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가벼움

Series #8 - 참을 수 없는 디지털의 가벼움
어려서부터 뭔가를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했던 본인은 십대 초반부터
남땜질을 시작했고 라디오를 비롯한 잡다한 회로들을 만들며 놀다가
어머니께 무지 맞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음악에 빠져들게 되면서
관심은 온통 오디오를 만드는 것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사는 곳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이었기 때문에 부품 수급이나 자료 구하기가
엄청 곤란 했으므로, 전자상이 밀집해 있다는 서울 세운상가는 당시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동경의 장소였었다.
그러던 내가 서울로 진학하게 되면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청계천에
갈 수 있었다. 수상한 아저씨들이 많아서 좀 이상하긴 했지만 여하튼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어라? 한쪽에서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초등학생 쯤 돼보이는 꼬마들이 뭔가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처음보는 물건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아, 그것은 컴퓨터였다. 8비트 애플 컴퓨터를 그날 처음 본 것이었다.
꼬마들도 쓰는 것을 대학생인 내가, 그것도 공대생인 내가 신기하게
바라만 봐야 한다는 사실은 내 자존심을 마구 긁어 내리고 있었다.
가격을 알아보니 거의 한 학기 등록금 수준이었다. 답이 보이지 않아
한동안 어쩔줄 몰라 하다가 결국 직접 만들어 버리자고 결심해 버리게
되었다.
한 일년 반쯤 지나서 결국 나만의 오리지날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그 덕에 로직 IC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친숙하게 되었고 어셈블리
수준의 프로그래밍도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신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디지털 매니어였다.
국내 모기업에 입사를 한 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한 동안 응용
프로그래머로 외도를 하다가 다시 본연의 필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때는
90년도 중반에 가까울 무렵, 멀티미디어가 전자업계의 화두가 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과장급 이상의 엔지니어들은, 멀리는 진공관 시대부터
시작해서 트랜지스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경력의 아날로그
엔지니어들 이었다. 멀티미디어의 기류를 타고 제품군이 디지털 계통으로
넘어가면서, 덕분에 연구실에서는 사소하나마 디지털파와 아날로그파의
알력과 신경전이 그치질 않았다. 아날로그 고참 밑에서 디지털 옹호
주의자의 인생은 약간은 피곤한 것이었다.
2000년, 누가 뭐라 해도 대세는 디지털이다. 이제 그 때처럼 눈치보지
않고 디지털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물 만난 물고기의 기쁨
대신 디지털 강국을 부르짖는 CF를 보면서 되려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디지털은 원래 공학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제 그 개념은 확장되고
변형되고 전의되어서 상당히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함축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디지털 문화' 정도는 되야 될 것 같다.
문화라는 것은 그 속성상 깊고 무거운 것도 존재하지만 가볍고 얄팍한
것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본인의 불만은 그 가볍고 얄팍스러운 부분이
기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판을 치게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에서 오는 것이
다.
확실히 디지털 기술 그 자체에도 무겁고 가벼운 게 있는것 같다.
흔히들 디지털을 1과 0의 세계라고 한다. 그 말 자체는 동의하지만
디지털이 1과 0밖에 없는 세계로 치부하는 것은 불쾌한 것이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큰 발상이다. 로직 회로를 설계하면서 아슬아슬한
1과 0의 전압차 때문에 고심했던 회로 설계자, 길고 긴 케이블 상에서
1과 0을 잡음없이 효과적으로 전송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짰던 통신 기술자, DVD-ROM 픽업의 아날로그 패턴 신호에서
깨끗한 1과 0을 뽑아내기 위해 날 밤을 새는 엔지니어 등과 같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안정된 1과 0의 세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오늘도 쉼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의 세계는 자명하고 명쾌하다. 논리는
경험이나 관록에 의지하지 않고도 뛰어난 발상으로 승부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래서 영화에 심심치 않게 꼬마 천재 해커가 등장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1과 0의 논리 그자체는 디지탈의 가벼운
면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따라하기
쉬운 디지털' 또는 '디지털 일주일만 하면 아무개처럼 된다'하는 식으로
얄팍한 기술의 천국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큰 돈 되는 기술은
디지털의 무거운 쪽의 몫이다.
디지털의 논리성의 이면에는 복잡성이 있다. 복잡성 자체도 논리적인
틀이 단순하다면 갖가지 툴(tool)에 의지하여 쉽게 다룰수 있다. 하지만
복잡성 자체가 시스템화 되어 있으면 이는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무거움이 존재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아직 MS에 견줄만한 운영체제도,
오라클에 대응할 만한 데이타베이스엔진도, 세계 유수의 CPU와 경쟁할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기술도 없다. 디지털의 논리성도 물리 또는
수학적인 기초 기술에서 근거해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MPEG등과
같이 기술 표준의 형태로 가시화되는 경우가 많은데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이러한 표준 중에 우리나라 기업이 제시한 것은 별로 없고
그에 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로얄티라는 명목으로 유출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수의 롬 드라이브 생산국이지만, 광학 레이저
픽업이나 핵심 칩은 전량 수입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혁명의 1단계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을 포함한 하드웨어의
혁명으로 본다면 2단계는 소프트웨어의 혁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는 MS 같은 소수 승자들에 의해 평정되었다. 3단계는 역시 인터넷
혁명일 것이다. 인터넷의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서 경제는 물
론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까지 재편성 시키며 디지털 문화 확산의 첨병이 되고
있다. Yahoo나 AOL같은 인터넷을 이용한 새로운 수익 모델이 제시됨에
따라 디지털 컨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됨과 동시에 얄팍한 아이디어로
승부해 보겠다는 신생 벤처가 우후죽순 처럼 생겨나는 부작용이 발생한
시점도 이때이다. 인터넷이 곧 디지털이라는 이상한 등호 관계가
성립되면서 디지털의 가벼운 면 만이 강조되었고, 그러다 보니 웹서버
하나만 달랑 놓고도 벤처 행세를 할 수 있고, 대기업을 비롯 규모있는
기업에서 조차 경영인 보다는 장사꾼에 가까워져 가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디지털의 1단계, 2단계 혁명에 건실하게 동참하지 못하였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가, 무늬만 디지털인
허상에 묻혀 묵과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흔히 말하듯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내다 팔 것은 기술밖에는 없다고 하면서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우리나라도 (기초과학에서는 실패했으니) 이제 디지탈로
이겨보자는 식의 CF가 만연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혁명은 계속될 것이다. 조만간 닥칠 모바일의 시대가 그것이고, 디지털
TV가 몰고 올 변화의 파장도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뿐 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초과학들이 이러한 혁명의 밑바닥을 든든히 받치면서 끊임없이 발전하
고
재창조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본인은 기술로 가치를 창조한다는
대기업이나 벤처기업에서 디지털을 화두로 삼은 것이 불만이다. 차라리
그전에 많이 사용했던 "지식"이라는 개념이 훨씬 크고 깊어보이며 좀 더
진지하게 우리의 문제를 다룰 수 있게 해 줄 것 같기 때문이다.
[끝]
Interface Journal - http//user.chollian.net/~lase