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for fun Linux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중략]

그 당시 인터넷을 통해 한 가지 장난이 번져나갔다.

크래그라는 이름의 한 불쌍한 소년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며, 그를 위해
엽서 한 장을 보내 달라는 일종의 행운의 편지가 유행처럼 퍼졌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떤 사람의 장난이었음이 판명되었다. 나는 암과 같은 심각한 병은 아니
더라도 어떤 병을 앓고 있는 크래그라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존재했다고 생각하지
는 않았다. 하지만 그 소년을 위해 편지를 보내 달라는 호소력 담긴 그 편지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수백 통의 답장을 초래했다. 그 행운의 편지에 착안하여,
나는 반 장난 삼아, 리눅스 유저들에게 돈이 아닌 엽서를 부탁하는 메일을 생각해냈다.
당시 PC세계에는 '셰어웨어'에 대해 한 가지 강한 전통이 있었다. 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면 대가로 프로그램 개발자에게 10달러 정도 되는 무엇인가를 보내는
전통 말이다. 사람들로부터 프로그램의 대가로 30달러 정도를 보내도 되는지 묻는
메일을 내가 받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그 메일들에 어떤 답변을
해야만 했다.

되돌아보면, 당시 나는 돈이 상당히 필요하긴 했다. 학자금 대출 형태로 5000달러를
빌려 쓰는 형편에, 컴퓨터 할부금으로 매달 5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피자와 맥주를 살 돈도 필요했다. 물론 리눅스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나는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상황이었고(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데이트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큰 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생기면 쓸 곳은 있었다.
이를테면 하드웨어 부품을 추가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아들이었다면, 어머니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유저들에게 약간의 돈을 요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나는 유저들
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관행을 저버렸다. 관행을 어긴 그런 나를 비난하고 싶다
면, 얼마든지 비난하라.
나는 돈보다는 리눅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돈 대신 엽서를 선택했다. 그로 인해 나는 엽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중략]

사실 내가 대가로 돈을 바라지 않은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리눅스를 포스트할 당시
나는 다른 이들이 닦아놓은 터전을 바탕으로 그 위에 자신들의 업적을 쌓았던 과학자 및 학자
들이 수세기 동안 걸었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사람과
나의 업적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나의 업적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를 통해
피드백(그리고 그와 더불어 '찬사'도)을 얻길 바랐다. 그렇다고 나의 작업 향상에 잠정적으로
도움이 될 돈을 지불하려 했던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만약 공공연한
'탐욕'의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부러움의 시선이 아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핀란드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그러한 사회 분위기는 노키아 이동전화가 세계 사람들의 주머니 속을 파고들며,
많은 핀란드 은행 계좌를 부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약간씩 바뀌게 되었다),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철저히 학구적인 할아버지와 철저한 공산주의자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르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이 아니더라도, 나는 리눅스를 팔고 싶지 않았다. 대가를 받음으로써 리눅스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동시에 다른 어떤 사람이 리눅스를 파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나는 지난 9월에 올렸던 리눅스 첫 버전과 관련된 저작권 명시문에서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했다. 1800년대 유럽에서 열린 베른조약 덕에, 우리는 창안물에 대해 저작권을 갖게 되었다.
저작권자로서 나는 자신의 창안물에 대해 마음대로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할 수 있었다.

"누구든 자유롭게 이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이 운영체제를 다른 이에게
마음대로 판매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이 운영체제를 이용하여 어떤 개선점
이나 성과를 거둘 시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소스 코드(오픈 코드의 반대는 접근
이 불가능한 바이너리 코드이다)를 공개한다면 말입니다. 만약 이 규칙에 동의하지 않
는다면, 코드를 카피하거나, 코드를 이용해 어떤 작업도 할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라. 당신은 6개월을 공들여 만든 어떤 성과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도록 허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까지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이룬 성과를 보길 원했고, 그것들을 보다
유용하게 개선시키길 원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 역시 그들이 내가 만든 성과를 이용하여 새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볼 수 있길 원했다. 나는 소스가 항상 공개되어 있어, 누군가 특정한 발전을 이루어
낸다면, 나 역시 그 성과를 이용할 수 있길 원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리눅스를 최고의 기술로 발전
시켜야만 리눅스를 순수 기술로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일에 돈이 개입되면, 모든 것이 오염되고
말 것 같았다. 돈의 개입을 막는다면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진입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눅스에 대한 대가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플로피 디스크에 로드한 운영체제를 다른 사람에게 카피해 주면서 어떤 대가를 요구했다. 2월경,
사람들이 유닉스 유저들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리눅스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를 챙겨가는 게 흔한 일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나의 운영체제를 카피해 주며 카피하는 데 소용되는 시간, 그리고 디스크 값을 포함해
5달러 정도의 대가를 받으면 되겠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나의 저작권을 위해하는 행위였는데도
말이다.

나는 리눅스를 '비판매용'으로 하겠다는 결심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리눅스가 점점 온라인에서 중요한
토론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던, 누군가 한 사람이 리눅스를 훔쳐 그것을 마음대로 이용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한다면 분명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었다. 누군가 리눅스를 훔쳐 상업화한다면, 해커 타입의 리눅스 공동체로부터 강한 반발을 살
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봐, 그건 리눅스야! 리눅스를 갖고 당신이 그렇게 할 권리는 없지!"처럼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리눅스를 훔친 사람에게 이렇게 공손한 말투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리눅스에 대한 열기는 뜨거워져 갔다. 매일매일 세계 각 곳의 해커들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개선안들을 기초로
공동 작업을 벌여 우리는 세계 최고의 운영체제를 만들어 나갔다. 우리가 나가는 길에 궤도 이탈이란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리눅스가 다른 프로그램들과 명백하게 분간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리눅스를 매매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관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또 한가지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리눅스를
유용하게 만드는 데 나 역시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배포되는 많은 툴들을 이용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툴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른 주요 프로그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리눅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용한
대표적인 자유 소프트웨어가 바로 GCC 컴파일러였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GPL(General Public License) 혹은
카피레프트(copyleft)로 알려진, 리처드 스톨먼의 새로운 라이선스 사상을 따르고 있었다. GPL 측면에서 보면,
돈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대가를 지불하려고만 한다면, 100만 달러라도 요구할 수 있었다. 단 소스
코드를 공개하여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소스 코드를 산, 혹은 받은
사람은 소스 코드를 판, 혹은 준 사람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탁월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있어 모든 새로운 혁신을 GPL 사상에 따라 전세계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GPL 추종자
들의 입장과 달리, 나는 자신이 개발한 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개발자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개발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여, 기존의 저작권을 포기하고 스톨먼이 변호사들의 검토하에 만든 새로운
라이선스인 GPL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저작권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리눅스 0.12부터였다. 하지만 새로운 저작권 규정에 따라 0.12를 배포한 후
나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 나의 운영체제를 상업적인 목적에서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 당시 나의 운영체제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상업적인 이익은
너무도 작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염려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지금도 나는 그 점을 염려하고 있지만, 누군가 리눅스를 취한 뒤,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을지도 모른
다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저작권을 침해한 사람이 만약 미국인이라면, 외국인을 상대로 실질적으로 소송을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우려이다. 사실 저작권을 침해한 사람을 상대로 고소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어떤 법적인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그 사람은 저작권 침해 행위를 멈추지 않으리라는
점, 그리고 중국 같은 나라에 위치한 기업들은 결코 GPL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어떤 법적 체계도 저작권 침해 행위를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어떤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뒤쫓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들 그리고 음반회사들이 법적 제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저작권을 보호하려 하고 있지만 별로 큰 성과를 못 거두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현실을 생각하면, 나의
두려움은 한창 가벼워진다. 현실적으로 누군가 한동안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특정
저작권으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저작권을 존중하여 자신이 만든 개선점을 커널에 피드백함으로써 커널 업그레
이드 과정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다. 반대로 GPL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향후의 업그레이드 부분을 이용할 수 없기에 결국
에는 고객을 놓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그것은 단지 나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말해, 나는 두 가지 입장에서 저작권을 바라본다. 만약 월 수입이 50달러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과연 250달러짜리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이 소프트웨어를 불법 복제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5개월
생활비를 털어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저작권 침해는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있는 저작권 침해자를 뒤쫓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비도덕적
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눅스에 있어, 자신이 사용할 의도에서 GPL을 어겨가며 리눅스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누군가 간단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리눅스를 이용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 사람이 미국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돈을 벌기 위해 마음대로 리눅스를 훔치는 것은 정도가 어떻든간에, 분명 비도덕
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탐욕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Linus Torvals.

기타 등등등...
리누스가 미닉스와 386으로 리눅스를 탄생시킬 즈음에 오갔던 야그들...

http//www.sslug.dk/artikler/linux_history_1.html
http//www.educ.umu.se/~bjorn/linux/misc/linux-history.html
http//linux-bangalore.org/articles/bday.php
http//www.unix-wizards.com/linux-histor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