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전성시대 -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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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자의 전성시대
-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2001. 6. 7. 목. 새벽에 문태준(taejun@tunelinux.pe.kr, http//tunelinux.pe.kr, http//database.sarang.net)

최근 모개그맨의 거짓 살빼기 이야기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모개그맨이 누구인지는 조금이라도 TV나 신문을 보는 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운동과 달리기로 몇십kg을 빼서 다이어트와 달리기 열풍을 불러왔다. 그녀의 운동 비법을 담은 비디오가 날개 돗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다가 실제로는 운동이 아니라 수술로 살빼기를 했다는 담당의사의 충격적인 고백이 나왔고 누구 말이 옳은지에 대한 공방이 오고가고 있다. 설사 누구의 말이 맞든지간에 우리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고 있다.

어릴적으로 잠시 되돌아가보자. 1980년도 초이던가. 광주의 피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국내에서 대규모의 국제 미인대회가 열렸던 기억이 가물가물 난다. 어린 놈에게도 서구식 미녀들의 그 매끈한 수영복 몸매는 침을 꼴딱 삼키게 하였고 밤늦게 몰래 텔레비전 보는 맛을 알게 해 주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냥 탤런트, 모델도 모자라 슈퍼 탤런트, 슈퍼 모델 선발 대회가 열렸고 각 지역에서도 사과 아가씨, 배 아가씨 등 하루가 멀다하고 지역이나 상품 미인대회가 열리고 열렸다. 어머니의 일자 통몸매는 부끄러운 것이었고 “쭉쭉빵빵”은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또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남자라서 어릴적부터 수많은 미인대회를 통해 잘 빠지고 서구적인 얼굴이어야 참한 여자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가끔은 그와 동떨어진 주위현실에 실망을 하여 왜 신은 나에게만 이리도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지 원망도 한다. 머리 나쁜 것은 용서해도 뚱뚱한 것은 용서못한다는 진리를 외우고 산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것은 이런 나의 가치관이 나 개인의 오랜 경험과 득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어릴적부터 주입되고 강제적으로 암기되었다는 것에 있다. 나는 형식적으로는 자유롭고 내 생각대로 살고자 하는데 실은 세상으로부터, 언론으로부터 이미 어떤 특정한 인간형만을 좋아하도록 쇠놰당했다. 내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은 그것이 내것이 아니라는 것, 내 마음은 금연을 했는데 알고보니 담배가내 입에 물리어져 있다는 현실. 내 안에 내가 아닌 저 무서운 사회의 고정 관념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 내가 내가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 개그맨이 살 빼는데 성공하고 나서 좋은 먹이감을 찾은 방송과 언론은 빠르게 그녀에게 달려간다. 조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하루라도 더 그녀의 이야기를 팔아먹어야 한다. 그녀의 남은 살까지 모두 빠질 때까지 그녀의 모든 진을 빼 먹어야 한다. 흡혈귀가 루마니아의 백작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녀의 성공 이야기를 큼지막하게 담아야 하고 이젠 그녀만의 노하우가 세상 곳곳에 퍼져서 뚱녀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새롭게 변모한 그녀는 원더우먼이 되어 이젠 주변 연예인들이 나서서 남자를 주선한다. 돈 많겠다 날씬하겠다 무엇이 모자란가. 천하의 뚱녀가 천하의 킹카가 되었으니. 한쪽에서는 성상품화를 비판하면서도 한쪽에서는 미인대회를 열고 쭉쭉빵빵의 그녀들 치맛자락을 들쑤시는 것이 우리네 언론의 특기이자 장기가 아니던가. 단물 다 빨아먹고 다시금 돌아서서 성인 군자로 별하는 그 연기력에는 최불암 아저써도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통나무를 좋아하든 쭉쭉빵빵을 좋아하든 개인이야 선택하면 되지만 언론 등 공적인 매체가 앞에 나서서 특정한 인물형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로부터 배제된 모든 사람들과 나중에는 선택받은 사람들마저 파괴하는 폭력이 아닐까. 서울대를 나오지 못했기에, 영남이 아니기에, 남자가 아니기에, 부모가 없기에, 돈과 든든한 빽이 없이게 가해지는 집단적 테러, 왕따와 다르지 않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뚱뚱하지만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만한 그녀에게 반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