트웨어에 유효한 이유는 소프트웨어는 유한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자원이니 널리 퍼뜨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유한한 자원의 활용과 무한한 자원의 활용은 완전히 다른 틀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매커니즘이 효율적이라고요?

현재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우습습니다. "먹는 물" 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다른 선진국들 점점 수돗물을 식수로 먹지 않습니다. '오염'이라는 것으로 오염 물질을 제거한 가공된 물을 따로 사먹습니다. 근대화 이전에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자연의 물을 인간들이 식용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제가 자란 시골에서 어렷을 때는 산에서 옹달샘, 시냇 물 퍼먹었습니다. 동네의 우물은 말할 것도 없구요.

농약 사용하기 시작하고, 산성비에 섞인 공해물질, 대기오염. 어느 순간 우물을 겨울에도 끓여 먹어야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잘사는 집에서는 정수기로 물 먹기 시작했고, 병으로 파는 물 등장.

생수 한병이 코카콜라 보다 훨씬 비쌉니다. 새로운 음료수 시장이 생긴 겁니다. 인간이면 매일 먹어야 하는 필수품인 물을 상품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오염을 줄여서 수돗물을 마시자는 시민 단체의 운동을 물관련 기업에서는 조직적으로 방해를 놓습니다.

석유 에너지 업체가 엄청난 자금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엔진이나 대체 에너지 관련 연구 활동 자체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 아세요? 선진국이라는 미국입니다. 연비 효율이 10%만 높은 엔진들이 - 많이 발명 되었습니다 - 제작되어 대중화가 되면 석유 업체는 10%의 이익 감소니까 반대하죠. 석유 대신 대체 연료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출현은 곧 석유 에너지 업체의 몰락입니다. 석유 에너지 업체의 유지와 이익을 위해 수억 아니 지구 전체가 희생을 당하고 있는 셈이죠. 합쳐봐야 10만명 될까요? 석유 에너지 업체들.

금융권은 돈 놓고 돈먹기 하는 투전판의 연장입니다. 그뿐입니다.

국가 개입이 없는 시장경제? 브라질의 상파울로 가보면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가난한 사람들은 땅굴에서 짐승 비슷한 삶을 살고, 부자들은 초호화 생할을 한답니다.
미국의 뉴욕의 할렘가와 맨하탄.
서울의 천막촌과 강남.

석유 에너지 업체가 조직적 방해를 하든 말든 대체 에너지는 개발될것이고, 그것이 석유 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용보다 싸게 되는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석유 에너지 업체는 몰락하든가 아니면 다른 살길을 궁리할것입니다.

시장 메커니즘은 생산주체와 소비주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부추기는 시스템이며 이런면에서 보면 한 생산주체가

소비주체를 독점하려 하는 행위는 오히려 시장 메커니즘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다른 얘기인데...현재 빌게이츠가 마치 미국경제 전체에 비교해 엄청난 부를 갖고 있는것 처럼 생각되지만,

과거 록펠러나 카네기가 떼부자로 칭송받던 시절 미국경제 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비중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인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장경제를 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야를 넓혀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넣어서 같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변화와 상호작용을 그 자체의 메커니즘으로 채택하고 있는 시장경제를 '시간'없이 이해한다는것은

불가능한것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오류를 계속 범하고 있는거 같군요.

이미 그 (시장경제의)틀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틀 자체를 비판하는것은 참 우스운 일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고...

시장경제가 싫다면 시장경제를 채택하지 않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가면 되는것 아니겠습니까? (최근엔 중국도 또 북한조차도 시장경제를 채택하기 시작했군요.)

역시 RMS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이런 얘기가 따라 나오지 않길 바랬지만, 결국엔 나오게 되는군요.

andysheep의 이미지

생각의 차이는 논쟁을 하면 싸움으로 번져 개판이 됩니다. 어느 사람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는 밝힐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시간이 해결해주죠.

한가지만 님에게 묻겠습니다.

님은 리눅스를 사용한다면 왜 사용합니까? 님이 가진 현재 최선인 시장주의 논리의 핵인 기업에서 만들어낸 상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됩니다.

전 리눅스 공짜, 성능이 괜찮다라는 이유보다는 리눅스가 담고 있는 정신이 좋아서 리눅스를 고집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 분명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가능하면 빨리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기회가 오면 변혁 운동에 언젠가는 참가할 생각입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남들처럼 사회 문제나 현상에 무비판적으로 살든, 변화를 위해 행동을 하든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

위험함을 안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합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선진국 일본이나 미국에서 지진이 나면 인명 피해는 정말 극소수입니다. 그들은 지진에 대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최근에 이란에서 일어난 지진에는 2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2만명이면 작은 도시 하나가 땅속으로 가라앉았다고 봅니다.

관점의 차이라고 봅니다.

"시장 경제의 효율성" 저도 한때는 열심히 믿고 싶었습니다. :oops:

이만 줄입니다.

Quote:

석유 에너지 업체가 조직적 방해를 하든 말든 대체 에너지는 개발될것이고, 그것이 석유 에너지를

사용하는 비용보다 싸게 되는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석유 에너지 업체는 몰락하든가 아니면 다른 살길을 궁리할것입니다.

시장 메커니즘은 생산주체와 소비주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부추기는 시스템이며 이런면에서 보면 한 생산주체가

소비주체를 독점하려 하는 행위는 오히려 시장 메커니즘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다른 얘기인데...현재 빌게이츠가 마치 미국경제 전체에 비교해 엄청난 부를 갖고 있는것 처럼 생각되지만,

과거 록펠러나 카네기가 떼부자로 칭송받던 시절 미국경제 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비중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인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장경제를 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야를 넓혀서 '시간'이라는 요소를 넣어서 같이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변화와 상호작용을 그 자체의 메커니즘으로 채택하고 있는 시장경제를 '시간'없이 이해한다는것은

불가능한것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오류를 계속 범하고 있는거 같군요.

이미 그 (시장경제의)틀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틀 자체를 비판하는것은 참 우스운 일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고...

시장경제가 싫다면 시장경제를 채택하지 않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가면 되는것 아니겠습니까? (최근엔 중국도 또 북한조차도 시장경제를 채택하기 시작했군요.)

역시 RMS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이런 얘기가 따라 나오지 않길 바랬지만, 결국엔 나오게 되는군요.

Devuan 1.0 (Debian without systemd)
amd64 station: AMD FX(tm)-6100 Six-Core Processor, 8 GB memory, 1 TB HDD
amd64 laptop: HP Touchsmart

글쇠판: 세벌 최종식, 콜맥 (Colemak)

NeoTuring의 이미지

andysheep wrote:
한가지만 님에게 묻겠습니다.

님은 리눅스를 사용한다면 왜 사용합니까? 님이 가진 현재 최선인 시장주의 논리의 핵인 기업에서 만들어낸 상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됩니다.

전 리눅스 공짜, 성능이 괜찮다라는 이유보다는 리눅스가 담고 있는 정신이 좋아서 리눅스를 고집합니다.


개인적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든 상용소프트웨어든 기호에 따라 차별없이(?) 사용할뿐이지 어떤 한쪽의 편을

든다거나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되는것이지 굳이

그 배경이 되는 사상에 동조해야 하는것은 아니죠. (물론 이것도 개인의 취향 나름입니다)

andysheep wrote: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 분명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가능하면 빨리 보다 좋은 세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기회가 오면 변혁 운동에 언젠가는 참가할 생각입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남들처럼 사회 문제나 현상에 무비판적으로 살든, 변화를 위해 행동을 하든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

위험함을 안다면 미리 준비를 해야합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선진국 일본이나 미국에서 지진이 나면 인명 피해는 정말 극소수입니다. 그들은 지진에 대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최근에 이란에서 일어난 지진에는 2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2만명이면 작은 도시 하나가 땅속으로 가라앉았다고 봅니다.


아마도 현재의 세상을 '위험한 세상'으로 규정하고 계신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대비'를 하십시오.

다만, 자동차 사고 날것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그 생각을 굳히게 되었을때 '평생 자동차 안타기 운동'을 감수해야

하는것처럼 또 현재의 각종 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이

'모든 전자제품 사용안하기 운동'을 감수해야 하는것 처럼(컴퓨터든 TV든 백열등이든 어떤 전자제품도 사용하지 말아야겠죠)

andysheep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계신 '대비책'을 강구하시는 동시에 그에 상응해서 '잃어야 할것들'도 같이

생각하셔야 할겁니다.

어찌됐건 한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그런대로 돌아가고는 있습니다.

저라면 시장경제를 부정하여 자신의 존립기반까지 없애는 무모함(말씀드렸듯이 정말 시장경제가 싫다면 이민 가셔야 합니다)을

선택하는 대신 현재 돌아가고 있는 시장경제라는 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시장경제가 가지는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도록

노력할것입니다.

fibonacci의 이미지

NeoTuring wrote:
개인적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든 상용소프트웨어든 기호에 따라 차별없이(?) 사용할뿐이지 어떤 한쪽의 편을

든다거나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필요에 따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되는것이지 굳이

그 배경이 되는 사상에 동조해야 하는것은 아니죠. (물론 이것도 개인의 취향 나름입니다)

배경사상엔 동조를 안해도 BSD 라이센스 혹은 GPL엔 동의해야 합니다. 8)

No Pain, No 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