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13편 중에서...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15편까지 있는(책으로는 12권까지... ) 드래곤 라자의 13편의 일부입니다.

언제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 글입니다...

====================================

제레인트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뭔지 아십니까?"

"뭐?"

제레인트는 엄숙하게 말했다.

"짝사랑이지요."

윽.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제레인트는 여전
히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뭔지 아십니까?"

"난, 난…"

"상사병이올시다."

도저히 못참겠다. 난 맹렬하게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돌렸다. 내가 몸
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동안에도 제레인트는 계속 웃지
도 않은 채 말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짝사랑과 상사병은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지요. 참 글러먹은 문제입니다. 짝사랑
을 하면 그냥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면 될 문제인데 말입니다. 상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꼭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된단 말입니다. 상대도 날 봐주었으면, 날 생각해주었으면, 날 사랑해주
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고장이 나버
리지요. 고약하다면 고약한 것이고, 동정하려고 들면 정말 동정받을 일
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익명 사용자의 이미지

"사랑은 어쩌면 모든 종족에 있어서 마찬가지의 불길일지도 모르겠군
요. 당신은 그가 변화하기를 바랬을 겁니다. 맞습니까?"

"변화…?"

"만물을 사랑하는 핸드레이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는 핸드레이크가
되기를 바랬을 겁니다. 당신은 세계를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사실 누가 그런 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당
신은 제멋대로 그가 변화하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그의 모습으로서 있게 허락하지 않고, 그를 파괴해서 재조립하려고
했을 겁니다. 맞습니까?"

다레니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창백한 얼굴로 제
레인트를 마주볼 뿐이었다. 제레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그의 모습에 맞추어 당신의 사랑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당신
의 사랑에 맞추어 그를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적어도, 내가 들은 바로
는 그렇습니다."

다레니안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럼, 그럼 네가 말하고 싶은, 진정한, 진정한 사랑은 뭐지?"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건 무관심하고 뭐가 다르다는 거지? 상대를 그
냥 내버려두는 것이라면, 그건 무관심하고 뭐가 다르단 말이야!"

다레니안의 작은 몸 전체가 분노로 떨고 있었다. 하지만 제레인트는 담
담하게 말했다.

"그 두 가지는 구별하기 어렵겠지요. 나로선 확신은 없습니다. 신이 우
리를 사랑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무관심한 것인지 구별하기 어
려운 것과 비슷하겠지요. 그래서 나는 핸드레이크가 당신에게 무관심했
는지, 아니면 자신을 마구 변화시키려드는 당신의 모습마저도 포용했는
지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