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뇌아..

1999년 5월 5일
전라도 영광에서 무뇌아가 태어났다.
무뇌아는 신체의 각 기관들을 제어할 수 없었으므로 균형이라는 것을 몰랐다.
무뇌아의 심장은 1분에 250회 가량 박동을 하다가 갑자기 60회 이하로 박동수가 떨어지기도 했다.
무뇌아의 울음소리는 5판3선승제의 씨름 결승전에서 불구대천의 숙적을 역전승으로 물리치고
자신의 원한을 푼 천하장사의
기쁨에 찬 포효소리보다도 크고 우렁찼다.
나중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실시해보니 무뇌아의 목청이 터져있었다는 것이다.
무뇌아가 목청이 터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소리를 지른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아니, 어쩌면 무뇌아는 자신의 목청이 터지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태생 처음 느낀 놀라움과 분노와 두려움으로 자신의 성량을
미처 제어하지 못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뇌아는 찰흙같은 어둠속에서 장장 9달을 보내고
처음 햇볕을 느낀지 2시간만에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뇌아는 무정자증 아버지가 빗어낸 실패작이었다.
탯줄에 의지해 부족하나마 영양을 공급받았던 무뇌아는
일상적인 산부인과 의사의 탯줄 제거 수술에 힘입어 세상과의 연결통로를 잘리운 채 신음하다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산부인과 의사가 예의 그 탯줄을 능숙하게 자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이미 무뇌아의 고함이 시작된 다음이었다.
의사는 녹이 슬어 헐렁해진 탯줄을 쥐고서 이 아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의사는 자신의 가슴 주머니에 꽂혀 있던 주황색 삼각 망치를 꺼내 들었다.
무뇌아의 몸 여기저기를 툭툭 쳐보기 시작했다.
먼저 무릎.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의사는 6년의 전공수련을 통해 아기의 중추신경계에 문제가 있음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
의사는 무뇌아의 머리부분을 망치로 툭툭 쳐보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두들겼다.
두둥~~
흐리고 멍텅한 소리가 진동했다.
바톤핑크에 나오는 호텔 프론트의 종소리처럼 잔잔하게,
베이스 기타의 4번 개방현의 울림처럼 중후하게,
마샬 앰프에 가까이 다가선 전기기타의 하울링처럼 날카롭게,
깊은 동굴에서 내지르는 소리가 벽을 타고 반사되면서 끊임없이 울리다가
종국에 살아남은 배음처럼 맑은 소리에다가
12월 31일 밤 12시 울리는 상원사 동종의 장엄함이 서려있는
터덩~~하고 울리는 소리가
분만실 가위들과 컴퓨터단층촬영기를 망가트리고야 말았다.
의사는
'이 아기, 머리가 비었나?'
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교내 록그룹 드러머의 경험과
대학교 1학년 풍물패 시절 징치배의 경험을 살려
무뇌아의 머리를 마음껏 두들겨 보았다.
두둥~~터덩~~ 영어 표현으로는 rub-a-dub...
실로 6년만에 쳐보는 "드럼"이었다.
드디어 무정자증 아버지가 나섰다.
"아니, 의사양반, 왜 아기 머리를 두들기는 거요?"
"이 아기, 머리가 비었군요..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얘가 무뇌아임에 틀림 없겠습니다.
내가 하두 오랜만에 듣기 좋은 소리가 나서 옛날 북치던 기억을 살려서 한번 두들겨 보았응께
좀 이해해주실 거라 믿소.
그리고 신생아 머리 검사하는데는 북치듯이 한번 쳐보는게
간편하고 정확한 방법이라고 의학서적에도 나와있고..
무슨 책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오늘의학예감이라는 의학비평저널이 있는데
그 책에서 봤나?
내가 옛날 그 저널 편집장을 했기 때문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 책 돌팔이 서적은 아니니까 정기구독을 해보는 것은 어떻소?
이번 호에는 가정상비약을 부록으로 준다고 하던데
내용도 알차지만 표지디자인도 뿅간다오.
이번 호 표지는 응급구조대가 오토바이 타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인데..
중간에 사막을 지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하여간 신생아의 상태를 검토해기 위해서는 두들겨보라는 말이
오늘의학예감 여름호에 나오니까 내가 그렇게 한 것이라오.
내가 괜히 신나서 두들긴 것이 아니니까 이해하시고..
아, 참 그건 무릎을 그렇게 해보라고 한 건가? 아무튼요.."
산모는 엄청난 진통과 피곤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맑고 투명한 북소리를 자장가삼아 스르르 눈꺼풀이 잠겨들고 있던 터였다.
요람에 누워있던 무뇌아는 다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눈을 부라리며 의사를 노려보다가,
무정자증 아버지를 향해 방긋 웃기는커녕
미항공우주국의 로켓트 발사대처럼 경멸의 눈초리를 쏘아보냈다.
무뇌아는 입을 무진장 크게 벌리고 무어라고 고함을 내질렀으나
의사와 무정자증은 그게 무슨 뜻으로 지르는 고함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뇌아는 아버지를 계속 쳐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생머리 간호원이 옆에 서있다가
"애가 배가 고픈가봐요..어서 우유를 먹여야 겠어요."
의사는 그 말을 옳게 여겨,
"물론 아기는 배가 고플 거야.
저 헐렁해짓 탯줄로는 필시 제대로된 영양분을 공급받기가 힘든 법이거든.
자, 산모를 어서 깨워라!
애가 배가 고픈 듯 하니 모유를 한 모금 주어보자.."
무정자증 아버지가 반대하고 나선다.
"산모는 지금 피곤하니 내가 얼른 나가 우유를 사가지고 올테니까
그 동안에 애가 더 배가고파지지 않도록 포도당이 가득 들어있는 닝게루나 한 병 놔줘요.
그거 한 병 다 맞으면 배가 남산만하게 부를꺼에요."
"누구에게 명령이요? 처방은 의사인 내가 합니다.
그리고 신생아에게는 닝게루를 놓지 말라고 오늘의학예감에 나와있다는 걸 모르시오?
잽싸게 나가서 우유나 사가지고 오시오.
참 고름우유 사가지고 오면 애는 끝장이니까 조심하고요."
"알겠으니까 다그치지 말라고요. 오늘의학예감에 나와있다면 뭐 정확하겠군.
얼른 우유를 사가지고 올테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무정자증이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려고 하는데
무뇌아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나가지 말아요. 아버지가 나가면 나 죽어요.
내곁에 있어줘요. 저 돌팔이 의사가 날 죽일 거에요.
무정자증이 나갈려는 찰나
그는 정확히 무뇌아의 외침을 해석할 수 있었다.
"너 말을 하는구나, 언제 누구에게 배웠니?"
아버지 듣기만 하세요.
제 말은 아버지에게만 들려요.
전 원래 말을 할 줄 알도록 태어났어요.
무뇌아인 저에게는 유일한 축복인 셈이죠.
저 산부인과 돌팔이는 자신이 최고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바보에 불과해요.
돌팔이는 자신의 실수로 탯줄을 자른 것이 들통날까봐 나를 죽일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배가 고프지도 않고 아직은 멀쩡해요.
사실은 머리가 좀 아프지만.
아버지..
산부인과 의사는 무뇌아의 외침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애가 괴로운 모양이니 신경안정제를 한 방 놔야겠군.
아니, 당신은 왜 우유를 사오지 않고 있소? 어서 나가서 사오시오.
생머리 간호원, 주사를 어서 준비하라."
아버지..
저 주사를 맞으면 전 끝장이에요.
돌팔이는 내게 신경안정제를 놓다면서 사실은 살모사와 방울뱀의 독을 혼합주입할
작정이에요.
난 알아요.
아버지 제발 저 주사를 막아주세요.
"의사 양반, 주사를 놓지 말라고.
당신 웃기는 사람이군. 아이가 무뇌아라면서?
그런데 무슨 중추신경이 있어서 신경안정제를 놔?
내가 의학에 대해 배운바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난 아이의 아버지라고.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해보건데,
무뇌아의 신경은 이미 마비상태에 있다는 것은 상식이야,
그 요상한 주사를 놀 생각말라고."
"무슨 소리 하시오?
난 이 나라의 최고 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을 단박에 딴 엘리트란 밀이요.
그리고 난 예과, 본과에서 인턴, 레지던트 까지 내내 1등을 했소.
이번에 한약조제 자격증까지 땄단 말이오.
난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란 말이오.
난 당신의 그 빌어먹을 상식을 의학적으로 증명을 하기 위해 101가지의 실험을 거쳤단 말이오.
안그래 생머리 간호사?
말 좀 해봐."
"맞아요, 전 암것도 아니지만 우리 의사 선생님은 대단한 분이에요.
우리는 선생님의 처방에 무작정 따라야 해요.
간호사의 복무신조, 우리는 의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그러니 어서 주사를 놓겠어요.
주사가 준비되었어요.
무뇌아의 옷을 모두 벗겼어요.
무뇌아의 새빨간 배꼽이 보이네요.
약이 준비되었어요.
무뇌아를 진정시켜야 해요.
무뇌아는 괴로워하고 있어요.
무뇌아를 위해서 주사를 놓겠어요.
명령만 하세요."
아버지..
아버지..
신경안정제는 보통 사람이 맞으면 아무 영향도 없으니 돌팔이에게 먼저 맞아보라고 해보세요.
돌팔이는 틀림없이 회피할 거에요.
왜냐면 그 주사는 독약이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날 내버려 둔다면 난 죽을 거에요.
당신의 아들인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죠?
난 살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이 도와 준다면 남들처럼 훌륭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난 살아서 똑똑히 보고 싶어요.
나를 이렇게 만든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고싶어요.
나는 살아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나는 살아서 자본론을 읽고 싶어요.
나는 비평과 이데올로기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나는 예술사를 공부하고 싶어요.
나는 문화와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고 싶어요.
나는 마르크스주의와 헤겔의 관계를 알고 싶어요.
나는 신해혁명을 공부하고 싶어요.
나는 노신이 누구인지, 주은래가 어떤 사람인지, 이대조의 활동이
초기 중국공산당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것만 같아요.
나는 음악을 듣고 싶어요.
나는 그리고 많은 책들을 읽고 싶어요.
물론 나는 곧 나올 스키조가 가장 보고 싶어요.
내가 죽으면 실험실의 모르모트가 되겠죠.
해부실의 표본시체가 되겠죠.
납골당의 꽃다발이 되겠죠.
과학자들의 욕망에 짓밟혀 여전히 작은세상을 꿈꾸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면 좋겠죠.
나는 자궁에서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낙오한 자들의 절규를 들어보았어요.
가리봉동 삐끼들의 좌절을 느꼈어요.
터진 마우라의 굉음과 불타는 화양리의 환락이 보였어요.
막걸리 통을 도려내고 본드를 가득 짜놓고서
깊이 숨을 들이쉬어 봤어요. 그리고 알았어요.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나보다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깊이 잠에 빠져든 어머니,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실은
모성애의 탈을 쓴 채 무관심이라는 폭력적 무기로
나약한 자들을 벼랑으로 끌고가 추락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이 시대의 침묵이자 익명의 바다일 뿐이죠.
아버지.
나를 낳아준 것은 아버지 당신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속았다는 것도 알지만
아버지 당신이 나보다 멍청하다는 것도 알지만
당신은 세상과 말이 통하는 정상인이겠죠.
아버지는 나를 못내 포기하고 싶겠죠.
기꺼이 내가 죽어버리길 은근히 바라고 있어요.
내가 당신에게 골치아픈 존재가 되리라는 걱정을 벌써부터 하다니.
내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어도 당신이 그렇게 했을까요..
아버지. 나의 심장이 춤추고 있다는 것을 느끼나요?
이제 나는 곧 식어가겠지만,
난 당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고,
당신이 감추고 살았던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이 잃어버린 순수와
당신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사랑을
당신들이 잃어버린 세계를
나의 머리 속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 돌팔이 의사는 나를 기형아라고 놀리고 죽일려고 했어요.
나의 머리 속은 꽉 차 있는데.
생머리 간호원의 머리 속을 투사해보니 더러운 피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당신.
이중적이고 눈치를 엿보며 살아가는 당신.
나의 거짓 아버지.
내가 짧은 시간에 이토록 많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숨을 죽이고, 허리굽히고, 고개숙이고, 때때로 순종을 하면서도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다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순간의 결연한 의지로 거부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겨보는 사람,
언젠가는 꼭 한번 크게 화를 내봐야겠다고 맹세하며 살아가는
당신같은 사람뿐이었어요.
하지만 당신같은 사람은 구원을 바라지 않죠.
그냥 죽을 뿐이에요.
메시아를 만들어낸 것은 당신이 아니겠죠.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당신이 아니겠죠.
권력을 만들어낸 것도 폭력을 옹호하는 것도 당신이 아니겠죠.
아무 소리 안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어울리는
당신같은 사람들이 한 일은
암것도 없으니까요.
당신들의 삶은 끝도 없을 거에요.
무뇌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다.
전태일처럼,
당신들의 삶은 끝도 없을 거에요.
Re: 무뇌아..
펀 글인가요?
직접 쓰신 글인가요?
오랜만에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